GM대우 알페온은 시종일관 부드럽다. 목표하는 고객층의 취향에 잘 부합될 것이다. 가속력과 하체에는 작은 반전이 숨어 있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민병권, 박기돈 (RPM9.COM)
이번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적어도 이전의 도전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높아 뵌다. GM대우의 고민 중 하나는 성공적인 기함의 부재였다. 아카디아 이후 줄곧 안고 있는 고민이다. 한때는 쏘나타와 경쟁하는 매그너스가 기함의 역할을 맡을 때도 있었다.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는 외면을 받았지만 알페온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리는 있다. 앞의 두 차는 호주 출신이지만 알페온은 미국산, 그리고 엄청난 경쟁의 중국에서 입증 받은 모델이다. 전반적인 구색을 볼 때 훨씬 좋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까다로운 국내 성향에 맞게 조율하는 것은 GM대우의 몫이다. 그리고 자체 개발이 어려운 실정에서 국내에 들여올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실물로 보는 알페온 사진보다 훨씬 크고 더 고급 세단 같다. 국내에서도 먹힐 수 있는 요소이다. 시승차는 검은색이어서 이런 부분이 더 두드러지게 보일 수도 있다. 어쨌건 고급 세단은 역시 검은색이 먹어준다.
알페온은 당연히 라크로스와 매우 비슷하다. 전면 디자인을 보면 영락없는 뷰익의 라크로스이다. 디테일만 살짝 달라졌을 뿐이다. 뷰익 특유의 폭포수 그릴은 이제 미국보다는 중국을 더 생각나게 한다. 뷰익을 중국에서 많이 봐 그럴 수도 있다. 중국에는 뷰익이 정말 잘 팔리고 길에서도 잘 보인다. 요즘이야 다들 중국이 각자의 가장 큰 시장이 됐지만 재작년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하지만 뷰익은 이미 2007년에 미국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 일찍이 중국에 자리 잡은 GM이 뷰익을 적극적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선구자적인 입지인 셈이다.
전면에는 벤트가 보닛으로 올라온 게 눈에 띈다. 보통 벤트는 펜더에 붙는데 알페온은 보닛 양쪽에 달렸다. 물론 막혀 있는 장식적인 요소지만 전면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트렁크는 차 크기에 비해 좀 짧은 편이지만 단단한 모양새다. 범퍼 일체형 듀얼 머플러는 크기도 상당하다.
타이어는 미국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굿이어 이글 RS-A, 사이즈는 245/40R19이다. 19인치 휠은 3리터 자연흡기에는 다소 오버사이즈다. 휠 디자인은 고급 세단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실내는 승객을 감싸는 듯한 대시보드 디자인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양 대시보드 끝단이 부드럽게 안쪽으로 꺽이는 모습은 쉽게 보는 디자인은 아니다. 플라스틱의 질감은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기대보다는 대시보드 플라스틱이 딱딱한 편이다.
센터페시아의 디자인은 캐딜락을 연상케 한다. 모니터 좌우의 송풍구나 모니터, 버튼의 배치는 CTS에 보았던 모습이다. 버튼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쉽게 적응 된다. 공조장치를 비롯한 각 기능의 사용은 편하다고 할 수 있다. 후방 카메라의 가이드 라인이 스티어링과 연동되지 않는 것은 흠이다.
계기판 디자인이 현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바탕의 파란색이 입체적인 분위기를 살려준다. 물론 좀 더 멋을 부렸어도 좋을 뻔 했다. 중앙의 큰 액정을 통해서는 트립 컴퓨터, 타이어 공기압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메뉴 버튼이 방향 지시등에 달려 있는 게 특이하다.
시트는 딱딱한 유럽 스타일이다. 옆구리를 잘 받쳐주고 착좌감 자체도 좋은 편이다. 조절은 당연히 모두 전동이지만 요추 조절은 없다. 유리는 4개 모두 상하향 원터치, 선루프도 덮개까지 원터치가 적용된다.
고급 세단의 미덕 중 하나가 2열 공간인데, 알페온은 그런 요구에 충분히 부합된다. 2열 공간은 상당히 넓다. 레그룸이 넉넉하고 헤드룸도 마찬가지다. 거기다 암레스트를 펼치면 개별 공조 장치와 라디오, 시트 열선 버튼이 있는 패널이 나온다. 경쟁력이 있는 부분이다. 2열도 1열처럼 시트가 딱딱하다. 트렁크는 공간 자체는 커 보이지만 입구는 좁은 편이다.
알페온에는 3.0리터 V6 SIDI(Spark Ignition Direct Injection) 엔진이 올라간다. 이 엔진 역시 당연히 GM제이다. GM은 4기통과 V6에 직분사를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 회사로는 가장 빨랐다. 직분사가 도입되면서 성능과 연비에서 훨씬 경쟁력이 생겼다. 알페온에 올라가는 3리터 V6 엔진은 6,900 rpm에서 263마력, 5,600 rpm에서는 29.6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출력과 토크의 회전수를 보면 고회전 지향이다. 3리터 자연흡기로 263마력을 뽑아내는 것은 최고 수준이다. 단지 제원만 갖고 평가한다면 최대 토크가 리터당 10.0kg.m을 넘어야 하고 발생 회전수도 더욱 낮춰야 한다. 이래야 동급 최고에 더욱 근접할 수 있다.
알페온이 조용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다. 실제로도 조용하다. 아이들링 상태에서는 귀를 기울여야만 작은 엔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쉿! 알페온’ 수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간자 광고가 생각난다. 사실 레간자의 정숙성은 경쟁 모델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알페온은 확실히 조용하다. 최근 타본 차 중에서는 알페온의 공회전 정숙성이 가장 좋다. 보닛 까보면 매우 두꺼운 방음재를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조용하면 장땡. 국내 소비자의 성향에 잘 부합되는 장점이다.
알페온의 정숙성은 저속에서도 유지된다. 천천히 다니면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엔진 소리도 잔잔하다. 3천 rpm 이전에서는 대단한 정숙성을 보인다. 기어를 6단에 물리고 100km/h로 달리면 회전수는 1,800 rpm 정도에 불과하다. 100km/h에서도 조용히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체의 방음도 충실해 바닥에서 올라오는 볼륨이 크지 않다. 물론 엔진을 고회전으로 돌리면 정숙성이라는 메리트는 다소 희석된다. 엔진의 특성상 고회전 질감은 나쁘지 않지만 음색 자체가 매력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직분사 특유의 소음은 크게 들리지 않는다.
또 하나 들었던 얘기가 생각만큼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263마력에 기대하는 만큼의 동력 성능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편하게 타는 세팅이다. 답답할 만큼 나가지 않는 게 아니라 출력의 수치에 비해 모자라다는 뜻이다. 의외로 기어가 저단에 물린 상태에서는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괜찮은 가속력을 보인다.
의외인 것은 그런 가속력에 반해 풀 스로틀에서의 힘이 약하다. 제원상으로 본다면 풀 스로틀 하고 회전수 높게 쓰면 제대로 힘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작은 반전이다. 1~3단의 최고 속도는 약 60, 108, 170km/h이고 4단에서 속도 제한에 걸린다. 엔진 배기량에 비해 기어비의 폭이 넓다. 6단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리지 못했다고나 할까. 생각보다 가속력이 처지는 것은 기어비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속으로 갈수록 이런 부분은 두드러진다. 180km/h부터 가속력이 둔화되고 200km/h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3리터 263마력이 200km/h 넘기기가 어려우면 곤란하다. D에서 한참 밟고 있으면 계기판 상으로 208km/h까지 나가는데 이 이상은 어려워 보인다. 한 세대 전의 BMW 530i는 231마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250km/h 속도 제한에 걸렸다. 비슷한 차체 사이즈와 같은 배기량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알페온 고객은 그렇게 밟을 일이 없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고 그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제 2자유로 개통을 축하하며 수동 모드로 달려보니 약간은 다른 결과가 나왔다. GM의 자동변속기는 수동 모드에서 자동 변속 되지 않는다. 알페온도 4단으로 쭉 밀어 붙이니 218km/h에서 속도 제한에 걸린다. D에서는 210km/h을 넘기기 어려운데 수동 모드로 하니 더 높은 속도가 나왔다. 알페온의 6단 변속기는 D와 수동 모드에서 반응 차이도 좀 있는 편이다. 수동에서는 변속이 좀 더 민첩하다. 이런 세팅이면 시프트 패들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하체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차를 받아 골목길을 저속으로 빠져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롤이 별로 없고 아주 탄탄한 감각이어서 꽤나 좋은 느낌을 받았다. 반면 속도가 높아지면 롤이 증가한다. 고속으로 내달릴 때 노면에 딱 달라붙는 느낌은 아니다. 저속에서 느낀 것에 비해 댐퍼의 스트로크가 길다.
반면 핸들링 성능은 굿이다. 묵직한 움직임에 비해 코너에서는 쉽게 언더스티어가 나지 않는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 밖으로 밀릴 것 같은데 운전대를 돌리면 그만큼 머리가 안쪽을 향한다. ESC가 엔진의 출력을 줄이긴 하지만 운전의 재미나 동적인 운동 성능을 앗아가는 것은 아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코너에서는 민첩한 몸놀림을 보인다. 이것도 약간의 반전이다.
제동 시 좌우 밸런스는 나무랄데가 없다. 대신 페이드는 비교적 일찍 찾아온다. 고속에서 급제동을 한 번 하면 곧 이어지는 다음 제동에서는 밀림 현상이 나타난다. 알페온 급이면 패드와 디스크가 이보다는 좋아야 할 필요가 있다. 브레이크 페달의 감각 자체는 아주 자연스럽고 다루기도 쉬운 세팅이다.
알페온은 유럽의 플랫폼과 미국의 차만들기가 결합돼 있고 여기에 GM대우의 손길이 더해진 모델이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모델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GM대우 입장에서는 전작에 비해서는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 뵌다. 차 좀 안 나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알페온은 국내 소비자의 취향에 부합하는 확실한 장점 하나는 갖고 있으니까.
© 2024 rpm9.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