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발행일자 | 2010.12.20 09:34

희소성이 높고 가격도 3억 원이 넘는 승용차는 어떤 사람들이 타는 걸까? 아주 쉽고 간단하게 대답한다면, 메르세데스-벤츠 S600보다 더 비싸고, 더 특별한 차를 타기 원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벤틀리가 바로 그들을 위한 자동차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글, 사진 / 박기돈 (RPM9 팀장)

벤틀리는 1919년 창업되어 무려 9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 중 2/3가 넘는 67년을 롤스로이스의 배다른 동생으로 지내오다가 지난 98년에야 롤스로이스의 그늘을 벗어나 새롭게 도약할 수 있었다. 폭스바겐 패밀리가 되면서 매력적인 신차를 연거푸 선보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지금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벤틀리는 롤스로이스 시절부터 함께 해온 전통적인 라인업에 세단 아나지, 쿠페 브룩랜즈, 컨버터블 아쥐르 모델들과 폭스바겐과 함께 만든 모델인 컨티넨탈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해 최신 플랫폼으로 갈아탄 멀산느가 아나지의 후속 모델로 등장하면서 곧 멀산느의 파생 모델들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벤틀리는 모든 모델들에서 롤스로이스의 잔영을 완전히 벗게 된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컨티넨탈 시리즈는 세단인 플라잉스퍼와 쿠페인 GT, 컨버터블인 GTC로 나뉜다. 그리고 2007년부터는 세 가지 모델의 고성능 버전인 스피드 모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다시 더 고성능형인 수퍼스포츠 모델이 쿠페에 이어 컨버터블에 더해졌다.

벤틀리는 그 동안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 그리고 GTC 스피드를 시승해 보았으니 컨티넨탈 시리즈는 비교적 골고루 시승해 본 셈이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세단형인 컨티넨탈 플라잉스퍼의 고성능 모델인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로 지난 2008년 등장한 모델이다. 짐작 건데 플라잉스퍼의 여유와 안락함에 GTC 스피드의 화끈한 달리기가 더해진 모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스피드란 이름이 붙으면서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은 560마력을 발휘하던 V12 트윈터보 6.0 엔진의 개량으로 출력이 무려 610마력/6,000rpm으로 늘어난 점이다. 최대토크는 750Nm/1,750rpm이다. 풀타임 4륜구동 방식과 자동 6단 변속기는 동일하다. 5미터가 넘고 2.5톤에 육박하는 이 거구도 610마력의 파워로 몰아붙이면 정지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불과 4.8초밖에 걸리지 않고, 도로가 허락하면 무려 322km/h로 달릴 수도 있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스피드가 아닌 이전 모델은 가속 성능 5.2초에 최고속도가 312km/h였었다. 모든 수치들이 스포츠카에서 슈퍼카로 발돋움한 수준이다. 실제로 가속 성능의 향상은 몸으로 실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엑셀에 대한 반응이 훨씬 더 경쾌하며, 등을 떠 미는 토크감도 훨씬 더 자극적이다. 과거 280km/h부터 숨고르기를 하면서 가속되던 것이 스피드모델은 훨씬 수월하게 최고속 영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파워가 넘치고, 원하는 만큼 달릴 수 있다. 초고성능에 어울리는 탄탄한 주행감각과 예리한 핸들링에서도 스포츠카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벤틀리를 가장 빠른 4도어 세단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탄탄한 달리기 실력은 서스펜션 세팅을 바꾸어 차고를 10mm 낮추고 컨티넨탈 GT 스피드에 장착된 것과 같은 20인치 알로이휠과 피렐리 P제로 퍼포먼스 타입 275/35ZR20 타이어를 신은 것에서 기인한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20인치의 거대한 휠의 스포크 사이로 보이는 대형 브레이크 디스크는 정말 볼만하다. 앞바퀴에는 405mm, 뒷바퀴에는 335mm 디스크가 적용되고, 캘리퍼에는 벤틀리 엠블렘이 각인돼 있다. 옵션인 카본 브레이크를 선택하면 디스크 크기는 각각 420, 356mm로 커진다.

물론 에어서스펜션을 조절하면 탄탄한 달리기뿐 아니라 최상의 안락함을 즐길 수도 있다. 따라서, 슈퍼카 뺨치는 달리기 실력을 가졌다고 마냥 노는 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근엄하다고 할 수 있는 영국 황실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식 의전차량이 벤틀리일 정도로 높은 명성과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벤틀리야 말로 지극히 귀족적이면서 지극히 파워풀한 명차 중의 하나라 할 만하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는 크기에서 벤츠 S클래스 롱휠베이스 모델보다 한치수 더 크다. 길이가 S클래스는 5.2미터가 조금 넘는 5,225mm이고 플라잉스퍼 스피드는 5.3m가 넘는 5,310mm다. 너비와 높이는 1,915, 1,480mm이고, 휠베이스는 3,065mm다. 참고로 롤스로이스 고스트는 길이가 5.4m에 근접한 5,399mm다.

외관에서는 검게 그을린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 듀얼 원형 헤드램프, 앞에서 뒤까지 우아한 곡선으로 흐르는 보디라인 등에서 권위와 위엄이 살아있고, 높은 벨트라인과 클래식한 빗살무늬의 20인치 대형 휠, 그 속에 비치는 대형 브레이크 디스크와 벤틀리 로고가 새겨진 캘리퍼 등에서는 파워가 느껴진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벤틀리의 화려함은 실내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벤틀리가 그랬듯이 온통 가죽으로 덮은 것에 더해 스피드 모델답게 가죽에 다이아몬드 형상의 스티치를 넣었다. 훨씬 더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시트 헤드레스트에는 벤틀리 로고를 바느질해서 장식했다.

짙은 갈색의 리얼 우드 배니어와 차가운 크롬 장식들은 화려한 대조를 이룬다. 각 종 다이얼과 기어 레버는 알루미늄을 줄처럼 까칠하게 처리해 촉감에서도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벤틀리 컨티넨탈 시리즈 이 후 다른 브랜드에서도 많이 적용하는 럭셔리 포인트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센터 페시아 상단에 자리한 브라이틀링 아날로그 시계도 빼놓을 수 없는 럭셔리 포인트다. 시계 좌우에 두툼한 크롬으로 처리한 원형 공기 배출구와 개폐를 조절하는 푸시레버는 롤스로이스의 아이볼 환기구, 스톱 플런저와 같은 모습이어서 오랫동안 같은 뿌리에서 나고 자랐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스티어링 휠도 무소의 머리뼈처럼 뾰족한 턱선과 뿔의 형상을 하고 있어 스피드의 강인함이 묻어난다. 스티어링 휠 뒤 칼럼에 고정되어 있는 시프트 패들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 조금 아쉽다. 알루미늄이나 티타늄 같은 첨단 소재로 제작됐다면 훨씬 화려했을 터다.

전통을 가장 큰 유산으로 삼고 있는 벤틀리이지만 아이팟 연결 단자를 마련하는 등 사소한 최신 유행에도 적절히 대등했다. 옵션인 나임 오디오를 선택하면 뱅앤 올룹슨의 1000와트보다 더 강력한 1100와트 앰프와 15개의 스피커가 제공된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기어 레버 아래 쪽에 있는 작은 엔진 스타트/스톱 버튼을 눌러서 시동을 건다. 버튼이 조금 더 커서 차별화되었으면 바람도 살짝 든다. 스티어링 휠 좌측에 열쇠를 꽂아 돌려서 시동을 거는 장치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이 아니고 왼쪽에 위치한 것은 포르쉐처럼 과거 르망 경주차의 혈통을 이어 가기 위함이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엔진 스타트 버튼 옆으로는 에어 서스펜션 감쇄력을 조절하는 버튼과 차고를 조절하는 버튼이 위치해 있다. 이 버튼을 눌러 조절 창을 활성화 시킨 후 모니터 아래 있는 다이얼을 돌려 선택한다. 다음 세대 컨티넨탈 시리즈가 나오면 그 때는 아우디의 MMI가 적용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스피드,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고급차라 하더라도 역사가 없다면 명차가 되기 힘들고,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시대에 뒤 떨어지고 첨단 기술이 이식되지 않은 차도 명차가 될 수는 없다. 벤틀리가 오늘날 명차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뛰어난 첨단 기술력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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