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차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던 토요타 프리우스는 이제 친환경 차의 대명사, 또는 (적어도) 하이브리드카의 대명사가 되었다. 2월부터 국내에서 본격 판매에 들어간 렉서스 CT200h는 그러한 프리우스를 보다 고급화하고 스포티한 성격까지 더한 차다. 토요타 캠리 사이즈의 고급차를 원하는 구매자를 위한 차가 렉서스 ES라면, 프리우스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렉서스 CT200h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플랫폼은 프리우스의 것을 바탕으로 하되 큰 폭의 개량을 거쳤기 때문에 새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글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 민병권, 렉서스 (한국토요타자동차)
토요타의 표현을 빌자면 ‘세계 최초의 프리미엄 콤팩트 하이브리드’인 CT200h는 렉서스에서 가장 작고 저렴한 모델로, 브랜드의 판매량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맡은 모델을 다른 구동계의 선택여지 없이 하이브리드 전용으로 내놓은 것은, 렉서스가 하이브리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지난 해 렉서스의 일본 판매량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의 비중은 70% 이상이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작년 9월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됐던 일본정부의 친환경차 보조금 정책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지만, 그에 앞서서도 하이브리드 모델의 순차적인 추가 투입이 렉서스의 일본 판매량을 견인해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덕분에, 렉서스는 2010년, 일본에 역진출한지 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의 수입 고급차 판매 1위인 BMW를 근소하게 앞설 수 있었다.
일본시장에서 1월초에 출시된 CT200h역시 초기 반응이 좋다. 월 판매 목표가 1,500대였는데, 출시 후 한달 간의 수주 대수가 그 다섯 배인 7,500대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일본시장에서의 경쟁모델로는 BMW 1시리즈, 아우디 A3 등이 꼽힌다.
CT200h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판매되지만 주력 시장은 유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유럽에서도 3월까지의 목표 계약 대수인 3,500대를 이미 무난하게 돌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 한해 동안 1,500대를 파는 것이 목표다. 렉서스 브랜드의 2011년 한국시장 판매목표가 6,000대이므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렉서스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 중 하이브리드의 비중은 7%에 그쳐 일본과 차이가 크다. 때문에 한국 토요타는 올해 CT200h의 출시를 시작으로 하이브리드의 장점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렉서스의 하이브리드는 우수한 연비뿐 아니라 정숙성과 세련미, 친환경, 사용자 친화적인 특성, 그리고 앞선 기술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고급차 구매자들의 기호와 잘 맞는다는 설명이다.
CT200h에 탑승하면 우선 고급스럽게 마감한 실내가 반겨준다. 가죽으로 덮은 계기판, 정보제공 영역과 조작 영역을 나눈 대시보드 배치 등, 외관과 마찬가지로 프리우스와는 완전히 차별화되어 있다. 등산용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 같은 독특한 모양의 변속기 레버, 큼지막한 마우스 형태의 조작장치는 첨단 차량의 분위기를 더한다.
조작 영역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다이얼을 돌리면 주행 특성도 바꿀 수 있다. 특히 스포츠모드에서는 스티어링 휠이 묵직해지고 구동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계기판의 배경까지 붉은 색으로 바뀌면서 숨겨졌던 엔진 회전계가 나타난다. 낮게 자리한 시트가 몸을 착 감아주는 것도 제대로 달려 보고픈 욕구를 부추긴다.
하체도 프리우스와는 딴판이다. 일단 구성부터, 프리우스는 후륜 서스펜션이 토션빔이지만 CT200h는 더블위시본이라는 차이가 있다. 프리우스도 일반적인, 그리고 폭넓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승용차로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CT200h는 조향장치의 반응이나 피드백, 묵직한 거동이면서도 노면 충격을 걸러내는 솜씨가 과연 고급 스포츠 해치백답다.
CT200h는 앞뒤 서스펜션의 각 거점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에 스트럿 바로 불리는 고정지지대 대신 ‘다이내믹 댐퍼’를 채용했다. 차체강성을 높일 때 수반되는 소음과 진동을 렉서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잡아내기 위해 고안된 기발한 솔루션이다. 그런데 이처럼 ‘스포츠’를 강조한 요소들로 인해 오히려 아쉬워 지는 것은 프리우스와 차별화되지 않은 동력성능이다.
효율에 중점을 두어 앳킨슨 사이클로 작동하는 1.8리터 가솔린 엔진은 99마력을 내고, 전기모터가 힘을 더해 시스템 총 출력은 136마력이 된다. 이는 프리우스와 같은 내용이다. 비록 프리우스와는 완전히 다른 구동계 소프트웨어를 썼다고 하고, 일시적인 체감 성능에서는 그러한 차이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구동계가 동일할 뿐 아니라 무게는 CT200h가 오히려 더 나간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리터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국산 중형차와 비교해도, 출력은 떨어지는데 공차중량은 더 무겁다. 물론 프리우스나 CT200h의 경우 전기모터가 낮은 회전에서부터 강한 토크를 발휘하므로 일반 운전자들이 주로 접하게 되는 영역에서는 충분한 힘을 내어주고, 그래서 제원상 수치보다는 체감성능이 높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영역을 벗어나,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는 단계가 되면, 과연 ‘스포츠’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가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풀 가속 때 높아지는 엔진음도 스포티하다기보다는 조용하던 차가 시끄러워졌다는 느낌이 앞섰다.
물론 ‘스포츠’라는 것이 동력성능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CT200h는 프리우스가 주지 못했던 것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가 있다. 가령, CT200h는 같은 속도라도 보다 안정감 있고 기분 좋게 코너들을 통과해낸다. 아울러 CT200h는 프리우스와 달리 하이브리드카 티를 내지 않게 생겼을 뿐 아니라 무게중심의 차이를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전반적으로 낮게 설계되어있다. 외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뉘겠지만 적어도 렉서스다운 디자인이며, 실루엣과 비례가 스포티하다는 점에서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도, 지붕과 시팅 포인트를 낮춰 잡은 결과로 실내 공간의 여유가 프리우스에 뒤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앞바퀴 굴림이고 2,600mm의 휠베이스(의외지만, 프리우스보다 10cm짧다)를 갖고 있지만 보통의 준중형급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는 체감공간이 좁다. 특히 천장이 낮아 갑갑하게 느껴지고 하다못해 트렁크 바닥까지 상대적으로 높게 다가온다. 스포티한 스타일을 위해 실용성을 일부 포기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트렁크 기본용량은 프리우스가 445리터, CT200h가 375리터이다.)
그래도, 저속에서는 전기차처럼 모터만으로 달릴 수 있고, 쥐도 새도 모르게 엔진을 끄고 켜는 등 세련된 하이브리드카로서의 재주는 다 갖추었다. 공인연비는 25.4km/L로, 프리우스의 29.2km/L와는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일 뿐 아니라 멋 부린 대가치고는 나쁘지 않다. 시승행사에서는 80km 남짓 주행에 13.2km/L를 기록했는데, 정체 없는 도로에서 나름 금욕적인 운전을 했던 점을 감안하면 기대에는 못 미쳤다. (다시 한번, 렉서스가 꼽는 하이브리드의 장점은 연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론을 말하자면, CT200h는 렉서스가 말하는 ‘COOL&HOT(해치백)이 공존하는 극적인 드라마’를 선보이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프리우스보다 고급스럽고 덜 금욕적인 하이브리드 해치백을 찾던 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할 것이없다는 측면에서, 적어도막장 드라마는 아니다.(그런데,막장으로 가면 인기는 끌더라...)
렉서스 CT200h는 4,190만원인 ‘트렌디’와 4,770만원인 ‘럭셔리’로 나뉜다. 럭셔리 전용 사양으로는 8인치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 스티어링 휠 열선, 천연가죽 시트, 우드 트림, 리모트 터치컨트롤(마우스), 하이브리드 에너지 모니터, 빗물감지 와이퍼, LED헤드램프, 17인치 휠 등이 있다. 두 버전 모두 마크레빈슨 오디오는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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