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제타는 폭스바겐에 대해 가지게 되는 기대치에는 조금 못 미친다. 그래도 잘 팔린다니 내 눈이 문제일 수도 있다.
제타하면 생각나는 건 ‘보라’, 그리고 그 무겁기 그지 없었던 문짝이다. 골프의 노치백 버전이었던 제타는 잘난 형제에 가려 주목 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완전히 독립된 모델로 개발돼 홀로서기에 나섰다. 폭스바겐은 뉴 제타에게 미국 시장 공략의 첨병 역할을 맡겼다.
미국이야 모든 메이커에게 중요하지만 폭스바겐에게는 의미가 좀 다르다. 폭스바겐은 북미를 제외한 모든 시장에서 잘 나가지만 미국은 예외다. 한동안 손 놓고 있었는데 세계 1등이라는 목표를 설정한 다음부터는 간과할 수 없는 시장이 됐다. 그래서 나온 게 제타와 파사트이다.
제타와 파사트는 이전과 접근이 다르다. 제타의 스타일링은 사진이나 광고에 비해 수수하다. 화면에서 봤을 땐 뭔가 세련되고 날카로운 맛이 있었는데 실물은 그렇지 않다. 분명 최근 폭스바겐 디자인이 적용되긴 한 거 같은데, 어딘지 밋밋하고 느슨하다.
그래도 구형에 비하면 용 된 건 맞다. 보라는 아벨라 델타 수준으로 C 필러 이후가 어색했는데 뉴 제타는 근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세단’이다. 세단하면 나도 좋아하고 한국 소비자도 좋아하는 장르의 차가 아닌가.
뉴 제타의 전장×전폭×전고는 각각 4,645×1,780×1,485mm, 휠베이스는 2,651mm이다. 차체 사이즈만 본다면 아반떼(4,530×1,775×1,435mm, 2,700mm), 라세티 프리미어(4,600×1,790×1,475mm, 2,685mm), SM3(4,620×1,810×1,480mm, 2,700mm) 등이 포진한 준중형급에 해당된다.
폭스바겐은 제타를 가리켜 쿠페스러운 실루엣이라고 말하지만 별로 그런 느낌은 없다. 옆에서 봐도 그냥 평범한 세단이다. 그 동안 코롤라를 보면서 앞이 밋밋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제타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헤드램프도 HID가 아닌 할로겐이다.
시승차의 17인치 알로이 휠은 익숙한 폭스바겐 디자인이다. 뉴 제타는 최대 18인치도 달 수 있지만 차체 사이즈나 엔진 출력을 감안하면 이 사이즈가 적당해 보인다. 국내에는 유럽형이 수입되기 때문에 타이어도 그립 좋은 포텐자 RE050이 달린다.
뉴 제타는 모르고 탔다면 골프로 착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골프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디자인은 골프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어 레버 앞에 있는 시동 버튼 하나로 독립된 모델임을 강조할 순 없다. 그리고 의아한 것은 골프에는 있는 자동주차 버튼이 없다는 점. 골프보다 비싼 차인데 자동주차 기능이 빠진 건 예상을 벗어난다.
눈에 잘 안 띄는 부분이지만 실내의 마무리도 차이가 있다. 멕시코 산이라는 선입견을 최대한 갖지 않으려 하지만 기존 폭스바겐의 마무리와는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예가 패널의 단차이다. 기어 레버 옆의 플라스틱이 약간 튀어나와 있다. 손을 갖다 대면 시원하게 긁을 수 있다. 이런 건 닷지 캘리버에서나 보는 건 줄 알았는데.
제타의 실내는 검소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골프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느낌에서 차이가 난다. 컵홀더 덮개가 없는 것도 아쉽고, 내비게이션도 없다. 미국형 제타는 이보다 실내 소재가 더 떨어진다고 하는데, 시승차인 유럽형도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세단답게 2열 공간은 넉넉하다. 휠베이스 덕분에 2열 레그룸이 67mm가 늘어났다. 성인이 앉아도 넉넉하고 좌우, 머리 위 공간도 넉넉하다. 확실한 메리트가 바로 트렁크이다. 트렁크 용량이 510리터나 되고 이는 차체가 훨씬 큰 아우디 A8L과 같은 것이다. 네모 반듯하게 정리도 잘 돼 있다.
엔진과 변속기는 골프 2.0 TDI의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이식했다. 폭스바겐의 2.0 TDI와 6단 DSG의 조합은 최고의 파워트레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능과 연비 모두 만족한다. 국내에는 105마력의 1.6 TDI 모델도 같이 출시된다.
이번이 두 번째 신형 제타 시승인데 이번에도 차 상태는 좋지 못했다. 아이들링 시 진동이 좀 있는 편이고, 직진 상태에서는 운전대가 왼쪽으로 약간 돌아가 있다. 두 번 연달아 이렇다는 것은 미처 정비를 못했거나 원래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역시나 2.0 TDI의 140마력은 체감 성능이 더 높다. 무게가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순발력 면에서 큰 부족함은 없다. 0→100km/h 가속 시간은 9.5초로 같은 엔진의 골프보다 0.2초 느리다. 골프와 차이가 나는 것은 5단부터다. 5단으로 넘어가면 가속력이 처진다. 최고 속도는 계기판 상으로 215km/h까지 찍히고 이 이상은 어려워 보인다.
골프를 비롯한 폭스바겐의 최대 강점 중 하나가 탁월한 안정감이다. 골프가 워낙 탁월해서인지 제타는 기대치에 조금 못 미친다. 핸들링 감각은 폭스바겐답다. 다른 메이커에 비해 ESP 개입이 늦은 편이며 지속적인 뉴트럴 상태를 보인다. 회전과 제동 실력은 경쟁 모델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며 기대치를 만족한다.
비슷한 배기량의 다른 디젤도 그렇긴 하지만 2.0 TDI 엔진은 정속 주행 시 공인 연비(18km/L) 이상의 연비를 보인다. 80~110km/h 사이로 정속 주행하면 순간 연비가 20km/L를 쉽게 넘긴다. 거기다 가솔린보다 고속 주행 시 연비가 좋은 게 장점이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는다고 가정할 경우 5단으로 넘어가면 순간 연비는 6km/L를 넘고 6단으로 최고 속도를 달리면 8~8.2km/L 사이의 연비가 나온다. 디젤이 더 달리기 좋은 이유다.
실내를 둘러보고 운전을 해보면 뉴 제타는 골프보다 싼 차다. 하지만 위급 모델이어서 그런지 미세하게나마 골프보다 비싸다. 조금 넓은 2열과 커다란 트렁크를 얻는 대신 자동주차와 좋은 마무리 등의 장점을 포기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구형보다 업그레이드라고 하긴 뭐하고 옆그레이드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폭스바겐을 시승하면서 내 입에서 “별로네~” 하는 소리가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럼에도 뉴 제타의 주행 성능은 경쟁 모델보다 우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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