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발행일자 | 2011.09.02 21:46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2일 오전, 부산 해운대를 출발해 경남 밀양을 다녀오는 165km 코스에서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중형차 ‘i40(아이포티)’를 시승했다. i40는 현대차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야심 차게 개발한 모델로, 공식 발표 전까지는 ‘유럽형 쏘나타’로 불리기도 했다. 개발명은 ‘VF’로, 기존 쏘나타의 ‘YF’와 구분된다.

현대차가 유럽시장 전략모델인 i시리즈를 국내에 내놓는 것은 준중형 해치백인 i30에 이어 두 번째다. i30은 현대차가 저가형 차만 만들던 단계를 지나 이제 현지 토박이 메이커들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차를 만들 수 있게 되었음을 유럽시장에 인식시켰다. 그리고, i30에 이어 i10, i20 등 다른 (작은) i시리즈들을 통해 기반을 다진 현대차가 마침내 유럽시장의 플래그십 모델로 내놓은 것이 i40. 북미형 쏘나타나 그랜져 등으로는 공략할 수 없었던 유럽시장, 그 중에서도 D1세그먼트를 정밀 타격할 현대차의 신무기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유럽 동급 시장에 포진한 여러 토박이들 중에서도 현대차가 대표 경쟁모델로 지목한 것은 바로 폭스바겐 파사트이다. 폭스바겐은 대중차로 시작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밸류 포 머니’를 넘어 이제 ‘모던 프리미엄’ 차를 팔겠다는 것이 현대자동차다. 유럽형 모델과 북미형 모델의 관계도 닮았다. 최신 파사트는 유럽형과 북미형이 별도로 개발됐는데, 북미형은 덩치가 더 크되 가격은 더 저렴하다. i40도 기존 쏘나타보다 차체는 작지만 가격이 비싸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특히, 한국시장에서의 i40는 유럽시장에서 옵션으로 추가해야 하는 온갖 고급 사양들을 대부분 기본사양에 포함시키되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방법을 통해 아예 쏘나타보다 위에, 그랜저와의 사이에 자리하게 됐다. 이를 두고 현대차 관계자는 과거의 쏘나타와 마르샤의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보다는 최근 꽤나 도마에 올랐던 ‘ㅅ라면 블랙’에 비유하면 어떨까 싶지만. 고급 사양만으로 단촐한 가격표를 꾸린 모양새는 벨로스터와도 닮았다. 설마, 한정판매 하겠다는 얘기도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아마 현대차는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차종을 잘 파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현대차가 i30를 처음 국내에 출시할 당시 아반떼보다 싼 가격에 내놓을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몇 대 안 팔릴 텐데, 그럴 바에야 가격이라도 비싸게 받자!’ 해서 아반떼보다 높은 가격대에 자리하게 됐다는 것은 제법 알려진 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i30은 기대이상으로 많이 팔리면서 우리나라 해치백 시장을 키워놓았고, 더불어 왜건형 파생모델인 i30CW까지 조용한 성공을 거두었다. 해치백과 왜건은 유럽을 대표하는 차종. 이미 그 당시에 ‘유러피안 프리미엄’을 적용했다는 얘기인데, 이번 i40에는 그 ‘피’가 유독 두드러지게 붙었다는 차이가 있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i40는 국내 출시 이전에 이미 왜건형과 세단형의 모습이 모두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나라에 출시된 것은 왜건뿐이다. 세단도 준비가 되는 데로 투입하겠다는데, 일단은 ‘유러피안 프리미엄’ 임을 강조하기 위해 왜건을 먼저 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케팅에 있어 왜건이라는 표현은 일절 쓰지 않기로 한 점이 재미있다. 왜건이 아니라 ‘크로스오버 세단’이라는데, 고객들도 수긍하는 분위기라나? 기아자동차가 소형차 리오의 왜건 모델을 5도어 해치백이라고 우기며 팔았던 기억이 난다. 포르테’쿱’도 세단이라는데, i40라고 세단이 못될 것은 없겠다. 아무튼, i30CW에 대한 호응에도 불구하고 선뜻 왜건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만큼의 시장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i30CW의 ‘CW’가 크로스오버 왜건이라고 했던가? 지붕이 높은 해치백을 기반으로 한 i30CW와 달리 i40는 세단과 함께 개발된 탓에 차라리 정통 왜건의 최신판으로 보인다. 길이와 폭은 쏘나타보다 근소하게 작고 높이는 같은데, i30CW와 비교하면 한결 낮고 박력있는 모양새를 뽐낸다. 일각에서 ‘곤충룩’으로 비하하는 패밀리룩은 호불호를 떠나 유럽시장에서 현대차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왜건인 만큼, 하일라이트는 역시 적재공간에 있다. 테일게이트는 전동 스위치로 밀어 올리고 내려 닫을 수 있는데, 운전석의 버튼이나 리모컨으로도 조작가능하다. 바닥에는 수입 고급 왜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던 레일 시스템을 깔았다. 적재한 물건을 요리 조이고 저리 묶어서 흔들림 없이 운반하기 위한 장치인데, 현대차의 특허 기술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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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함 커버 외에 안전그물(베리어 네트) 수납장치도 따로 마련했다. 적재함의 짐이 승객을 덮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격벽 대신 그물을 천장의 홈에 걸도록 되어있는 안전장치다. 쓰지 않을 때는 천장의 홈을 커버로 가릴 수 있도록 한 점, 그리고 그 커버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든 센스가 눈에 띈다. 적재함 커버와 베리어 네트는 개별적으로 탈 부착이 가능하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트렁크 적재 용량은 기본이 506리터이고, 6:4로 나뉘는 뒷좌석 등받이를 앞으로 접으면 1,672리터까지 늘어난다. 그리고 바닥판을 들추면 28리터의 추가 수납 공간을 쓸 수 있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얼핏 좁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뒷좌석 공간은 다리 공간이나 머리 공간에 딱히 부족함이 없다. 바닥 가운데 부분도 크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뒷좌석 편의사양으로는 2단계 열선, 가운데 송풍구, 그리고 와이드 파노라마 썬루프가 있다. 뒷좌석 등받이는 기본 위치에서 5도 정도 뒤로 더 기울일 수 있는 리클라이닝 기능도 갖추었다. 운전석뿐 아니라 전좌석 도어 유리가 (드디어!) 모두 원터치로 오르내리는 것도 반갑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실내 앞부분은 사진으로 미리 접한 탓인지 크게 새로운 느낌은 없다. 최근 현대차의 디자인 흐름을 따랐으니 당연할 수도 있다. 마감재질이 딱히 더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디자인의 숙성 면에서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기는 하다. 일단 디자인에 호감을 갖고 나면 다음 차례는 호화스러운 사양에 입이 벌어지는 것이다. 저속 코너링 램프, 조향에 따라 움직이는 벤딩 기능, 고속주행시 자동 상향 기능 등을 갖춘 풀 어댑티브 HID 헤드램프 같은 것들 말이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열선 기능이 있는 운전대는 크기를 줄여 스포티함을 강조했다. 손에 착 붙는 것이 신나는 핸들링 성능을 암시한다. 가죽 재질이 고급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쏘나타처럼 평상시 잡게 되는 부분의 가죽을 벗겨내는 해괴한 디자인은 하지 않았다. 위치 조절은 수동인데, 깊이 조절 범위가 넓어 마음에 든다. 페달은 오르간 타입이고, 전동식 주차 브레이크를 적용했다. 오토홀드 기능을 작동시키면 신호대기 때 브레이크를 밟고 있을 필요가 없어 편하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시트는 동반석까지 전동조절이 되고, 운전석은 메모리 기능이 제공된다. 통풍시트는 때늦은 더위로 인한 축축함을 달래는데 제격이었다. 새로 개발된 스마트 내비게이션은 업그레이드가 손쉽도록 정면에 SD카드 슬롯을 배치했다. 경로 안내는 계기판 화면에도 표시된다. 이번 시승에서는 현위치를 정확히 잡지 못하고 헤메는 상황이 몇 차례 발견되었다. 글로브박스에는 2012 쏘나타와 마찬가지로 냉장기능이 적용됐다. 아이폰, 아이팟 연결 단자는 이제 현대차의 전용배선 대신 번들 USB 연결선을 그대로 쓴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국내에 출시된 엔진은 2.0 가솔린과 1.7 디젤인데, 시승행사에는 전자만 나왔다. 기존 쏘나타와는 달리 직분사 방식의 ‘누’ GDI 엔진을 탑재했다. 같은 2.0이지만 쏘나타MPI는 출력이 165마력인데 이쪽은 178마력이고, 토크, 연비도 더 좋다. 그런데, 가속 페달 입력에 대한 초기 반응이 다소 굼뜨다. 운전자의 조작을 한번 걸러서 대응한다는 인상이다. 살짝 까딱거리기만 해도 움찔움찔 하면서 튀어나가려는 듯 하는 과장된 몸놀림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왜건이라 무거워서 안 나가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것 같다.

가속페달을 그리 깊게 밟지 않았는데도 엔진회전수를 5,000rpm까지 쓰며 속도를 붙이는 6단 자동변속기는 기특한 한편으로 조금 걱정도 된다. 그 정도 회전수에서의 엔진 소리는 크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귀에는 다소 거슬린다. 평상시 – 엔진을 다그치지 않을 때- 가 상대적으로 조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엔진 소리만큼 차가 나가주질 않는다는 점 때문일 수도 있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벤츠의 것과 유사하게 생긴 주행모드 변환 버튼도 마련해 놨는데, ‘S’ 스포츠모드에서는 변속 프로그램 덕분에 답답함이 좀 덜하긴 하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조금만 풀어줘도 금새 기어단수를 높이는 모습이 마뜩잖아 변속 패들을 찾게 된다. 플라스틱의 감촉에다 스프링이 팅팅거리는 소리까지 내는 변속 패들이 되려 흥을 깰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 ECO모드에서는 변속기뿐 아니라 엔진, 에어컨까지 연료 효율에 맞춰 작동시키는 액티브 에코 기능이 작동한다. ‘D’는 일반 주행모드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수동변속 모드에서도 킥다운이 되고, 한계 회전수(6000~6500rpm)에서는 다음 단으로 넘어간다. 각 단 6,000rpm을 기준으로 보면 50, 80, 115, 150(km/h)를 가리킨다. 5단에서부터의 가속은 쉽지 않다. 끄트머리에서 190km/h를 가리키는데, 200km/h도 간신히 넘기기는 한다고 들었다. 고속 안정성 면에서는 별다른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속도를 100km/h로 낮추면 엔진회전수는 2,000rpm을 살짝 상회하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때는 측면에서 약간의 바람소리가 나는 것 외에는 정숙한 편이다. 그랜저 이상 급에나 쓰던 차음 앞유리를 적용하는 등 소음을 줄이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 회전수만 높이지 않으면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유럽시장을 겨냥해 철저히 핸들링 성능 위주로 설계된 i40의 하체는 국내 고객 취향을 반영해 한 단계 걸러져 판매된다. 유럽 판매용 i40와 달리 승차감을 높이기 위해 핸들링 쪽을 다소 양보하는 튜닝을 거쳤다는 얘기다. 해외 언론들의 사전 평가 등을 통해 i40의 유럽식 세팅에 기대를 가졌던 이들이라면 실망할만한 내용이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차체 크기나 NVH 대책의 차이 탓도 있겠지만 18인치 휠을 끼운, 그리고 진폭감응댐퍼가 적용된 i40는 i30보다 덜 진득한 반응을 보였고 요철 통과 때는 가속 때와 달리 차체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운전대는 특히 저속에서 가볍고 무감각했다. 그럼에도 종합적인 면에서는 긍정적이었다. 승차감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운전 재미 또한 일정 부분 챙겼다. 일반 소비자들은 i30때보다도 적은 거부감으로 유럽 차의 맛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i40에 ‘유로 패키지’라는 옵션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알루미늄 페달 장식, 쏠리는 운전자의 몸을 더 잘 잡아주는 스포츠 버켓 시트, 그리고 썸머 타이어와 ‘하드 서스펜션’이 포함된다. i40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것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아, 그리고 엔진은 물론 33kgm의 높은 토크와 18.0km/L의 연비를 자랑하는 1.7 디젤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유로패키지는 3,075만원짜리 2.0GDI모델에서만 선택 가능하다. 그리고 가솔린과 디젤 모두자동변속기만 적용된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i40는 무릎에어백을 포함한 7개의 에어백을 갖추었고, 샤시통합제어시스템 VSM을 제공한다. 인터체인지의 크게 선회하는 구간에서 속도를 붙여나가다가 가속페달을 늦추자 뒤쪽이 바깥쪽으로 밀려나갔지만 VSM의 개입으로 차체가 휘청거리는 정도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또, 고속 코너에서 지그시 브레이크를 밟아 큰 감속을 하는 상황에서도 차체가 좌우로 흔들리기는 했지만 큰 위협을 느낄 수준까지는 벗어나지 않았다.

이번에 시승한 2.0 GDI는 165km주행에서 8.5km/L의 연비를 보여주었다. 공인 연비는 13.1km/L로 쏘나타 2.0 MPI (13.0km/L)와 비슷하다.

현대 i40는 ‘쏘나타 블랙’일까?

i40는 여느 수입 왜건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독일 뤼셀스하임의 현대차 연구소를 중심으로 철저히 유럽 입맛에 맞게 디자인하고 설계했으니 당연한 결과랄 수 있다. 일단은 이러한 결과물을 얻어낸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랜저 뺨치는 가격이 관건이다. 쏘나타보다 살짝 작은 차체에 고급재료를 넣고 유럽 향을 가미해 출시된 ‘쏘나타 블랙’ i40가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글,사진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주행사진 / 현대자동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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