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수프라, MR2, 닛산 스카이라인 GTR, 페어레이디, 실비아, 혼다 NSX, S2000, 미쓰비시 GTO, 마쯔다 RX7. 이런 차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스포츠카 하나 없는 국산차의 현실을 가슴 아파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그 많던 일본의 스포츠카들은 누가 다 먹었는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모델이 겨우 GTR과 370Z 정도 밖에 없다. 한편, 토요타는 렉서스 브랜드로 새로운 슈퍼카 LFA를 선보였고, 이니셜 D의 인기에 힘입어 뒤늦게 ‘86’을 되살렸으며, 혼다는 NSX를 다시 개발한다고 하니 다시금 일본 스포츠카의 시대가 올 지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제네시스 쿠페가 있다. 물론 티뷰론과 투스카니가 있었지만 전륜구동인 이들이 제대로된 스포츠카로 인정받을 순 없었다. 어찌됐든 오랜 기다림 끝에 후륜구동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가 우리 곁에 왔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좀 더 퓨어한 스포츠카가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제네시스 쿠페는 넉넉한 제원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튜닝을 통해 탁월한 퍼포먼스를 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할 만하다.
그리고 지난 11월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늘씬한 차체와 강력한 엔진, 화려한 뒷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앞모습에 제대로 칼을 댔다. 성형수술은 성공적이어서 이전 얼굴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인데다 이전 보다는 낫다는 반응들이다.
하지만, 제네시스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아랫급에서 사용하는 헥사고날 그릴을 적용하면서 여전히 완벽한 미모로 불리기엔 어색한 면이 있다. 모든 자동차들이 예쁘고 싶어하지만, 특히 스포츠카가 예뻐야 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음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차체 크기와 각종 제원을 감안하면 좀더 이그조틱카 혹은 슈퍼카 냄새가 나도록 과감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인테리어도 많이 바뀌었다. 특히 센터페시아가 아반떼와 쏘나타의 라인을 응용한 모습으로 바뀌면서 한층 화려해졌다.
사이즈가 적당한 스티어링 휠에는 시프트 패들이 장착되었는데, 손으로 당기게 되는 부분의 면적이 좁아 궁색한 느낌이 든다. 효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손이 닿는 부분이 위 아래로 긴 것이 좋다. 조작감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좀더 절도 있게 작동되면 좋겠다. 계기판은 디테일에서 약간의 변화를 거쳤지만 스포츠카로서는 좀 심심하다.
데시보드는 플라스틱 커버에 가죽 느낌의 스티치 처리를 했지만 질감은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다. 이전에 비해서도 스티치 장식 외에 나아진 느낌은 아니다. 센터페시아 중앙에는 엑셀, 토크, 유온계가 자리해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지만 효용성은 의문이 든다. 토크 게이지의 경우 현재 회전수에서 얼마의 토크가 발생하는지, 최대토크가 언제까지 유지되는 지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운전자가 그 게이지를 보고 레드존 근처에서 토크가 떨어지는 것을 감지해서 변속을 한다든가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눈요기 거리 정도로 보인다.
센터페시아 에어컨 단자 아래에는 ‘제네시스 쿠페’ 명패를 붙여 놨는데, 폭스바겐이 계기판에 붙이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아래 커버를 열면 USB와 AUX 단자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로 인해 수납공간으로의 효용은 떨어지게 되었다. 단자 바로 위의 공간에 전화기 정도를 올려 놓기에 알맞은 수준이다.
기어 레버 하우징은 이전 시빅과 비슷한 타입으로 검정색 플라스틱으로 커버를 씌웠는데, 스크래치가 생기기 쉽고 고급스럽지 않아, 시빅처럼 크롬으로 좀 더 고급스럽게 꾸몄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시트는 디자인이나 안락성, 지지력 모두 우수한 편이다. 시프 포지션이 많이 낮은 편은 아니어서 스포츠카 느낌보다는 승용차 느낌에 더 가까운 듯하다. 도어 스커프에 ‘제네시스’만 적혀 있는 알루미늄 패널이 멋지게 장식되어 있는데, 문을 닫아도 실내에서 잘 보이는 점이 특이하다.
크게 바뀐 앞모습과 함께 변화의 핵심은 엔진과 변속기다. 210마력을 내던 이전 2.0 터보 엔진은 트윈스크롤 방식 터보와 튜닝을 통해, 더욱 강력한 275마력/6,000rpm(고급유 기준, 일반유 기준 260마력)을 내게 되었고, 303마력을 대던 3.8 엔진은 직분사 기술을 더해 350마력/6,400rpm을 내게 되었다. 최대토크는 200터보가 38kg.m/2,000~4,500rpm (일반유 기준 36), 380 GT가 40.8kg.m/5,300rpm이다. 수치로만 본다면 이제 제대로 된 스포츠카라고 자부할 만하다. 시승차는 380 GT다.
엔진 스타트 버튼은 센터터널이나 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면 더 멋질 것 같다.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면 가장 먼저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이 큰 변화로 다가온다. 저속에서 너무 무겁다. 그 동안 현대차들의 가벼운 스티어링이 지적되어 온 것을 감안해서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의 스티어링을 무겁게 세팅한 듯한데, 너무 과했다. 분명 파워스티어링 임에도 저속에서 두 손으로 힘주어 돌려야만 스티어링이 돌아갈 정도다.
그렇다고 고속으로 올라갔을 때 충분히 무거워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전 모델에 비해서는 안정성이 좋아진 편이어서 중속까지는 무게감도 적당하고, 응답성도 빠르고 예리하지만, 고속 영역에서는 여전히 허둥대는 느낌이 있다. 고속으로 갈수록 스티어링 휠이 조금만 움직여도 차체는 크게 움직이는 만큼 정밀하게 제어하려면 많이 무겁게 세팅하는 것이 안전과 안정성에서 유리한데, 고속 영역에서의 반응이 아쉽다.
하체가 충분히 단단하고 잘 다듬어 졌는데도 스티어링 때문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안타깝다. 일본차들이 고속에서 스티어링보다는 하체가 불안해서 달리기 부담스러웠던 것과 반대다. 반면 스티어링 응답성은 상당히 좋다. 스티어링 조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예리한 핸들링을 선사한다.
엔진 성능은 강력하다. 8단 자동 변속기의 변속도 매끄럽고 빠르다. 레드존까지 회전수를 올리며 급가속하면 회전 상승이 지극히 매끄럽고 엔진 사운드도 비교적 매력적이다. 하지만 펀치력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제원상 0~100km/h 가속에 5.9초가 걸리는데, 350마력 스포츠카에 기대하는 가속력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1,580kg 중량에 350마력이면 5초대 초반 정도의 가속력은 나와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1,845kg의 세단인 A6 3.0 TFSI 콰트로가 310마력으로 5.3초를 기록하고 있다. 더 무거운 1,920kg의 A7이 역시 310마력으로 5.8초, 제네시스 쿠페와 비슷한 1,535kg의 Z4 3.5is는 340마력으로 4.8초, 1,520kg의 SLK 350이 302마력으로 5.2초를 자랑한다. 물론 이런 수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체감 가속력에서 분명 동급 경쟁차와 차이가 난다. 가속력 제원을 밝히지 않는 닛산 370Z나 인피니티 G37 쿠페와 비교해도 가속력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출력은 300마력에 채 못 미치는 정도다.
급가속할 때 고회전으로 올라가면서 터져 나오는 사운드는 굉장히 매끄럽고 경쾌하게 잘 표현되긴 했는데, 고음이 강조되든, 저음이 풍부해 지든 간에 좀 더 강한 개성이 더해지면 훨씬 좋겠다.
변속기는 제네시스와 같은 8단 변속기를 달았고, 100km/h로 정속주행할 때 회전수는 1800rpm, 변속은 40, 80, 120, 170Km/h에서 이루어진다. 수동모드에서는 회전수가 4천 이하로 내려가야 기어를 내릴 수 있다. 변속기를 보호하려는 장치다. 또, 레드존에 이르면 시프트업이 자동으로 되고, 회전수가 떨어져도 킥다운이 되지는 않는 방식이다. 물론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 매칭 기능도 아직 없다.
산길을 타 보니까 코너 진입 시 80km/h 정도로 감속한 후에 2단으로 변속해 줘야 코너를 강하게 밀어 부칠 수 있는데, 그 회전수에서는 2단으로 내려가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다. 80km/h에서 3단으로 변속하게 되는 기어비를 가진 차들이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다. 미니도 그랬다. 그래도 3단으로도 밀어 부치는 힘이 부족한 편은 아니었다.
코너에서 밀어 부칠 때 엑셀을 과격하게 밟으면 당연히 오버스티어가 난다. VDC가 즉시 개입하므로 위험할 것은 없지만, 오버스티어를 내지 않고 코너를 밀어 부치자니 엑셀을 끝까지 밟기 어렵다. 지긋이 밟으면서 몰아 대면 비교적 뉴트럴을 잘 유지한다. 뒷바퀴 그립은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체는 기대 이상으로 좋다. 인피니티 G37 쿠페의 단단함보다 좀더 여유 있고 부드럽지만 안정감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코너에서도 롤을 잘 못 느낄 만큼 코너 도는 실력이 좋다. 굳이 지적하자면 차체가 좀 더 낮아지면 더 좋을 듯하다.
가격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경쟁력은 아주 높다. 그 동안 국내에서도 다양한 후륜구동 스포츠카가 있어 왔다면 제네시스 쿠페의 이 가격이 비싸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국산차로는 비교대상이 없다 보니, 수입 스포츠카와 비교하면 3천만 원대 중반의 제네시스 쿠페는 가격 대비 최고의 성능을 가진 스포츠카라 할 만하다. 보다 섹시한 디자인과 정교한 스티어링, 그리고 수치를 납득할 수 있는 파워만 뒷받침되었다면 거의 명품 수준의 스포츠카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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