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뉴 SLK 200 블루이피션시
3세대 벤츠 SLK는 감성적인 면이 강조됐다. 달랑(?) 184마력임에도 달리는 재미가 늘었다. 사운드도 좋지만 회전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박기돈 (RPM9.COM 팀장)
SLK는 현대적인 전동식 하드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SLK 이후 전동식 하드톱 모델이 봇물처럼 출시됐다. 전동식 하드톱은 무겁고 비싼 것만 빼면 모든 면에서 소프트톱보다 우위에 있다. 쿠페와 오픈카를 한 차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고집을 부리던 라이벌 Z4나 마쓰다 MX-5까지도 전동식 하드톱을 채용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전동식 하드톱은 뿌리치기 힘든 매력이다.
이번에 출시된 SLK는 3세대가 된다. 예상한 것처럼 3세대의 스타일링은 CLS 등에 쓰인 새 디자인 테마가 적용됐다. CLS를 보면서 참 존재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작고 스포티한 SLK는 더하다. 가는 곳마다 눈길을 모으는 걸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닌 거 같다.
지금 보면 초대 모델은 약간 귀여운 맛이 있었고, 2세대는 몸집이 커지면서 남성적인 디자인이 추가됐다. 3세대는 완전히 남성적인 취향으로 돌아섰다. 그것도 이곳저곳 근육이 잔뜩 붙은 남성미가 물씬하다. 존재감이 구형과는 비교가 안 되고, 각도에 따라서는 미니 SLS로 보이기까지 한다. 보통 오픈카는 지붕을 열어야 주목을 받지만 SLK는 쿠페 상태에서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오픈카를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톱을 씌었을 때의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것 때문이다. SLK는 예외다. 톱을 씌어도 예쁘다. 전동식 하드톱의 장점이기도 하다. SLK는 뒷모습의 위압감도 상당하다. 넓게 퍼진 리어 엔드를 보면 컴팩트급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머플러도 엔진 배기량에 비해 꽤나 크다.
벤츠에 따르면 3세대 SLK는 1950년대의 190 SL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 말처럼 고전적인 롱 노즈 숏 테일 실루엣을 지키고 있다. 옆에서 보면 운전자의 엉덩이 위치가 뒷바퀴 바로 앞에 위치한다. 차는 컴팩트하지만 디테일은 모두 크다. 그릴의 크기가 늘어난 것은 물론 헤드램프와 보닛, 벤트까지 커졌다.
3세대는 컴팩트를 지키기 위해 꽤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2,430mm의 휠베이스를 유지하면서 전장과 전폭을 늘렸다. 구형에 비해 전장은 31mm, 전폭은 33mm가 늘어났다. 그 늘어난 것보다 차는 더 커 보인다. 전면에서 보면 길쭉한 보닛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전장 4,140mm 차로서는 큰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폭과 전면 투영 면적이 늘어났지만 공기저항계수(0.30)는 오히려 감소했다.
알로이 휠은 외관의 옥에 티다. 화려한 외관 디자인에 비해 알로이 휠의 모양새는 다소 평범하다. 알로이 휠의 사이즈는 17인치로 엔진을 생각하면 적절하다. 다른 메이커에 비해 벤츠가 휠을 크게 안 쓰는 경향이 있긴 하다. 타이어는 콘티넨탈의 콘티콘택트3, 사이즈는 앞-225/45R, 뒤-245/40R이다.
벤츠를 타게 되면 당연히 벤츠다운 것을 기대하게 된다. SLK는 여기서 스포티하기까지 해야 한다. SLK 실내가 C 클래스와 똑같다면 재미가 없으니까. SLK의 실내는 차별화를 위해 메탈의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렸다. 실내를 수놓는 메탈 트림은 독일 엔지니어링을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차별화는 다름 아닌 송풍구이다. 송풍구가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띈다. 송풍구 디자인은 어딘지 벤츠 엠블렘을 연상시키고 근래에 본 것 중 가장 멋진 디자인이다. 마치 바람개비 같다. 실내 재질은 벤츠에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며 벤츠의 커맨드 시스템은 여전히 아이드라이브나 MMI에 비해 기능적인 면에서 열세에 있다. 메뉴를 찾아 들어가도 특별히 볼 게 없다.
센터페시아나 기어 레버는 C 클래스와 같다. 다른 벤츠를 타봤다면 쉽게 익숙해진다. 공조 장치는 바람 세기와 온도 조절은 벤츠 특유의 커다란 다이얼 방식이며, 바람의 방향을 선택하는 버튼의 크기도 크다. 공조 장치 위에는 시트 히팅과 에어스카프, ESP 버튼 등이 나열돼 있다.
기어 레버도 벤츠 특유의 디자인이다. 별도의 수동 모드 없이 옆으로 젖히면 곧바로 S 모드, 한 번 더 치면 수동 전환 된다. C 클래스의 경우 변속기 모드에서 E와 S만 있지만 SLK는 수동 모드인 M이 추가됐다. 시프트 패들이 있는데 레버로 수동 조작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간단한 디자인의 계기판은 커다란 속도계와 타코미터 사이에 커다란 액정이 마련된다. 액정을 통해서는 트립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액정에 뜨는 폰트가 크게 고급스럽지 않은 게 단점이다. 야간에는 속도계와 타코미터의 바늘이 빨간색으로 바뀌면서 분위기를 살린다.
운전대에도 메탈 트림이 가득하다. D 컷 스타일의 운전대는 보기에도 스포티하지만 그립 또한 대단히 좋다. 시프트 패들도 가운데 손가락에 자연스럽게 닿고, 틸팅과 텔레스코픽도 전동이 지원된다. 밝은 색상의 가죽 시트는 쿠션이 탄탄하고 몸을 잡아주는 느낌도 우수하다. 에어스카프 기능이 있는 시트는 척 보기에도 값비싸 보인다.
뉴 SLK에는 세계 최초라는 MSC가 있지만 시승차에는 파노라믹 루프만 적용됐다. 지붕 전체가 유리라 개방감이 탁월하다. 그런데 실내를 가릴 수 있는 블라인드가 없는 건 잘 이해가 안 간다. 이렇게 튀는 디자인의 차를 주차할 때 신경이 좀 쓰인다. 트렁크 용량은 쿠페 시 335리터, 오픈 시에는 225리터로 줄어든다. 335리터는 C 세그먼트 해치백과 비슷한 수준이다.
파워트레인은 184마력의 힘을 내는 1.8리터 터보와 7G-트로닉 플러스로 조합된다. 이 1.8리터 터보는 C와 E 클래스에도 올라가며 204마력 버전도 나오고 있다.
엔트리 엔진이고 출력도 낮지만 느낌은 생각과 좀 다르다. 부드럽게 저속에서 움직일 때의 감각과 소리는 얼핏 PDK의 포르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대신 약간만 오른발에 힘을 주면 활기차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무래도 차체가 작고 가볍기 때문에 세단보다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다른 특징 중 하는 소리이다. SLK에서는 기계적인 엔진 사운드가 두드러진다. 같은 엔진의 C, E 클래스에서도 소리가 좋았지만 SLK는 좀 더 스포티하다.
1.8 터보는 터빈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빠른 반응성을 제공한다. 가속도 나름 준수하다. 사실 0→100km/h 가속 시간 7초가 특별히 빠른 것은 아니다. SLK의 자세를 생각하면 아쉬운 수준이긴 하지만 엔진의 배기량과 출력을 생각하면 괜찮은 가속력이다.
벤츠답게 가속은 꾸준하다. 2~4단의 최고 속도는 80, 128, 170km/h로 여기까지는 시원하게 가속된다. 5단으로 넘어가면 가속이 주춤해지고, 변속되는 220km/h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원상 최고 속도는 6단에서 나온다. 5단까지 가속되는 걸로 봐선 6단에서 추가적인 17km/h가 나오기 힘들어 보이지만 고속빨의 벤츠이니 충분히 믿을 만하다.
이 정도 사이즈의 로드스터는 고속 주행보다는 활발한 핸들링이 더 어울리지만, SLK는 고속 주행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 제 2자유로의 경우 차와 상관없이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고 다닐 수 있는 차가 드물다. 하지만 SLK는 이곳에서 시승한 차 중 가장 자세가 안정적이고 제원상 최고 속도 부근에서도 흔들림 없이 코너를 돌아나간다. 200마력도 안 되는 저출력임에도 고속 주행에 적합하다.
7G-트로닉 플러스는 여전히 조금씩 울컥대지만 스포티한 성격의 SLK에서 큰 흠은 아니다. 그보다는 성능적인 면에서 메리트가 많다. E 모드에서도 회전수 보정을 해주면서 스포티한 드라이빙을 지원한다. 신호등을 만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기어가 내려가면서 가볍게 회전수가 상승한다. S 모드는 일단 반응이 상당히 예민해져 굳이 수동 조작을 안 해도 될 정도이다. 회전수 보정도 더욱 적극적이다.
영하 2도의 차가운 날씨였지만 톱을 열고 달릴 만하다. 히터 3단 켜고 유리 올리고 달리면 생각보다 춥지 않다. 깜박 잊고 에어스카프도 작동 안 시켰다. 이 상태로 제 2자유로를 달렸다. 약 15분 동안 달리다 톱을 닫았는데, 이유는 왼손이 추워서다. 이상하게 왼손에만 바람이 들이친다. 선풍기 날개처럼 생긴 에어가이드는 손으로 펼치면 된다.
코너를 돌아가는 실력은 부분 변경된 C 클래스의 강화 버전이다. C 클래스도 코너를 돌면서 감탄했는데, 차가 더 작고 세팅도 스포티한 SLK는 더욱 민첩하다. 90도 코너를 돌 때는 뒤가 고정된 상태로 뱅글 돈다. 그리고 긴 코너를 돌아갈 때는 ESP가 치고 나갈 수 있는 출력을 남겨 놓으면서 자세를 조절해준다. 미끄러운 코너에서는 좌우로 휘청대기도 하지만 이 역시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SLK는 승차감이 좋기까지 하다.
SLK가 운동 성능이 좋은 것은 강한 섀시와 정평난 벤츠 서스펜션, 가변 스티어링 같은 기술이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사용해 오던 가변 캐스터도 있다. 보닛을 열면 조향에 따라 엔진 마운트가 기울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멈춘 상태로 운전대를 돌리면 차체가 움직이는 게 사이드미러를 통해서도 확연히 보인다.
데뷔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전동식 하드톱 모델도 많지만, SLK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3세대는 동적인 운동 성능이 더욱 향상된 게 두드러진 메리트이며, 거기다 존재감이 뚜렷한 스타일링이 상품성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출력을 생각하면 비싼 감이 있지만 SLK와 벤츠라는 브랜드가 이를 상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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