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우주에서 가장 `핫(hot)`한 도시”라며 칭송하던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길은 약혼녀와 그녀의 부모를 따라 파리로 여행을 가게 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약혼녀와 가족들은 파리의 낭만보다는 화려함을 즐기려 하고 매사에 아는 척을 하는 약혼녀의 남자친구도 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사실, 도전적으로 시작한 소설쓰기가 녹록치 않았던 데다 약혼 후로는 공황장애까지 그를 괴롭혀온 터다. 호응해 주는 이가 없어 홀로 밤거리 산책에 나섰던 길은 자정이 지나 어디선가 나타난 골동품 자동차에 홀린 듯 올라탄다. 그런데 차가 멈춰선 곳은 놀랍게도 그가 동경해왔던 1920년대의 파리였다. 게다가 우상처럼 숭배해왔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도처에서 그를 반기는 것이 아닌가!
작년 5월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던 `미드나잇 인 파리`가 1년여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됐다. 올해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 우디 알렌에게 각본상을 안기며 더욱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30년 넘게 영화 속에 뉴욕, 특히 맨해튼을 상징처럼 담아온 우디 알렌 감독이 영국 런던(매치포인트, 스쿠프, 카산드라 드림 등)과 스페인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거쳐 방문한 또 하나의 유럽 도시가 바로 프랑스 파리다.
파리의 관광명소들을 훑고 지나가는 것으로 모자라 90년 전, 혹은 그 이전 `벨에포크`의 호시절을 추억하며 스콧 피츠제럴드, 장 콕토, 콜 포터, 헤밍웨이, 피카소 등 유명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그리고 흥겨운 파티와 웃음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각자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오웬 윌슨이 주인공 `길` 역할을, 레이첼 맥아담스가 약혼녀 `이네즈` 역을 맡았고 마리옹 꼬띠아르가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 애드리언 브로디가 `살바도르 달리`, 케시 베이츠가 `거트루드 스타인`으로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의 부인 칼라 브루니는 박물관 가이드 역할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길이 시간여행을 하는 수단은 오래된 자동차. 1928년 출시된 프랑스 푸조의 랑듀레 184 모델이다. 당시 부유층을 위해 차체 전문 제작자가 실내외를 꾸민 이 차는 3.8리터 6기통 엔진을 얹어 80마력의 힘을 내고 4단 변속기를 장착해 최고 시속 115㎞를 낸다. 자동차 타임머신이라는 점에서 `백 투더 퓨쳐`의 드로리안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에 가까운 이미지이다. 운전석이 오픈되고 지붕으로 덮인 승객석과 구분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영화에 쓰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1926년에 출시된 푸조 177 토르페도, 1934년에 선보인 푸조 401 등이 과거의 차로 등장한다.
푸조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회사답게 영화 속 현대 파리의 차 역할들도 놓치지 않았다. 쇼핑 장면에 등장하는 푸조 508과 5008, 308CC 등 십여대의 푸조가 이 영화 촬영에 동원됐다. 특히 508이 나오는 장면은 2010년 7월에 촬영됐는데, 당시 508은 전 세계적으로 출시되기 전이었을 뿐 아니라 공식 사진이 공개된 지 불과 일주일 후였다. 508은 뤽베송 감독의 영화 `택시` 시리즈에 주연 택시로 등장했던 푸조 406, 407의 계보를 잇는 중형차로 우리나라에서는 1.6~2.2리터 디젤 엔진을 탑재한 세단과 왜건(508SW) 모델이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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