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이브리드 자동차라 하면 시내에서만 연비가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막히는 구간엔 전기모터로 연료를 절약할 수 있지만, 무거운 배터리 때문에 고속도로에선 오히려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물론 그럴싸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쯤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충분히 고속도로 효율이 좋다고 봐야 한다.
한국토요타는 최근 변경된 `새로운 연비규정` 때문에 자존심을 구겼다. 연비 1위 자리를 디젤차에 내준 데다, 기존 수치와 차이가 커지며 이른바 `뻥연비`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물론,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토요타가 아니었다. 위기를 기회 삼아 꿋꿋하게 `하이브리드`에 `올-인`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 일환으로 언론사의 자동차 담당 기자들을 불러 하이브리드 차를 마음껏 타보게 했다. `토요타 하이브리드 스페셜리트 아카데미`라는 거창한 타이틀 아래 이론교육을 진행했고, 토요타 프리우스와 렉서스 CT-200h 두 차종을 번갈아 시승하는 실습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다.
시승 거리는 300㎞쯤 됐다. 서울을 출발해 문경새재 이화령을 거쳐 대구 렉서스 전시장에 이르는 코스다. 단순히 고속도로만 일정하게 달리는 걸 넘어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쳐야 한다. 무조건적인 연비운전이 아닌, 실제 주행에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이브리드카의 대명사 `프리우스`를 먼저 탔다.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출근 시간과 맞물린 도심 구간을 통과해야 했다. 평소엔 엔진이 꺼진 상태로 전기 모터가 힘을 내서 슬그머니 움직인다. 아무런 소리가 없다. 간간이 “윙~”하는 전철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날 뿐이다. 앞 차와 간격을 맞추기 위해 가속 페달을 조금 급하게 밟으면 이내 엔진이 켜진다. 왠지 모르게 손해 보는 느낌이다. 대시보드 위 모니터에 현재 효율이 표시되는데, 연비가 뚝뚝 떨어지는 게 눈으로 보인다. 자꾸 전기 모드로 주행하게 된다. 편하게 운전했지만 리터 당 25㎞를 훌쩍 넘는 효율을 보였다.
막히는 구간을 지나 고속도로에 올랐다. 고속도로 효율을 본격적으로 체험할 순서다. 운전을 하다 보면 자꾸 하이브리드 시스템 인디케이터에 눈길이 간다.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게이지를 보며 운전을 하게 되는데, ECO레벨 근처일 때 차가 조용해지면서 효율이 좋아졌다. 앞 차를 추월할 때나 급가속을 할 땐 파워 레벨까지 게이지가 올라간다. 이때는 전기모터와 엔진이 힘을 합해 오로지 가속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쓴다.
고속도로에 가벼운 정체구간이 생겨 잠시 속도를 낮춰야 했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배터리 충전 모드로 변환된다. 이 땐 엔진이 꺼지고 전기차(EV)모드가 된다. 페달을 살살 밟으면 시속 70㎞근처에서도 전기 모터만으로도 충분히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브레이킹은 살살, 미리 해줘야 한다. 급제동 등 일정 힘 이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배터리에 충전 되지 않고 버려지는 에너지가 생기게 된다. 천천히 밟아야 보다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다. 1차 목적지인 여주휴게소에서 확인해보니 100㎞당 3.7리터의 연료를 썼다. 1리터로 27㎞쯤 달릴 수 있는 효율이다. 주행속도는 도로 상황에 따라 시속 80~110㎞사이를 유지했다.
이어 다음 목적지인 이화령 고개 산장 휴게소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야 한다. 엔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연비는 점점 나빠졌다. 에너지 흐름도를 보니 배터리가 계속 힘을 보탠다. 1차 목적지에서 이화령까지의 연비는 리터당 23㎞. 생각보다 좋았다.
이곳에서 CT-200h로 갈아탔다. 프리우스와 기본 시스템이 같지만, 렉서스답게 고급스러움을 추구한 게 다른 차다. 훨씬 부드럽고 조용하다. 이제부턴 내리막길이다.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배터리를 충분히 채울 만한 코스가 이어졌다. 횡재한 기분이다. 버려지는 힘을 이용해서 효율을 높이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징을 충분히 체험했다. 배터리가 가득 찬 탓인지 대구에 도착했을 땐 27.05㎞/ℓ의 효율을 보였다. 같은 코스에서 다른 기자가 운전한 프리우스는 리터당 29㎞를 넘어섰다. 공인연비를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 모든 참가자가 리터당 23㎞ 이상의 효율을 보였다.
참가자들의 공통된 소감은 “놀랍다”였다. 그리고 높은 효율을 기록한 비결로 한결같이 `시스템 인디케이터`를 꼽았다. 바퀴를 굴리는 에너지가 엔진에서 나오는 건지, 모터에서 나오는 건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서다. 운전자는 마치 전자오락을 하듯 차를 몰 수밖에 없다. 나름의 즐거움이다. 도로 흐름에 맞춰서 운전할 수 있도록 차가 운전자를 길들이는 것 같았다.
토요타에 따르면 이번 시승은 `디젤이냐, 하이브리드냐` 차원의 문제로 접근한 게 아니라,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을 바로잡고자 함이다. 물론, 하이브리드 보급 욕심도 일부 섞여 있을 것이다. 토요타는 배터리 기술이 좋아지고 친환경차 보급이 늘면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값을 더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여유 있게 운전을 하다 보니 친환경 운전은 물론이고 안전운전도 가능했다. 토요타는 이를 계기로 `하이브리드 안전운전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싶다. 어찌 보면 도로 위에 친환경차가 늘어나는 건 `그만큼 도로가 안전해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친환경 운전자, 환영한다.”
시승, 사진/ 박찬규기자 sta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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