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다. 1996년 자동차 담당 기자가 된 이후 볼보자동차로부터 초대받았던, 기자로서 생애 첫 1박 2일 제주도 출장 역시 잊을 수 없다. 뜨거운 여름날 V70R을 타고 제주도를 누비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볼보는 왜건에 강점을 보이는 브랜드로 주로 알려져서 세단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볼보는 900 시리즈를 페이스리프트해 S90으로 개명했으나, 이 차는 98년 포드에 인수된 이후 S80에게 자리를 물려준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포드 산하 시절의 볼보자동차는 ‘어둠의 자식’이었다. 링컨, 애스턴마틴, 랜드로버와 함께 ‘프리미어 오토모티브그룹(PAG)’으로 묶여 활동했으나, 각 브랜드간의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지 못하면서 결국 PAG 산하의 브랜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S90은 사라진 지 8년 만인 2016년 다시 부활했다. 새로운 주인 아래에서 태어난 S90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였다. 새로운 SPA 플랫폼 위에 예전의 후륜구동 대신 전륜구동을 채택했고, 종이상자처럼 각진 외모는 왁스를 바른 청년처럼 매끈해졌다.
S90의 차체 크기는 길이 4965㎜, 너비 1880㎜, 높이 1445㎜이고 공차중량은 1755㎏다. 수입차 중에 경쟁 모델은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렉서스 ES, 재규어 XF 등이 꼽힌다. 국산차 중에는 현대 그랜저(4930×1865×1470㎜), 기아 K7(4995×1870×1470㎜) 등과 사이즈가 비슷하다. 그러나 가격으로 보면 제네시스 G80, 기아 K9과 경쟁한다.
새롭게 다듬은 볼보의 패밀리룩은 이견을 달기 힘들 정도로 잘 생겼다. 다만 뒷모습은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인다.
모델은 2.0ℓ 가솔린 터보 254마력 엔진을 얹은 T5와 2.0ℓ 가솔린 터보+전기모터 405마력의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를 얹은 T8 등 두 가지로 나온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T5 모델이다.
S90 T5는 출력 면에서 BMW 530i(252마력)와 메르세데스-벤츠 E300(245마력)과 견줄 만하다. V90 크로스컨트리와 V60 크로스컨트리에도 쓰이는 이 엔진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응답성과 뛰어난 정숙성. 평소에는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가속 페달에 힘을 실으면 초원의 치타처럼 튀어나간다. 패들 시프트가 없는 게 아쉬울 정도. 공차중량은 BMW 530i(1695㎏)나 벤츠 E300(1740㎏)보다 살짝 무겁지만 주행 중에 크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주행모드는 컴포트, 에코, 다이내믹, 인디비주얼 등 네 가지가 마련된다. 각 모드별 구분은 확실한 편이지만 다이내믹 모드는 좀 더 스포티해져도 좋겠다.
컨티넨탈의 255/40R19 타이어와 만난 서스펜션은 상당히 안정된 움직임을 보인다. 과거 S80처럼 물렁거리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말랑거리는 느낌이 좋다면 휠 사이즈를 1인치 낮추는 것도 괜찮겠다.
과거 볼보차들은 가속을 하면 소음이 갑자기 커졌는데 이 차는 은근히 소리를 키운다. 조용한 실내는 음악 감상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 고음, 중음, 저음이 입체적으로 분리돼 귀에 쏙쏙 꽂히는 바워스 & 윌킨스(B&W) 오디오는 동급에서 가장 음질이 뛰어나다. B&W 스피커는 대시보드와 1열 좌석의 양쪽 도어, 2열 좌석의 양쪽도어에 총 19개의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뒷좌석에 위치한 에어 서브우퍼(Air Sub-woofer), 1476W의 출력을 자랑하는 하만 카돈의 D 앰프는 웅장하면서도 선명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음향모드는 콘서트홀, 개별무대, 스튜디오의 3가지 모드를 지원한다.
중국산 모델이지만 마무리를 보면 스웨덴제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퀄리티가 좋다. 대형 스크린을 가운데 배치하고 날개처럼 편 우드그레인이 좌우로 배치되는 대시보드는 볼보의 다른 모델과도 닮았다. 세련된 인테리어를 지루하지 않고 스토리 있게 전달하는 게 인상적이다. 다만 트렁크 내부 위쪽은 철판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격을 떨어뜨린다. 잘 보이지 않는 곳도 내장재로 감싸는 게 고급차의 위치에 맞는다.
인증 연비는 도심 9.7㎞/ℓ, 고속도로 13.4㎞/ℓ, 복합 11.1㎞/ℓ인데, 시가지를 주로 달린 이번 시승에서는 10.5㎞/ℓ를 기록했다.
S90은 볼보의 최근 상승세를 반영하듯, 흠 잡을 데가 거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세단으로 거듭났다. 뒷좌석에 주로 앉은 쇼퍼 드리븐이라면 휠베이스를 늘이고 편의장비를 추가한 T8 엑셀런스 모델에 눈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가격은 T5 인스크립션이 6590만원, T8 엑셀런스가 9900만원으로 3310만원 차이. 직접 차를 모는 오너라면 T5 인스트립션으로 충분하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독일산 세단이 지루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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