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연극]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죽고 싶어서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삶이 힘들기 때문에 죽으려고 했던 것이다!

발행일자 | 2019.08.20 09:36

얘기씨어터컴퍼니 제작, 김예기 작/연출, 연극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가 8월 16일부터 9월 1일까지 대학로 공간 아울에서 공연 중이다. 얘기씨어터컴퍼니 제44회 정기공연 겸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으로, 극단의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 죽고 싶어서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삶이 힘들기 때문에 죽으려고 했던 것이다!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죽겠다는 결심을 하는 사람은, 죽고 싶기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삶이 힘들기 때문에 죽으려고 했던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표현은 ‘죽고 싶다’라고 하지만, 내면에는 ‘살고 싶다’라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에는 지금 살아 숨 쉬는 게 더럽고 괴로운데 남은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대사가 있는데, 죽음이 의미가 있어서 죽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삶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죽으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진심으로 살고 싶었던 거 아닌가요?”라는 대사를 음미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는 죽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살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살예방 연극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공연 초반 불편할 수 있는 장면으로 시작해 점점 공감도를 높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훼손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안타까움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에서 여고생(시민지 분)은 세상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에 살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나만 없어지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 잘못된 것을 바꾸기에 너무 막막하기 때문에 자신을 훼손하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어른들에 대한 불신, 세상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세상 전체를 바꾸려하기보다는 자신이 없어지겠다는 선택, 자신이 훼손되는 선택을 하려고 하는 모습은 무척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인데,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는 극한의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오해의 상황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진심이 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쨌든 대화를 시도하게 되면, 혼자서 고민하고 갈등할 때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 인형과 대화하는 남자! 인형은 남자의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는 공연 전 안내사항을 인형과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인형과 대화를 하는 장면은 공연 내용 중에도 나오는데, 안내사항을 재미있게 표현하겠다는 목적과 함께 공연에서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많은 인형을 가지고 있는 노숙자(양창완, 임성주 분)는 인형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노숙자에게 인형은 친구이자 반려동물이자 가족일수도 있고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에서 노숙자가 사람과 관계를 맺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고만 하지 않고, 외부와 소통의 대상을 찾았다는 점은 무척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존재감, 자존감이 없는 철수(하성민 분)는 연극 초반에 가족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과 많은 대화를 통해 가족의 존재감과 가치를 다시 느낀다. 주변 사람과의 관계성은, 주변 사람보다는 나로 인해 맺어질 수도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은 보여준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 조근조근 말할 때보다, 화, 분노, 답답함에 언성을 높이는 장면에서 대체적으로 배우들이 더 많은 시너지를 내는 배우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에서 젊은 남편(김승현, 신락훈 분), 젊은 부인(오정연, 이혜민 분)을 비롯한 모든 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조근조근 말할 때보다, 화, 분노, 답답함에 언성을 높이는 장면에서 대체적으로 배우들이 더 많은 시너지를 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연기를 무척 잘 소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연극 속 역할을 통해 평소 살면서 쌓인 억울함과 답답함을 푸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두 가지 중 어떤 경우라도 진정성이 전달되기 때문에, 관객은 내 이야기처럼 몰입할 수 있다.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공연사진. 사진=얘기씨어터컴퍼니 제공>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에서 자신은 웃지 않으면서 대사와 행동으로 표현하는 오정연은 진지함을 통해 웃음을 유발했다. 오정연은 첫 연극 작품에서 김승현과의 호흡을 통해 안정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는데, 배우로서 어떤 매력을 발휘할지 기대가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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