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푸조 308 HDi 해치백

2008년 10월 22일 국내 신차발표회를 가진 푸조 308 HDi. 주력모델인 SW에 이어 이번에는 해치백을 시승했다. 해치백은 308의 정수를 담고 있는 핵심 모델로써, 구형대비 화려하고 넉넉해진 차체와 세련되어진 실내, 숙성된 구동계와 하체가 만족스럽다. 제품자체의 상품성은 차원이 다르달 정도로 높아졌으나, 어려운 시장상황은 차지하고라도 ‘내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SW에 의해 약해진 입지를 어떻게 재정립해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107, 207, 307, 407, 607, 807로 구성됐던 푸조 라인업의 평화가 깨졌다. ‘008’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인 308이 307의 후속으로 등장한 것이다. 307은 2001년 데뷔한 이래 전세계적으로 340만대 이상이 팔린 푸조 라인업의 중심모델. 첫 출시 당시 여러 나라에서 ‘올해의 차’를 수상하는 등 검증된 실력을 바탕으로 프랑스 외에도 중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되었으며, 138개국에서 판매되었다. 3, 5도어 해치백을 기본으로 세단과 왜건(SW), 쿠페-컨버터블(CC)등 다양한 차종으로 가지치기 되기도 했다. 308은 이러한 307을 계승, 발전시킨 모델로,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하되 디자인과 설계를 일신해 완전히 다른 차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변신을 이뤄냈다. 308 역시 개도국형 모델인 세단을 아직 내놓지 않았을 뿐, 2007년 가을 3도어와 5도어 해치백의 유럽 출시를 시작으로 2008년 7월에 SW버전을 추가하고 연달아 CC버전까지 공개함으로써 발 빠르게 구색을 갖추는 모습이다. 여기에, 307때는 볼 수 없었던 2+2 쿠페 ‘308 RC Z’와 SUV 버전인 ‘3008’의 추가도 예정되어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모델이 준비되어 있지만 그 중 핵심은 역시 해치백, 그 중에서도 5도어 해치백이다.

307의 판매량을 보면 5도어 해치백이 전체의 50%를 넘고, 그 다음이 왜건인데, SW와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일반 왜건버전까지 포함해도 30%가 채 안 된다. 사용연료 측면에서는 갈수록 디젤(HDi)의 선호가 높아져, 말년에는 유럽판매의 71%가 디젤이었으며, 특히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95%에 이르렀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따라서, 이번에 시승한 308 HDi 5도어 해치백은 307 패밀리의 후속모델 중에서도 가장 정통한 차량이라 할 것이다. 유럽에선 선호되지 않는 2.0리터 엔진과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대중차로서가 아니라 국산차보다 월등히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수입차로 대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시장에서는 그에 합당한 대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사용연료야 디젤로 단일화되었으니 따로 언급할 것이 없지만, 차량 형태에 있어서는 1+1상품에 가까운 SW가 주력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 307SW가 국산차는 물론 다른 수입차들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지위를 누리는 사이, 해치백은 SW에 빌붙어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결국 308의 국내 출시 역시 SW의 입성준비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늦춰짐으로써 해치백은 다시 한번 체면을 구겼다. 그 많은 308의 광고가 죄다 SW만을 위한 것임은 또 어떻고. 해치백의 이러한 입지에 대해서는 항상 안쓰럽게 생각해왔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필자조차도 308의 신차발표 행사에서는 처음 실물을 접한 해치백보다 오히려 그전에 벌써 시승을 마친 SW에 눈을 두고 있었던 기억이니….

그랬던 308 해치백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푸조 측의 초청으로 호주에서 테일러 부부가 방한했을 때였다. 테일러 부부는 308 해치백 HDi모델을 이용해 자동차 연비 부문의 기네스 세계기록을 수립한 이들로, 308의 시승과 함께 그들로부터 연비운전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행사가 마련되었었다. 역시나 이때도 해치백보다는 SW가 시승차로 많았고 필자도 SW를 배정받았었다. 연비 체험을 위해 몇 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게 되었는데, 문득 앞에 가는 308 해치백을 보고는 동승했던 일행 모두가 한마디씩 했었다. “아아~ 308 해치백은 저렇게 생겼었군요!”… 결국, 그때 봤던 그 빨간색 해치백을 여기 이렇게 시승차로 받아왔다. 색상은 바빌론 레드. 기본적으로는 레드와인의 그것과 거리가 있지만, 사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빛에 따라 닮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푸조가 와인 소재 드라마에 차량지원을 하고 있어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사진촬영이 있던 날 새벽, 전날 내린 비로 지저분해진 차체를 지하주차장 불빛에 비춰가며 닦고 있자니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날이 추워서 제대로 된 손세차가 아니라 대충 닦는 시늉만 했는데 (결과적으로 세 번을 더 닦게 되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이게 바로 고양이 세수 아닌가. ‘고양잇과’의 얼굴을 지향한다는 ‘펠린 룩(feline look)’을 취한 것이 요즘의 푸조이니 말이다.

헤드램프 사이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애는 대신 범퍼의 입모양 흡기구를 눈 밑까지 쫙 찢어놓은 이 스타일은 307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도 이미 적용된 바 있지만,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된 이번 308을 통해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된 듯 하다. 넓어진 차폭을 바탕으로 볼륨감과 입체감을 더해 과감하고 공격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207, 307에서 볼 수 있었던 ‘흡기구에 걸친 원형 안개등’ 배치를 버린 것도 눈에 띈다. 얼굴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면에 프랑스 차에서 기대할 수 있는 멋스러운 스타일이 베어있으며, 구형차체에 얼굴만 바꿨던 기존 모델의 어색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껑충한 해치백’의 이미지도 한결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307과 비교하면 차체 길이(+74mm), 폭(+53mm)과 윤거(+30mm/+16mm)는 늘어난 반면 휠베이스는 동일하고, 높이는 12mm, 무게중심은 5mm가 낮아졌다. 308의 신차발표회 때는 푸조의 디자인 책임자인 키스 라이더와 푸조 디자이너로 활동중인 신용욱씨가 함께 방한해 디자인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푸조가 펠린 룩에서 중요시하는 부분은 V형상으로 튀어나온 코나 쫙 벌어진 입보다도 오히려 눈 부분, 즉 헤드램프의 형상이라고 한다. 야간에 앞차의 운전자가 거울로 봤을 때도 점등된 헤드램프의 형상만으로 푸조 차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디자인 팀의 의도라 하니, 향후에도 당분간은 패밀리 룩으로 지켜질 모양이다. 308의 헤드램프를 들여다보면 안쪽에 상/하향등과 깜빡이가 각각 4개의 원통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엔진의 ‘4기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장 안쪽의 원통은 아무 기능이 없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만든 이유가 뭘까 궁금했었는데, 그렇게 심오한 뜻이?

다른 부분 찾기. 308의 범퍼 모양은 두 가지다. 국내사양은 왼쪽.

코끝에서 시작된 V형상은 보닛과 지붕을 타고 뒷면까지 이어지고, 지붕은 C필러에 가까워지면서 아래로 살짝 쳐져 멋을 더한다. 측면에 속도감을 더하는 캐릭터 라인이나 우아한 굴곡들도 매력적이다. 휀더 부분을 수직으로 자른 형상은 207은 물론 308 데뷔 이후의 컨셉카들에서도 여전히 발견되고 있는데, 207만큼 튀지 않게 어우러지고 있는 점이 좋다. 307과 마찬가지로 앞 휀더는 플라스틱(Noryl), 보닛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측면 깜빡이는 깃발 타입인 사이드미러의 아래(깃대?) 부분에 달려있는데, 후측면 차량으로부터의 시인성과 파손우려 면에서 기존의 사이드미러 내장형보다 나아 보인다. 휠, 타이어의 경우 기본사양은 16인치이고 초기물량에 대해서만 17인치를 무상장착 해준다고 들었었는데, 전시장에서 받아본 카탈로그에는 아예 17인치가 표준사양으로 찍혀있었다. 17인치 알로이 휠은 시원시원하게 뻗은 5스포크 디자인인데, 휠 너트를 그대로 노출시키지 않고 큼지막한 크롬커버로 강조해 놓아 휠 볼트가 4개뿐인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이드캐릭터라인을 따라 뒤로 가보면 그 굴곡이 테일램프를 타고 뒷 범퍼까지 흐른다. 범퍼 하단에는 번호판 양쪽에 배기구 형상을 만들고 크롬장식을 둘러 강조했으나, 실제 머플러는 왼쪽 뒤편에 있으며 두 개의 배기구가 바닥을 향하고 있다. 리어 스포일러가 없어 조금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는 지붕 끝 단은 측면까지 파고든 값비싼 형상의 뒷유리를 타고 내려오다가 테라스 해치백처럼 도드라진 ‘트렁크’ 부분과 만난다. 그 세련된 면 처리가 407 쿠페를 닮은 한편으로 경쟁사인 르노의 구형 메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점이 흥미롭다. SW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뒷 범퍼는 검정색 플라스틱으로 디퓨저 형상을 추가해 스포티하게 조였다. 307때는 SW의 뒷모습이 워낙 못생긴 탓에 해치백이 ‘예쁜 엉덩이’를 비교우위로 내세울 수 있었는데, 308로 넘어오면서는 SW역시 빼어난 뒷태를 갖게 되어 해치백의 장점이 조금은 희석된 듯 하다. 운전석에 앉아보면 동급차량들에 비해 실내 폭이 넓게 느껴진다. 307에 비해 늘어난 폭을 잘 살린 덕분이기도 하지만 넓은 유리면적으로 인한 개방감이 체감공간을 더욱 넓게 한다. 끝 단이 앞차축까지 전진한 앞유리는 심하게 드러누운 상태로 높다란 지붕까지 연결되며, 지붕 또한 중간을 가로지르는 보 없이 통 유리로 덮여있다. 전진된 A필러와의 간격을 채우기 위해 옆에는 쪽창(쿼터 윈도우)이 달렸고 측면 유리도 큼직큼직하다. 지금이야 보편적인 것이 되었지만 307이 처음 데뷔할 때만 해도 이렇게 지붕이 높은 해치백은 낯선 것이라 소형 MPV의 범주에 넣자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였다. 308 역시 넓은 유리면적을 통해 단순한 해치백 이상의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 유리의 경우 두 개의 와이퍼가 나란히 겹쳐져 있다가 좌우 바깥쪽을 향해 서로 밀어내듯 닦아내는데, 운전석 쪽 고무 날의 길이가 76cm내외, 즉 30인치에 달한다. 1.48제곱미터에 이르는 광활한 앞유리를 남김없이 닦아내기 위함이다. 이 커다란 앞 유리와 모서리를 깊게 파고든 옆 창을 통해 운전자는 시야 가득 도로상황을 담을 수 있다. 이런 차는 역시 시트를 최대한 높여 위에서 내려다 보듯 앉아야 제 맛이다. 크로스오버차량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멀리 내다볼 수 있고, 주변 장애물의 파악 역시 쉽다. 어쩔 수 없이 시야에 걸리는 룸미러가 흠이라면 흠일까. 시트는 5cm의 높이 조절폭을 갖고 있으며 기본 높이는 307보다 15mm가 낮춰졌다. 스티어링 휠은 각도와 거리조절이 가능해 편한 운전자세를 잡기에 무리가 없다. 시트는 운전석과 동반석 모두 수동조절이며 몸통부분은 메쉬타입의 직물로, 바깥쪽은 가죽으로 마감하고 있다. 올-가죽의 전동조절시트는 차선이탈경보장치와 패키지로 묶여있어 이번 국내 수입사양에서는 빠졌다는 후문인데, 추후 푸조 본사와의 조율을 통해 적용하게 될 가능성도 있단다. 개인적으로는 직물 소재도 꺼리지 않는 편인데, 특히 308의 시트는 그 멋진 형상에 비해 부분 적용된 가죽부분의 질감이 부조화를 일으키고 있는 듯 해서 아쉽다. 겨울철 시승이다 보니 시트의 열선 기능이 빠져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시트 아래쪽에는 서랍식의 작은 수납공간이 달려있어, 앞뒤 거리조절을 하려고 손을 아래로 뻗다 보면 서랍을 먼저 잡게 되곤 한다. 형상이 얕고 짧아, 드라이빙 슈즈보다는 작은 우산 정도를 보관하는 용도로 어울릴 듯 하다. 헤드레스트는 틈이 벌어지면서 뒤통수까지의 거리를 조절하는 방식.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려면 B필러와 시트사이의 공간 뒤편으로 팔을 밀어 넣어야 하는데, 자세도 어색하거니와 옷을 두텁게 입게 되는 겨울철에는 팔이 끼게 되어 불편하다. 307로부터 개선되지 않은 부분이다. 반면 307에서 못마땅했던 실내 질감이나 디자인은 완전히 개선되어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독일차의 견고한 느낌은 아니지만 나름의 운치를 담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실내는 외관처럼 ‘V’모티브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전면 엠블렘의 아래쪽을 감싼 메탈장식과 닮은 부분들도 발견할 수 있다. 도어트림의 손잡이가 그렇고, 변속레버 주변과 헤드콘솔은 아예 대칭을 이룬다. 대시보드의 단면형상 자체도 V형인데, 이는 실내가 넓어 보이는 효과를 거들고 있기도 하다. 계기판은 브레이크 패드와 캘리퍼의 형상을 본뜬 것으로, 푸조 디자인 팀은 다른 사물이 아닌 바로 자동차에서 실내디자인의 영감을 끌어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시보드는 직물패턴의 부드러운 플라스틱으로 덮었는데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 좋은 느낌을 준다. 해외사양으로는 대시보드에 가죽을 씌운 버전도 준비되어 있으나, 지금도 충분히 좋아 보인다. 나머지 가죽패턴의 플라스틱 부품들이나 메탈룩으로 페인트 처리된 센터페시아, 에어컨 조작부등에서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부품의 마무리나 단차 같은 면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어졌다. 액센트로 들어간 금속 장식이나 크롬 링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대시보드 중앙 상단의 액정화면 그래픽은 307과 차원이 다른 차임을 나타내는 본보기라 하겠다. DOS화면과 WINDOWS화면의 차이랄까. 오디오 정보와 차량 설정 메뉴, 후방감지기 화면 등이 다양한 색상을 활용해 깔끔하게 표시되며, 후진 시 감지된 장애물은 좌/우/중앙으로 영역과 거리를 나눠 시각화된다. 단순히 실외온도만 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기온이 낮을 경우 노면이 미끄러울 수 있다는 경고메시지를 띄워주는 것도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요긴한 기능이다. 이 액정화면은 취향에 따라 바탕색을 바꿀 수도 있다. 살펴볼수록 의외로 꼼꼼하고 친절한 차다.

대시보드의 가운데 원형 송풍구에는 교환식 방향제 디퓨저가 내장되어있고 글로브박스 쪽에는 가방걸이가 있어 여성들로부터의 득점을 노리고 있다. 유아용 시트 고정부위인 ISOFIX도 운전석 외의 나머지 좌석 모두에 마련되어있다. 유리창은 4개 모두 원터치로 업/다운되며, ECM룸미러와 좌우독립온도 조절장치도 갖추었다. 차급에 안 어울리게 각종 조명장치에도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다. 주차된 차를 찾기 쉽게 해주는 점멸, 점등 기능이라든지 헤드콘솔의 스팟 조명, 1열 발 공간 조명을 갖춘 점도 그렇고, 승 하차시 지면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앞뒤 도어 모두에 하단 조명을 달아둔 것도 마음에 든다. 오토 헤드램프 기능으로 하향등이 켜졌을 때는 계기판에 이를 표시해주기 때문에 앞차에 비춰보고 확인할 필요가 없다. 인기아이템인 LED 주간주행등까지는 아니지만 차량설정 메뉴를 통해 ‘강한 미등’으로 주간주행등을 켤 수 있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대신 207에서 볼 수 있었던 저속 코너링램프는 빠져있다. 시동을 끄면 오디오를 쓸 수 없게 되는 것은 흠이다. 오디오는 MP3와 AUX를 지원하는데, AUX단자는 글로브박스 안에 숨어있고 CD는 한 장만 들어간다. CD한 장 넣고 배는데도 제법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6CD체인져 내장형에 비하면 재생 중에도 이젝트 버튼을 누르자마자 CD를 내뱉는 모습이 차라리 신선하게 느껴진다. 오디오 성능은 무난한 편. 차량속도에 따라 볼륨이 자동으로 조절되고 음악종류에 따른 이퀄라이저 프리셋을 선택할 수도 있다. 순정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있지 않은 대신 앞 유리에 흡착판으로 부착하는 애프터마켓용 내비게이션(아이나비 K2)을 제공하고 있는데, 적어도 사용편의성에 있어서는 기존의 매립형 제품보다 훨씬 낫다.

뒷좌석은 시트가 낮지 않은데다 도어의 열리는 각도가 커서 승하차가 편하다. 공간에 여유가 있고 자세도 편하다. 3개로 나뉜 시트가 어린이용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SW와 대비되는 장점이다. SW처럼 앞뒤 거리 조절이나 등받이 각도 조절은 되지 않지만 무릎공간이 충분하고 등받이 각도도 적당하다. 앞좌석을 높이지 않아도 발 공간이 충분하며, 외관상 아래로 쳐지는 지붕선과는 상관없이 머리공간에도 여유가 많다. 센터터널이 높고 센터콘솔이 뒤쪽으로 튀어나와 가운데 부분이 좁을 뿐이다. 센터콘솔에는 뒷좌석을 위한 송풍구와 서랍이 달려있고, 등받이에서 나오기를 싫어하는 가운데 암레스트에는 컵홀더와 수납공간이 있다. 뒷좌석의 도어포켓 역시 넉넉한 크기이고, 트렁크 램프를 겸하는 룸램프 외에도 양쪽에 맵등을 달아두었다. 유리지붕의 면적은 1.26제곱미터로 SW(1.68제곱미터)보다 휠베이스가 짧은 만큼 지붕의 길이 역시 짧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뒷좌석 승객의 머리 위까지 도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시야 가득 하늘을 채우는 데는 지장이 없다. B필러의 천정부분을 가로지르는 보가 없이 앞뒤 통짜로 연결된 유리지붕이 주는 개방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자체에 자외선 차단 처리가 되어있어 열 받을 염려도 적고, 햇빛가리개는 앞좌석 센터콘솔의 스위치를 이용해 간단히 작동시킬 수 있다.

뒷좌석에는 분할 폴딩 기능을 갖추고 있으나 동작은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잡아뜯듯이 방석부분을 먼저 젖힌 뒤 등받이를 접어야 하는데, 앞좌석과 헤드레스트가 거치적거리고, 누운 자세도 어중됐다. 그나마 바닥 철판이 노출되지 않도록 마감된 것이 207보다는 나아진 부분이다. 뒷 선반은 특이하게도 덮개 달린 수납공간을 내장하고 있으며, 이 덮개를 뒷좌석 쪽이나 바깥쪽, 어느 쪽에서든 열 수 있도록 양쪽에 하나씩 손잡이를 마련해두었다. SW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큼지막하게 느껴지는 테일게이트(뒷문)는 가볍고 부드럽게 여닫힌다. 앞서 언급한 실내등 겸용의 천정 조명 외에도 좌측 벽에 트렁크 전용의 조명을 갖추고 있는데, 일부 개념 없는 차들처럼 정측면을 향하고 있어 눈부심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대각선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 옆의 전원소켓까지 덩달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트렁크바닥에는 풀-사이즈의 스페어 타이어와 공구가 들어 있을 뿐 여타의 수납공간은 없다. 이중 바닥구조가 아닌 만큼 바닥은 낮게 자리하고 있고, 반대로 턱은 높게 느껴진다. 트렁크 용량은 430리터. 시트를 접고 천정까지 채울 경우 1,398리터까지 실을 수 있다.

엔진은 2.0 디젤 ‘HDi’이고 아이신제 6단 자동변속기를 쓴다. 최고출력이 4,000rpm에서 138마력, 최대토크는 2,000rpm에서 32.6kgm이고 오버부스트 시에는 34.7kgm까지 올라간다. 307때와 내용은 같으나 커진 차체에도 불구하고 연비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푸조 측 발표에 따르면 308의 연비는 대부분 버전에서 307보다 향상된 것으로 되어있는데, 우리나라 공인연비상으로도 307 HDi가 14.4km/L였던 것이 308 HDi는 15.6km/L로 높아졌다. (307때처럼 해치백과 SW의 연비는 동일하다. 무게는 308 해치백이 SW보다 65kg 가볍다.) 앞서 언급한 테일러 부부는 푸조 308 HDi로 ‘1리터에 37.38km’라는 징그러운 연비를 기록한 달인들이다. 60리터짜리 연료탱크를 한번 가득 채운 뒤 1,919km를 달렸다는 것이다. 그들이 탔던 308 HDi는 1.6리터 110마력 수동변속기 모델로, 25일 동안 호주일대를 1만5천km가까이 돌며 이런 기록을 세웠다. 국내수입모델은 배기량이 더 크고 힘이 좋은 만큼, 그리고 자동변속기인만큼 그 비슷한 연비도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 저력만큼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50km를 달린 시승 기간 동안의 연비는 12.0km/L. 트립 컴퓨터에 기록된 4,200km 구간의 평균연비는 12.2km/L였다. 매체 시승으로 혹사당하고 있는 차임을 생각하면, 그리고 연비에 불리한 타이어를 끼우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양호한 수치로 판단된다. 시승차의 17인치 휠에 끼워진 타이어는 성능지향이라 할 수 있는 피렐리 P제로 네로 제품인데다가 순정 16인치에 비하면 단면폭이 2cm 더 넓은 225/45ZR17사이즈였다. 그만큼 주행안정성 등에서는 효과를 얻고 있지만, 유럽에서의 푸조는 ‘다운사이징’을 주창하며 구름저항을 최소화한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 타이어를 적극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유구는 307과 마찬가지로 시동키를 마개에 꽂아야 열 수 있는 방식이다. 움직임은 SW에 비해 한결 가뿐하다. SW가 여유롭게 움직이는 편이였다면 해치백은 경쾌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무게 차이 외에도 10cm 더 짧은 휠베이스와 서스펜션 세팅의 차이가 유연한 움직임을 만든다. 특히 하체는 엔진성능 대비 여유만만이다. 업그레이드된 타이어의 덕도 있어, 언더스티어가 발생하는 한계상황은 기대보다 훨씬 높은 시점에서 찾아온다. 긴 스트로크로 묵직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하체는 최고속에 이르는 중 만났던 요철과 커브에서도 두려움을 잘 삭혀주었다. 시트를 한껏 높인 상태에서도 예측 가능한 자연스러운 양의 차체 롤(좌우 쏠림)로 이렇다 할 부담이 없다. 노면마찰음이나 잔 요철에 대한 충격흡수, 연비 등을 생각하면 16인치 사양이 낫겠지만 17인치의 (이 제품이 가진) 성능과 자세를 일단 맛보고 나면 선뜻 16인치로 돌릴 생각은 하기 어렵겠다. 17인치라 해도 노면을 타는 특성은 적은 편이다.

오디오와 크루즈컨트롤,속도제한장치 등 리모컨 버튼을 모조리 뒤편으로 보내 밋밋한 느낌인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380mm로 작지 않으면서도 손에 짝 붙는 찰진 느낌을 준다. 잘생긴 스티어링 휠이 운전재미를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308의 경우에는 오히려 뛰어난 핸들링이 평범한 휠을 미화시켜주는 셈이다. 코너링 시 시트의 지지력도 꽤 쓸만하다. 생긴 것처럼 단단한 뼈대를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격한 와인딩에서는 측면 지지부가 하중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찌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일반용 시트인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성능이다. 일상주행에서는 폭 안기는 느낌을 줄 정도로 솟아있으면서도 지지부가 단단하지 않아 타고 내릴 때 불편하지 않은 것이 장점. 다만 왼발을 풋레스트에 올리면 허벅지가 지지부에 걸려 다소 신경 쓰이기 때문에 차라리 브레이크페달 옆의 빈 공간으로 발을 뻗게 되기도 한다. 동반석의 경우에는 바닥이 솟은 편이라 뒤로, 혹은 위로 물러앉는 것이 자연스럽다. SW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엔진은 요즘 디젤치고도 몹시 정숙하고 세련돼져서 307에서 옮겨온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근래에 타본 이 또래의 디젤차 중에서는 소음과 진동 양면에서 최고수준이라 할 수 있다. 출력이나 토크 수치는 내세울 것이 없지만 일상영역에서는 충분한 성능을 제공해주는 만큼 이러한 NVH면에서의 개선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직 307의 잔재가 느껴지는 것은, 가다 서다가 반복될 때 변속충격과 동력연결의 엇박자, 브레이크의 예민한 초기 반응 등이 어우러져 부드럽지 못한 주행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변속기는 아이신제 AM6C로, 수동모드 외에도 스포츠 모드와 윈터 모드를 제공하고 있다. 수동모드에서도 4,500rpm정도면 자동변속이 이루어지며, 킥다운도 가능하다. 정속 주행시 회전수는 80km/h에서 1,600rpm, 100km/h에서 2,000rpm정도. 3,500rpm부근부터는 다소 거친 음색을 들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주행에서는 회전수를 이만큼 높일 일도 없다. 가속페달의 작은 움직임에도 명쾌하게 반응해주기 때문에 시내 주행이 즐겁지만, 급가속 요구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풀 가속시의 자동변속 포인트는 35, 60, 100, 137, 170km/h. 즉, 100km/h에서 이미 4단으로 넘어간다. 5단, 170km/h까지는 수월하게 가속되고, 6단으로 넘어가면서는 사실상의 벽에 부딪치는 모습이었다. 제원상 0-100km/h 가속에는 10.6초가 걸리고, 최고속도는 200km/h이다. 308SW보다는 낫지만 307보다는 조금씩이나마 떨어진 수치다.

308은 307대비 고강도강의 비율이 높아졌고 차체강성은 10% 향상되었다. 307보다 안전성이 높아진 308은 유로NCAP 전면, 측면 충돌테스트에서 별 다섯 개의 최고 점수를 획득했을 뿐 아니라 어린이 탑승자 및 보행자 보호 부문에서도 동급 최고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동급최초인 무릎에어백을 포함해 7개의 에어백이 장착되고, ESP는 물론 급제동시 자동으로 ON/OFF되는 비상등과 우천시 변속기를 후진위치에 놓으면 알아서 작동하는 뒷유리 와이퍼 등 센스 있는 안전 사양들도 갖추고 있다. 3세대 DPF 시스템으로 미세먼지를 걸러 유로4기준치의 1/25만큼만 배출하며, 국내기준 CO2 배출량이 173g에 불과한 것, 소재 재활용률이 99%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자랑이다. 프랑스 차를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패션이나 와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유독 와인과 결부 짓게 되는 것이 –르노나 시트로엥 보다는- 푸조인 것 같다. 같은 푸조라도 207 이하의 작은 차는 와인에 비유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407이나 607처럼 적당한 크기에 우아한 라인을 가진 차를 만나게 되면 자연스레 그러한 분위기에 취한다. 그 ‘성숙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307을 베이스로 거듭난 308은 어느덧 와인의 향취와 썩 잘 어울리는 차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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