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처럼 깊은 맛, 쌍용 뉴 체어맨 W V8 5000

무릇 한 회사의 기함이라하면 장중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어야 한다. 뉴 체어맨 W는 이 조건에 딱 부합되는 차다. 쌍용은 한국의 사장님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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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은 사골 한 번 끓이면 10일 정도를 먹는다. 외식이 없다면 대략 10일 동안 사골만 먹는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그렇지, 매번 먹으면 질린다. 그럴 땐 방법이 있다. 반찬, 그것도 아니라면 그릇이라도 달리해 분위기를 바꾸는 것. 그럼 또 견딜 만하다. 체어맨 W는 내용은 거의 그대로지만 포장을 달리했다. ‘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조금 모자라다고 할 수 있겠지만 차급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

그동안 쌍용 차에 가혹하다는 주위의 말을 받아들여 가능한 좋게 볼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체어맨 W면 자가 운전이 별 의미가 없는 차종. 어쩌면 체어맨 W는 시장에서 팔리는 차 중 가장 쇼퍼 드리븐에 어울리는 차가 아닌가 싶다. 이 차는 통상적인 시각으로 볼 차가 아닌 게 맞다. 그래서 뒷좌석에 앉아 사장님 체험을 먼저 했다. 운전은 MBK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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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니 뒷좌석도 이지 액세스가 된다. 어서 오세요라고 시트가 움직이면서 공간을 넓혀준다. 감탄할 뻔 했지만 생각해보니 체어맨 W에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되지. 아늑한 시트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둘러보니 없는 게 없다.

일단 시트를 보면 슬라이딩의 움직임이 꽤 크다. 비행기의 비즈니스 석처럼 눕는 것 같은 자세가 가능하다. 거기다 헤드레스트는 어찌나 편한지. 구형의 헤드레스트도 편했지만 신형은 더 하다. 머리를 아늑하게 감싸준다. 여기에 전동으로 유리의 블라인드(쪽창은 수동)까지 치면 완벽하게 프라이버시가 보호된다. 욕심 같아서는 1열도 격벽이 있었으면 좋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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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를 누려보고자 최대한 편한 자세를 잡는데, 차 사이즈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2열 레그룸이 좁다. 하지만 시트가 슬라이딩 되고 동반자석도 밀 수 있어서 크게 아쉽지는 않다. 동반자석은 (기사가)시트 옆에 밀고 당길 수 있는 버튼이 마련돼 있고 사장님이 직접 조작할 수 있게 컨트롤 패널에도 버튼이 있다. 뒷유리 블라인드도 당연히 전동식이다.

뭐가 많은 차는 처음에 조작하면 버벅대기 쉽다. 하지만 체어맨 W는 그럴 염려가 없다. 구형과 똑같다. 4년 만에 만나긴 했어도 어렵지 않게 각종 기능을 조작했다. 암레스트에 마련된 컨트롤 패널에는 큼직한 다이얼과 안마 버튼이 마련돼 있다. 모니터는 숨겨져 있다. 체어맨 W를 처음 탔을 때 모니터를 꺼낼 줄 몰라 헤맸던 기억이 있다. 센터 콘솔 후면에 수납된 모니터는 컨트롤러를 조금 길게 누르면 스르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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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좌석과 달리 컨트롤러로 공조장치와 내비게이션 등의 모든 기능을 컨트롤 할 수 있다. 1열처럼 팔을 움직이면서까지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된다. 느긋한 자세로 앉아서 내비게이션과 음악, DVD를 즐길 수 있다. 퇴근 시간대라면 DMB로 야동(야구 동영상)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 좋은데, 컨트롤러가 헐거운 게 조금 별로다. 사방으로 유격이 있다. 그리고 버튼의 색상도 1열처럼 검은색으로 바꾸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이런 차의 뒷좌석에서 누리는 호사의 정점은 마사지 기능이라고 본다. 뉴 체어맨 W도 3단계 마사지 기능이 마련된다. 하지만 진동만 강조되고 몸을 문질러주는 느낌은 없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마사지 기능만큼은 업그레이드 했으면 한다. 그래도 맘에 드는 점 중 하나는 우드 트림이 좀 더 자연스러운 질감으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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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에게 주문했다. 옆구리에 G를 느끼고 싶으니 좀 달려달라고. 뉴 체어맨 W는 비에 젖은 북악스카이웨이를 신나게 달렸다. 어차피 점심시간이었고 하니 삼청동에 있는 사골탕집으로 합의를 보고 열심히 달려갔다. 결국 찾질 못해서 칼국수로 때우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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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에 타니 자가 운전과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일단 승차감이 좋다. 나는 렉스턴, 체어맨 시리즈 특유의 물렁거림 및 승차감이 전혀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뒷좌석에 타니 괜찮다. 구형부터 체어맨 W는 체어맨보다 덜 물렁거리긴 했지만 신형은 좀 더 롤이 줄어든 것 같다.

사장님차라서 2열 승차감에 더 신경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승차감이 괜찮다. 혹시 운전을 너무 잘해서인지도. 비가 오는 와중에서도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은 차단이 잘 되어 있다. 이렇게 격리된 기분이야말로 이런 성격의 차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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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외관은 일단 전면을 먼저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뉴 체어맨 W도 앞모습이 압권이다. 구형이 얼핏 마세라티 필이 났다면 신형은 마이바흐다. 헤드램프는 구형 S 클래스 비스무리하다. 뭐를 닮았는지 베꼈는지는 중요치 않다. 정작 중요한 건 봤을 때 폼이 나는 것이다. 뉴 체어맨 W는 충분히 폼이 나는 디자인이고 덩치도 크다.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만한 덩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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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는 뭔가 복합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딱히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팔뚝이 들어갈 만큼 큰 머플러가 눈에 확 띄는 정도다. 트렁크는 덩치에 비해 작아 보이는데 그래도 용량이 600리터가 넘는다. 엠블렘을 누르면 자동으로 열린다. 그리고 트렁크를 열면 리어 서스펜션의 차고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닫으면 다시 내려간다. 이 역시 폼 나는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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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는 한국타이어의 245/45R/19 사이즈의 옵티모 H108이다. 구형과 사이즈가 같고 타이어는 전형적인 OEM 패턴을 갖고 있다. 체어맨 W가 처음 나왔을 때는 19인치 휠이 국산차 중 처음이었는데, 지금은 나름(?) 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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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고 해서 어느 정도의 개선은 있겠거니 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실내는 이전과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드 등의 일부 트림만 변경된 정도다. 그래도 여전히 경쟁력은 있다. 철판에 구멍을 송송 뚫은 듯한 메탈 트림은 지금 봐도 멋진 아이디어이다.

BMW는 와이드 10인치도 있지만 체어맨 W의 8인치도 시원한 시인성을 제공한다. 아이드라이브스럽게 생긴 둥근 컨트롤러는 파워 온오프와 볼륨 조절만 된다. 일단 모니터가 켜지만 그때부터는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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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로 들어가면 라디오와 지상파 DMB, DVDC, HDD, USB, AUX, AV 설정 등의 메뉴가 나온다. 각 메뉴를 클릭하면 상세 메뉴가 나오고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몇 번만 사용해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후방 카메라의 주차 가이드 라인은 스티어링과 연동되지 않지만 어차피 운전은 기사가 할 테니 크게 흠 잡을 부분은 아니다.

모니터 하단에 있는 공조 장치 버튼들은 하얀색 바탕이었는데 검정색으로 바뀌었다. 한결 보기가 좋다. 바로 위의 길쭉한 액정에는 온도와 날짜, 시계가 표시되는 데, 여전히 아날로그 시계가 없는 게 아쉽다. 체어맨 W 정도 되면 품격 있는 아날로그 시계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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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레버에는 렉스턴 Ⅱ처럼 작은 변속 레버가 달려 있는데,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 기능이다. 어차피 스티어링 휠에도 변속 버튼이 있기 때문이다. 운전대 변속 버튼의 위치는 스포크 중간에서 약간 밑으로 내려왔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속 버튼이 손에 잘 안 닿기는 매한가지다.

변속 버튼 위치를 달리하면서 메탈 장식도 빼버렸다. 설마 원가 절감은 아니겠지. 단순한 디자인의 계기판은 시인성이 괜찮고 커다란 액정을 통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정지 상태에서 타이어 정렬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은 4WD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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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인제 자가 시승을 할 차례. 앞서 말한 것처럼 엔진과 변속기는 똑같다. 듣기만 해도 위엄이 서려 있는 벤츠의 5리터 V8 엔진과 7단 변속기의 조합이다. 체어맨 W가 나왔던 2008년만 해도 300마력 이상의 엔진은 국산차 중 처음이었고 AWD는 지금도 유일하다. 5리터는 여전히 국산차 중 가장 큰 배기량이다.

체어맨 W에서 공회전 소음이나 진동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당연히 정지 상태에서는 절간처럼 조용해야 하고 일말의 진동도 느껴져서는 안 된다. 운전석에서 자세히 귀를 기울여야 엔진이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음량이니 뒷좌석에서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숙성은 운전 중에도 유지된다. 하체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효과적으로 차단되고 생각보다 바람 소리도 적다. 최근의 쌍용차를 시승했을 때 번갈아가면서 좌우 유리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는데 시승차는 그렇지 않다. 이제 품질 안정이 됐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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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움직임에서는 세련미가 보인다. 가속 페달을 찬찬히 밟으면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깊게 밟으면 순간적으로 큰 힘이 나온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호기 있게 타이어도 헛돈다. 구형과 비교해 보면 급출발 시 휠 스핀은 조금 줄은 것 같다. 4천 rpm을 넘어서면 엔진 음량이 증가하는데, 어차피 체어맨 W에서는 쓸 일이 별로 없는 영역이다.

기어비는 대배기량의 이점을 살려 사이가 벌어져 있다. 1~3단에서는 약 63, 100, 155km/h까지 가속되고 4단에서는 225km/h까지 나간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가속은 4단으로 해치운다. 물론 이 이상의 속도까지 가속이 되긴 한다. 5단으로 넘어가도 가속력이 줄지 않고 230km/h 이상까지 밀어 붙인다. 느낌으로는 250km/h까지 갈 것도 같은데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이 엔진의 S 500은 편하게 고속 주행할 수 있었지만 체어맨 W는 다소의 스릴을 즐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200km/h이 넘어가면 붕붕 뜬다. 180km/h 되면 자동으로 차고가 내려가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세팅이라면 차라리 리미트를 거는 게 낫다. 어차피 체어맨 W는 빠르게 달리기 보다는 조용한 크루징에 더 어울리는 성격이다. 벤츠의 파워트레인을 썼다고 고속 안정성까지 벤츠이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7단으로 100km/h를 달리면 회전수는 1,400 rpm에 불과하다.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100km/h가 밍숭밍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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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게 개선되는 것은 변속기의 품질이다. 구형의 7단은 벤츠보다 더 튀었다. 고급차의 성격에 맞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형으로 오면서 변속 충격이 많이 줄어들었고 가속 시 기어 레버로 전달되는 진동도 감소했다.

에어 서스펜션은 컴포트와 스포트, 오토 3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차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오토로 놓고 타면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렉서스처럼 체어맨 W도 처음부터 스포트로 놓고 타는 게 모든 면에서 낫다. 그래도 구형보다는 전체적인 롤이 많이 줄었다. 거기다 핸들 감각도 생각보다 살아 있다.

브레이크도 컴포트를 지향한다. 즉각적인 응답성보다는 지긋하게 작동하는 타입이다. 100km/h를 조금 넘는 정도의 속도에서 제동할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이보다 높은 속도에서 반복해 제동하면 페이드가 금방 발생한다. 급제동 시 차의 무게가 많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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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도 그대로다. 체어맨 W가 처음 나왔을 때, 쌍용이 밝힌 3세대 ACC는 최신 유닛이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에는 ‘약간’ 구형 유닛이 됐다. 완전히 멈출 때까지 작동하는 것은 같은 기능이지만, 멈추면 기능이 해제된다. A8, A7, 그랜저 등에 적용된 최신 유닛은 멈춰도 기능이 살아 있고, 이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톡 건드려주면 다시 기능이 실행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멈추기 바로 직전에 기능이 해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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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체어맨 W를 탔을 때는 놀랄 만한 구석이 많았다.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았고 파워트레인이나 편의 장비도 으리으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다. 그동안 다른 차들이 발전한 것에 비해 개선 폭이 적기 때문이다. 요즘의 전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4년 만의 ‘뉴 모델’로서는 달라진 게 별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의 사장님차 시장에서는 통 할만 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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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체어맨W 시승사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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