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해냈다. 쏘울은 우리나라에서는 영영 만들어 질것 같지 않았던 독특한 종류의 자동차. 스쿠프 탄생 십여 년 만에 결국 후륜구동 스포츠쿠페를 내놓은 현대도 대단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쏘울의 의의도 만만치 않다. 대시보드나 속살을 빨간색으로 덮을 수 있고 음악에 따라 스피커가 빨간 불이 번쩍거리는, 시트와 매트가 빛나는 차를 우리나라의 자동차 회사가 내놓을 줄이야!
글 :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지나던 사람들이 애매한 크기와 독특한 모양새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이, 자동차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대체 이차를 어디에 묶어 분류해야 할까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기본은 5도어 해치백인 것 같은데, SUV처럼 높게 생겼지만 오프로드를 달릴만한 차는 아니고, MPV인가도 싶지만 사람을 많이 태울만한 차도 아니다. 가족이자 경쟁사인 현대의 아토스와, 클릭, 라비타, 투싼을 한데 섞어서 잘 반죽한 뒤 나누면 이만한 크기에 이러한 성격을 가진 차가 나올 듯도 싶다. 말 그대로 크로스오버다.
기아는 크로스오버에 일가견이 있었다. 비록 포드가 구상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선구적이었던 오리지널 스포티지가 그랬다. 쏘울이 가진 의미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쏘울은 어려운 회사 사정을 극복하고 다시 뛰기 위해 기아가 내세운 디자인 경영의 진수다. 디자인은 단순히 그럴듯한 껍데기로 겉을 치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줄거리가 있어야 하고 속이 알차야 하며 아이디어가 빛나야 한다. 현대차와 플랫폼을 나눠 쓰는 입장에서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야만 하는 기아로서는 백 번 떠들고 광고하는 것 보다 제품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고, 기아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쏘울의 홍보자료는 경쟁모델로 ‘감히’ BMW의 미니를 꼽아놓았다. 해외유명 ‘CUV’에 뒤지지 않는다며 미니 쿠퍼와의 비교수치를 제시해놓아 혼란스럽긴 한데, 어쨌든 이에 따르면 쏘울 1.6 가솔린이 덩치도 크고 힘도 좋으면서 기름은 덜 먹는다. 중요한 것은 기아가 미니라는 패션카를 염두에 두었을 정도로 디자인의 비중에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여기에, 현재 BMW가 미니의 크로스오버 버전을 개발 중이라는 사실은 쏘울의 대전자 지목에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는 것 아닌가라는 심심풀이 억측까지 낳게 한다.
쏘울은 본래 미국의 젊은 층을 겨냥해 기획된 차다. 미니가 버겁다면 토요타의 싸이언 브랜드 차량이나 미국버전으로 개발중인 닛산의 큐브 등이 실질적인 적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쏘울이 처음 데뷔한 것은 2006년 1월의 디트로이트 모터쇼로, 이때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컨셉카일 뿐 양산 의도는 없었던 듯 하다. 하지만 좋은 반응을 바탕으로 한번 해볼만하다는 평가가 나왔는지 1년 후 같은 장소에서는 양산계획이 공식 발표되었다.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 부사장이 기아에 영입된 것도 딱 그 즈음(2006년 9월)이었다.
오리지널 쏘울 컨셉카는 기아차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와 남양연구소의 합작품. 이와 달리 올해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 (그리고 5월 부산모터쇼에도 전시)된 쇼카 3총사 – 버너, 서처, 디바는 개발 마무리 단계의 양산버전을 바탕으로 유럽연구소의 디자인 팀이 꾸민 것이었다. 물론 피터 슈라이어의 진두지휘를 받았고, ‘호랑이 그릴’도 이때 추가되었다.
이름은 처음부터 쏘울이었다. 컨셉카가 처음 데뷔한 디트로이트가 ‘소울’ 음악의 진원지라는 점, 그리고 ‘서울’의 영어 발음과 비슷하다는 점이 반영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은 ‘Soul of Asia’라는 문구로 외국에 홍보되지 않는가. 여담이지만 ‘전지현의 영혼을 판다’는 S전자의 휴대폰 이름도 Soul인데, 혹시나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던 공동마케팅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예고편이 아닌 순수의, 특히 모험적인 컨셉카의 경우 양산화 과정을 거치면서 ‘환상적이었던’ 주요특징들이 무색해지거나 비례가 바뀌면서 완전 딴판의 차가 나오는 일이 태반이다. 쏘울도 컨셉카의 장롱처럼 앞뒤로 펼쳐지던 도어나 20인치 휠 같은 부분들은 버릴 수밖에 없었고 마스크와 차체비율이 달라지면서 사뭇 다른 차가 되었다. 늘씬하고 스포티하던 녀석이 몇 년 못 보던 새 짜리 몽땅 해졌다. 그런데 바뀐 모습이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이 재창조되면서 훨씬 친근하게 바뀌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컨셉카의 특징들을 이렇게 많이 옮겨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포르테의 것을 그대로 옮겨 단 것 같기만 한 스티어링휠도 실은 컨셉카의 것이 원본이었고, 캡슐형 센터페시아 디자인도 보란 듯이 살아남아 개성 있는 실내를 만든다. 기아가 컨셉카의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신경 썼는지 그 노력과 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쏘울의 검정색 A필러는 컨셉카, 혹은 디자이너의 의도를 살리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쏘울의 외관상 특징 중 하나인 이 번쩍거리는 검정색 A필러는 미니의 그것과도 비교되는 부분으로, 물론 컨셉카에서 그대로 이어받은 부분이다. 그런데, 이 A필러(커버)만 유광 검정 플라스틱일 뿐, 여기서 이어지는 측면의 윈도우 프레임은 일반적인 무광 검정의 테이프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의 의도대로 ‘전투기 조종석 유리(캐노피)’ 같은 느낌을 살리려면 측면의 윈도우 프레임까지 유광 검정으로 처리해야 앞과 옆의 유리창 전부가 하나로 통일된 듯 착시를 주게 된다. 이 공식을 적용한 미니는 A필러와 C필러를 모두 이렇게 처리해(측면 유리는 프레임리스 타입) 사면의 유리가 하나로 이어진 듯 보여짐과 동시에 그 위에 지붕이 떠있는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쏘울이 그러지 못한 것은 물론 원가 절감 때문. 윈도우프레임이 문제가 아니라 A필러 마저도 더 저렴한 방식으로 처리될 뻔 했다는 후문이니 말 다한 셈이다. 아무리 경쟁모델이니 뭐니 해도 차격의 차이는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디자인에 힘을 싣고 싶어도 가격경쟁력까지 포기할 수는 없으니 어쩌겠는가.
계속 얘기하겠지만 이러한 현실과의 타협은 실내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더욱 좋았을 뻔 한’ 차에 대한 아쉬움을 갖게 한다. 심지어 A필러를 보통 차들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거기서 절감된 만큼으로 실내를 좀더 잘 다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 사실 A필러를 포기했어도 쏘울은 충분히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차였을 것 같다. 기껏해야 컨셉카와 달라졌다는 지적밖에 더 받았을까.
포르테의 경우 호랑이 그릴의 형상이 테일램프의 안쪽 그래픽에서도 반복되고 있는데, 쏘울은 헤드램프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헤드램프 안쪽의 그래픽이 컨셉카에서 이어진 것으로, 호랑이 그릴의 데뷔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헤드램프 아랫부분의 깜빡이는 컨셉카에서 공기흡입구 형상이었다. 2005년에 소개된 컨셉카 메사(모하비의 모태)의 영향을 받았던 탓이다. 기아가 쏘울 출시와 함께 런칭한 튜닝 브랜드 ‘튜온(TUON)’의 아이라인을 적용하면 본래의 흡입구 느낌이 좀더 살아나는 편이다.
착시인가 싶어 자꾸만 다시 보게 만드는 ‘전고후저’형의 측면 프로필도 컨셉카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다행히(?) 그 높낮이 차이는 덜해진 듯하다. 흔히 값싼 차의 상징으로 취급 받는 검정색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도어몰딩이나 휀더 깜빡이는 차라리 액센트 역할을 하는 반면, 시승차의 크롬도금 도어 손잡이는 꿔다 놓은 것처럼 눈에 거슬렸다. 그 납작함에서 오는 시각적 허전함뿐 아니라 손으로 당겨 열 때의 느낌도 영 어색하다. 각진 그립형으로 투박한 느낌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또다시 그 놈의 원가 탓이겠거니 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컨셉카와 양산버전의 가장 큰 차이는 SUV의 성격이 희석되고 승용차의 분위기가 강조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불법체류(?) 인기 차량인 닛산 큐브나 토요타 bB(싸이언 xB)와 차별화되는 쏘울만의 특징은 단순히 덩치가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SUV의 성격이 가미되었다는 점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강조하면 해외시장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본다. 현재로서는 앞뒤 가운데 부분에 범퍼가드 (터스크 범퍼)형태의 장식뿐이고 하체를 둘러치는 무광검정색 보호대는 없는데, 그러한 버전이나 액세서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컨셉카는 이 방법으로 배가 무겁게 쳐져 보이는 것을 막고 스포티한 느낌을 주었었다. 물론 쏘울은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한 차량이 아니지만 이러한 처리는 긁힘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 도심생활에서도 관리상의 편안함을 준다. 지상고가 여느 승용차보다 높고 앞뒤 오버행이 짧은 쏘울이니 사파리 분위기를 내는 것 자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TUON이나 패키지에 적용되는 바디킷이 있긴 하지만 쉽게 손상될 것 같은 하이그로시 타입이라 필자가 얘기한 목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쏘울의 휀더는 워낙 볼륨이 강조된 터라 어지간한 크기의 휠을 끼워서는 성에 차지 않을 듯 하다. 기본은 15인치이고 시승차는 16인치를 끼웠는데, 일부 사양에 적용되는 18인치 정도는 끼워주셔야 정상적인 듯한 기분이 들 터이다. 휠이 커질수록 크로스오버 디자인이 돋보이게 되는 것 같긴 한데, 그래 봐야 컨셉카의 그것처럼 꽉 찬 느낌을 살리는 것은 무리. 어쨌든 TUON 옵션인 18인치 플라워 휠의 디자인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쇼카 ‘쏘울 버너’에서 눈도장을 찍었던 그 휠! 막상 장착하고 다니려면 행여나 긁힐세라 꽤 신경 쓰이긴 하겠는데… 사실 상대적으로 토크가 약한 1.6 가솔린 모델에는 18인치 휠이 적용되지 않는다. 출고 후 장착이야 구매자 마음이겠지만 스타일을 위해 다른 부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휠 볼트는 5홀 타입이다.
후면에서는 백팩처럼 디자인된 해치게이트와 투명 커버가 튀어나온 테일램프의 입체감이 돋보인다. TUON의 윙타입 리어스포일러로 더욱 기분을 낼 수도 있다. 시승차에는 후방센서가 달려있었는데, 등급에 따라서는 무려 후방카메라까지 달 수 있다. SOUL이라는 영문로고 옆에 붙은 것이 바로 등급 엠블럼으로, 쏘울은 크게 U, 2U, 4U의 세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2U, 4U는 2륜구동, 4륜구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쏘울은 앞바퀴 굴림방식 뿐이며 4륜구동 방식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 당신 자체인, 당신에게 보내는, 당신을 위한 쏘울을 상징한다. 시승차는 ‘1.6 가솔린 2U 최고급형’이고 자동변속기 옵션만 추가해 1,550만원+125만원, 즉 1,675만원의 몸값이 매겨져 있다.
쏘울은 승차감…아니, 승차 할 때의 느낌이 좋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엉덩이가 수평 이동한다고 하는 정도의 높이보다는 낮은 위치에 시트가 있지만 차체 옆구리가 넓지 않아 조금만 신경 쓰면 다리를 문지르지 않고도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다. 분명 시야는 높은데 껑충한 느낌은 아니라서 승용차 운전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운전자세이다. 다만 필자에게는 풋레스트가 살짝 가깝게 느껴졌다.
스티어링휠은 각도 조절이 되지만 범위가 좁고 거리조절은 되지 않는다. 즉, 다양한 체형의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화장거울에 조명이 없는 것이나 가방걸이가 없는 등 의외로 여성고객에 대한 배려도 미흡하다. (대신 선바이저는 가제트 팔처럼 쭉 늘어난다. )
시트는 옆구리 지지가 제법 괜찮다. 시승차에 달린 직물시트는 등 윗부분에 차명 로고를 새겨놓았는데 어두울 때는 이 부분이 빛을 반사시키는, 이른바 국내최초 ‘라이팅 시트’다. (그런데, 밝을 때 멀리서 보면 언뜻 호피무늬 시트커버를 씌워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닥 매트의 테두리 부분도 반사재질이기는 마찬가지.
운전석 시트 오른쪽에는 접이식 팔걸이가 있으나 동반석에는 없어 동승자가 입을 삐죽거린다. 가운데 팔걸이 역할을 겸하는 뚜껑 달린 중앙 수납함이 없는 탓이다. 10만원이면 추가할 수 있는 ‘최고급’ 인조가죽시트는 신차발표회 때의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사실 조명이 열악했던 신차발표회 때만의 기억으로는 실내 전반의 품질도 많이 부족해 보였다. 시승하면서 다시 살펴본 후의 결론은 ‘그래도 포르테 보다는 낫다’라는 것. 최소한 포르테처럼 억지로 ‘럭셔리’임을 주장하지는 않고 있으니까. 사실 사양목록으로만 보자면 쏘울도 만만치 않다. 요만한 차에 후방카메라와 그 영상이 비춰지는 룸미러가 왠말인가. ECM과 ETCS(하이패스)는 또 어떻고. 헤드레스트는 동승석까지 슬라이딩 조절이 되고 MP3 CDP와 아이팟 단자는 모든 트림에 기본으로 달린다. 계기판도 로체와 포르테가 그토록 자랑했던 3실린더 타입. 아, 구간거리밖에 표시해주지 않는 단순한 액정창이 허무하긴 하다.
전언대로 컨셉카의 특징을 따온 캡슐형 센터페시아는 실내에서 쏘울의 개성이 가장 부각되는 부분이다. 가장 위에 자리잡은 것은 무려 센터스피커! 그 아래로는 위를 향해 열리는 수납함이 있는데 버튼 또한 위로 젖혀야 해서 열기가 어색하다. 시승차처럼 블랙 원톤 내장인 경우에는 수납함과 글로브박스의 속살이 빨간색으로 칠해져 강렬한 느낌을 준다. 다만 안쪽에 완충처리까지는 되어있지 않다.
외곽버튼들을 톱니바퀴 모양으로 배치한 오디오의 헤드유닛은 센터페시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디자인인데다가 실내디자인의 인상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라 전 트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로체와 포르테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던 내비게이션 옵션의 부재가 흠이라면 흠. 좋은 물건이긴 해도 대부분의 고객이 가격부담으로 포기할 터이니 대신 상단 소물함에 거치식을 부착하거나 매립하는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이다.
센터스피커에다 트렁크 오른편에는 서브우퍼까지 달리지만 오디오 성능 자체는 크게 기대할 것이 못 된다. 음악에 따라 박자를 맞춰 빨간 불빛을 깜빡 거리는 라이팅 스피커도 마찬가지. 기분전환용으로야 나쁘지 않겠지만 금새 질리지 않을까. 일본차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던 옵션이 우리나라 차에 달려나오니 신기할 뿐이다. 스티어링 컬럼 오른편의 스위치를 이용해 상시 점등(ON)이나 간헐 점등(MOOD), 음악에 맞춘 점등(MUSIC), 꺼버리기(OFF)가 가능하고 밝기 조절(+/-)도 할 수 있다. 에어컨 조작부는 다이얼 조작 방식의 수동이나, 소형차급처럼 케이블이 직접 걸린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조작감이 좋다.
운전석에 앉아 대시보드만 쳐다보고 있자면 그리 부족한 점은 찾을 수 없다. 불만은 시선을 내려 변속기 주변을 보았을 때, 그리고 앞뒤 좌석의 도어트림을 보았을 때 시작된다. 일단, 도어 암레스트 부근, 즉 팔에 닿는 부분이 직물이나 가죽 대신 플라스틱으로 마감되어있다. 플라스틱 도어트림 자체는 실용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일단 시각적으로 미흡할 뿐 아니라 차량의 나머지 부분들이 뒷받침을 해주지 않는다.
가령 이처럼 젊은 층을 겨냥했던 해외 차량들에서는 물에 젖거나 더럽혀진 레저장비들을 간편히 실을 수 있도록 바닥을 방수 처리한다던가 시트 뒷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마감하는 등 다양한지 배려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쏘울은 그런 점에서 아직 한 수 아래고, 그래서 도어트림의 플라스틱도 설득력을 잃는다.
문 열 때 당기는 손잡이는 원가절감을 위해 다른 차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는 혐의를 두기에 충분할 만큼 따로 노는 형태. 수동모드가 없어 그냥 일자인 시프트게이트 주변은 디자인 과정에서 아예 버림받았던 듯 하고, 아스팔트 껌딱지 같은 열선 스위치도 안쓰럽다. TUON의 인테리어 킷을 장착하면 심심한 도어스커프와 페달을 꾸밀 수 있는데, 시프트게이트 주변을 위한 아이디어도 뭔가 필요해 보인다. 수동변속기라면 차라리 보기엔 나을까?
신차발표회 때 쏘울을 구경하시던 어르신들이 뒤쪽에 골프백을 실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시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오버행이 짧은 만큼 적재공간도 작아 확실히 왜건보다는 해치백에 가깝다. 뒷좌석은 등받이만 접을 수 있고 (즉, 더블 폴딩이 되지 않고) 등받이는 완전히 평편하게 눕혀지지 않는다. 바닥이 이중구조라 중간바닥을 젖히면 칸막이로 나뉜 스티로폼 수납함이 나타나고, 이를 제거하면 적재공간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등받이를 접은 시트와 층이 나누어질 뿐 아니라 떼어낸 칸막이를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도 문제다. 스티로폼 칸막이를 들어내면 임시 스페어타이어와 바닥 철판이 노출되니 버리거나 떼고 다니기도 뭣하겠다.
기존의 국산 소형해치백 중에도 트렁크 바닥이 이중구조이고 뒷좌석은 더블폴딩이 되어 적재공간을 평편하고 넓게 확장할 수 있는 모델이 있는데, 겉보기에 뭔가 있어 보이는 쏘울이 실제로는 그보다 못한 셈이다. 정교한 수납 아이디어로 찬탄을 자아낼 수도 있었던 쏘울은 그저 그런 해치백 수준에 안주해버렸다. 급하게 만든 탓인지, 아니면 다시 한번 원가 문제인지.. (적재공간은 미니도 안 좋다고?)
실내의 나머지 수납공간은 좋은 편이다. 글로브 박스는 2단 구성으로 넓직하고, 센터콘솔에는 뚜껑 없는 바구니 공간과 컵홀더가 있다. 앞뒤 도어 모두에는 도어포켓과 병 수납공간이 있다. 운전석 쪽 천정 모서리에 고정형 손잡이 대신 달린 선글라스 케이스는 열린 상태로 위치가 고정되는 고급형이다.
뒷좌석 거주성은 적재공간보다 만족스럽다. 휠베이스는 i30/아반떼/포르테보다 10cm가 짧지만 착좌위치가 높은 차의 장점을 잘 살린 덕분에 앞 시트까지의 여유가 상당하고 머리공간도 넉넉하다. 등받이 각도가 다소 가파르다는 지적도 있으나 필자의 경우에는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다만 등받이 각도조절은 되지 않으며 가운데 팔걸이와 스키스루, 중간 승객용 헤드레스트가 없다. 센터터널은 꽤 낮은 편이다.
사실 쏘울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시동키와 리모컨이었다. 다른 차보다 못할 것은 없지만 나은 점도 없어서다. 스마트키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쏘울에 어울리는 디자인 센스를 발휘해 주었기를 바랬는데 역시나 그것도 돈이 많이 드나 보다. 시커먼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성의 없는 시동키를 쥐고 예쁜 쏘울에게 다가가자니 손이 민망해진다. 키홀 조명은 당연히 없고, 시동키를 꽂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위치에는 라이팅 스피커 조절 스위치가 달려있다. 달리다 차가 흔들리면 리모컨 뭉치와 스티어링컬럼의 플라스틱이 누가 더 단단한지를 놓고 요란한 싸움을 벌인다.
운전석에 앉으면 여느 승용차들에 비해 가파르게 느껴지는 A필러나 옆 창을 열었을 때 보이는 각진 유리 모서리가 색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창문은 네 개 중에 운전석을 내릴 때만 원터치로 작동하는데 선루프는 여닫을 때가 모두 원터치다. 쏘울이야 말로 캔버스탑 방식의 선루프(쏘울 서처에도 적용됐었다)가 제대로 어울릴만한 차가 아닌가 싶은데 순정 옵션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고 사제 옵션을 단 차라도 종종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포르테의 것과 동일하게 생긴 스티어링휠은 아래쪽 스포크 부분만 유광 검정 대신 메탈룩 플라스틱으로 바꿔놓았는데, 차에 딱 맞는 사이즈라는 느낌과 함께 손에 착 붙는 파지감이 흐뭇하다. 여성고객을 겨냥해 아주 가볍게 세팅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저속에서의 조향감은 의외로 적당한 무게가 느껴지는 편. 그러면서도 회전반경이 짧고 조향에 대한 반응이 몹시 경쾌해 시내주행이 즐겁다.
주행 성능도 기대이상이다. 사실 필자는 같은 감마엔진+4단 AT의 구성인 i30의 달리기 실력에 크게 실망한 경험이 있어 –아반떼와 포르테가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쏘울에서는 1.6 디젤이 필요충분 조건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쏘울이 i30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넘겨짚었던 탓도 있고, 디젤 엔진 미장착이 판매실패에 치명적 영향을 끼쳤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비운의 닮은꼴 모델 - 현대 라비타에 대한 추억도 한몫을 했다. 나중에 확인해보고 나서야 쏘울(1,190kg)이 i30(1,247kg)보다 가볍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보다도 실제 주행시 나가는 느낌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기껏해야 두 명씩 승차하고 이렇다 할 짐 없이 돌아다닌 것이 전부이긴 했지만 다양한 도로조건을 겪어본 결과 힘 부족은 느낄 일이 없었다. 한국인 성깔에 맞게 세팅한 탓에 초기 반응이 시원시원하고 가속도 급격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편이다. 풀가속시 자동변속 시점은 6,000rpm 부근으로, 50km/h와 100km/h, 그리고 160km/h 직전에 시프트업이 이루어진다. 160은 4단으로의 변속이 이루어진 직후 속도계가 거의 멎다시피 하는 사실상의 최고속도다.
100km/h 항속시의 엔진회전수는 2,700rpm 정도로 어쩔 수 없이 높은 편. 변속기에 수동조작(+/-) 기능이 없어 적극적인 주행을 하려면 손잡이에 달린 오버드라이브 버튼과 D-2-L로 나뉜 시프트레인지를 이용해야 하지만 내리막에서 엔진 브레이크를 걸 때 외에는 굳이 이를 조작할 필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난한 성능이었다.
쏘울에 얹힌 1.6 가솔린 엔진의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124마력과 15.9kgm로 포르테의 것과 동일하다. (아반떼와 i30 역시 쏘울 출시 이후 2009년형 모델이 나오면서 기아버전과 동일한 스펙으로 업그레이드된 엔진을 갖게 되었다.) 시승여건상 연비실측은 해볼 수 없었지만 공인연비는 13.8km/L, 2등급으로 i30, 아반떼와 동일하고 14.1km/L인 포르테에는 뒤진다. (포르테의 공차중량은 1,187kg으로 쏘울과 거의 같다.) 시승팀에서는 수동변속기로 조건을 한정한다면 더 작은 엔진을 올려도 좋겠다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물론 국내실정에서는 요원한 얘기.
만족스러운 구동계의 성능과 달리 소음과 진동의 처리 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시승차는 일단 시동을 걸 때부터 여느 차와는 다른 날카로운 소리를 냈는데, 주위환경에 따라서는 운전자나 주변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도 만들 만큼의 소음이었다. 일단 시동이 걸리고 나서 궁금해지는 것은 ‘가솔린인데 왜 디젤 소리가 나지?’라는 것. 수입차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왕왕 있고 특히 미니가 그런 편인데, 아닌게 아니라 보닛을 열어보면 미니와 마찬가지로 후드 인슐레이션 패드가 안 붙어 있다. 가격표를 보니 엔진커버와 인슐레이션 패드는 디젤 모델에만 적용된단다. 그 정도야 부품만 사다 끼워도 그만이긴 한데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그리 쉽게 잡힐 것 같지는 않다.
공회전 소음이야 열을 받고 나면 잦아들어 정숙해지니 디젤 같다는 얘기는 과장 섞인 표현이었다고 접어둘 수 있지만 시승차는 주행 중 2~3,000rpm 정도의 실용영역에서도 수시로 거친 소음과 진동이 발생해 결함차를 잘못 받아온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엔진 회전수를 많이 높였을 때 소음과 진동이 심해지는 것이라면 이 차급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기어 단수나 속도에 관계없이 가속페달을 살짝 밟았다 뗐다 하는 조작에서도 바닥과 페달을 타고 들어오는 불쾌한 진동과 소음은 소형차에서조차 겪어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일단은 출고 즉시 혹사당하는 시승차만의 문제이거나 뽑기가 잘못됐던 것이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이런 부분에 민감한 소비자라면 사전 시승 등으로 궁합을 미리 알아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소음과 진동은 하체 쪽에서도, 특히 반복되는 잔요철 통과 시에 두드러진다. 출렁출렁하는 세팅을 기대했다면 다소 단단하게 여겨질 수 있는 서스펜션이고, 특히 뒷자리에서는 통통 튄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준중형급만큼 점잖지는 못한 대신 높은 차의 불안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기특하다. (그 왜, ‘경쟁모델’인 미니도 승차감은 만만치 않다잖는가?) 반복되는 코너를 돌아나가는 실력도 제법이다. 쏘울로 중고속 와인딩을 달려본 시승팀은 기대이상으로 잘 달린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높다란 차의 그것보다는 확실히 승용차 수준에 가깝다.
쏘울의 엔진은 후드를 열어놓고 몇 발자국만 떨어져서 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게 위치해 있다. 후드에 강조된 파워돔이 무색할 정도로 낮게…마치 누군가 엔진을 훔쳐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엔진을 낮췄다기 보다는 본래의 플랫폼 상에서 엔진을 원위치에 두고 차체만 높였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만 껑충해 보이는 외관에 비해서는 저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산을 낀 와인딩 코스를 달렸던 시승팀으로부터는 제동성능이 좋으나 페이드가 금새 찾아온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필자가 평지에서 반복적으로 고속 급제동을 실시해본 결과로는 그러한 점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급제동시의 반응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쏘울에서는 시승차와 같은 ABS + 후륜 드럼 브레이크가 기본구성이고 VDC와 후륜 디스크 브레이크는 모델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시승차의 타이어는 넥센 클라세 프리미에르 CP662이고 205/55R16사이즈를 끼우고 있었다.
내놓으라 하는 국내외 시승차들을 많이도 끌고 다녀봤지만 쏘울만큼 나이를 초월한 뭍 여성들의 관심을 끈 차는 없었지 싶다. 신차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이루어진 시점에서의 시승이라는 점과 시승차가 하필(?) 빨간색이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스스럼없이 다가와 호감을 표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는 ‘쉽게 내 것이 될 수도 있는 예쁜 차’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면에서 보자면 미니의 직접적인 경쟁모델은 아닐지라도 ‘꿩 대신 닭’으로서는 나름 유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니만큼의 운전재미나 브랜드에 대한 만족감은 느낄 수 없더라도 최소한 편리함이나 넉넉함 면에서는 훨씬 유리할 테니 말이다.
그와 달리 필자 주변에는 쏘울이 쉽게 질릴 것 같은 디자인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좀더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간편한 다용도 도구로서의 느낌을 강조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맘대로 해석해본다. 그런데 기아는 ‘A soul has no color’라는 문구를 통해 쏘울이 바로 그런 소재로서의 차이고 여기에 색을 입히는 것은 소비자의 몫임을 강조하고 있다. 양쪽의 시각 중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어렵다. 현시점에서 보자면 쏘울은 기본형으로 사서 간편하게 타도 좋을 차고, 개성을 한껏 발휘해 자신만의 멋을 부리기에도 좋을 차다. 꾸며보고는 싶은데 귀찮다면 메이커에서 머리를 짜내 패키지까지 구성해놓은 TUON 브랜드를 이용하면 된다.
비록 실내 구성에서는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고 구동계나 NVH의 세련미에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 할 수 있었지만 쏘울 같은 독특한 차가 우리나라에서 나왔다는 데 대한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좋은 평가와 인기를 얻어 한국차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재정립해주길 기대해본다.
(이 시승기는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을 수 있었던 ‘도미쏘울~’ CM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작성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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