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현대 기아차는 이제 엔진 기술면에서 부분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바짝 쫓아가고 있고,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개발하는 실력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최첨단 신기술 도입에도 무척 적극적이다. 하지만 원천적인 신기술 개발은 아직 힘든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등장한 i30에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플렉스 스티어’라는 기능이 국내 최초로 적용되었다. ‘네버 엔딩 아이디어’라는 표어를 내걸고 등장한 i30인 만큼 카다로그에 가장 먼저 플렉스 스티어가 소개되었으며, 시승 행사에서도 플렉스 스티어 체험에 초점을 맞출 정도로 현대차에서는 이 기술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집중 조명하고 있는 눈치다. 카다로그에는 ‘도심을 주행하거나 주차를 할 때, 그리고 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해야 할 때마다 핸들링이 다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 그 아이디어가 더해져 i30만의 특별한 아이템 플렉스 스티어가 탄생했다.’고 쓰여 있다.
‘그 아이디어’는 참 좋은 아이디어다. 저속에서는 스티어링이 가벼워야 힘이 덜 들고 편하지만, 고속에서는 스티어링이 가벼우면 안정성이 떨어지므로 반대로 무거워야 정교하고 안정된 주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디어’가 이미 오래된 아이디어이며, 그 아이디어에서 ‘속도 감응형 스티어링 휠’이라는 기술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속도 감응형 스티어링 휠은 저속에서는 작은 힘으로 가볍게 스티어링 휠을 돌릴 수 있도록 해주고, 고속으로 달릴 때는 자동으로 스티어링 휠이 무거워져서 힘을 주면서 정교하게 조향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시스템이다. 이미 많은 차들에 이 시스템이 적용되어 고속 주행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현대차 모델에도 많이 적용되어 있다. 하지만 그 동안 현대 차들은 이 시스템을 장착하고도 고속에서 충분히 무거워지지 않아 안정적이고 정교한 핸들링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인지 이제 와서 스티어링 답력을 스포츠, 노멀, 컴포트의 3단계로 변환시키는 기능을 개발했단다. 그것도 운전자가 운전 중에 스티어링 휠 좌측 하단에 있는 조그만 버튼을 눌러서 그 때마다 바꿔줘야 한다. 이미 상황에 따라서 자동으로 변환이 되는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수동으로 변환하는 기능을 만든 것은 넌센스다. 단지 그 동안 고속에서 충분히 무거워지지 않았던 속도 감응형 스티어링 휠의 세팅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만 하면 그것이 훨씬 더 편하고 좋은 시스템인데 말이다.
이것은 자동 변속기에 수동 변속 모드를 더 하는 것과는 다르다. 만약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스티어링 답력을 강하게 혹은 약하게 고정하는 것이 필요해서 만든 기능이라면 정교하게 작동하는 ‘오토’를 기본으로, 컴포트와 스포츠를 더해야 하는데, 플렉스 스티어는 그렇지 않다. 그냥 강, 중, 약의 3단계 변환이 있을 뿐이다.
실제 시승에서 체험해 보니 스포츠 모드에서의 스티어링 답력이 기존 i30와 비슷한 정도였고, 노멀과 컴포트는 단계적으로 약해지면서, 컴포트에서는 위화감이 생길 정도로 가벼워졌다. 또한 스포츠 모드에서는 답력이 강해지면서 유격도 줄어들어야 응답성이 높아지는데 유격은 그대로여서 또 다른 아쉬움도 남는다.
무엇보다 주행 중에 버튼을 찾아서 누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렇게 지적하면 다음 번에는 버튼을 스티어링 휠에 옮기는 것으로 개선했다고 말할 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대응이다.
속도 감응형 스티어링 휠에서 저속과 고속 주행 시의 답력을 충분히 차이 나게 세팅만 하면 그것으로 모든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는데, 국산차 중 최고의 핸들링 실력을 가진 i30에 수동으로 선택하는 플렉스 스티어를 만들어 단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최첨단 기능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서 가볍거나 무거운 핸들링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올바른 자동차 문화를 선도해야 하는 메이커측에서 단순히 새로운 기능을 하나 선보였다는 타이틀 보다는어떻게 하면 운전자가 좀 더 편리하고 안전한 주행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저속에서도 무거운 것이 유리한 아주 특별한 상황도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슬라럼을 할 경우에는 속도가 높지 않지만 정교한 핸들링이 필요하므로 무거운 스티어링이 유리하다. 하지만 만약 메이커에서 이런 경우까지 고려해서 개발한 것이라면 스포츠 모드에서 답력만 무거워지는데 그치지 않고 유격도 줄여야 한다. 하지만 i30의 플렉스 스티어의 경우 유격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한가지 대안을 제시한다면 플렉스 스티어를 i30가 아닌 쏘나타에 적용해 주기를 바란다. i30는 기존의 스티어링 답력이 충분히 i30의 차 성격에 잘 맞았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좋아했었다. 반면 쏘나타는 고속에서 지나치게 가벼운 경향이 있으므로, 그나마 플렉스 스티어라도 장착한다면 고속 주행이 긴 여행에서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속도 감응형 스티어링 휠의 고속 부분 세팅을 충분히 무겁게 바꿔주는 것이 더 좋은 해결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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