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발행일자 | 2012.05.14 17:45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파스텔 톤의 화사한 색상이 눈에 띄는 기아 레이는, 우선 모양부터 시선을 확 끌어당긴다. 많은 비교질을 당했던 ‘원조 박스카’ 닛산 큐브 못지 않게 귀여운 모습으로 많은 여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레이지만, 사실 쿠페를 좋아하는 필자의 눈에는 레이의 박스카 스타일이 눈에 차지 않았다.

시승을 위해 레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큰 키에 약간 당황을 했다. 여성 운전자라면 한번쯤은 느껴봤을, 타고 내릴 때 불편해서 머뭇거리게 되는 SUV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레이의 운전석 높이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혹시 치마를 입었다면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외형과 운전석을 둘러 본 첫 느낌은 ‘경차 같지 않게 크다’는 것. 뒤따라 든 생각은 ‘이런 큰 차(?)를 1000cc의 엔진 힘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였다. 이번에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외관은 정말 네모난 모습을 하고 있다. 모서리를 살짝 부드럽게 다듬은 주사위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게 밉지 않다. 스폰지로 만든 주사위처럼, 또는 풍선 껌처럼 귀엽기만 하다. 정면에서 본 전조등과 라디에이터 그릴은 입을 활짝 벌려 웃고 있는 ‘갓 태어난 망아지’ 같다.

운전석 쪽 뒷좌석 문은 일반 승용차와 같은데, 반대편 문은 옆으로 미는 슬라이딩 도어이다. 새 차라서 그런지, 슬라이딩 도어는 다소 뻑뻑하고 무거웠다. 여성이라면 힘을 좀 써야겠고, 어린이가 혼자 열기엔 버거울 것 같다.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뒷좌석에 앉아보니 의자 높이가 비교적 낮아 키 작은 아이들이 앉기엔 좋을 듯 한데, 성인 기준으로는 무릎이 많이 세워져 어색하고 세 명이 앉기엔 좌우 폭이 많이 좁다. 가운데 자리의 안전띠는 천장에 매달리는 3점식 벨트로 되어 있는데, 목을 스치기 때문에 불편하다.

하지만, 뒷좌석은 시트 위치를 앞뒤로 조절할 수 있고, 등받이 각도도 약간 조절할 수 있으며, 시트 열선과 에어컨 송풍구까지 갖추어 탑승자에게 많은 배려를 한 모습이다. 뒷좌석을 뒤로 끝까지 밀면 공간이 무척 넓어져 아이들이 뛰어 놀아도 될 것 같다. 대신 짐칸이 좁아져서 라면박스 하나도 놓을 수 없게 된다.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차 높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듯한 인상의 넓은 창은 뒷좌석 승객에게 시원한 바깥 풍경을 선사하지만, 운전석에서는 그로 인해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이 운전을 방해한다.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붙어 있는 햇빛가리개는 기껏 펼쳐도 고목나무의 매미 마냥 큰 창을 가리기에는 역부족.

지나가는 차와 행인들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져 화장하지 않은 민 낯으로 차를 타고 다니기에는 민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높은 시트포지션과 가리는 것 없는 넓은 창, 커다란 사이드 미러, 시야를 가리지 않는 A필러(앞 기둥)는 초보운전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경차지만 사양은 참 좋다. 스마트 키와 시동버튼이 있어 편리하고, 화면이 넓은 내비게이션은 조작이 간편하다. AUX, USB 포트가 있을 뿐 아니라 블루투스 기능으로 휴대폰이나 외부기기의 음악을 무선으로 들을 수도 있다. 에어컨 조작버튼도 간결하고 작동이 쉽다. 시트와 운전대 히팅 기능은 추위를 많이 타는 여성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들이다.

수납공간도 다양하고 많다. 앞좌석 양쪽 문에 음료수병을 넣을 수 있고, 센터콘솔과 뒷좌석 문 쪽에도 컵 홀더가 마련되어 있다. 동반석 앞쪽엔 대시보드와 사물함 사이에 간단히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수납칸이 길쭉하게 자리해 있고, 운전석 머리 위로는 CD 파우치 등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핸드백은 뒷좌석에 놓더라도, 지갑 등을 앞좌석 주위에 보관하기가 꽤 좋다.

레이의 주요 고객층인 젊은 여성의 입장에서 대형 마트 장보기 미션을 수행해 보기로 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 버튼을 누르니 경쾌한 엔진 소리가 들린다. 시트포지션을 조절하려고 보니 운전대와 페달, 시트의 적정 거리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운전대도 앞뒤 거리조절이 되면 더 편한 자세가 나올텐데 아쉽다. 주차브레이크는 발로 밟는 방식이라 센터콘솔의 공간이 넓어지긴 했지만, 페달이 왼쪽 발목에 자꾸 걸린다.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변속기 레버는 운전대 오른쪽에 에어컨 조작부와 같은 높이에 있다. 이 때문에 에어컨 조작부가 약간 어색한 자리에 놓이긴 했지만 나름 귀여운 모습을 하게 되었다. 변속 레버가 위쪽에 있다 보니 오른손을 둘 위치가 마땅치 않다. 시트에 붙은 팔걸이를 내려 오른팔을 얹어봐도 어깨가 쑥 올라가는 탓에 편안한 맛이 없다.

드디어 기어를 “D”로 바꾸고 출발!

높고 탁 트인 시야 덕분에 마치 가마를 타고 어가행렬을 하는 상감마마가 된 기분이었다. 다른 차들의 주목을 받는 느낌을 조금은 즐길 수 있었다. 운전을 시작하니 계기판의 ‘ECO’ 램프가 눈에 들어온다. 연비를 나타내는 숫자와 연비 게이지 눈금도 눈에 들어온다. 가속 페달을 밟을수록 연비가 떨어지는 것이 보이니, 페달에 힘을 가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특수(?) 장치다. 은근, 연비왕에 도전하고픈 승부욕도 발동한다.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마트 가는데 급할 거 뭐 있나. 천천히 가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차선을 변경하면서 교통 흐름에 속도를 맞추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았더니 반응이 너무나 느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뒤 따르는 차들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가속 페달만 깊게 밟기 보다는 변속 레버 ‘D’옆의 ‘+/-‘를 이용하면 좀 낫다.

브레이크는 초반에 강한 편이라 살살 밟아줘야 한다. 약간 높은듯한 브레이크 페달을 처음부터 강하게 밟았다가는 뒷좌석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바닥으로 뒹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뒷좌석 어린이들도 항상 유아용 시트나 안전벨트로 지켜주어야 하겠지만.

대형마트 주차장에 레이를 세우고 한 가득 장을 본 뒤 돌아오니, 차가 눈에 잘 띄어 찾기도 쉬웠다. 트렁크에 짐을 실을 요량이라면 일부러 전면주차를 해두는 것이 좋다. 트렁크 문이 유난히 크게 열리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많이 필요해서다. 공간이 좁을 때는 슬라이딩 도어를 열어 짐을 실으면 한결 수월하다.

장보기 미션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처음 레이를 접했을 때의 어색함은 사라져 버렸다. ‘ECO’ 모드에 적응해 안전운전(?)이 몸에 배어 버렸고, 아기자기한 실내와 외부의 시선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기아 모닝의 작고 탄탄한 외형과 모던한 실내가 남성들을 위한 것이라면, 귀엽고 동글동글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레이는 확실히 여성을 위한 것이다.

레이를 타면, 여성이라서 또는 초보라서 무시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들이 알아서 피해가는 센스를 보여줄 것 같다. 하루 동안 함께 해보니, 경차라고 우습게 봤던 선입견은 어느새 사라지고 더 예쁘게 꾸며 타고 싶어지는 그런 차였다.

글·사진/김진아 (RPM9.COM 에디터)

“레이야 마트가자~” 작지만 큰, 기아 레이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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