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문영’ 말하지 않는 연기, 말없이 표현하는 연기

발행일자 | 2017.01.09 00:34

김소연 감독의 ‘문영’에서 카메라에 사람들의 얼굴을 담는 말 없는 소녀 문영(김태리 분)은 울며 연인 혁철(박정식 분)과 헤어지는 희수(정현 분)을 몰래 찍다가 들킨다. 집에는 술주정하는 아버지(박완규 분)만 있고, 학교에서도 혼자였던 문영의 곁으로 희수가 들어온다.

‘문영’은 김소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김태리의 장편 주연 데뷔작이다. 김태리는 이후 ‘아가씨’의 숙희 역으로 상업 장편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대선배들 앞에서의 안정적인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았는데, ‘문영’은 김태리의 연기에 더욱 초점을 맞춰 관람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 말하지 않은 연기는 쉬울 수 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연기로 표현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영’에서 김태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연기든 쉬운 연기는 있을 수 없겠지만, 말을 하지 않는 연기는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고 표현하는 연기는 절대 쉬운 연기가 아니다.

언어, 그중에서도 음성언어인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뉘앙스와 정서의 전달과 교감, 소통에도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표정과 몸짓으로, 그리고 움직임의 뉘앙스로 표현해야 하는데, 이는 마임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관객과 행위자 모두 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해 말 이외의 동작으로 소통하기로 서로 약속한 마임과는 달리, 영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는데 본인만 말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 없이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김태리를 단편영화 ‘누구인가’에서 태리 역을 맡았을 때 처음 봤는데, 연극과 영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김태리는 연극적인 연기와 영화적인 연기를 모두 자연스럽게 소화했고, 그때도 아직 장편에서 얼굴을 알리지 않은 신인배우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김태리는 ‘아가씨’에서 거장 감독과 대선배 배우들을 만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문영’에서 말 없는 역을 맡은 이유는 아직 신인이기에 딕션이 적은 역할이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영’을 직접 관람하면 김태리는 관록이 있는 배우 이상으로 표정과 움직임을 통한 몰입한 연기를 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영’을 관람하기로 결정했다면, ‘아가씨’로 뜬 김태리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처음 본 배우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기를 권한다.

‘문영’은 뜬 배우가 뜨기 전에 촬영한 작품이기에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김태리의 연기 자체가 당시부터 훌륭했기 때문에 봐야하는 작품이다. 연기를 잘한다는 선입견 없이 볼 때 김태리 연기의 디테일을 ‘문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 김태리를 바라보는 카메라, 김태리가 바라보는 카메라

‘문영’은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카메라가 나온다. 김태리를 바라보는 카메라와 김태리가 바라보는 카메라. 세상이 김태리를 바라보는 시선과 김태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직접 보는 세상과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세상도 차이가 있다. 김태리가 카메라에 세상을 담는 것은 예술적인 이유도 아니고, 단지 세상에 대한 관찰도 아니다. 헤어진 엄마가 카메라에 담길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인데,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설령 엄마의 모습을 찍었더라도 엄마인지 확인할 수도, 확인했다 치더라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네 살 때 집 나간 엄마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카메라를 찍는 김태리에 대해 소용없는 일에 집착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3자의 시야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김태리가 맡은 문영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일 수 있다.

김태리가 찍는 영상과 김태리를 찍는 영상 모두 초근접 촬영이 꽤 있다. 초근접 촬영은 배우의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일이고, 흔들리는 핸드 카메라의 초근접 촬영은 영상 품질면에서 볼 때 감독에게 부담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 정현과 김태리, 두 여배우의 케미

‘문영’에서 정현과 김태리의 케미, 연기 시너지는 돋보인다. 말을 못하는 김태리와 말이 많은 정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공감해가는 과정과 이유는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여배우와의 케미로 돋보인 김태리는, 여배우와의 케미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와도 케미를 만드는 연기력을 후에 증명해야 한다. 아직 신인이기에 이미지의 고정으로 배역이 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소연 감독은 문영에 대해 작은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큰 상처를 만드는 캐릭터라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문영은 상처를 받았지만 당하고만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희수 또한 상처가 있지만 당하고만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기에 문영과 희수의 케미는 매력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 스틸사진.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문영’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서로의 이야기를 보여주기를 통해 공감하게 만든다. 영화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가 가진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 리얼리티 프로그램 같은 느낌도 이런 톤에 잘 어울린다.

‘문영’에서 김태리가 울분을 표현하는 방법은 인상적이다. 한 5년쯤 후에 말을 하지 않는 역을 김태리가 다시 한 번 맡았으면 좋겠다. 대사를 빼고도 매력적인 그녀의 연기가 5년을 무르익으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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