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전기차를 처음 만든 것은 무려 26년 전의 일이다. 쏘나타(코드네임 Y2)를 바탕으로 시험 개발한 쏘나타 전기차는 최고속도 60㎞/h, 1회 충전 주행거리 70㎞의 성능을 지녔다. 당시 언론은 흥분했다. 2000년대 초가 되면 전기차를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차가 거리를 지배한다는 예측도 나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전기차가 보급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우리 생활에 가깝게 다가오지는 못한 느낌이다. 전기 충전 인프라 구축에 많은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고 있고, 이는 완성차 업체 한 곳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카를로스 곤 회장도 한 때 전기차 시장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가 자신의 오판을 뒤늦게 인정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하이브리드카다. 국내에서도 현대차가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에 이어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2012년에 내놓으면서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이브리드의 선구자인 토요타는 렉서스 ES300h를 2012년에 국내에 출시하면서 판을 함께 키웠다.
렉서스 ES300h는 독일차가 장악한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돋보이는 존재였다. 출시 직후는 물론이고 올해도 국내 판매 수입차 단일 모델 톱10 안에 꾸준히 드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쏘나타 하이브리드 외에도 그랜저(HG) 하이브리드, 기아 K5 하이브리드, K7 하이브리드로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각 차종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반면 ES300h는 렉서스 전체 판매의 절반이 넘는다. 상징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현대차는 최근 진행한 신형 그랜저(IG) 하이브리드 시승회에서 렉서스 ES300h와의 비교에 초점을 맞췄다. 차체 크기나 성능, 가격대에서 비교 대상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외관 크기부터 비슷하다. 차체 길이의 경우 그랜저는 4930㎜, ES300h는 4900㎜이고, 휠베이스(앞뒤 축간 거리)는 그랜저가 2845㎜, ES300h가 2820㎜다.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뭔가 오래 전부터 기획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파워트레인도 비슷하다. 그랜저는 2359㏄ 159마력 가솔린 엔진에 구형보다 3㎾높아진 38㎾(약 51마력) 모터를 조합했는데, ES300h는 2494㏄ 158마력 엔진에 143마력의 모터를 장착했다. 단,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독자적인 직병렬 방식이어서 총 출력은 203마력이 나온다.
초반 가속은 하이브리드카답게 매우 부드럽고, 모터 출력을 높인 덕에 가속 때의 파워도 한결 시원해졌다. ES300h와 달리 전기 주행모드를 임의로 선택할 수는 없다. 대신 구형의 배터리 용량 1.43㎾h를 1.76㎾h로 늘리고 배터리 충방전 효율을 개선해 모터로만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늘렸다.
모터와 배터리의 성능이 향상되면 엔진을 가동할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당연히 연비가 좋아진다. 현대차 측 자료에 의하면 17인치 휠에 복합모드 기준으로 8.1%가 향상됐다. 인증 연비는 리터당 16.2㎞로 ES300h의 16.4㎞보다 살짝 떨어지지만, 이 정도는 운전자의 습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오차 범위’ 이내다.
김영란법 이후 시승회 초대 인원은 늘어난 대신 평소 시승기회는 줄어든 탓에 이 연비를 상세히 체크할 방법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형 그랜저 하이브리드에 비해 연비와 파워가 향상된 건 분명해 보인다.
드라이브 모드는 두 차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랜저는 변속기 뒤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순차적으로 바뀌는 방식이고, ES300h는 변속기 앞에 있는 다이얼을 돌려 바꾸는 방식이다. ES300h의 방식이 좀 더 직관적일뿐더러 클러스터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인지하기도 쉽다. 그랜저의 클러스터에도 변화가 감지되는 기능을 더하면 좋을 듯하다.
그랜저의 트렁크 용량은 구형의 410ℓ보다 늘어난 426ℓ다. 현대차는 여기에 골프백 4개, 보스턴백 2개를 실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현대차 측정 기준으로 ES300h는 골프백 3개, 보스턴백 3개 수납된다고 한다. 그러나 렉서스 측 자료에는 골프백 4개 수납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두 차의 트렁크 용량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트렁크(380ℓ)보다는 확실히 크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세제 혜택 전 가격은 3630만원(프리미엄)부터 4113만원(익스클루시브 스페셜)까지다. 최고급형에 풀 옵션을 갖추면 가격은 4743만원이 된다. 개별소비세 및 교육세 감면 후 가격은 3540만~3970만원이므로 여기에 옵션 적용에 따라 풀 옵션 가격도 달라진다.
렉서스 ES300h의 가격은 5270만~6470만원인데,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달리 세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2015년 법률 개정으로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97g 이하인 차만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ES300h는 103g/㎞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97g/㎞로 간신히 법규 안에 턱걸이했다.
현대차는 그룹 차원에서 다양한 친환경차를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친환경차로 밀고 있는 아이오닉의 경우 하이브리드,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모두 더한 실적이 전년 대비 28.4%가 감소했다.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만 보면 무려 70.7%나 줄었다. 아이오닉뿐 아니라 쏘나타 하이브리드도 감소 추세다.
신형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기대주다. 디젤차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고 유럽산 하이브리드카는 몇 종류 없기 때문에 시장 여건은 좋은 편이다. 신형 그랜저는 가격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다시 회복해 나갈 것이다. 다만 렉서스의 꼼꼼한 품질과 내구성을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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