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드라마] 배우 차재이의 되새김질: 웹드라마 ‘낫베이직’ 제2화 ‘틴덜미’

발행일자 | 2018.04.11 17:00

(편집자 주) 본지는 웹드라마 <낫베이직>에서 방잔수 역으로 출연하는 차재이 배우가 직접 쓴 리뷰를 게재합니다. 드라마 속 배우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김남매 제작/연출, 곽유미 촬영, 네이버TV의 웹드라마 <낫베이직> 제2화는 ‘틴덜미’입니다.

<낫베이직>은 하나의 큰 드라마를 구성해 그 스토리라인을 쫓기보다 인물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시각에서 특정 상황을 바라보는 시트콤(situational comedy)이다.

이번 편은 제1화에서 몰리(애슐란 준 분)와 묘한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방잔수(차재이 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잔수는 상당히 날카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제1화에서는 그녀의 공격적 성향의 원인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번 화의 촬영이 인물을 맡은 배우로써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촬영 전에 연습을 입이 부르트도록 해야만 비로소 잠이 오는 강박증 덕에 막상 현장에 가면 긴장하지 않는 편인데, 유독 제2화를 촬영할 때는 현장에서도 부담감이 심했다.

유동인구가 많고 소리가 울리는 건물에서 촬영을 해야 했던 지라 대사가 정확해도 잡음으로 나는 오디오 NG가 이날따라 유난히 많이 났다. 통유리로 된 창문들 탓에 카메라에 반사되지 않으려 스텝들은 컷이 바뀔 때마다 더욱 구석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 난 제목이 괜스레 미웠다. ‘덜미’를 잡힌 기분이랄까. 집중도가 흩어지지 않으려 몇 시간 내내 애를 써야 하는 상황 속에서 비로소 나는 잔수의 속마음을 만났다. 끊임없이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부족한 여자 잔수. 발가락이 쉴 새 없이 꼼지락대던 긴장감 아래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 칼과 방패

제1화에서 모이(요미 분)는 잔수를 “스라소니 같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공격적인 말투와 까칠한 성격이 잔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남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고 체제에 구속받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본인이 만든 질서에는 남들이 따라줘야 직성이 풀린다. 이기적이며 욕심 많고 대찬 커리어 우먼 방잔수. 명품 옷만 걸치지 않았을 뿐, 잔수는 패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까다로운 편집장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따지고 보면 잔수의 ‘앵커룸 27’ 내(內) 입지는 보이는 것보다 그리 굳건하지 않다. 그녀의 직업은 ‘아나운서’. 뉴스를 받으면 ‘그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시청자들한테 전달하는 게 그녀의 주된 업무다.

그러나 잔수는 여느 아나운서와는 다르다. 보도자료가 무엇이 나왔는지, 왜 ‘고추아가씨’ 행사는 또 하는지, 팀원들의 회의 집중도가 어떤지 매사에 참견하며 마치 ‘앵커룸 27’의 분위기를 총괄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팀장 및 팀원들도 딱히 이런 그녀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기분이 상할까 뭔가 잘못한 게 있었나 눈치를 보는 동료들의 모습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직장 내의 모습과는 상당히 역설적으로 그려진다.

‘낫베이직’ 한강(임봉 역),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낫베이직’ 한강(임봉 역),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위와 같이 날카로운 잔수의 모습은 <낫베이직>의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평면적’으로 보였었다. 중간중간 인서트 형식으로 삽입된 속마음 인터뷰에서 살짝 엉뚱한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컷은 넘어가고 그녀는 다시금 ‘파이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제1화까지 일차원적이었던 잔수의 모습은 제2화가 되자 입체성을 가진다. 제2화는 그녀의 날카로움을 정당화하며, <낫베이직>에서 앞으로 보일 잔수의 모습이 미워 보이지만은 않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날카로움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잔수도 여느 여자와 다르지 않다. 설레는 사랑을 꿈꾸고 유행에 뒤처지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소녀 감성을 그녀도 가지고 있다. ‘데이팅 앱’을 다운로드해 몽지(조주리 분)와 소소하게 수다를 떨며 이성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동창이 앱에 등장했을 때에 상당히 수줍어한다. 동창과 만나는 것에 설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여성성을 어필하려고 노력하며 그녀의 마음이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에는 크게 실망한다.

‘낫베이직’ 조주리(몽지 역),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낫베이직’ 조주리(몽지 역),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흥미로운 점은 잔수가 끊임없이 본인의 여성성과 부드러운 면을 감추고자 한다는 것. 데이팅 앱을 다운로드해 사용하는 것에 대해 괜한 이유들을 갖다 붙이고, 동창 방혁방(김번영 분)을 만나 데이트 아닌 데이트하는 것을 문자매에게 비밀로 해 달라 부탁한다.

이후 임봉(한강 분)에 대한 호감이 생겼음이 분명하지만 그 마음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에피소드의 마지막이 가까워서야 임봉에 대한 관심을 조금 드러내지만 이내 “아직 둘만 만나는 건 무리”라며 이내 방어벽을 세운다.

‘낫베이직’ 애슐란 준(문몰리 역),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낫베이직’ 애슐란 준(문몰리 역),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잔수는 설정상 외모적으로나 능력적으로 모자라는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솔직함에 대한 방어적 태도가 어디서 왔는가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때문에 배우로써, 같은 또래의 여자로서 ‘내’ 입장에서 그녀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했다. 나는 언제 방어적이 되는가. 종종 나오는 공격적인 행동은 무엇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어야만 하는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잔수의 마음뿐이다. 잔수는 욕심이 많은 여자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욕심만큼 공전과 자전을 반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무언가를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인정’이 어떠한 현상에 대한 ‘동의’가 되어 이제까지 내가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막연한 두려움. 앞에 놓인 진실은 변하지 않지만 인정하는 것이 무서워 사실을 부정하는 순간을 우리는 하루에도 수 없이 마주하곤 한다(가벼운 예로, 월말에 핸드폰 요금 고지서를 들고 봉투를 열어볼까 말까 발을 동동 굴러본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 우리 모두 “방잔수”

잔수 또한 그렇지 않을까? 이제까지 여자로서, 또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고 보도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상당히 많은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수개월 전의 잔수는 영화 <더 포스트>의 캐서린(메릴 스트립 분)을 많이 닮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신문사 ‘워싱턴 포스트’는 캐서린이 아닌 그녀의 남편에게 상속되었고, 남편이 자살하자 그녀가 자연스레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편견 때문에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과 무모할 정도의 용기를 쥐어짜내야만 했다.

어쩌면 방송국의, 혹은 회사 내의 생활이 잔수를 한없이 방어적이고 날카롭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렇게 해야만 그녀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는지.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방송 캡처>

잔수가 대변하는 것은 21세기를 살고 밀레니엄을 넘어 이미 2018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직장 혹은 타 조직 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 날카로움이, 이기적임이 밉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그녀를 감싸주고 싶어진다.

작품의 후반이 아닌 초반에서 그녀의 날카로움의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매주 한 번 얼굴을 비추는 이 여주인공을 미워하는 대신 응원하도록 <낫베이직>의 초반, 김남매는 그녀의 모난 성격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 배우의 한마디 : 차재이

“잔수는 놀랍도록 저와 닮은 여자예요. 그래서 가끔 두려울 때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연기하면서도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오롯이 아등바등 사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기가… ‘무섭’더라고요.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를 받아들이니, 이해가 가지 않던 일들도 이해가 가더군요. 잔수는 저를 성숙하게 해요.”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작성 차재이 배우
편집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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