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이탈리아 슈퍼카 람보르기니는 기자들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브랜드다. 해외 시승 기회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고, 국내 시승 기회도 자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시승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맘은 조마조마해진다. 사고가 난다면 전 재산이 날아가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과거 람보르기니를 시승하다가 대형사고가 나서 업계를 한참 떠나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는 얘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그런 와중에 람보르기니를 시승할 기회를 얻었다. 6월에는 포천레이스웨이에서 ‘우르스’를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우라칸 에보’로 인제스피디움을 달려볼 기회가 찾아왔다.
우라칸은 가야르도의 후속 모델로 2014년에 데뷔한 차다. 우라칸은 ‘강풍’이라는 뜻의 타이노어에서 유래돼 에스파냐어로 자리 잡은 단어로, 영어 ‘허리케인’의 어원이다. 또한 람보르기니의 전통대로, 1879년 8월 스페인 알리칸테에서의 격렬한 싸움으로 전설에 남은 스페인의 콘테 델라 파티야(Conte de la Patilla) 종 황소의 이름을 뜻하기도 하다.
데뷔 이후 지속적인 개량형을 선보인 우라칸의 현존 최강 모델은 ‘우라칸 퍼포만테’다. 이번에 만난 우라칸 에보는 우라칸 퍼포만테와 같은 640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는 V10 5.2ℓ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다. 그렇다면 람보르기니는 왜 최고출력이 같은 모델을 또 만들었을까?
우라칸 퍼포만테가 레이싱 트랙을 위한 차라면, 우라칸 에보는 트랙과 일반도로 모두를 겨냥한 차다. 우라칸 퍼포만테가 포르쉐 911 GT3이라면 우라칸 에보는 911 카레라에 비유된다. 911은 출력 차이가 있지만 우라칸은 출력 차이를 두지 않았다는 게 다른 점이다.
우라칸 에보 변화의 핵심은 공기역학적으로 다듬은 새로운 디자인과 통합 차체 컨트롤 시스템(LDVI)이다. LDVI의 특성은 ‘피드포워드’라는 단어로 정의된다. 최근 등장한 차체안정화 시스템들이 차의 움직임을 분석해 그 이후에 대처하는 ‘피드백’ 시스템이라면, 우라칸 에보는 차의 다음 움직임과 운전자의 니즈를 미리 예측해 주행상황에 대처하도록 해준다.
사실 짧은 시승행사에서 이런 기능을 속속들이 알기란 참 어렵다. 이번에 마련된 짐카나는 지그재그 코스를 지나 원선회를 한 후, 180도 선회를 연달아 두 번 한 다음 결승점에 도달하는 구성이다. 원선회와 180도 선회하는 짧은 순간에 차의 동역학적인 성능을 맛보도록 한 것이다.
차가 회전할 때 우라칸 에보의 뒷바퀴는 속도에 따라 민첩한 몸놀림을 돕는다. 저속에서는 앞바퀴의 방향과 반대로 꺾어져(역위상) 회전반경을 줄이고, 고속에서는 앞바퀴 방향과 같아지며(동위상) 이동거리와 시간을 줄인다.
뒷바퀴까지 움직이는 4륜 조향 시스템을 채택한 차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우라칸 에보는 LPI(Lamborghini Plattaforma Intergrata))가 실시간으로 차체의 종, 횡, 수직 가속도를 측정하고 롤과 피치, 요 레이트를 모니터링 해 대처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버전 2.0으로 업그레이 된 마그네토 레올로직 서스펜션은 LPI의 입력값에 따라 댐핑을 조절하고, 람보르기니 다이내믹 스티어링(LDS)은 뒷바퀴 조향과 함께 컨트롤 성능을 높인다.
또 한 가지 감탄한 건 놀라운 운전 편의성이다. 640마력이라는 어마어마한 출력을 잘못 다루면 차를 주체할 수 없지만, 우라칸 에보는 특출한 운전솜씨가 없어도 다루기 쉽다. 이번 짐카나 코스에서도 차체의 뒤를 날리면서 움직임을 알아보는 드리프트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라칸 에보는 가속 페달을 적당히 밟을 경우 뒤가 함부로 날아가지 않는다. 옆에 앉은 인스트럭터가 “더 세게 밟아라”라고 계속 주문을 해서 가속페달을 확 밟았더니 뒤가 훅 날아갈 정도였다. 즉, 완전히 오버해서 조작하지 않는 이상 우라칸 에보를 타고 코너에서 처박히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주행모드는 스트라다, 스포츠, 코르사 등 세 가지다. 스트라다와 코르사 모드는 차이가 크다. 일반도로에서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게 스트라다 모드라면, 코르사 모드에서는 솜털까지 쭈뼛 서게 만드는 짜릿함이 온몸을 감싼다. 스포츠 모드는 이 둘의 중간 정도로, 가속페달에 대한 반응이 빨라지고 배기음은 더욱 웅장해진다. 타이어 사이즈는 앞 245/30R20, 뒤 305/30R20로, 피렐리 P 제로 제품과 짝을 맞췄다. 매우 낮은 편평비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라다 모드에서는 상당히 부드러운 특성을 보여준다.
패들 시프트는 칼럼이 아니라 스티어링 휠에 붙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패들 시프트가 큼직해 웬만한 상황에서도 손가락에 닿기는 하지만, 코너링 때 간혹 손가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잠시 짬을 내 천천히 실내를 살펴본다. 앞서 나온 우라칸과 가장 큰 차이는 거의 모든 스위치를 통합한 8.4인치 멀티핑거 제스처 컨트롤 터치스크린 탑재다. 시트, 실내온도, LDVI 컨트롤뿐 아니라 애플 카플레이 같은 인포테인먼트 연결도 터치스크린 하나로 조절한다. 복잡한 스위치를 나열했던 이전 세대보다 한결 깔끔해졌을 뿐 아니라 스크린이 커 조작이 쉽다. 옵션으로 마련된 듀얼 카메라 텔레메트리 시스템을 선택하면 주행 후 기록과 분석이 가능하다. 고용량 하드디스크 또한 옵션으로 준비된다.
우라칸 에보의 가격은 3억4500만원부터 시작해 다양한 옵션 적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 부담만 없다면 ‘람보르기니 애드 퍼스넘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차를 꾸밀 수 있다.
이번 시승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라칸 에보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나중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반 도로에서의 주행특성을 좀 더 속속들이 파악해보고 싶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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