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의 음악캠프, 지금 출발합니다.”
매일 저녁 6시, FM 91.9㎒에 주파수를 맞추면 오프닝 음악인 롤링 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1990년 3월 19일 첫 방송 이후 30년 동안 이어져 오는 장수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그의 목소리가 이제 신형 쏘렌토와 함께 찾아왔다. 2002년 처음 등장했던 기아자동차의 대표 SUV ‘쏘렌토’의 새 광고는 ‘저녁 6시 이후의 삶’을 얘기한다. 오랜 기간 동안 한 분야에서 정상을 지켜온 터줏대감끼리 제대로 만난 셈이다.
지난 17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4세대 쏘렌토는 영업일 기준 18일 동안 2만6368대의 사전계약을 달성하면서 눈길을 끌었으나,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가 국내 세제 혜택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기아차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판매를 일시 중단하는 한편, 가격 인상분을 회사가 책임진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런 과정을 겪은 이유로 시승회에는 디젤 모델만 준비됐다. 국산 SUV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기자들의 아쉬움도 컸다.
신형 쏘렌토의 차체는 길이와 너비, 높이 모두 3세대보다 각각 10㎜씩 커졌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2세대 모델보다는 길이가 125㎜나 늘어난 것이다. 휠베이스 역시 3세대보다 35㎜ 길고 2세대보다는 115㎜ 늘어났다.
휠베이스가 늘어나면서 실내공간은 커졌지만, 3열 시트는 성인 남성이 타기에 넉넉하지 않다. 키 177㎝인 기자가 타보니 몸을 웅크려야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정도다. 반면, 쏘렌토보다 휠베이스가 85㎜ 긴 현대 팰리세이드는 상대적으로 3열 공간의 여유가 크다. 중형 SUV와 대형 SUV의 차이가 이런 데서 드러난다.
대신 3열 승하차와 화물 적재 편의성은 구형보다 훨씬 좋아졌다. 2열 시트 위쪽에 붙은 버튼을 누르면 한 번에 시트가 앞으로 당겨지고, 트렁크에서 버튼으로 2열 시트를 접을 수 있도록 했다. 6인승을 선택할 경우 2열 시트 중앙으로 3열 승하차도 가능하다.
클러스터와 연결된 디스플레이는 신형 K5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 아래에 자리한 공조장치 컨트롤 패널은 터치 버튼과 물리적 버튼을 적당히 섞어 조작편의성을 높였다.
파워트레인은 2.2 디젤과 8단 DCT를 조합했다. 2.0ℓ과 2.2ℓ 두 가지로 나오던 구형과 달리 이번에는 2.0ℓ 디젤의 역할을 하이브리드가 맡았다.
2.2ℓ 디젤 엔진은 3세대 모델과 최고출력(202마력), 최대토크(45.0㎏f·m)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새 엔진이다. 배기량은 2199㏄에서 2151㏄로 소폭 줄었고, 스마트 스트림 기술이 들어갔다.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에서 최초로 습식 8단 DCT가 장착됐다는 게 포인트다.
DCT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엔진과 궁합이 매끄러울 경우 연비를 향상시키면서 부드러운 변속도 구현해낼 수 있으나, 설계목표에 미달할 경우 변속이 거칠어진다.
신형 쏘렌토는 다행스럽게도 변속감이 자동변속기 못지않게 부드럽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소음이 급격히 커지지 않고, 변속은 매끄럽게 이어진다. D 드라이브에서 가속 페달에만 의존할 경우 가속감이 빠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이 때 패들 시프트를 적극 활용하면 운전이 훨씬 다이내믹해진다. 전반적으로 파워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구형보다 진동과 소음이 크게 줄어들은 점이 돋보인다. 다만 1열 도어 차음 글라스가 최고급형인 시그니처에만 장착되기 때문에 그 아래급 트림은 정숙성이 다를 수 있다.
변속기는 다이얼 타입인데, 개인적으로는 팰리세이드에 들어간 버튼식보다 다이얼 타입이 안전성이나 조작성 면에서 낫게 느껴진다.
타이어는 235/60R18 사이즈가 기본이고, 모든 트림에서 255/45R20 사이즈 타이어가 포함된 스타일 옵션을 고를 수 있다. 편평률 45는 SUV로는 낮은 편이지만, 시승차에 장착된 255/45R20 타이어는 승차감과 조향성 면에서 서스펜션과 꽤 좋은 궁합을 보여줬다. 3세대 모델의 2017년형부터 기본 장착되는 콘티넨탈 크로스 LX 스포트는 이번에도 기본 장착된다.
쏘렌토의 공차중량은 1755㎏(18인치 2WD 5인승)~1885㎏(20인치 4WD 7인승)로, 신규 플랫폼 덕에 3세대 모델(1820~1970㎏)보다 전반적으로 가벼워졌다. 공차중량이 가장 가벼운 2WD 5인승 모델은 복합연비가 14.3㎞/ℓ이고, 가장 무거운 4WD 7인승 모델도 13.0㎞/ℓ로 3세대 R 2.2 2WD 7인승 모델의 12.6㎞/ℓ를 웃돈다. 그러나 외곽순환도로 93㎞ 거리를 달린 이번 시승에서의 연비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추가 시승을 통해 연비를 체크해볼 예정이다.
신형 쏘렌토의 가격은 개소세 70% 감면 기준으로 트렌디 2948만원, 프레스티지 3227만원, 노블레스 3527만원, 시그니처 3817만원이다. 시그니처에 모든 옵션을 더한 가격은 4652만원. 옵션 선택의 폭이 다양한 점은 돋보이지만, 내비게이션을 골라야 스마트폰 무선충전 기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아쉽다. 차량 내 간편 결제 기능인 ‘기아 페이’가 최고급형인 시그니처에만 장착된 것도 지적사항이다. 이런 신기능은 쓰는 이들이 많아져야 가맹점이 빨리 늘어나는데, 최고급형에만 장착하는 건 보급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다.
신형 쏘렌토는 구형보다 훨씬 높은 완성도를 갖춘 만큼 앞으로 시장에서 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하이브리드 모델의 판매가 중단되면서 구겨진 이미지를 얼마나 빨리 만회하느냐가 롱런 여부를 가릴 것이다. 사전 계약자의 절반 정도가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택했던 만큼 이 수요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루 빨리 개선된 하이브리드 모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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