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택의 車車車] 노인을 위한 벤츠는 없다

발행일자 | 2020.05.21 17:55
[임의택의 車車車] 노인을 위한 벤츠는 없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세계 최초의 휘발유 엔진을 개발했고, 현재도 최고 수준의 엔진 기술력을 가진 브랜드다. 그러나 전기차 분야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땐 ‘초보’다. 엔진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전기차 분야에 대한 투자는 다른 업체들에 비해 소홀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한 EQC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브랜드 ‘EQ’에서 선보이는 최초의 전기차다. GLC와 유사한 스타일에 408마력의 전기모터를 달고 한 번 충전으로 309㎞를 달릴 수 있다.


EQC와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 EQC 론칭 때는 짧은 거리를 두 명이서 나눠서 시승을 해야 해서 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시승기 작성을 미루고 있던 차에 다시 한 번 시승 기회가 주어졌다.

[임의택의 車車車] 노인을 위한 벤츠는 없다

EQC의 디자인 테마는 ‘프로그레시브 럭셔리’다. 대형 블랙 패널이 헤드램프 사이를 메우면서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하다. 헤드램프 사이에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자리하는 전통적인 자동차의 디자인을 이용하다보니, 전통과 첨단 사이에서 어중간한 느낌에 머무르게 됐다. 마치 80대 노인이 20대 남성의 수트를 입은 격이랄까.

EQC의 차체는 GLC보다 100㎜ 길고 10㎜ 좁고 20㎜ 낮다. 휠베이스는 2875㎜로 GLC와 같지만, 실내공간은 더 좁게 느껴진다. 차체 하부에 배터리를 장착한 데다 전고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등받이가 서 있는 뒷좌석은 그리 편치 않다. VIP나 부모님을 모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운전석은 GLC와 달리 와이드 스크린 대시보드로 꾸몄다. 공조장치를 제외한 대부분 기능은 물리 버튼 대신 터치 방식으로 조작한다. ‘서니 베일’ 시트커버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했으며, 양모와 종이 등 99가지의 재생 가능 원료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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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모터는 앞뒤 2개가 장착되며, 각기 독립적으로 제어된다. 약한 하중과 중간 하중을 담당하는 전륜 모터는 주로 중저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급가속이나 고속에서는 후륜 모터가 힘을 보탠다.

공차중량은 2440㎏으로 GLC300보다는 무려 635㎏ 더 나간다. 배터리 무게만 650㎏이니, GLC300에 배터리를 추가로 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부분에서 경량화를 이루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럼에도 최고출력이 408마력에 달하는 모터를 장착하고 있어 파워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에서 풀 가속을 하면 고개가 확 젖혀질 정도로 가속감이 어마어마하다. 배터리가 차체 하부에 장착된 덕에 주행안정성도 꽤 훌륭하다. 그러나 20인치 휠은 다소 오버 스펙이다. 게다가 편평률 45인 타이어는 승차감이 그리 좋지 못하다. 특히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는 차체 뒤가 들썩 거릴 정도로 흔들린다.

[임의택의 車車車] 노인을 위한 벤츠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주행거리다. 2.5톤에 가까운 공차중량 때문에 1회 충전 주행거리는 309㎞에 ‘불과’하다. 406㎞인 현대 코나 일렉트릭이나 383㎞인 쉐보레 볼트 EV, 333㎞인 재규어 I-페이스와 비교하면 돋보이지 않는다. 벤츠 주장대로 시내 출퇴근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장거리 주행 때는 충전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비(연비)는 도심에서 3.3㎞/㎾h, 고속도로에서 3.1㎞/㎾h, 복합 3.2㎞/㎾h다. 이는 코나 일렉트릭(5.6㎞/㎾h), 쉐보레 볼트 EV(5.5㎞/㎾h), 재규어 I-페이스(4.7㎞/㎾h)보다 현격히 낮은 수치다. 대신 4가지로 마련된 회생제동모드를 활용하면 실전에서 전비를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으로 설정된 D 모드에서 D-로 패들시프트를 조작하면 회생제동 기능이 높아지고, D-- 모드로 조작하면 싱글 페달 드라이빙이 돼 가속 페달을 떼기만 하면 강력한 회생제동이 작동한다.

EQC는 110㎾ 출력의 충전기로 40분 만에 80% 용량을 충전할 수 있으며, 전국 공공 충전소에서 AC 완속 충전도 가능하다. 벤츠 전용 월박스를 이용하면 가정용 220V 전력으로 충전할 때보다 3배의 속도로 충전할 수 있다.

[임의택의 車車車] 노인을 위한 벤츠는 없다

EQC는 출시 이후 6개월 동안 47대가 팔리며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가격이 1억500만원이나 하는 데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원인이다. 이는 저온 주행거리가 상온 주행거리의 60% 이상이 되어야 하는 국내 규정을 EQC가 만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벤츠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존 1회 충전주행거리 309㎞를 308.2㎞로 줄이고, 저온 주행거리는 171㎞에서 270.7㎞로 늘렸다. 지난달에 변경 인증을 완료하고 현재 보조금 지급 신청절차를 진행 중이다. 보조금 지급이 확정되면 가격은 1억원 밑으로 떨어진다. 결국 남보다 앞서서 EQC를 샀던 고객은 ‘호구’가 된 셈이다.

벤츠는 BMW에 비해 뒤졌던 전기차의 출발을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PHEV) 판매로 만회하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보조금을 받게 되면 판매를 회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벤츠답지 않게 ‘초보 티’가 난다. 다음 모델에 기대를 걸어본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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