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하는 명차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그 명차들이 라이벌이 될 확률은 손에 꼽을 정도로 낮다.
그런 면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가 40년 이상 벌이고 있는 라이벌전은 보기 드문 명승부다. 어느 한 차가 앞서가면 다른 차가 바로 뒤쫓아 와서 승부가 한쪽으로 확 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신차가 나오면 늘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된다.
최근에는 공교롭게도 이 두 차가 비슷한 시기에 신모델로 한국에 선보였다. 둘 다 풀 체인지가 아닌 부분변경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두 모델 모두 겉모습이 달라졌는데, 변경된 포인트가 각기 다르다. 5시리즈의 경우 구형은 다소 밋밋한 앞모습을 지적받았었는데, 이번엔 7시리즈를 닮은, 웅장하고 화려한 스타일로 눈길을 끈다. 7시리즈와 너무 비슷해진 느낌도 있지만, 잘생긴 상위 모델을 닮은 건 흠이 되지 않는다.
E클래스는 뒷모습 변화가 더 크다. 구형의 경우 S클래스, C클래스와 구분하기 힘든 뒷모습 때문에 ‘벤츠 대(大)자, 중(中)자, 소(小)자’라는 놀림도 받았으나, 이번에는 길게 이어지는 테일램프로 풀 체인지 같은 변화를 줬다. 물론 이 디자인도 새로운 벤츠 모델들에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지만, E클래스만의 분위기가 좀 더 강해졌다. 멀티 LED빔이 적용된 헤드램프는 디자인에서 호불호가 나뉜다. 개인적으로는 구형의 디자인이 더 낫다고 본다.
차체 크기를 보면, 시승차인 E350 AMG 라인은 길이 4940㎜, 너비 1860㎜, 높이 1460㎜이고, 540i는 각각 4965㎜, 1870㎜, 1480㎜다. 5시리즈의 수치가 조금씩 큰데, 확실히 좀 더 웅장한 느낌이 있다. 휠베이스는 540i가 2975㎜, E350이 2940㎜로 역시 5시리즈의 우세다. 이 차이는 실내공간의 차이로 고스란히 이어지는데, 특히 뒷좌석 넓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E클래스는 시트 쿠션의 길이가 짧아서 성인 남성이 앉으면 허벅지 절반 정도가 허공에 붕 뜨게 된다. 장거리 여행에서 5시리즈의 안락함이 더 나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내는 기존 디자인을 대부분 유지한 채 기능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540i는 기존 1개의 카메라를 3개로 늘리면서 반자율주행 기능이 향상됐다. 특히 주위에 지나가는 차가 계기반에 나타나도록 한 점은 테슬라의 것과 비슷한데, 안전운행에 큰 도움이 된다.
E350은 스티어링 휠 조작 범위를 넓히고 편의성을 높였다. 모든 기능이 터치식이어서 편하긴 한데, 섬세한 조절을 하려면 적응이 필요하다.
파워트레인을 보면, BMW가 540i를, 메르세데스-벤츠가 E350을 시승차로 제공했기 때문에 이 두 차를 동등하게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다. 하지만 540i의 라이벌인 E450을 올해 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억을 떠올려서 같이 비교해보기로 했다.
540i는 최고출력 340마력의 직렬 6기통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얹었고, 공차중량은 1850㎏이다. E350 AMG 라인은 299마력의 직렬 4기통 엔진이 9단 자동변속기와 짝을 이루고, 공차중량은 1920㎏이다. 540i의 동급차종인 E450은 각각 367마력, 1970㎏이다. 마력당 중량비는 540i가 5.44, E450이 5.37, E350이 6.42다. 마력당 중량비는 1마력이 감당하는 무게를 의미하기 때문에 숫자가 작을수록 좋다.
5시리즈는 과거에 530i부터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적이 있지만, 이제는 고성능 4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통의 실키식스 엔진은 540i부터 얹힌다고 이해하면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4기통 2.0ℓ 가솔린 엔진으로 200마력 중후반대의 출력을 내는 게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직렬 6기통 엔진의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는 BMW와 벤츠 모두 마찬가지인데, 각 브랜드마다 레시피가 살짝 다르다. 540i의 경우 크림치즈 같은 부드러움이 강점이다. 520i로 시속 100㎞를 낼 때 가속페달을 100 정도 밟았다면, 540i는 70~80만 밟아도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다.
반면에 E450은 마라탕 같은 화끈한 맛이 느껴진다. 스포츠 모드로 달리면 흡·배기음부터 확연히 달라지고, 치고 나가는 맛이 일품이다. E350은 E450보다는 약하지만 매콤한 맛을 지녔다. 특히 48V(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성능이 더해지면서 더욱 짜릿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다만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직렬 4기통 엔진의 한계가 살짝 느껴진다. 같은 상황에서 540i는 더 부드럽게 속도를 끌어올리고 소음도 낮다.
타이어는 540i와 E350 모두 앞 245/35R20, 뒤 275/30R20 사이즈로 똑같다. 편평률이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두 차 모두 승차감이 안락하고 부드럽다. 다만 요철을 만났을 때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은 E350이 미세하게 낫다. 540i는 리어 서스펜션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지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승차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면 시승차인 M스포츠 패키지보다 한 치수 낮은 사이즈가 들어가는 럭셔리 라인(245/40R19, 275/35R19)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오디오 성능 역시 막상막하다. 540i는 바워스&윌킨스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시스템을, E350 AMG라인은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는데, 특성이 다르다. 540i의 오디오는 아주 부드럽고 편안한 사운드가 귓가에 맴돈다. 차의 주행 특성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반면에 E350은 비트가 강한 사운드를 들을 때 특히 좋다. 볼륨을 최대한 높여도 고음과 저음이 찢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발휘되어 귀가 즐겁다. 개인적으로는 E350의 부메스터 사운드가 좀 더 좋았다.
인증 연비는 540i가 도심 8.6㎞/ℓ, 고속도로 12.2㎞/ℓ이고, E350은 도심 9.2㎞/ℓ, 고속도로 11.6㎞/ℓ, E450은 도심 8.0㎞/ℓ, 고속도로 11.2㎞/ℓ다. 그런데 이번 시승에서는 540i가 E350보다 낫거나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540i는 평균시속 26㎞일 때 7.3㎞/ℓ의 연비를 나타냈고, E350은 평균시속 23㎞일 때 6.8㎞/ℓ의 연비를 보였다. 시승 여건상 평균시속을 완전히 일치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근사치에서 비교를 한 것인데, 예상보다 540i의 연비가 좋게 나왔다.
이런 결과는 주행모드에서 540i는 ‘에코’ 모드가 있지만 E350은 아예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시승 과정에서 에코 모드는 아주 잠깐 사용했음을 감안하면, 평소 에코 모드를 많이 활용할 경우 540i의 연비는 훨씬 더 좋게 나타날 걸로 분석된다.
가격을 비교해보면, 540i 럭셔리 라인은 9840만원, M스포츠패키지의 가격은 1억210만원, E350 AMG 라인은 8880만원, E450 AMG 라인은 1억260만원이다. 흔히 ‘비싼 게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이 두 차는 그렇게 간단히 비교할 차들이 아니다. 운전을 좀 더 다이내믹하게 즐기는 이들이라면 E350이나 E450이 좀 더 나은 선택 같고, 뒷좌석에 가족을 많이 태우는 이들이나 기업체 임원용 차를 고르는 이들에게는 540i가 좀 더 낫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시장에 BMW와 벤츠만 있는 건 아니다. 최근 몇 차례 시승해본 아우디 A6, A7도 아주 훌륭했고 많은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 했다. 따라서 이 급의 차를 선택하려는 이들은 5시리즈와 E클래스, A6를 꼭 직접 시승해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차를 고르길 권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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