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홍보의 기술

발행일자 | 2022.06.07 10:37
[취재수첩] 홍보의 기술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이는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의 서두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취재수첩에서 웬 ‘사랑의 기술’을 언급하냐고요?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남녀의 사랑’ 또는 ‘연애의 기술’을 다루는 게 아니고, 넓은 의미의 인간관계를 다룹니다. 기술적인 면으로 본다면 무언가를 알리는 ‘홍보’와 연관성이 있는 것이죠.

자동차 담당 기자로 27년째 살아오면서 많은 홍보인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지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자리를 떠난 후 금방 잊히는 분들도 있죠. 오랜 기간 홍보인으로 살아오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기자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는 분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행사장의 풍경을 예로 들어보죠. BMW는 얼마 전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M 5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BMW 코리아의 홍보팀과 홍보대행사 월켐 직원들은 오전·오후로 나눠 열린 이 행사에서 수많은 기자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수입차 업계에서도 행사가 많기로 이름난 BMW이니 지칠 만도 한데, 얼굴에서는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행사장에 있었던 ‘One team, One passion’이란 문구처럼 BMW와 웰컴이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취재수첩] 홍보의 기술

BMW 홍보팀의 단결력은 유별납니다. 팀원 중에 생일을 맞은 이가 있으면 반드시 ‘서프라이즈한’ 생일파티를 치르죠. 얼마 전에는 미니의 아버지 알렉이시고니스 대신 생일 주인공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놓고 파티를 열어 모두를 까무러치게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홍보팀원 중에 결혼하는 분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축가를 불러준 이는 다름 아닌 홍보 담당 임원이었습니다. 사회생활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직장 상사가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게다가 축가는 부르기 어렵다는 김동률의 ‘감사’였으니, 그 정성과 노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렇게 팀워크가 좋으니 기자들을 대할 때의 태도도 당연히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포르쉐의 홍보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최근에는 그 유명한 ‘포르쉐 월드로드쇼’를 열면서 오전·오후에 밀려든 기자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응대하면서 포르쉐의 명성에 어울리는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취재수첩] 홍보의 기술

포르쉐 월드로드쇼는 그동안 하루 일정으로 진행됐는데, 이번에는 코로나19도 안 끝났고, 많은 미디어를 참여시키다 보니 반나절만 열렸습니다. 그래서 개별차종의 시승 시간이 짧아진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포르쉐는 포르쉐이더군요. 참가한 기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행사 자체가 즐거우니까요.

BMW나 포르쉐와 달리, 페라리의 행사 진행은 뭔가 엉큼합니다. 행사를 열어도 공지를 안 하고, 친한 기자나 부르고 싶은 기자(기자 아닌 사람도 포함)만 부르죠. 계속 이랬던 건 아니고, 지금의 홍보 담당자가 부임한 후부터 이런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를 많은 기자에게 지적받고 김영란법 위반 얘기도 나오자, 지난 4월에는 웬일인지 행사를 공지하고 참가자를 받았습니다.

페라리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0월에 대범하게도 국내 매체 몇 곳을 이탈리아 본사로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아무 공지가 안 됐었죠. 2019년에도 이런 식으로 해외 시승회를 진행했다가 참가한 기자 한 명이 시승 중 사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사고를 낸 기자는 국내에서도 시승차로 잦은 사고를 일으켜서 많은 업체의 블랙 리스트에 오른 인물인데, 왜 초청했는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페라리와 달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대부분 브랜드는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가입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같은 고가 브랜드도 포함되어 있고, 매월 초 실적 발표 때 몇 대가 팔렸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가입 브랜드인 페라리는 이 자료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페라리의 판매량은 전혀 파악할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가 매달 공개하는 자료를 보면, 페라리는 지난 5월에 22대가 팔리며 전년 동월 대비 57.7% 포인트가 감소했습니다.

27년간 업계를 취재한 제 경험으로 보면, 성공한 브랜드는 좋은 제품과 뛰어난 홍보, 적극적인 마케팅이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약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페라리는 아무나 사는 차가 아니니까 홍보는 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홍보부서는 왜 필요하며, 홍보 담당자는 왜 있어야 할까요?

앞서 예를 든 BMW의 경우 올해 1~5월 누적 판매실적은 전년 대비 4.5% 포인트가 증가했습니다. 전체 수입차 판매가 10.9% 포인트 감소한 가운데 기록한 놀라운 성과죠. 포르쉐는 감소하긴 했으나 ‘1만 대 클럽’에 새로 가입할 유력 브랜드로 꼽힙니다.

다시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문구를 언급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무것도(페라리를)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페라리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홍보를)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언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언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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