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기차 시대, 세금 도둑을 막으려면

발행일자 | 2023.07.05 13:14
[취재수첩] 전기차 시대, 세금 도둑을 막으려면

#1. A 씨는 최근 사업이 잘 풀려서 전기차를 구매했다. 그는 이 전기차를 포함해 총 석 대를 보유 중이다. 회사 일로 다닐 때는 미니밴을 이용하고, 회사 직원들에게는 가솔린 세단을 내줬다.

#2. B 씨는 차 수집하고 바꾸는 게 취미다. 가솔린 세단, 디젤 SUV도 갖고 있지만, 최근에는 전기차에 푹 빠졌다. 하지만 싫증을 자주 느끼는 성격이어서 또 언제 다른 차에 빠질지 모른다.


#3. C 씨는 소문난 자동차광이다. 한 종류에 빠지는 게 싫어서 전기차, 스포츠카, 컨버터블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 여행도 취미인데, 주행거리가 많을수록 전기차가 이득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하지만 차는 역시 스포츠카라는 지론이 있어 주말에는 스포츠카를 타고 다닌다.


위의 사례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아,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차를 여러 대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돈이 싫은 사람은 없고, 차를 여러 대 갖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면 전기차 한 대만 소유한 이들이 예상보다 적습니다. 그들에게 “왜 전기차 말고 다른 차도 보유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결같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전기차만 갖고 있으면 불안하다”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능력만 되면 전기차 외에 내연기관차도 갖고 있으려고 하는 것 말이죠. 전기차는 아직 충전 인프라가 주유소만큼 충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충전 시간도 주유 시간에 비하면 긴 편이죠. 그래서 이러한 불편을 내연기관차를 보유해서 보완하고 있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전기차를 구매하는 이에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지원해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취재수첩] 전기차 시대, 세금 도둑을 막으려면

‘무공해차 누리집’ 사이트를 가보면 전기차의 보급 목적을 환경, 경제, 산업적 측면에서 설명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환경 측면에서는 자동차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대기오염을 해결해주는 부분이, 경제 측면에서는 내연기관보다 유지비가 절감되는 부분이, 산업적으로는 전기차에서 전력망으로 전기를 이동해 활용하는 V2G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다 옳은 얘기입니다.

문제는 이를 위해 엄청난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이 글 서두에 나온 사례에서 ‘아, 전기차가 이렇게 친환경적이니까 내가 낸 세금으로 마땅히 지원해줘야겠구나’하고 느낀 사례가 있으신가요? 물론 모든 전기차 이용자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저 사례에 나온 것처럼,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이들에게 구매 보조금을 줘가며 전기차 구매를 장려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사실 전기차는 환경적인 측면도 있지만,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전 세계의 자동차 강국이 전기차를 앞다퉈 개발 중인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죠. 그렇게 해서 시장을 키우고, 자국 업체의 경쟁력을 키워 차세대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죠. 전기차를 게임체인저로 만들겠다는 중국과, 과거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었던 미국이 부활을 위해 특히 적극적입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는 보조금을 축소 내지는 폐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올해부터 보조금을 전면 폐지했고,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자국산 전기차 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자국산 부품을 이용해야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취재수첩] 전기차 시대, 세금 도둑을 막으려면

중국은 2009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시행했는데, 우리나라처럼 구매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게 아니라 전기차 생산업체에 지원했습니다. 전기차 생산업체가 판매량을 정부에 보고하면 심사를 거쳐 생산업체에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보조금을 받은 업체는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어 구매자들도 이득이고 생산업체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죠.

올해부터 보조금을 없앤 건, 이제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전기차 가격이 오르겠지만, 이제 중국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가 대세이므로 판매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인 겁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전기자동차 보급대상 평가에 관한 규정에 따른 전기자동차 평가 기준을 충족하는 차’라면 국적을 따지지 않고 보조금이 지급됩니다. 지급 기준도 과거 판매 가격 5500만원 미만 100%, 8500만원 미만 50%에서 올해는 100% 지원 대상 기준 가격이 570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저는 지원 대상을 5000만원 미만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가격대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는 이라면 보조금 여부에 따라 구매가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보조금 지원 초기에 가격에 상관없이 지원하던 것에 비하면 개선이 됐지만, 더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죠. 그렇게 해서 제조업체들이 차량 가격을 낮추는 걸 유도하고, 세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도 막는 게 필요합니다.

[취재수첩] 전기차 시대, 세금 도둑을 막으려면

사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볼보트럭(볼보자동차와 상관없는 별개의 기업입니다)은 국내에 대형 전기 트럭 보조금 신청을 위한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며, 만트럭을 비롯해서 다른 대형 트럭 업체들도 개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국산 1t 전기 트럭인 현대차 포터나 기아 봉고는 보조금이 1200만~1400만원인데, 대형 전기 트럭은 이보다 몇 배 더 많이 지원해줘야 합니다. 대형 전기 승합(버스) 지원금이 보통 5000만~7000만원대인 걸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중국산 전기 버스에 보조금을 주느라 세금이 줄줄 새는데, 대형 전기 트럭까지 쏟아져 들어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결론을 지어볼까요? 전기차 보조금은 대상과 금액을 점차 축소하고, 기존 노후 차량을 폐차하고 전기차를 구매하는 경우에만 지원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기 화물차는 노후차를 폐차하고 구매할 때 재지원 제한 기간(5년)을 적용하지 않는데, 전기 승용차는 제한 기간이 2년이고 보유차 폐차 여부에 상관없이 지원되는 건 비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산 전기차에 대한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대형 버스와 트럭에 대해서는 충전 인프라 확충에 나서거나, 국산 배터리를 장착하는 경우 등에만 특혜를 줘서 차등을 두는 게 좋겠습니다.

전기차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겁니다. 보조금 수요도 그에 따라 늘어나겠지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만큼,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더 꼼꼼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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