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은 작곡가의 <음악 유희(Musikspiel)>가 2024년 7월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세계 초연으로 펼쳐졌다. 전예은은 2022~2023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상주작곡가로 활동하며, 이 곡을 국립심포니의 위촉으로 만들었다. <음악 유희>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공연 중 첫 번째 순서로 연주된 곡이다.
<음악 유희>는 오케스트라의 악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연주를 통해 점점 쌓아가는 감정은, 곡의 몰입감과 긴박감을 선사한다. 수많은 변주와 새로운 시도가 있었음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보인다는 점은, 전예은이 각각의 악기와 오케스트라 전체를 얼마나 잘 아는지 어느 만큼의 애정을 쏟는지를 느끼게 한다.
◇ 살아있는 악기! 점점 쌓아가는 감정! 수많은 변주와 새로운 시도가 있었음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
<음악 유희>의 시작은 영화의 인트로를 연상했다. 점점 쌓아가는 감정에서 오는 긴박감을 연주 소리로 표현하기도 했고, 영화 초반부에 배우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모습을 보이듯 각 악기가 차례로 부각되기도 했다.
누구나 주인공인 히어로 무비처럼, 전예은은 <음악 유희>를 통해 모든 악기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는 걸 직접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녀가 오케스트라 작곡가로서 각각의 악기에 얼마나 정통하고, 애정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예은은 강약 조절, 완급 조절에도 뛰어나다. <음악 유희>는 소리가 거의 사라질 정도의 ‘침묵의 시간’을 통해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하고, 악기로 음향효과를 내는 시간도 제공한다.
<음악 유희>에서 마림바의 연주는 서정적이며 호기심을 자아내며 관객을 이끌기도 하는데, 이때의 마림바는 타악기라기보다는 현악기가 아닐까 하는 환상을 제공한다. 그만큼 작곡가가 선율을 서정적으로 활용했다는 걸 의미한다.
<음악 유희>가 영화라면 애니메이션이거나, 혹은 판타지, 스릴러 장르가 공존하는 영화일 수 있다. 클래식을 들으면서 동시에 변주가 있는 영화 음악을 동시에 듣는다고 느낀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음악 유희>의 마지막은 클래식 음악의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연주를 통해 점점 쌓아가는 고조감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작곡가의 정서에는, 수많은 변주와 새로운 시도가 있었음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있었다.
지휘자인 레오시 스바로프스키는 연주 내내 세계 초연 곡의 악보를 성실하게 따라가겠다는 모습으로 지휘를 했는데, 엔딩은 역동적인 동작으로 인상적으로 끝냈다. 지휘자는 작곡가의 음악 유희를 철저히 존중하며 따라갔고, 그 유희의 완성에 몸으로도 환호한 것으로 보인다.
◇ 전예은의 뛰어난 포착력과 디테일! 그녀의 작곡에 뿌린 씨앗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으로부터, 전예은이 작품의 주제나 소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은 것을 보고 경험해도 작곡가의 눈에는 보이는 것, 느끼는 것이 남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깊이를 볼 수도, 이면을 볼 수도, 찰나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저장할 수도 있다. 그걸 음악적 영감의 씨앗으로 선택할 수 있는 디테일이 전예은은 누구보다도 뛰어나기 때문에 <음악 유희>를 작곡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몰입해 감정이입할수록, 더 많은 게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음악 유희>
<음악 유희>는 실제로 들어보면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어 제목(음악 유희)처럼 작곡가의 음악적 장난을 함께 상상하며 편하게 즐길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관객은 몰입할 경우 정말 다채로운 시도를 촘촘히 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느끼며 감동받을 수도 있다. 1층 제1열에서 관람한 필자가 느낀 생생함의 여운은 아직도 계속된다.
작곡가가 독일이나 유럽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라도, 독일어 제목(Musikspiel)은 그 자체만으로도 판타지를 준다. <음악 유희>는 음악적 풍자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음악적 모순을 재조합해 새로운 정서를 도출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필자가 관객석 제1열에서 들은 살아있는 소리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음악적 모순으로 여길 수 있는 소리가 전예은의 감각 안에서는 충분히 규칙적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전예은이 일반 사람과 똑같이 느끼기는 하지만, 그 소리의 규칙과 음악적 조화를 찾아서 엮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관현악을 위한 <음악 유희>는 3관 편성으로 된 17분가량의 작품이다. 절대 가볍지 않은 편성과 길이를 갖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예은은 악보에서 보이는 것보다 실제 오케스트라로 연주 시 더 효과적으로 들릴 수 있는 작곡 방식에 초점을 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질적이면서도 한계를 정하지 않는 아티스트의 선택이 어떤 작품을 만드는 지를, 전예은과 <음악 유희>를 통해 관객은 직접 느낄 수 있다.
전예은 작곡가는 국립오페라단 위촉으로 오페라 <레드슈즈>를 만들었고, 국립심포니와는 <장난감 교향곡>을 초연했다. 탱글우드 뮤직 페스티벌, LA 필하모니 등에서 위촉을 받아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면서, 현재 국민대학교 조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전예은은 클래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작곡가이다. 그녀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다음에는 어떤 장르를 더욱 반짝이게 만들지 기대가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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