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트랩’ 공간 구성과 색채심리학의 측면에서 연극을 관람하면

발행일자 | 2024.09.29 00:09

서울시극단의 연극 <트랩(TRAP)>이 9월 27일부터 10월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스위스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urrenmatt)의 단편소설 <사고(Die Panne)>를 원작으로, 하수민 연출·재각색, 변유정 각색의 작품이다.

색채심리학과 공간 구성의 측면에서 <트랩>을 관람하면, 블랙 코미디의 스릴러 영화 같은 연출을 연극적 공간에서 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층 관객석의 위치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시야와 깊이가 달라진다는 점은, 같은 장면도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다르게 담을 수 있는 걸 연상하게 한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측면 좌석과 전면 좌석! 관람석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서

연극 <트랩>이 펼쳐지는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1층 관객석은 무대 양옆과 무대 앞편에 설치되어 있다. 무대 양옆의 자리에 앉은 관객은 초대된 손님 느낌으로 연극을 볼 수도 있다. 주인공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여 그들의 뒤편에 자리를 잡았기에, 어떤 배우의 앞모습과 또 다른 배우의 뒷모습을 동시에 보는, 마치 영화의 구성과 같은 시야로 연극을 볼 수도 있다.

반면 무대 앞에 자리한 관객은, 상대적으로 관찰자 시점에 더 가깝게 <트랩>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곳에 있는 관객은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측면 좌석에 앉은 관객의 표정과 반응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날 다른 관객의 반응에 따라, 내 느낌이 동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색채심리학으로 본 <트랩>의 레드카펫과 공간 구성

S씨어터는 극장 규모에 비해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트랩>이 펼쳐지는 공간이 저택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다. 큰 규모의 집 안에 깔린 레드카펫은, 초대받았다는 느낌과 함께 열정 혹은 광기를 연상하게 한다.

빨강은 삼원색 중에서도 눈에 가장 쉽게 띄는 색깔이다. 가시광선 중에서도 파장이 가장 긴 색깔(620~750nm)로, 너무 현란한 느낌이 들 때는 가장 거슬리는 색 중의 하나로 느껴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사랑과 정열을 상징하는 빨강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피, 생명으로 해석할 때는 <트랩>에서의 사형 제도와 연결할 수도 있다. 물이 떨어져도 티가 안 나는 바다처럼, 피가 떨어져도 티가 덜 나는 레드카펫을 상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빨강의 권력과 권위는 저녁 식사와 놀이를 함께 하는 고정 인원이, 전직 판사, 검사, 변호사, 사형 집행관이라는 측면에서도 일치한다. 이제는 현직이 아닌 그들이 재판 놀이에 과하게 진심인 점은, 빨강이 가진 증오와 분노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게임마다 설정한 피고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위험과 금지의 이미지 또한 빨강의 정서와 맞닿아있다. 피고가 말을 많이 할수록 위험해지고, 전직 변호사가 피고의 말을 자제하게 하는 <트랩>의 장면 또한, 강렬한 레드카펫의 빨강 이미지와 부합한다.

<트랩>의 무대와 1층 관객석의 의자는 목조이다. 고풍스러움과 안정감을 주며, 강렬한 레드카펫의 이미지를 절제하고 순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중에 매달린 14개의 흰색 구는, 무대의 공기가 언제든지 변형될 수 있다는 이미지적 암시로 보일 수도 있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트랩>의 시작은 영화처럼

<트랩>은 불안감과 경쾌감을 동시에 지닌 음악을 교차해서 들려주며 시작한다. 이승우 배우(시모네 역)의 라이브 연주는 인상적인데, 음악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연주가 특정 순간 특정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탁월했기 때문이다.

<트랩>은 ‘처음에는 단지 게임이었다!’라는 안내 문구처럼, 필연성이 내포된 우연성이 현실로 드러나는 스토리텔링을 전달한다. 우연히, 이따금 등 우연성이 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공연 시작부터 한다는 점은, 이 연극이 스릴러 영화적 시작을 택했다는 걸 추정하게 만든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물 vs.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인물

<트랩>에 등장하는 6명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물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인물로 나눌 수 있다. 전직 판사인 집주인(남명렬 분)과 전직 검사 초른(강신구 분), 전직 사형 집행관 필렛(손성호 분), 가사도우미 시모네는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된 견해를 유지한다.

반면에 섬유회사 판매 총책임자인 트랍스(김명기 분)와 전직 변호사 쿰머(김신기 분)는 극 후반 반전을 전후하여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보인다는 점이 주목된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트랩>은 합리적인 모의재판과 술을 마시며 노는 놀이가 공존하며 교차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설정은 ‘인과관계의 모순’이 펼쳐지는 것을 관객이 크게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검사는 트랍스에게 일관되게 압박을 가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처음에 트랍스에게 주의를 주며 신중하게 대하다가, 술을 점점 더 마시며 중간에 법정 내 심리적 역동이 일어날 때 검사 등 다른 사람처럼 함께 트랍스를 압박하기도 한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만약 트랍스가 모의재판을 통해 각성했을 때, 변호사가 검사 등에 휩쓸려 검사와 같은 방향으로 끝까지 트랍스를 압박했더라면 <트랩>은 그냥 코미디로 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 쿰머의 행동 변화로 인해 <트랩>은 블랙 코미디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쿰머가 블랙 코미디가 되도록 만드는 촉진자인 셈이다.

변호사는 마지막에 다시 태도를 바꿔 처음처럼 트랍스를 자제하게 하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모의법정 연극 놀이에 감정 이입한 트랍스를 말리는 과정에서, 어쩌면 트랍스를 오히려 더 강하게 각성하도록 자극하고 결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변호사가 말리니까 트랍스는 더 하게 되고, 변호사가 태도 변화를 반복하니까 트랍스는 마지막에 변호사의 조언을 오히려 더 듣지 않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놀이 속 역할에 충실하다가 놀이하며 생긴 자신의 감정에도 충실한 쿰머의 디테일한 변신과 행동을 교차하여 생생하게 표현한, 김신기의 연기가 의미 있게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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