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열리는 <포뮬러 드리프트> 오피셜 파트너 중 타이어 회사는 네 곳이다. 한국타이어를 필두로 닛토, 팔켄, 아킬레스가 그 주인공. 이와 함께 공식 후원사는 아니지만 요코하마, 막시스, 켄다 등도 일부 선수들이 쓰고 있는 타이어다. 그만큼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타이어 회사들 간의 경쟁도 치열한 대회라 볼 수 있다.
올 시즌 <포뮬러 드리프트> 등록 선수는 총 66명. 이중 한국타이어를 끼우고 달리는 선수가 13명이나 된다. 비율로 보면 20% 이상이다. 그리고 등록 선수 중 루키(신인들은 스폰서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16명을 제외하면 50명인데, 이중 한국타이어가 공식 후원하는 선수는 5명이니 프로급 드라이버의 10%를 후원하는 셈이다. 특히 시즌 랭킹 선두를 달리는 포스버그를 포함해 이 5명은 모두 15위 안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5라운드가 열린 ‘에버그린 스피드웨이’에서 한국타이어 후원 선수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체로 성적이 좋은 데다 ‘스폰서의 나라’에서 온 덕에 일정 잡기가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다른 팀 선수들은 잠깐씩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순 있었지만, 따로 오랜 시간을 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5명의 후원 선수 중 크리스 포스버그(Chris Forsberg), 프레드릭 아스보(Fredric Aasbo), 타일러 맥쿼리(Tyler McQuarrie), 켄 구시(Ken Gushi) 등 총 네 명과 만나 얘기를 나눴다. 아쉽게도 콘라드 그뤼네발트(Conrad Grunewald)는 여러 사정으로 만나지 못했다.
▲타일러 맥쿼리 Tyler McQuarrie (Team: Tyler McQuarrie Racing)
-그립주행 드라이버에서 드리프터로 변신

서킷에서 가장 먼저 만났고, 레이스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들려준 선수는 타일러 맥쿼리. 팀 오너면서 동시에 드리프트 선수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다. 인상도 꽤 좋았다. 친근한 동네 형 같은 느낌이다. 모터스포츠 전반에 대한 이해도도 꽤 높은 편이다. ‘드리프트의 고향’으로 불리는 ‘어윈데일 스피드웨이(Irwindale Speedway)’를 가장 좋아하며, 이곳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올 시즌 성적은 현재 15위.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건 타이어다. 드리프트 경주에서 쓰는 타이어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드리프트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최대한 미끄러뜨리기 위해 단단한 타이어를 쓰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포뮬러 드리프트>는 드리프트 경주 중에서도 가장 높은 레벨의 경기이기 때문에 단단한 것 만으로는 부족해요. 빠르게 달리다가 그냥 미끄러지는 걸로 보일 수 있지만 그립력을 잃으면 처박힐 수 있기에 타이어의 그립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미끄러지는 중에도 가속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스피드가 관건이죠. 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타이어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겁니다.”
현재 장착하고 있는 한국타이어의 Ventus R-S3는 그립주행용 타이어지만, 드리프팅에서도 일관성을 보이기 때문에 극한의 성능까지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미끄러지기 위한 무언가 특별한 타이어를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또 드리프트용 머신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드리프트 본고장인 일본과의 차이점도 설명했다
“먼저, 일반 경주차와 드리프트용 차는 셋업 차이가 크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드리프트용 경주차는 언더스티어 중심으로 세팅하는 반면 일반 경주차는 밸런스 튜닝을 하는 점이 다르거든요. 리어 캠버, 토우 등 모두 다르죠. 언더스티어를 내면서 스로틀을 100% 개방하는 등 아주 격렬하게 차를 몰아붙여야 합니다.

그리고 불과 5~6년 전만 해도 일본과 미국은 드리프트 수준에 큰 차이가 있었거든요. 미국에서도 이런 점을 높이 샀고, 많이 따라했죠.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위치가 바뀌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60~70%의 미국 선수들이 일본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운전 실력이 향상되었거든요. 차 자체도 예전보다 많이 발전해서 운전자들이 더욱 최상의 실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요.
그렇지만 운전 스타일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미국은 V8엔진을 탑재한 나스카 스타일을 고수하는 반면, 일본은 E-브레이크를 자주 쓰는 등 테크닉 위주 주행을 하는 편이죠. 그리고 일본 선수들은 심리전을 많이 펼칩니다.”

한참 신나서 설명하던 타일러 맥쿼리는 팀 운영과 관련해 고충을 일부 털어놨다. 선수로서 활약하는 것과 팀 대표로서 역할이 다르기 때문.
“운전을 계속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편하고 커리어 쌓기는 좋지만 가족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3년쯤 전부터 나만의 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팀을 운영하다 보니 느껴지는 책임감도 막중하고 쉽지만은 않아요. 그렇지만 운전자이자 대표로 활동하면서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경험을 통해 얻은 큰 소득이죠. 시야가 한층 넓어졌거든요. 그래서 한국타이어도 만난 게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드리프트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요점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것.
“저는 카레이싱을 먼저 시작했는데 코너링이라던지, 기본적인 주행 방법에 있어서 이때 경험한 것을 드리프팅에도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더군요. 극한을 넘어선 주행에 있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드리프트 경기는 특성상 압박이 심하거든요. 실수도 용납이 안 되죠. 그래서 자동차를 다양하게 먼저 경험해 보는 게 좋다고 봅니다.”
▲프레드릭 아스보 Fredric Aasbo (Team: Papadakis Racing)
-카트로 기본기 다지고, 눈 쌓인 산에서 드리프트 실력 키워

노르웨이 출신 프레드릭 아스보는 자연환경 탓에 드리프트를 자연스레 익혔다. 어려서부터 눈이 많이 오는 산 아래 마을에서 자랐다. 자연스레 눈길에서 차를 미끄러뜨리며 운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차의 움직임이나 여러 변수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카트레이싱도 했는데, 12살부터 15살까지 탔다.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 때문에 레이스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요즘 ‘제대로’ 달래는 중이다. 탄탄한 기본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2014 시즌 랭킹 2위를 달리며 이름값을 드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아스보의 강점은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마인드’다. 어떤 상황이든 즐긴다는 것. 그것이 어려움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제가 이 지역의 ‘해머(망치)’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어요. 풀-스로틀을 좋아하고, 꽤나 공격적이기 때문인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강자라고 보고 있습니다.(웃음) 그리고 전 드리프트 라인이 일정하지 않아요. ‘정확성’보다는 ‘열정’으로 경기에 임하죠. 관중들이 지루해하면 안되거든요. 따라서 선수는 ‘엔터테이너’가 돼야 하는 겁니다. 드리프팅을 할 때 즐거움을 느껴요. 돈을 목적으로 했으면 스톡카 대회에 나가면 되는데, 즐겁게 레이싱 하고 싶어서 계속 <포뮬러 드리프트>에 출전 중이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드리프팅은 비주얼 스포츠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심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죠. 보고, 듣고, 예술성까지 따지잖아요. 관중들도 똑같이 지켜보고요. 그래서 독특한 배기음이나 화려한 휠 색깔 등 보여지는 데 투자를 많이 합니다. 바디킷을 디자인 할 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디자인 요소를 많이 고려하는데요, 전 항상 같은 요구를 합니다. ‘최대한 튀게’라고요.”
프레드릭 아스보의 경주차는 최고출력 800마력을 내는 싸이언 tC다. 원래 앞바퀴굴림방식(FF)이지만 드리프트를 위해 뒷바퀴굴림방식(FR)으로 개조했다. 나스카레이싱에도 쓰이는 도요타의 최신 부품들이 80%쯤 들어가 있고, 셋업은 그립중심이다.

“도요타 차를 타는 이유는 단순해요. 첫 번째 협찬 받은 차가 수프라였거든요. 주변에서 무겁다, 바꿔라, 드리프트 안된다… 등등 말이 많았는데, 저는 분석적이고 고집도 센 편이라 생각한 게 맞다고 보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성격입니다. 루키였을 때 도요타 수프라로 우승을 거두었어요. 그때가 2010년이었어요. 그 이후로 이름과 사연이 알려지면서 도요타 싸이언으로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는거죠. 이 차에 장착하고 있는 한국타이어 Ventus R-S3 타이어는 예열도 짧고, 일관성 때문에 컨트롤 할 때 유리한게 장점이에요.” 그의 말이다.
아이처럼 신나서 자랑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함께 행복해지는 거 같다. 그는 진심으로 차를 사랑하고, 레이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인생을 즐긴다.

그래서일까. 드리프트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차를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애정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운전을 제대로 시작한 건 볼보 370이었죠. 청소기 팔던 시절 몰던 차예요. 100마력도 안 되는 차였지만,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드리프트를 배울 때는 차의 성격을 이해하는 게 먼저고요, 어떤 차로든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좋은 차’가 아니라 ‘좋은 능력’을 보여주는 게 핵심인 겁니다.”
-크리스 포스버그와 켄 구시 인터뷰는 다음 편에서 계속…-
시애틀(미국)=박찬규 기자 st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