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두 개의 멋진 선택지, 마세라티 그레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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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화로의 여정이 많은 완성차 업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곧 전기차 시대가 올 것 같더니, 캐즘으로 인해 수요 정체가 일어나자 각 업체가 전동화 일정을 재조정하고 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솔루션은 고객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동일한 모델에서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순수전기차를 만들면 고객 취향에 부응하면서 전동화 추진도 수월하다.

최근 한국 법인을 세우고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마세라티도 그런 브랜드 중 하나다. 르반떼 아래에 자리하는 중형 SUV '그레칼레'를 내연기관과 순수전기차 등으로 다양하게 내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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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레칼레는 한국 시장에 선보인 초창기에 시승한 바 있다. 그런데 운이 없던 것인지 처음 시승한 트로페오 모델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대체 차종으로 그레칼레 모데나를 시승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강력한 트로페오 모델을 타다 모데나를 타니 어딘가 밋밋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엔 시승회에서 그레칼레의 순수전기차인 폴고레 모델을 타봤다. 폴고레는 이탈리아어로 '번개'라는 뜻.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나온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과 경쟁하는 모델이다.

차체 길이는 4865㎜, 너비 1980㎜, 높이 1655㎜, 휠베이스 2900㎜다. 경쟁차인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은 각각 4784㎜, 1938㎜, 1623㎜, 2893㎜로, 모든 면에서 그레칼레 폴고레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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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칼레 폴고레는 205㎾ 영구 자석 동기식 모터를 두 개 탑재해 최고출력 410㎾(558마력)를 낸다. 정지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시간은 4.1초에 불과하고, 최고시속은 220㎞다. 스펙만 보면 스포츠카 뺨치는 성능이다.

실제 가속 성능도 스펙 그대로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부터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전기차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돼 지체 없는 가속 성능을 보여준다.

가속 성능도 훌륭하지만 이보다 더 감동적인 건 핸들링이다. 서스펜션은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타입. 폴고레는 전동화 차량에서 어려운 서스펜션 셋업을 기가 막히게 잘했다. 너무 튀지 않고 물렁거리지도 않으면서 쫀쫀한 핸들링으로 급격한 코너링도 매끄럽게 돌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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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에서는 기본 모드보다 20~35㎜ 높아져 주파 능력을 높이고, 시속 80㎞가 넘어가면 자동으로 차체가 25㎜ 낮아지는 능력도 갖췄다. 또한 주차 모드에서는 차체가 자동으로 35㎜ 낮아져 승객 하차나 짐 적재 때 편의성을 높여준다. 다만 마세라티 브랜드에서 기대할 수 있는 독특한 배기음이 없어서 조금 심심한 느낌도 있다. 가상의 배기음을 멋지게 만들어서 장착해주길 기대한다.

타이어는 세 종류가 마련된다. 앞 타이어는 255/50 R19부터 255/45 R20, 255/40 R21까지, 뒤 타이어는 255/50 R19부터 295/40 R20, 295/35 R21까지 마련된다. 기본 모델 타이어는 앞뒤 차이가 크지 않지만, 휠 인치가 커질수록 뒤 타이어의 사이즈가 크게 차이 난다.

배터리는 400V 시스템에 198개의 셀로 33개의 모듈을 구성했다. 105kWh 용량이고 150㎾의 급속 충전을 지원한다. DC 급속 충전 기준으로 약 29분 만에 배터리 잔량 20%부터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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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333㎞다. 최근 전기차들의 스펙에 비춰봐서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 사용에서는 300㎞ 이상만 되면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그래도 향후 모델 체인지 때는 주행거리를 더 늘리는 게 좋겠다.

뒤이어 개별적인 시승 기회에서는 트로페오 모델도 타봤다. 지난번과 달리 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차의 컨디션도 괜찮았다.

트로페오는 최고출력 530마력, 최대토크 63.7㎏·m로 폴고레의 558마력보다는 살짝 떨어지지만, 0→100㎞/h 가속 성능이 3.8초로 폴고레보다 0.3초 빠르다. 최고시속도 285㎞로 폴고레보다 65㎞ 더 높다. 특히 트로페오에만 있는 '코르사' 모드는 여느 스포츠카가 부럽지 않은 화끈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정지 상태에서 재빠른 가속을 돕는 론치 콘트롤도 코르사 모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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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엔진 성능을 갖춘 만큼 브레이크 성능도 남다르다. 브렘보 제품의 앞 6 피스톤, 뒤 4 피스톤 브레이크를 장착했고, 드라이빙 때도 강력한 제동성능이 돋보인다.

데이터상으로도 훌륭한데, 실제로는 트로페오 모델 특유의 사운드가 더 매력적이다. 폴고레의 사운드가 다소 심심하다면, 상대적으로 트로페오의 사운드는 웅장하다. 이 사운드 덕분에 가속할 때 폴고레보다 더 재밌다. 물론 과거 르반떼나 콰트로포르테, 기블리 등에 얹었던 페라리 엔진의 사운드보다는 살짝 밋밋하다. 마세라티는 배기음에 진심인 브랜드니까 앞으로는 조금 더 멋지게 튜닝해주길 기대한다.

그레칼레 폴고레의 가격은 1억5230만원부터 시작한다. 그레칼레 트로페오 시승차의 가격은 차량 가격만 1억6809만원이고 옵션 가격은 1271만원으로, 총 가격은 1억8080만원이다. 보통 전기차의 가격이 내연기관보다 비싼 것을 감안하면 폴고레의 가격이 더 낮은 것은 의외다. 그만큼 가격 면에서는 메리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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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차인 마칸은 내연기관이 단종돼 오로지 전기차로만 판매된다. 기본 모델 가격은 9910만원, 마칸 4 1억590만원, 마칸 4S 1억1440만원, 마칸 터보는 1억3850만원부터 시작한다. 그레칼레 폴고레(558마력)의 성능과 비슷한 마칸 터보(584마력)는 기본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옵션 구성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므로 어느 차가 더 저렴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옵션에서 특이한 것은 소너스 파베르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이다. 다른 완성차 브랜드에서 볼 수 없었던 희귀한 브랜드여서 시승 내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봤는데, 일단 내 귀에는 합격이다. 풍부한 저음과 섬세한 고음이 잘 조화돼 발라드나 팝, 록, 클래식 등 음악을 가리지 않고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전동화 시대는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먼 미래에 대세가 될 것이라는 건 이견이 없다. 중요한 건 전동화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고객에게 어떤 선택지를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마세라티가 동일한 모델에서 내연기관과 순수전기차를 내놓은 것은 그런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전동화 시대에도 마세라티의 영광이 지속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