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전 세계에서는 수많은 자동차 관련 행사가 열린다. 특히 1월에 열리는 CES는 본래 이름 그대로 소비자가전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모터쇼의 성격이 꽤 커졌다. 그에 따라 자동차 관련 매체들의 관심도 이 CES에 쏠린다.
그러나 진짜 자동차 마니아들에겐 이보다 더 중요한 행사가 있다. CES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도쿄오토살롱이 그것이다.
1983년 '도쿄 익사이팅 카 쇼(Tokyo Exciting Car Show)'로 개막한 이 대회는 최근 토요타를 비롯해 혼다, 닛산, 마쓰다, 스즈키, 다이하쓰, 스바루 등 일본 완성차 업체가 전시 내용을 풍성하게 꾸미면서 볼거리가 더욱 늘었다.
올해 1월 도쿄오토살롱에서는 독특한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토요타 자동차의 프레스 컨퍼런스에 '2025년 모리조의 톱 10 스토리'를 공개한 것. '모리조'는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토요다 아키오 회장의 예명으로, 톱 10 스토리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GR)을 이끄는 그의 올해 관심사를 축약해서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기자의 눈을 동그랗게 만든 건 “WRC에서 3관왕을 되찾아 한국 언론으로부터 축하받고 싶다”고 적은 9번 항목이었다.

사실 모터스포츠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든 토요타에게 한국 자동차업체는 오랫동안 라이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해 이변이 일어날 뻔했다. 현대자동차 월드랠리팀이 WRC 최종전을 앞두고 제조사 부문과 드라이버 부문에서 1위를 달리면서 2관왕이 유력했던 것. 토요타 입장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최종전에서 토요타 팀이 제조사 부문을 가져가고, 현대 팀은 티에리 누빌이 드라이버 부문 우승을 차지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아키오 회장은 2025년에 기필코 WRC 3관왕을 차지하겠노라고 다짐한 모양이다.
그의 다짐 때문인지, 올해 토요타 가주 레이싱은 WRC에서 펄펄 날았다. 지난 10월 중순 독일에서 열린 12라운드 '중부 유럽 랠리(Central European Rally)'를 마치고 이미 제조사 부문 우승을 확정 지었고, 드라이버 타이틀은 가주 레이싱 소속 드라이버끼리 겨루는 상황이 됐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모터스포츠를 바라보는 철학의 근본적 차이
많은 자동차업체가 전동화, 자율주행 등의 연구개발에 주력하기 위해 모터스포츠를 떠났지만, 토요타는 달랐다. 양산차 기반의 WRC를 비롯해 세계 최고의 내구 레이스 WRC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으며, 일본의 수많은 로컬 레이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토요타의 이런 행보는 창업주 토요타 키이치로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의 철학을 들어보자.
“자동차의 내구성과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기업은 자동차 레이스에 참가해 성능을 시연하고 경쟁해야 한다. 이는 차량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팬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는 자동차 제조 산업 발전에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토요타는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1975년 토요타 팀 유럽(TTE)을 창설, 본격적으로 랠리 모터스포츠에 참가했다.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궁극적인 목표는 '극한의 경쟁상황에서 찾아오는 다양한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차의 성능을 향상해 '더 좋은 차 만들기'라는 토요타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토요타는 현재 랠리 1 카테고리 차량이 일반인이 구매하는 차와 너무 다르다는 의견을 반영, 셀리카 GT-Four 이후 20년 만에 GR 야리스를 시판했다. 이 차는 한국에서도 마니아를 중심으로 시판 요구가 나오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주문하고 상당 기간 대기해야 할 만큼 인기가 폭발적이다.
GR 야리스의 출시에는 토요다 아키오도 큰 역할을 했다. 개발 과정에서 직접 테스트에 참여해 연구진에 의견을 전달했으며,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토요타 팬 행사에 아키오 회장이 직접 고객들을 태우고 쇼런에 나서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토요타가 이렇게 모터스포츠에 열정적으로 관심을 쏟는 건 '더 좋은 차 만들기'라는 뚜렷한 목표하에 이뤄진 것이며, 그 중심에는 아키오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이런 열정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지난 2024년 도쿄오토살롱에 참석한 아키오 회장의 연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토요타 사장과 일본 자동차공업협회(JAMA) 회장직도 물러났는데, 자동차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저씨가 되는 건 예전부터 꿈꿔왔던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늙은이'로 도쿄 오토살롱에 참여하게 됐다. 엔진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내 의견에 사토 사장이 공감을 해줘서 새로운 엔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이게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엔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