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담당 기자는 신차를 단순히 시승하는 것을 넘어서 서킷에서 고속으로 테스트해볼 기회가 종종 주어집니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다른 분야 기자들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죠.
최근에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AMG GT 익스피리언스 행사를 진행했고, BMW는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M FEST를 열었습니다. 마침 두 행사가 며칠 간격으로 연달아 진행되어 자연스럽게 비교해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신모델 체험에 중점을 준 AMG 행사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자동차 담당 기자로 살아오면서 많은 서킷 행사에 참여해왔는데요, AMG 관련 행사는 늘 흥미롭습니다. 고성능 모델인 만큼 일반 도로보다 서킷에서 훨씬 잘 어울리는 모델을 제대로 즐겨볼 기회니까요.
제 기억에는 AMG 행사가 진행된 이후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데, 작년에 '추첨'에서 떨어져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인 운전기술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속 운전 기회를 단순히 추첨으로 주는 게 맞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는지 초청장이 날아왔습니다. 행사의 주요 내용은 신형 AMG GT 55 4MATIC+ 시승과 함께 'E 53 하이브리드 4MATIC+' 및 'S 63 E 퍼포먼스', 고성능 오픈 톱 모델인 'SL 43' 및 'CLE 53 4MATIC+ 카브리올레' 체험입니다.
행사는 참가 모델 등장 퍼포먼스부터 시작했습니다. 스피드웨이의 넓은 공간을 이용해 다양한 모델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메르세데스-AMG 행사의 특징 중 하나죠. 좌우로 현란하게 움직이던 차들은 신모델인 AMG GT를 중앙에 두고 원을 그리며 주행하기도 합니다. 마치 신차의 등장을 축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두 대가 연달아 이른바 '원돌이 드리프트'를 펼칩니다. 주행을 마치면 모든 차가 멋지게 정렬하고, 무대 뒤에서 폭죽이 피어오릅니다. 메르세데스-벤츠다운 화려한 퍼포먼스입니다.
직접 체험하는 행사는 네 가지로 구성됩니다. 인스트럭터가 앞서고 참가자가 따라가는 '리드 앤 팔로우'가 다른 차량으로 두 번 진행되며, '오토 X'라고 명명한 짐카나 주행 그리고 인스트럭터가 선보이는 드리프트 주행을 차에 타고 체험하는 행사가 그것입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기자는 시작 전에 운전면허증 '검사'와 음주 측정을 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서킷과 운전면허증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운전면허증은 일반 도로에서 운전할 수 있는 자격증이지 서킷에서 주행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거든요. 서킷 주행 자격은 '서킷 라이선스'가 있는 이에게만 주어집니다. 따라서 이런 행사를 진행하려면 서킷 라이선스 발급까지 함께 이뤄지는 게 맞습니다.
최근 선보인 AMG GT는 2015년 1세대 모델 이후 10년 만에 등장한 것으로, 올해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국내 최초로 공개된 바 있습니다. 메르세데스-AMG의 '원 맨 원 엔진(One Man, One Engine)' 원칙이 적용된 V8 4.0ℓ 바이터보 엔진(M177)과 AMG 스피드시프트 MCT 9단 변속기의 조합으로 최고출력 476마력, 최대토크 71.4㎏f·m의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데요, 특히 최대 토크는 1세대 GT 라인업 중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를 발휘했던 GT R 모델과 동일한 수준을 자랑합니다.
강력한 엔진과 토크는 스피드웨이의 직선로를 매섭게 공략합니다. 참가 기자 중 가장 실력이 좋은 A그룹에 배정된 덕에 최고시속은 200㎞로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힘차게 달리다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특유의 '팝콘 사운드'가 심장을 자극합니다. 1세대 모델보다 더욱 향상된 코너링 실력에 “역시 AMG”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어서 타본 E 53 하이브리드 4MATIC+는 상대적으로 승차감이 말랑말랑합니다. 사운드도 AMG GT보다 순한 맛이죠. 고성능 GT카를 타고 높아진 눈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공도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할 겁니다. 585마력의 출력과 전기로만 달릴 수 있는 매력을 모두 느끼기에는 일반 도로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오토 X는 차의 성능과 함께 자신의 운전실력을 알아볼 절호의 기회입니다. 정해진 코스를 가장 빠르게 주행한 이에게는 상장이나 부상도 수여되죠. 가장 먼저 체험한 C조의 어느 기자는 38초대가 나왔다고 좋아합니다. 하루 전 진행된 행사의 최고 기록은 26초대였더군요. 우리 A조는 대부분 기자가 27초대에서 0.1~0.2초 차이로 순서를 다퉜습니다.
이날 최고 기록은 놀랍게도 B조에서 나왔습니다. 자동차 전문매체의 젊은 기자인데요, 알고 보면 실력이 좋은 친구인데 비교적 '뉴 페이스'라 B조에 배정됐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메르세데스-AMG 행사는 참가자의 '체험'에 초점을 두는 모습입니다. 더 많은 기자가 AMG 행사를 즐기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BMW M FEST는 '증명하는 자리'
BMW의 모든 행사는 영종도에 자리한 드라이빙 센터에서 진행됩니다. AMG 행사는 스피드웨이를 연간 며칠 정도 대여해 진행되기 때문에 이 행사를 제외한 날에는 'AMG 스피드웨이'라는 현수막을 볼 수 없습니다. 반면 BMW 드라이빙 센터는 BMW 그룹 내에서 트랙과 고객 체험 시설이 한곳에 자리한 전 세계 유일의 자동차 복합문화공간으로, 2025년 5월까지 총 169만 명이 방문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투입된 돈만 총 950여억 원에 이릅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전세와 자가의 차이”라고 하더군요.
BMW는 이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숙련된 운전실력을 갖춘 트랙 경험자가 지원해달라”라고 공지한 바 있습니다. 행사 당일 들어보니 미숙한 이들도 많이 지원했으나 다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이날은 모든 조가 '죽음의 조'였습니다.
행사는 조별로 배정된 차량을 시승하면서 진행됩니다. 기자는 맨 처음 M2를 탔고, 그다음 M3, M5, M4의 순서로 타봤습니다. 신형 M2와 M5는 처음 타보는 차였는데요, 모델별로 특징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M2는 작은 차체지만 날렵한 몸놀림이 돋보였고, M5는 무거워진 차체지만 폭발적인 가속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M4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M2부터 M5까지 모두 강력한 성능을 지닌 모델이지만, AMG 행사와 달리 차량 자체에 대한 설명은 따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운전실력뿐 아니라 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이 모인 행사였기 때문이죠. AMG 행사가 '체험하는 자리'라면, BMW M FEST는 '증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차의 성능이든, 운전실력이든 말이죠.
대신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는 빼놓지 않는 게 있는데, 시승 전 안전 운전 교육이 그것입니다. 반면 이번 AMG 행사에는 이런 게 없었습니다. 두 브랜드가 서킷 체험행사를 바라보는 철학 차이라고 할까요.
BMW를 서킷에서 체험하는 게 '고수'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BMW는 출입 기자들의 운전실력 향상을 위해 초보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드밴스드 프로그램으로 고수들이 더 좋은 실력을 갖추도록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기자는 2019년 BMW 인증 프로그램 1기에 뽑혀서 다양한 운전기술을 배운 바 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여러 신차를 시승하고 테스트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BMW는 M FEST에 이어 며칠 후 30주년 기념행사도 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열리는 행사라 비슷할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행사더군요. 특히 이 행사에는 한때 제가 소유했던 3세대 7시리즈(E38)가 자리를 빛냈습니다. 무대에서 이 차를 보는 순간, 소름이 확 돋더군요. 시대를 관통하는 명차를 한동안 소유했던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동차를 좋아하고 잘 아는 기자들이 열광하는 두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정리해봤습니다. 전 세계에서 오랫동안 라이벌로 겨뤄온 두 브랜드가 한국에서 앞으로도 멋진 대결을 펼쳐주길 기대합니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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