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까지 가장 강력한 람보르기니였던 무르시엘라고 LP640은 ‘차원이 다른 빠름’을 보여 주었다. 0~100km/h 가속 3.4초가 어떤 의미인지, 최고속도 340km/h가 또 어떤 의미인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안정적이면서 안락하기까지 하다. 심심하고 뚱뚱했던 최초의 무르시엘라고를 생각하면 외모도 성능도 제대로 람보르기니스럽다.
글,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포르쉐와 페라리보다 람보르기니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은 람보르기니의 어떤 점에 끌리는 걸까? 위로 열리는 잭 나이프 도어? 간디니가 빚어낸 늘씬하면서도 공격적인 스타일, 왠지 페라리보다 더 거칠 것 같은 이미지? 페라리에 대한 반감? 차별화된 성능?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람보르기니라는 이름이 멋있어서? 그 동안 람보르기니 보다는 페라리와 포르쉐를 더 좋아했던 필자가 람보르기니의 매력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파헤쳐 보려고 무르시엘라고 LP640을 만났다.
어렸을 적 문방구 포스터나 장난감으로만 볼 수 있었던 람보르기니가 국내에 공식 진출하던 날, 람보르기니를 드디어 서울에서 공식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감격으로 무척이나 흥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람보르기니가 포르쉐 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강남 거리에 나서면 아주 가끔씩 납작하게 엎드려 도로를 쓸며 지나가는 람보르기니를 만날 수 있게 될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한 번은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인데 뒤에서부터 엄청난 굉음을 토해내는 물체가 내 옆에 멈추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 존재가 무엇인지 확인하려 했는데, 놀랍게도 창 밖에는 어떤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목을 뽑아 둘러 보니 그제서야 내가 탄 차 옆 바닥에 말 그대로 납작 엎드려 나직이 숨을 고르고 있는 무르시엘라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잠시 후 불과 수 초 만에 그 짐승은 필자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필자가 그 동안 람보르기니를 운전해 본 건 초기 무르시엘라고와 디아블로 VT를 잠깐씩 몰아 본 것이 전부다. 두 차들 모두 수동 변속기 모델이었는데 너무나 극명한 차이를 보였던 두 모델 사이에서 참 혼란스러워 했었다. 팝업 형이 아닌 고정식 헤드램프를 단 후기형 디아블로 6.0 VT 모델은 한 마디로 돌 덩어리 같은 차였다. 클러치도 돌덩어리 같고, 엑셀도 스티어링도 한 없이 무거웠었다. 서스펜션은 스프링이 들어 있는지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거기다 시끄럽기는 지금까지 그렇게 시끄러운 엔진 소리는 처음 듣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반면 노란색 무르시엘라고는 스포츠카인지 승용차 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클러치도 가볍고 운전이 쉬우면서 승차감도 좋았다. 이런 상황을 접하다 보니 필자의 입에서는 아우디가 황소를 망쳐 놓았다는 말이 자연스레 세어 나왔다. 디아블로의 옆 모습을 보면서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웠던 필자 앞에 등장한 무르시엘라고는 그냥 반듯하게 깎아 놓은 육면체 기하학 교제 같아 보였다. 단지 빠르기만 한……
4년이 흘러 무르시엘라고는 LP640으로 진화했다. 아, LP. 그렇다, LP가 돌아왔다. 람보르기니는 과거 디아블로의 전신인 카운타크(쿤타치?) 때 LP400, LP500 이라는 이름을 썼었다. 그랬던 LP가 디아블로를 건너 뛰었다가 다시 돌아 온 것이다. LP라는 이름 자체가 성격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람보르기니가 예전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일 것 같아 반가웠다.
잠깐 LP 이야기를 하자면 1966년 등장한 미우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람보르기는 그 아름다운 미우라를 발표하면서 P400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P는 ‘Posteriore’의 약자로 엔진을 뒤쪽에 얹었다는 뜻이고 400은 배기량을 의미한다. 수퍼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 미우라는 V12 4리터 345마력 엔진을 미드십에 가로로 배치했었다.
미우라의 시대가 끝나고 카운타크의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미우라에 가로로 얹혔던 V12 4리터 엔진이 카운타크에는 세로로 얹힌 것이다. 그러면서 P400이 LP400이 되었다. L은 ‘longitudinale’의 약자로 세로로 엔진을 얹었다는 의미다. 이 때부터 LP의 시대가 열려서 4리터 엔진은 LP400, LP400S, 5리터 엔진은 LP500S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다가 디아블로 시절이 되면서 LP라는 이름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고, 아우디 산하에서 새롭게 태어난 무르시엘라고도 그냥 황소의 이름을 붙여서 불리게 되었다. 뒤 이어 등장한 베이비 람보 가야르도에도 그냥 황소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랬던 무르시엘라고가 LP라는 이름을 달고 새롭게 등장했으니 과연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카운타크의 LP500은 배기량이 5리터라는 의미였지만 무르시엘라고의 LP640은 배기량이 6.4리터라는 의미가 아니라 출력이 640마력이라는 의미다. 후에 등장한 무르시엘라고 LP670-4, 가야르도 LP560-4에서도 출력을 의미한다. 물론 엔진을 뒤쪽에 세로로 배치했다는 LP(longitudinale Posteriore)의 의미는 동일하다.
그런데 무르시엘라고와 가야르도 사이에는 또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미드십 수퍼카들은 엔진을 최대한 차체 중앙에 배치하고 뒤 차축에 쉽게 파워를 전달하기 위해 시트 뒤에 엔진을 배치하고 그 뒤에 변속기를 배치하는 것이 보통인데, 무르시엘라고는 변속기가 엔진 앞쪽에 위치한다. 엔진이 보다 더 뒤쪽으로 배치된 셈이다. 이런 배치는 카운타크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람보르기니 측에서는 중량 배분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는데, 결국 엄밀히 말하면 미드십 보다는 리어 엔진에 좀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하지만 포르쉐 911은 엔진이 뒤 차축보다 더 뒤쪽에 위치해서 RR이라고 말하지만 람보르기니는 그 정도는 아니고 적어도 뒤 차축보다는 앞쪽에 엔진이 위치하므로 일부에서는 미드-리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구조 때문에 엔진룸을 열어 보면 12기통의 길다란 엔진이 왼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할 기회가 흔하지 않다 보니 설명이 장황해 졌다. 이제 LP640에 주목해 보자.
우선 LP640은 초기 무르시엘라고에 비해 월등히 멋있어진 외모가 마음에 든다. 바닥이 평평했던 앞 범퍼의 좌우 흡기구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앞 모습이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도어 뒤 아래쪽에 위치하는 공기 흡입구도 더 돌출시키면서 그 앞쪽의 스커트도 더 넓게 펼쳤다. 재미있는 것은 왼쪽의 공기 흡입구는 엔진 냉각 계통으로 공기를 보내지만 오른쪽의 것은 막혀 있다는 것이다. LP640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의 휠도 함께 선보였다.
리어 램프는 더 커지면서 그 속에 날개가 겹친 모양의 독특한 구조물을 더해 더욱 멋스럽게 꾸몄고 그 아래에는 LED를 박아 넣었다. 범퍼 아래에는 디퓨저를 더하면서 배기 파이프도 가운데 하나로 통합했다.
카운타크와 디아블로를 잇는 강렬한 쐐기 형상의 스타일이 무르시엘라고에까지 연결 되긴 했지만 처음의 무르시엘라고는 너무 밋밋했었는데, 살짝 바뀐 LP640은 훨씬 더 공격적이고 예리하며 강렬한 인상을 품게 되었다.
인테리어에서는 시트가 조금 더 넓어지고 헤드레스트 부분의 모양이 살짝 바뀐 것을 제외하면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 새로운 가죽 스티치가 적용되고 MP3를 지원하는 켄우드 오디오와 DVD가 재생되는 와이드 모니터가 더해졌다. 시트는 큰 차이는 모르겠는데 살짝 더 편해진 느낌이다.
LP640에는 6.2리터에서 6.5리터로 배기량을 키운 V12 엔진이 미드십에 얹힌다. 가변 밸브 타이밍이 흡기와 배기에 모두 적용되고 고회전을 위한 캠샤프트가 개선되는 등의 기술적인 변화까지 더해져서 LP640은 기존의 580마력보다 60마력이나 더 높은 640마력을 8,000rpm에서 뿜어 내게 되었다. 최대토크는 6,000rpm에서 660Nm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수동 6단과 함께 반자동 변속기인 6단 e-기어가 제공되는데 전세계적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고객들은 e-기어를 선택한다고 한다. e-기어는 페라리의 F1 변속기나 BMW의 SMG와 같은 수동 변속기 기반의 반자동 변속기이다. 구동 방식은 디아블로 시절 비스커스 트랙션을 줄인 VT로 명명되었던 풀타임 4륜 구동 방식을 이어 받았다. 기본적인 앞 뒤 구동력 배분은 30:70이지만 상황에 따라 거의 100%에 가까운 구동력을 한쪽으로 보낼 수 있다.
자 이제 무르시엘라고 LP640에 올라 달려볼 시간이다. 수 많은 자동차 매니아들이 꿈꾸는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의 잭 나이프 도어는 평평하게 숨어 있는 사각형 손잡이의 동그란 부분을 살짝 누른 후 반대쪽을 들어 올리면 락이 풀리고 도어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어려울 것은 없는데도 처음 해 볼 땐 상당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도어는 수직으로 올라가므로 옆 차와 아주 가깝게 주차되어 있어도 문을 활짝 열고 타고 내릴 수 있다.
시트는 거의 땅바닥수준으로 낮게 배치되어 있어서 한 참을 내려 앉아야 한다. 다행이 턱이 심하게 높지 않아 로터스 수준의 곡예가 필요치는 않다. 도어는 다시 손을 뻗어 팔걸이 부분을 잡고 아래로 당겨 내려서 닫는다. 반대로 실내에서 도어를 열 때는 손잡이를 당기면서 팔걸이 윗 부분의 가죽을 팔꿈치로 살짝 들어 올리면서 열면 쉽게 열 수 있다.
시트는 꽤나 덩치 큰 운전자가 앉아도 될 만큼 여유가 있으면서 좌우에 높게 솟은 날개가 몸을 잘 지지해 준다. 시트 조절은 모두 수동이며 등받이 각도는 다이얼을 돌려서 조절한다. 스티어링 휠도 수동으로 레버를 풀어 길이와 위 아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적당한 위치로 조절하면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이 상당히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특이하다.
데시보드를 감싼 가죽이 아주 단단하게 밀착되어 있는 것이 아주 매력적으로 보인다. 스포티하면서 고급스럽다. 천정은 알칸타라로 덮었다. 센터페시아 우측에 있는 동반자를 위한 손잡이 비슷한 바는 사실 아우디의 터치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멋지다. 무르시엘라고는 가야르도에 비해서 실내에서 아우디의 터치가 많이 발견되지 않는 점도 무척 맘에 든다.
안전벨트는 도어 쪽에서 당기는 것이 아니고 두 시트 중앙 쪽에서 당겨서 반대 방향으로 채결한다. 자세를 잡고 앉고 보니 운전석의 시선이 차의 정면이 아니다.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동반석은 왼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어 두 사람이 서로 한 점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앞 트레드에 비해 두 트레드가 훨씬 넓은 구조상 시트 배치가 이렇게 된 듯 보인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키를 꽂고 전원을 넣으면 새롭게 개선된 계기판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고등이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뭐 그리 확인할 게 많은지. 그냥 기어가 중립에 있는 지만 확인하고 키를 돌리면, ‘기잉’하는 전자음이 1초 정도 들리다가 갑자기 ‘펑’하고 시동이 걸린다. 잠든 황소가 깨어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링 상태에서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무르시엘라고 LP640은 아이들링 시 비교적 조용한 편에 속한다. 과거 디아블로는 아이들링 때도 울부짖음이 장난이 아니었었다. 특히 LP640은 스로틀의 열린 정도에 따라서 배기 사운드가 두 단계로 조절된다. 그래서 저회전을 사용하면서 달릴 때는 비록 속도가 높아도 다소 덤덤한 사운드가 흘러 나오다 엑셀을 깊이 밟는 순간 날카롭고도 강렬한 소프라노 사운드가 터져 나온다.
시트 왼쪽에 있는 핸드 브레이크는 들어 올려서 잠근 후 다시 내려 놓는 방식이다. 브레이크를 풀 때는 레버를 들어 올린 후 다시 한번 살짝 들어 올렸다 내리면 풀린다. 기어는 스티어링 휠 뒤쪽에 있는 패들로만 조작이 가능하다. 오른쪽을 당기면 시프트 업, 왼쪽을 당기면 시프트 다운, 양쪽을 동시에 당기면 중립이다. 후진은 패들이 아닌 스티어링 휠 좌측에 있는 동그란 R 버튼을 누르면 된다.
e-기어 역시 크리핑이 없어 1단에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엑셀을 밟으면서 출발해야 한다. 만약 주차나 U턴을 하려고 전진과 후진을 번갈아 가면서 하려면 패들 당겼다 왼쪽 버튼 눌렀다 하느라 좀 정신이 없어진다.
e-기어는 별도의 모드 선택 없이 수동모드만 제공된다. 급가속이 아닌 일상적인 주행에서도 매번 자신이 원하는 회전수에서 기어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반면 급가속으로 레드존까지 다 사용할 때는 레드존에 가면 자동으로 시프트 업이 이루어진다. 최고출력이 8천 rpm에서 나오지만 자동으로 시프트업 되는 시점은 7,500rpm을 살짝 넘기면서다. 그 말은 변속할 때까지 전혀 출력이 떨어지는 일 없이 레드존까지 밀어 부치는 힘이 대단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동모드는 없지만 황소를 더욱 과격하게 몰아 붙이는 ‘코르사(CORSA)’ 모드가 있다. 센터 터널 가운데 동그란 패널이 있고 그 안에 세 개의 버튼이 있는데 왼쪽 버튼을 누르면 ESP의 개입이 차단되고 엑셀에 대한 응답성이 높아지고, 변속 시간이 줄어든다.
다양한 회전수에서 기어를 변속해 보면 매번 살짝 충격이 전달된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매끄럽게 변속이 돼 변속 충격은 거의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나마 정확한 타이밍에 순간적으로 엑셀을 떼면서 패들을 당기고 다시 바로 엑셀을 밟으면 훨씬 더 매끄럽게 변속이 가능하다. 이 때 정말 순식간에 엑셀을 뗐다 다시 밟아야 충격을 없앨 수 있다.
6단에서 100km/h로 주행할 때 회전수는 불과 2,250rpm 정도다. 4,500rpm에서 200km/h로 달렸다. 300km/h는 계산해 보면 나오겠지.
스포츠카로서는 거대하다고 할 수 있는 휠 베이스 2,665mm, 길이 4,610mm의 덩치에 640마력을 뿜어내는 이 황소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용기 있게 엑셀을 끝까지 밟으면 황소가 얼마나 순식간에 무섭게 돌변하는 지를 실감할 수 있다. 2단으로 바뀌기 무섭게 100km/h를 돌파하므로 그 순간이 3.4초인지 아니면 1초인지조차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방금 100km까지 가속하는데 3.4초 걸린 게 맞나 하고 고민하는 사이 황소는 200km/h도 벌써 돌파해 버렸다. 그제서야 앞쪽 도로가 얼마나 여유 있는지 살펴보고 어느 정도 여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벌써 250km/h도 지나고 있다.
당황스럽다. 이렇게 빨리 이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계기판의 속도계가 차보다 더 빨리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나면 이 가속력의 끝이 어디일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과연 오늘 300km/h를 넘게 달려 볼 수 있을까도 궁금해진다.
아뿔싸. 300km/h를 넘겨 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벌써 저 만치 뒤로 사라지고 있다. 가속력이 줄어 들지 않는다. 이제 최고속도에까지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 앞쪽에 조금의 여유가 더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적당한 시점에서 브레이클 밟았을 때 기록한 속도는 제원상 최고속도에 살짝 못 미치는 속도였다. 필자는 방금 ‘차원이 다른 빠름’의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최고속도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좀 더 긴 도로였다면 아마 제원상 최고속도를 훨씬 넘긴 숫자를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LP640은 디지털로 속도를 보여주진 않지만 트립컴퓨터에 방금 기록한 최고속도가 기록으로 남게 되므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도 다른 수퍼카로 300km/h를 넘겨 본 적이 있었지만 300km/h를 넘어서 이렇게 맹렬하게 달리지는 못했었다. LP640은 속도의 새로운 차원을 선사해 준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곁눈질로 살짝 확인한 것은 5단 7,500rpm에서 300km/h를 찍고 6단으로 변속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6단에서도 가속력이 지칠 줄 몰랐던 것이다. 황소의 뚝심이 이런 빠른 속도에서도 실력을 발휘하는구나. 아 참고로 LP640의 제원상 최고속도는 340km/h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그 속도에서도 크게 불안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면서 편안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포르쉐 911 터보도 300km/h를 훌쩍 넘기지만 편안하지는 않다. 안정성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불안한 느낌이 든다. 휠베이스 2,350mm의 911 터보와 30cm정도가 더 긴 2,665mm의 무르시엘라고 LP640이 주행성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반면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음에도 브레이크의 안정성에서는 의문이 생긴다. 지긋이 브레이크를 밟을 땐 목뒤의 피가 앞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하게 브레이크가 작동됐지만, 고속에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뒤가 심하게 흔들리는 현상이 있었다. 시승차의 상태가 안 좋은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의외였다. 그리고 이번 시승에서는 와인딩을 달려 보지는 못했다. 상당한 그립을 확보한 것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무르시엘라고 LP640으로 와인딩을 달려 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무르시엘라고 LP640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른 차다. 빠르고 매끄럽다. 다시 쓰기 시작한 LP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반면, 쏟아지는 시선의 화살을 담담하게 맞을 각오만 되어 있다면 평소에 타고 다녀도 많이 피곤하지 않을 만큼 편안하기까지 하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람보르기니의 변화는 여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포르쉐와 페라리를 더 좋아하고, 만약 람보르기니 중에서 좋아하는 모델을 고른다면 당연히 디아블로여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평소의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그럼 주위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에 대한 답변 몇 가지를 덧붙이자. 우리나라에 이런 차로 달릴 만한 도로가 있는가? LP640은 쏘나타가 180km/h에 도달할 정도의 거리면 거의 300km/h 가까이 도달하므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도로는 의외로 많다. 물론 도로의 속도제한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는 공사판이나 과속방지턱을 못 넘지 않느냐? 물론 수퍼카 중에는 과속방지턱을 부모를 죽인 원수보다 더 미워하는 모델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람보르기니 모델들은 평소엔 바닥을 쓸고 다니지만 과속 방지턱을 만나면 변신할 수 있다. 센터 터널에 있는 버튼을 한 번 눌러주면 순간적으로 앞이 3cm 들리면서 여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 그래도 길은 가려서 다니는 게 좋겠지.
▶ [rpm9]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 시승사진 고화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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