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지만, 사실 이번 싸움은 붙여 보는 재미가 만만찮다. 오는 18일 르노삼성이 뉴 SM5를 출시하게 되면, 이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 쏘나타와 어떻게 싸워 나갈 지, 그리고 그 싸움으로 인해 소비자는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서다. 그런데다가 이번에 직접 시승해본 SM5의 경쟁력 또한 만만치 않다. 이쯤 되면 둘 간의 전면전이 불가피해 보이는데, 쏘나타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SM5의 반격에 현대가 어떻게 대응할 지도 관전의 포인트다.
글, 사진 : 박기돈 (RPM9 팀장)
서울에 내린 폭설을 피해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로 뉴 SM5를 시승하러 내려갔다. 그런데 왠걸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제주의 하늘은 먹구름이 덮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막 시승을 시작하자 진눈깨비가 날리고 빗방울도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 큰 비나 눈은 아니고 잠깐 날리다 마는 정도여서 시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환상적인 제주의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SM5의 멋진 사진을 담을 수는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그리 길지 않은 르노삼성의 역사를 생각하면 SM5는 아직도 애송이인 듯 생각되지만 SM5도 벌써 3세대까지 이른 어엿한 청년이다. 처음 등장한 게 1998년, 그리고 지난 2005년 새로운 2세대를 선보인 이후, 이번에 또 다시 완전히 새로운 3세대 SM5를 선보였다. 새로운 것이라면 이번에 등장한 뉴 SM5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의 라구나와 플랫폼을 공유하긴 하지만 이전 모델들과는 달리 르노삼성이 직접 디자인을 맡아 라구나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르노삼성만의 색체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미 몇 주 전 르노삼성 디자인센터를 방문해 뉴 SM5 실차를 직접 본 적이 있었는데, 첫 인상은 너무나 수수했다. 최근 화려함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쏘나타와 비교하면 차분한 인상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르노삼성 측은 이를 과하지 않은, 우아함과 세련된 디자인이라고 주장했었다. 화려함과 세련됨은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셈이다.
디자인만 놓고 본다면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쏘나타를, 차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SM5를 선택하면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택의 문제가 디자인에만 달린 것은 아니므로, 실제 품질과 성능은 어떠할지 많이 궁금했는데, 불과 몇 시간에 걸친 짧은 시승이라 뉴 SM5의 모든 면을 파악할 순 없었지만, 이번 시승을 통해 나름대로 그 궁금증의 많은 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르노삼성이 뉴 SM5를 개발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실용적인 부분에서의 성능 최적화와 웰빙 드라이빙을 실현해, 진정한 프리미엄 패밀리 세단을 완성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제된 가치를 중시해왔던 지금까지의 SM5들과 그 방향성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됨을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차분함이 강조되었다. 예리한 선을 많이 사용하는 최근 추세와는 달리 곡선을 많이 사용하면서 우아함, 세련된, 신중함을 강조했다. 엔진 후드 전체를 라운드로 처리하고 그 아래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도 동심원 개념의 라운드로 배치해 우아하게 다가온다. 오래 된 토요타 셀리카도 보이고, 사브도 보이는데, 최근에는 흔히 볼 수 없었던 라인이다. 헤드램프에는 바이-제논 라이트, 조향 각도에 따라 연동되는 액티브 코너링 라이트와 다이나믹 레벨링이 통합된 바이-제논 어뎁티브 헤드램프가 적용되어 야간 주행에서의 시야 확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옆모습을 보면 상당히 길어 보이는 비례를 하고 있다. 예리하거나 스포티하진 않지만 낮게 시작해서 뒤로 가면서 높아지는 심플한 캐릭터 라인으로 인해 역동성도 어느 정도 강조되었고, 지붕선도 비교적 날렵하게 흐른다. 시승차에는 디자인이 화려한 10스포크 17인치 휠이 장착되었다.
차체 크기가 4,885×1,830×1,490mm, 휠 베이스가 2,760mm로 기존 SM5에 비해서는 길이와 높이가 조금 짧아지고, 폭은 조금 넓어졌다. 쏘나타와 비교하면 길이는 오히려 조금 길과 휠베이스와 폭은 조금 짧다.
뒷 모습은 단순한 라인에 기교를 살짝 섞어, 렉서스를 많이 닮았다는 평과 함께 많은 이들로부터 매력적이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하지만 앞모습과 뒷모습이 서로 유기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진 못하고 있다. 리어 램프를 장식하는 기교가 헤드램프에도 살짝 가미되었더라면 앞모습도 훨씬 더 생기 있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테리어는 기대만큼 품질이 좋고 화려함도 어느 정도 강조되었다. 데시보드의 플라스틱 질감이 우선 눈에 띄는데, 최고급인 슬러시 타입의 소재가 적용되어 질감이 우수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살아 있다. 도어 핸들과 일부 부품에 제한적으로 사용된 크롬도 세련된 멋을 더한다. 데시보드 가운데로 가로지르는 부분과 센터페시아, 센터 터널에 적용된 우드 그레인은 짙은 색이라 나무의 느낌은 잘 살지 않지만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센터페시아 모니터 좌우의 우드 그레인이 둥글게 꺾여 들어가는 모습이 특이하다.
고화질 7인치 모니터에는 아이나비 네비게이션이 적용되어 있어 네비게이션의 사용성은 나무랄 데가 없다. 터치 스크린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센터 터널 아래쪽에 위치한 조이스틱 컨트롤러로도 조작할 수 있다. 오디오는 10 스피커 보스 시스템에다 알카미스 3D 입체 음향이 적용되어 있어 동급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프리미엄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동급최고로 실현한 뛰어난 NVH 성능과 어울려 클래식 음악의 섬세한 부분까지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국내 최초로 적용되어 차 안을 향기로 채워주는 퍼품 디퓨저는 모니터 바로 아래 마련된 수납공간에 두 가지의 향수를 담고 있어서, 원하는 향수를 그때그때 선택할 수도 있고, 발산되는 강도도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향수는 명품 ‘불가리’ 등에 향수를 공급하는 프랑스 로베르타사 제품으로 출고 시 2가지가 장착되지만 추가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총 6가지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향수 사용 기간은 약 3개월 정도다.
센터 페시아 디자인은 SM3와 유사한데, 버튼과 글씨들이 여전히 작긴 하지만, 이제 눈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폭이 넓어져서 그런지 옹색하지 않고 우아한 느낌이 묻어난다. 에어컨은 트림에 따라 2존 혹은 3존-자동 에어컨이 적용된다. 동급 최초로 적용된 3존-에어컨의 경우에는 뒷 좌석 온도를 별도로 조절할 수 있다.
시트에는 마시지 기능과 세분해서 조절할 수 있는 요추 받침 기능이 적용되었다. 앉은 느낌은 편안한 타입으로 여유와 웰빙에 맞게 세팅한 듯하다. 뒷좌석 공간도 동급 차량과 유사하게 넉넉한 편이다. 중형차로서는 처음으로 뒷 유리뿐 아니라, 뒷 좌석 옆 유리창에도 햇빛 가리개를 장착했다. 뒷 좌석에 탑승한 가족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뉴 SM5에도 파노라마 썬루프도 적용되어 앞 뒤 좌석 모두에서 넓은 개방감을 얻을 수 있다. 루프 개방은 다이얼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센터 터널에 있는 버튼으로 조작하는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하이패스 시스템, 냉장기능 글로브박스, 배터리의 수명을 1.5배 연장해 주는 배터리 콜드 박스 등 다양한 편의 장비들이 대거 적용되었다.
엔진은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가 공동 투자하고 닛산이 개발한 2.0 CVTC II 엔진으로 닛산 엑스트레일, 르노 라구나 등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최고출력 141마력/6,000rpm과 최대토크 19.8kg.m/4,800rpm을 발휘한다. 르노삼성에서 신차를 내 놓을 때마다 매번 현대차와의 출력 비교가 이슈가 되지만 이번에도 역시 르노삼성에서는 단순 출력경쟁보다 실용영역에서의 효율성에 초첨을 맞추어 개발했다고 밝혔다. 쏘나타의 출력이 165마력/6,200rpm이니 출력 면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승해 본 결과 일상적인 주행에서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히 뉴 SM5에는 닛산이 자랑하는 무단 변속기 CVT가 장착되어 있어 안락함과 효율성에서 유리해 엔진에서의 열세를 어느 정도는 커버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CVT는 연비에서는 득을 본다 하더라도 힘이 부족해 주행의 재미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닛산이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최신 엑스트로닉 변속기들은 연비와 운전의 재미를 모두 확보한 매력적인 제품이다.
과격한 가속이 필요하지 않은 일상에서는 부드럽게 엑셀을 조작하는 것 만으로 매끄럽고 연비가 뛰어난 주행이 가능하고, 스포티한 주행을 원할 경우 수동모드로 전환하면 자동 6단 변속기 못지 않은 스포츠 주행이 가능하다. 특히 동급 자동 6단 변속기의 경우 회전수 매칭 기능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멀티트로닉에는 회전수 매칭 기능이 있어 기어를 내려 가속하는 과정이 더욱 매끄럽게 진행된다.
중문 단지에서 출발한 시승 코스에는 제주 해안도로와 일반 지방도로, 그리고 왕복 4차선 고속화 도로를 포함하고 있어서, 비록 길지 않은 시승이긴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주행을 해 볼 수 있었다.
CVT의 특성상 급가속을 하더라도 기어가 변속되는 포인트를 확인할 수는 없다. 회전수를 레드존 가까이까지 끌어 올리면서 가속한 후에는 회전수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속도를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가속 실력은 쏘나타보다 조금 부족하거나 혹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기어 변속에 따라서 회전수가 오르내리는 쏘나타에 비해 회전수를 고정하고 속도를 높이다 보니 엔진음이 크고,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따라서 굳이 급가속이나 스포티한 주행을 하고자 한다면 꼭 수동모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아직 제대로 길이 들지 않은 탓으로 잠깐씩 만나게 되는 직선도로에서 내본 최고속은 170km/h 부근이었지만 본격적인 직선로를 만난다면 그 이상의 가속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서스펜션은 기존 SM5에 비해서 안정감이 향상된 느낌이다. 하체에서 전달되는 느낌은 상당히 경쾌한데 노면 대응력이나 코너에서의 안정감이 많이 높아졌다. 쉽게 말하면 출렁거리는 느낌이 잘 절제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핸들링 특성은 패밀리 세단으로 무난한 수준이고 제동력은 기대 이상으로 충분히 높다. 기본 가치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르노삼성 측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세대를 달리하는 만큼 분명 한 차원 성숙된 하체를 가지게 되었다.
뉴 SM5는 모든 면에서 여유와 기본 가치를 강조해서 개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쏘나타가 조금 더 자극적이고, 화려해서 젊은이들에게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겠지만, SM5가 선보인 절제와 균형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임은 틀림없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다.
동급에서 최고의 경쟁 모델 두 가지가 이처럼 확연하게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경우도 드물어 보인다. 한 때 유행했었던 광고 카피처럼 ‘10년을 타도 1년 탄 듯한, 1년을 타도 10년 탄 듯한’ 지속 가능한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 자극적인 화려함보다는 느림과 여유의 웰빙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확실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뉴 SM5에서 이런 웰빙의 치를 더욱 빛나게 해 줄 다양한 사양들을 한번 모아보자. 우아한 감성 디자인에서 시작해서, 높은 정숙성을 실현한 넓은 실내 공간, 운전자의 피로를 풀어주는 운전석 마사지 시트, 쾌적한 실내 공기를 유지해 주는 2모드 삼성 플라즈마 이오나이저 공기 청정기, 실내를 향기로 채워주는 퍼품 디퓨저, 뒷좌석까지 원하는 온도를 설정할 수 있는 3-존 풀오토 에어컨, 뛰어난 개방감을 즐길 수 있는 파노라마 썬루프,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최고급 보스 오디오와 알카미스 3D 입체 음향 시스템 등. 그 면면이 모두 화려하다.
마지막으로 가격에 대한 부분도 논란이 될 듯하다. 기본형 PE 2,080만원에서부터 최상급 RE 2,650만원으로 구성된 가격만 단순하게 본다면 쏘나타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옵션 등을 따져 볼 때 SM5의 가격이 훨씬 더 경쟁력이 높다는 분석이다. 좀 더 좋은 차를, 더욱 저렴하게 생산해서 최적의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은 기업의 기본적인 책임이다. 만약 가격 때문에 SM5가 더 선전하게 된다면 현대차의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르노삼성 측의 가격 전략은 많은 지지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르노삼성 뉴SM5 가격과 사양, 제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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