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에는 4007이라는 SUV가 있다. 그 실체는 미쓰비시 아웃랜더의 푸조 OEM버전. 따라서 중형세단 407의 파생모델도, 제대로 된 푸조 SUV도 아니다.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푸조는 미쓰비시에서 사온 4007로 시간을 버는 한편, 다른 회사들과 확실하게 차별화 될만한 자체 제품을 준비했다. 푸조 308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든 크로스오버, 3008이 그것이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
사진 / 민병권, 박기돈 (www.rpm9.com 팀장)
3008은 SUV와 MPV의 요소를 겸비했다. 한껏 전진한 앞유리, 높은 좌석배치, 넓은 실내공간, 위아래로 나뉘어 열리는 테일게이트, 그리고 푸조가 강조하는 `오프로드 주행능력`이 차종 구분을 어렵게 한다.
일단 외관은 SUV보다 MPV에 가까워 보인다. ‘오프로드도 달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장식적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투싼ix보다는 뉴카렌스와 같은 부류로 느껴지는 것. 나란히 세워놓으면 투싼ix와 비슷한 덩치인데, 치수상으로는 3008의 폭이 조금 넓고 나머지 치수는 모두 근소하게 작다. 흙 길에 안 어울리기로 말하자면 도토리 키 재기가 되겠지만, 앞바퀴 축까지 뻗은 앞유리와 사람을 넉넉하게 태우기 위해 부풀린 것 같은 살집이 3008을 좀더 부적격으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혐의를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물증은 4륜 구동 모델이 아예 없다는 것. 노면에 따라 주행모드를 바꿀 수 있는 ‘그립컨트롤’ 기능을 준비하긴 했으나 앞 바퀴 굴림인 것은 마찬가지이며, 국내에 상륙한 선발대에는 이 기능조차 빠져있으므로 적어도 이번 시승에서는 SUV라는 주장이 약하게 들린다. 어쨌든 수입사에서는 6월에 출시될 7인승 MPV ‘5008’에까지 ‘크로스오버 패밀리 SUV’라는 명칭을 붙여둔 모양이다.
시동키는 리모컨 일체형의 폴딩식인데, 도어록을 해제하면 사이드미러가 펼쳐지면서 깜빡이가 스트로보 마냥 점멸하는 푸조 특유의 환영식을 거행한다. 사이드미러 아래쪽으로는 퍼들램프가 켜지고 헤드램프도 점등된다. 각 도어를 열면 내장된 조명들 역시 땅 바닥을 비춰주고, 차에 오른 뒤에도 발공간 조명과 헤드콘솔 스폿 조명 등 차급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접대를 받게 된다.
일전에 시승한 BMW X1이 예상보다 낮은-승용차와 다름없는-시트 포지션으로 놀라움을 준 것에 비해 3008은 딱 예상한 만큼이다. 일반 승용차와 비교하면 확실히 시야가 트여있다. 운전자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308보다 10cm가 높아진 덕분이다. 엉덩이를 수평이동 하듯 올라타기에도 딱 좋은 높이지만 심하게 누운 앞유리로 인해 탈 때는 머리가 거치적거리는 기분. 일단 앉고 나면 자세가 자연스럽고 머리 공간도 여유롭다.
앉는 위치가 높아졌지만 운전자에 대한 스티어링휠의 각도는 308과 같다. 운전자세만큼은 해치백과 다름없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컬럼에 유니버설 조인트를 하나 더 추가해 일부러 맞춘 것.
시트는 예전 푸조차에서 볼 수 있었던 ‘모양만 과격했지 실제로는 잘 뭉개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측면 지지부가 제법 단단하다. 물론 차량성격에 맞추었으니 타고 내리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고, 허벅지에 통증을 유발할 만큼 좁지도 않다. 조절은 모두 수동식. 등받이 각도조절레버가 뒤에 치우쳐있고 요추받침 조절도 팔을 꺾어야 하지만 낯선 배치는 아니다. 머리받침은 거리를 조절할 수 있어 좋다. 시트는 앞뒤로 19cm를 움직일 수 있는 등 조절 폭이 크고 스티어링 컬럼도 각도와 깊이 조절이 모두 가능하다.
푸조는 3008의 운전석을 전투기 조종석처럼 만들었다. 그러한 컨셉이나 디자인 해몽은 흔하지만 이만큼 분위기를 낸 예는 드물 것이다. 시동을 걸면 계기판 위쪽에서 투명 스크린이 지이잉 하고 일어선다. 전투기 파일럿들이 계기를 내려다 보지 않고도 비행할 수 있도록 앞유리에 필요한 정보를 뿌려주는 장치- HUD(헤드 업 디스플레이)다. 앞 유리에 직접 반사시키는 BMW의 방식에 비해 거추장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전투기 같은 느낌은 이쪽이 월등하다.
HUD에는 기본적으로 현재 속도가 표시되고, 크루즈컨트롤의 작동 여부와 설정 속도가 나온다. 그리고, 차간거리 경보시스템을 켜면 그와 관련된 정보가 추가로 뜬다. 전방에 차량이 감지되면 차 모양 그림이 나타나고, 설정된 거리(시간 차이)보다 가까워지면 삼각형 경고표시가 점멸한다.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시키고 싶어지지만 아쉽게도 발사 버튼이 없다.
3008은 전방 레이더로 앞차를 인식할 수 있고 크루즈 컨트롤도 가능하지만, 이 두 가지를 합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기능은 제공하지 않는다. 크루즈컨트롤과 차간거리 경보시스템을 모두 작동시킨 상태에서도 앞차와의 거리를 경고해줄 뿐, 차 스스로 속도를 줄이지는 않는 것이다. 이 가격대 수입차에서 ACC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은 아쉽다. ‘기술 쓰는 김에 조금만 더 쓰지’라는 생각이랄까. 아무튼 HUD에 표시되는 경고표시는 주목성이 높아 효과적이다.
HUD의 시인성 조절을 위한 높낮이, 밝기, ON/OFF 버튼과 차간거리 경보장치 관련 버튼들은 비상등 버튼과 함께 센터페시아 위쪽에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다시 한번 항공기의 느낌인 토글스위치. 미니의 것이 프로펠러 비행기의 그것 같은 분위기라면 3008의 것은 SF 분위기랄까? 조작감도 좋다.
경사지게 드러누워 높다란 센터콘솔로 이어지는 센터페시아 역시 ‘콕핏’ 분위기에 일조를 한다. 푸조의 최신 스포츠 쿠페인 RCZ에 잘 어울릴 것 같은 구성이다. 보기 좋은 것은 그렇다 치고, 페시아와 콘솔이 이렇게 공간을 잠식한다면 실용성은 떨어지게 마련. 그 부피를 차지하고도 작은 컵 홀더만 꼴랑 두 개를 배치하다니? (그나마도 그립컨트롤이 이 자리에 추가되면 컵홀더는 하나로 줄어든다.) 뒤편을 비운 볼보의 센터스택이나 아래를 비워 수납공간을 마련한 토요타 프리우스, 렉서스 RX를 참고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잠깐, 여기까지만 보고 3008의 무개념을 논해서는 곤란하다. 범상치 않은 7리터짜리 도어포켓을 보라. 1.5리터 PET병을 두 개 넣고도 0.5리터 병 두 개가 더 들어간다.
가운데 팔걸이 아래의 수납공간은 또 어떻고? 입구가 좁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컵홀더 아래쪽까지 뻗어있기 때문에 용량은 무려 13.5리터. 바꿔 말하면 좀 전에 한쪽 도어 포켓에 넣었던 음료수 병들을 모조리 옮겨 담고도 남는다. 냉장기능? 물론 있다.
그러니, 글로브 박스(4.1리터)가 뚜껑만 컸지 별로 넣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도 욕하지 말자. 사용자 설명서는 스티어링 컬럼 아래쪽에 마련된 3.7리터짜리 수납함에 보관하면 된다.
글로브 박스의 조작감이 저렴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해외 보도자료 사진을 보며 기대했던 것에 비해 재질감이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 도어의 팔걸이나 시트가 가죽마감이 아닌 것(혹은 시트 열선 기능이 없는 것?)은 문제삼지 않더라도, 대시보드 마감을 비롯한 일부 플라스틱 소재는 형제차인 308과 비교해도 아쉽게 느껴진다. 액정화면의 투박한 주황색 글씨들도 감점요소. 동반석의 커다란 손잡이를 감싼 메탈 장식과 가죽마감이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고급스러워 보일 정도다.
이 손잡이는 주차브레이크 레버가 아니라 정말 손잡이. 동반석 승객을 위한 것이긴 한데, 실제로 잡도록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3008의 주차브레이크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작동하는 전동식으로, 변속레버 뒤에 버튼이 마련되어 있다. 당기면 작동하고 누르면 풀리는 방식에 익숙한데, 여기서는 무조건 당기는 식이다. 물론 기어가 들어간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아도 자동으로 풀린다. 슈우우욱 하는 작동음이 다소 큰 편이라 가동 여부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가끔은 나란하게 뒤쪽으로 놓인 작은 버튼을 당길 때도 있다. 이것은 파노라마 루프의 전동 햇빛가리개 버튼이다. 원터치로 여닫을 수 있고 원하는 위치에서 멈출 수 있다. 작동은 부드럽고 빠르다. 다만 유리지붕 자체를 열지는 못한다. 덕분에 중간에 버팀대가 없고, 그로 인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방감을 자랑한다. 1.6제곱미터의 면적 자체는 308SW와 동일하다. 1.7제곱미터의 면적으로 이마 위까지 이어지는 앞유리와 함께 전투기의 캐노피 같은 감각을 완성하는 부분이다. 올려다보면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고, 유리지붕에 한 가득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와이퍼와 헤드램프는 자동으로 작동한다. 큼지막한 두 개의 와이퍼가 각기 바깥쪽으로 빗물을 밀어내는 장면은 꽤나 시원스럽다. 헤드램프는 할로겐 방식이고 일부 푸조차에서 볼 수 있었던 저속 코너 램프는 빠졌다. 주간주행등은 LED 대신 미등을 강하게 켜는 방식이지만 효과는 좋다. 미등이나 헤드램프가 켜졌을 때 계기판에 각각에 대한 경고등이 뜨는 것도 마음에 든다.
공조장치에는 좌우독립온도조절 기능과 AQS를 갖추었고, MP3오디오는 기본형으로 보이지만 소리는 나쁘지 않다. AUX와 USB 단자는 가운데 팔걸이의 덮개 안쪽에 달려있고, 팔걸이를 닫은 상태에서도 배선이 끼이지 않도록 널찍한 틈을 만들어 놓았다. 후진 시에는 오디오 액정에 장애물의 방향과 거리가 그래픽으로 표시된다. 사이드 미러의 하향연동기능은 없는 듯하지만, 큼지막한 사이드미러 때문인지 딱히 불안하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해외사양을 보면 대시보드 중앙상단의 폴딩 화면에 내비게이션이 나오는데, 국내 사양에는 내비게이션 자체가 아직 적용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의 방향안내까지 HUD에 보여준다면 그것도 편하겠다. 전원소켓은 센터콘솔 윗면과 뒷좌석 쪽에 배치되어 있다.
뒷좌석은 바닥 가운데 부분이 평평하고 센터콘솔도 발에 거치적거리지 않는 형상이다. 뒤로 튀어나온 앞좌석의 시트 레일을 바닥에 매립하다시피 한 것이 눈에 띈다. 바닥에 덮개 달린 수납공간이 있어서 밟을 때 견고하지 못한 느낌을 주고 소리도 나는데, 시판차에는 바닥매트가 있을 테니 별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용량은 운전석쪽이 3.3리터, 동반석쪽이 3.8리터로 비대칭이다.
뒷좌석은 적당히 경사진 등받이와 방석 덕분에 앉은 자세가 편하고 껑충한 느낌도 적다. 등받이 각도 조절 기능은 없지만 딱히 아쉽지는 않다. 시트 형상은 방석부분이 거의 평평한 대신 등받이 부분이 살짝 패였다. 앞좌석을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도 발 공간이 충분하고 무릎이나 머리공간 모두 여유롭다. 가운데 팔걸이의 높이가 약간 어색하긴 하다. 편의사양으로는 측면 유리 햇빛가리개와 가운데 송풍구, 전원소켓이 있다. 가운데 팔걸이에는 작은 컵홀더만 2개가 달렸다.
등받이는 6:4로 접을 수 있고 스키스루만도 가능하다. 어깨부분의 손잡이를 당기면 방석이 아래로 살짝 낮춰지면서 등받이가 접히는데, 스프링 힘이 강해서 다시 세울 때는 조금 힘을 주게 되지만 어쨌든 견고한 느낌이다. 이 스프링 덕분에 트렁크 쪽에서도 원격 손잡이를 이용하면 한번에 뒷좌석을 접을 수 있다. 적재용량은 기본 512리터, 뒷좌석 폴딩시 1604리터이고, 동반석 등받이를 접으면 2.62미터 길이의 짐을 실을 수 있다. 뒷좌석 도어포켓(각 2.5리터)은 앞쪽보다 훨씬 작아서 0.5리터 PET하나가 꽉 끼지만 불만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헤드레스트는 3개로 분리되어 있고 투구형이라 후방시야를 가리지 않고 등받이를 접을 때도 어지간하면 그대로 통과된다. 앞좌석에서는 헤드콘솔의 경고램프를 통해 뒷좌석 각 승객의 안전벨트 착용여부를 챙길 수 있다. 측면 유리는 뒷좌석까지 모두 원터치로 여닫기가 된다.
3008의 만듦새가 매력을 발산하는 곳 중 하나는 바로 트렁크. 1~3층을 오갈 수 있는 탈착식 바닥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층에서는 밑바닥에 포개지고, 2층에서는 아래쪽이 25, 위쪽이 75의 비율을 갖는다. 아래로 열린 테일게이트, 그리고 눕혀진 뒷좌석 등받이와 평편한 바닥면을 만드는 것도 바로 이때다. 45:55의 비율을 갖는 3층은 조금 생뚱 맞게 보일 수 있지만 위쪽 테일게이트만 열어보면 딱 맞는 높이. 아항! 이 상태에서는 위로 젖혀 고정장치에 걸 수도 있다. 아래쪽 테일게이트는 200kg을 감당하니 성인남자 둘이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 밀어를 나누기에도 무리가 없다.(?)
트렁크 조명은 천장에 뒷좌석 겸용이 하나 있고, 양 벽면에도 하나씩 있다. 특히 왼쪽 것은 충전-탈착식 손전등으로, 45분간 외도가 가능하다. 전원소켓과 가방걸이는 기본. 지하층(?)에는 임시 스페어 타이어와 공구들이 들어있다.
이번에 시승한 3008은 1.6 MCP. 이름 그대로 308 MCP와 동일한 구동계를 적용한 모델이다. 엔진은 1.6리터 디젤(HDi)이고 ‘자동으로 변속되는 수동변속기’ MCP를 탑재했다. 308은 그렇다 쳐도, 덩치가 훨씬 커 보이는 3008에서는 1.6의 힘이 어떨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엔진힘 자체는 부족함이 없다. 기본 구조가 6단 수동변속기인만큼 주어진 힘을 오롯이 쓴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가솔린 엔진대비 토크가 좋은 것이 디젤(터보)엔진의 장점 아니던가. 시내 주행은 경쾌하다는 표현까지도 쓸만하다. 냉간 시의 소음 진동이나 주행감은 동급 구동계(1.6 디젤+4단 자동변속기)의 국산차보다 세련됐다.
약점은 역시 변속 울렁증이다. 정지선에 서있다가 신호가 바뀌어 출발할 때, 남들보다 앞서나간다고 우쭐하는 것은 잠시, 기어가 바뀔 때마다 “서방님 가지 마세요~” 라며 누군가 허리춤을 붙잡아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게 만든다. 많은 시승기에서 ‘변속충격’이라고 적고 있지만 수동변속기차의 가속 중 클러치를 급하게 뗄 때 몸이 뒤로 젖혀지는 상황이나, 기어 변속이 느껴지는 자동변속기의 매끄럽지 못한 반응과는 전혀 다르다.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상태에서 변속될 때가 문제다. 수동 차를 직접 변속할 때, 저단기어-높은 회전수에서 클러치를 밟기 전에 가속페달부터 급하게 뗐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자동모드 대신 수동모드를 쓰고, 변속하고 싶을 때 가속페달을 잠시 늦춰주면 변속동작이 부드럽지는 못할지언정 원치 않는 인사는 피할 수 있다. 수동모드와 스포츠모드를 함께 쓰면 변속반응 자체도 빨라진다. 이 경우의 문제는 견고하지 못하게 설치된 변속 패들의 저렴한 조작감이다. 패들의 길이가 짧고 스티어링 휠이 아닌 컬럼에 고정되어 있는 것도 일상 주행에서 쓰기에는 불편한 내용이다. 가령, 큰 사거리에서 정차했다가 좌회전하는 경우에는 스티어링휠이 돌아간 상태에서 2단으로의 시프트 업을 해야 하니 말이다. 패들은 없는 셈 치고 조작감이 훨씬 좋은 변속레버를 쓰면 차라리 속 편하다.
MCP는 보이지 않는 친구 ‘동수’가 수동변속기의 클러치와 기어조작을 알아서 해주는 방식이다. 오르막길 가감속과 같은 상황에서는 종종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믿음직스럽게 반응한다. 일반 자동변속기의 P레버 위치가 여기서는 후진(R)자리라 조금 헛갈리기도 하지만 현재 기어의 단수가 항상 계기판에 표시되니 익숙해지면 된다. (다시 한번, HUD에도 기어단수가 나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스포츠모드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조금씩 밟아 나가면 2000rpm 내외에서 변속이 이루어진다. 서행으로 가다 서다가 반복될 때는 DSG보다도 부드럽게 느껴지곤 한다. 풀 가속시, 자동변속모드에서는 4,000rpm, 수동변속모드에서는 4,500rpm에서 자동변속이 이루어진다. 최고출력이 나오는 것은 4000rpm. 최대토크는 1750rpm에서 240Nm이고 오버부스트 기능 작동시에는 260Nm에 이르지만 이후의 회전수에서는 쭈욱 떨어지는 곡선을 그린다. 제원상 0-100km/h 가속은 수동모드에서 12.2초, 자동모드에서 13.6초로, 체감 가속은 역시 경쾌하다.
속도가 130~140km/h정도에 이르면 엔진은 자글거리는 소리를 내고 약간의 진동도 느껴진다. 하지만 100km/h(6단 2,100rpm)로 순항할 때는 노면소음이나 풍절음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승차감을 보여준다. 굳이 해본다면, -도달시간이 빠르지는 않지만- 170km/h 까지도 그럭저럭 속도를 붙여간다. 풀 가속시 수동모드에서의 변속시점은 40,70,100,140km/h이고 5단에서 170km/h를 찍는다. 제원상 최고속도는 180km/h. 1.6이지만 실용적인 성능은 충분한 셈이다. 고속안정성면에서도 딱히 불안함도 느낄 수 없다.
MCP의 장점 중 하나는 정차 시 기어가 들어가있더라도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면 클러치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구동계 진동이 실내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클리핑 현상이 없고, 변속기의 파킹(P)위치도 없기 때문에 주차브레이크를 습관화 해야 한다. 308 MCP는 주차브레이크가 수동이었지만 3008은 자동이고, 특히 시동을 끄면 자동으로 채워지므로 가로 주차할 때의 작동법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오르막길에 정차했을 때는 뒤로 밀림 방지 기능이 작동하는데, 변속기 특성을 고려한 것인지 여느 차보다 1초 정도를 더 잡아주므로 시간여유가 충분하다.
하체는 308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지는 듯하고 심한 요철에서는 쿵쿵거리는 충격음이 한 단계 더 강하게 들어온다. 간단히 말해, 단단하다. 그 대신, 높은 차답지 않게 운전 재미가 좋다. 비록 속이 빈 듯 느껴질 때도 있지만 두툼하고 모양도 제법인 스티어링휠이 쫀득한 손맛을 준다. 전동펌프로 가동되는 유압식 파워스티어링이 차속과 조향속도, 오일온도에 따라 가변되면서 적절한 보조를 해준다.
서스펜션은 앞-맥퍼슨 스트럿, 뒤-토션빔으로, 역시 308패밀리와 같다. 3008의 신 무기 중 하나인 다이내믹 롤 컨트롤은 5월에 들어올 2.0 HDi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적어도 이 1.6 MCP구동계에서는 - 없어도 딱히 아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ESP는 끌 수 있지만 이는 미끄러운 노면에서의 저속주행을 위한 것으로, 50km/h 이상에서는 무조건 개입한다. 제동성능도 무리 없다. 급제동시에는 자동으로 비상깜빡이가 켜진다.
시승차의 총주행거리는 5,500km. 350km를 주행한 시승구간의 평균연비는 14.2km/L가 나왔다.
3월 30일 출시예정인 푸조 3008MCP의 가격은 3,800만원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크로스오버 왜건인 308SW 2.0HDi의 3,960만원보다 살짝 낮은 수준. 국내용 3008 MCP의 사양조합은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내용(열선 가죽시트 등)에 연연하지 않고 차라리 HUD와 같은 특징적인 장비를 갖춤으로써 푸조의 첫 크로스오버 모델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외관 때문에 안 튈 수가 없는 차인 것 같지만)
1.6이라는 배기량이 약하게 보이지만 실용적으로 쓰기에 충분한 힘을 가졌고, 자칫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MCP도 ‘편하게 만들어진 수동변속기’로 접근하면 수긍 할만 하다. 5월에 나올 2.0 대비 차값과 세금, 기름값이 절약되는 것도 뚜렷한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에게 보편적으로 권하기에는 1.6보다는 2.0이 낫겠다는 것이 아직까지의 생각이다. 수입사에서는 2.0 HDi외에도 1.6의 그립컨트롤이나 내비게이션 등 추가 사양을 준비 중이라고 하니 3008의 진가는 점차 드러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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