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발행일자 | 2010.05.06 01:05

랜서의 사진을 들고 성형외과를 찾아간 아웃랜더를 상상해 본다. “얘가 저희 식구 중에 제일 잘난 앤데요. 제 얼굴도 얘처럼 좀...” 하고는 한숨을 푹 쉬는 거다. ‘새로 태어난 ASX인지 RVR인지는 태어날 때부터 랜서를 닮았는데 난 이게 뭐냐구. 먼저 태어난 죄로 이제 와서 페이스오프라니...’

글 / 민병권 (RPM9.COM에디터)


사진 / 박기돈 (RPM9.COM팀장)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뉴 아웃랜더는 랜서 - 정확히는 랜서 에볼루션의 얼굴을 이식 받았다. 랜서든 랜서 에볼루션이든 미쓰비시가 새 패밀리룩으로 밀고 있는 역슬랜트의 전투기형 얼굴선과 사다리꼴 통합 그릴을 취한 것이다. 본디 아웃랜더와 랜서가 플랫폼을 나눈 형제임을 생각한다면, 데뷔 5년 차인 지금에 와서야 커밍아웃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해외와 달리 아웃랜더가 정식 출시된 지 만 2년이 채 안된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페이스리프트가 다소 빠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 세대의 아웃랜더는 2005년 10월에 일본에서 처음 나왔다. 이번 뉴 아웃랜더의 얼굴은 지난 해 뉴욕 모터쇼에서 아웃랜더GT라는 컨셉카를 통해 공식화된 것. 이후 북미 시장에서 실제 판매를 시작한 아웃랜더GT는 랜서 에볼루션의 얼굴뿐 아니라 S-AWC시스템까지 차용해 ‘에보랜더’라는 별명이 제법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모델이다. (에보랜더라는 이름 자체는 2006년 미국 SEMA쇼에서 공개된 300마력짜리 아웃랜더 튜닝카에서 유래한다.)

북미 시장의 경우 GT외의 버전들도 모두 이러한 새 얼굴을 이식 받았지만, 오히려 일본시장에서는 기존의 아웃랜더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 1월에 공개된 이어 모델을 기준으로 보면, 메이커 커스텀이라 할 수 있는 로데스트 버전만이 이와 유사한 얼굴을 가졌을 뿐이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물론 국내 수입사양은 북미시장용과 관련 깊다. 미국에서 2006년 10월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이번 세대 아웃랜더의 엔진은 3.0리터 V6뿐이었고, 이에 비해 일본버전은 2.4리터 4기통뿐이었다. 2008년 10월, 미쓰비시의 국내 상륙과 함께 들어온 아웃랜더는 당연히 3.0. 일본시장용 아웃랜더에도 나중에 3.0 엔진이 추가되긴 했지만 지난 해 정리 당했고, 올해 나온 이어 모델에는 오히려 2.0 엔진이 추가되었다. 이와 반대로 북미버전에는 2.4가 추가되었는데, 이번에 국내 시장에도 들어오게 됐다. 시승차는 3.0 버전이다.

앞 턱을 부드럽게 쳐들었던 기존 아웃랜더의 얼굴은 오프로더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덧댄 보호대 형상에도 불구하고 강인하다기 보다는 가볍고 날랜 인상이었다. 새 얼굴은 바닥에 달라붙어 흙이라도 퍼먹을 기세다. 커다란 입과 성깔 있는 눈을 달아주기 위해 보닛과 휀더까지 바꿨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이러한 앞부분의 이미지 변신에 비하면, 바뀐 것이 없는 ‘곤충룩’의 뒷부분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측면부는 사이드미러에 턴시그널을 추가하고 유리 하단부에 꺾어져 올라가는 크롬장식을 더한 작은 터치만으로도 제법 효과를 얻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따로 놀았던 후륜 휠아치와 뒷범퍼가 서로 연결되도록 리어 쿼터 패널도 바꿨지만, 몰라보고 지나치기 쉽다. 지붕에 은색 루프레일이 추가된 것도 작은 변화다.

뉴 아웃랜더 출시와 함께 전개되고 있는 ‘흔들림 없는 SUV’ 캠페인은 아웃랜더가 지붕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저중심 설계를 실현했음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것만큼은 이번에 새로 바뀐 내용이 아니다. 이번 세대 아웃랜더가 처음 나올 때부터 갖고 있었던 알루미늄 지붕의 의의를 새삼 되짚고 나선 것뿐이라는 얘기. 미쓰비시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 또한 랜서 에볼루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란에보 8기형이 일본 양산차 중에서는 처음으로 알루미늄 지붕을 채용했었던 것을 응용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승용차에 가까운 핸들링과 안정성, 운전재미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미쓰비시가 내세우는 아웃랜더의 강점 중 하나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휠 모양은 종전 그대로이다. 3.0은 18인치, 2.4는 16인치를 쓰는데, 각자 나름의 매력이 있다. 2.4의 통통한 타이어가 좋지 못한 노면에 대한 완충역할을 기대하게 한다면, 가득 찬 느낌을 주는 3.0의 것은 상대적으로 높은 출력을 갖춘 모델로서의 당당함을 지녔다. 시승차의 타이어는 225/55R18 사이즈의 굿이어 이글LS.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도어를 열어보면 실내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기본 디자인이 그대로인데도 불구하고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을 인조가죽으로 덮은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시트와 팔걸이 정도에만 가죽마감을 썼던 기존 모델과 비교하면 두 줄의 하얀색 바느질 선과 함께 계기판 덮개까지 가죽으로 도배된 신형은 차격마저 높아진 듯 하다.

운전대나 대시보드, 센터페시아의 형상이 랜서와 흡사한데도 표면 처리나 세부 형상의 차이만으로도 더 나은 느낌을 주는 것은 기존 모델과 마찬가지이다. 계기판의 시인성이 높아지고 다기능 액정화면이 컬러로 바뀐 것은 2010년형 랜서의 변화 내용과 같다.

편의 사양으로는 레인센싱와이퍼, 오토-HID-헤드램프, 스마트키, 후방 주차 센서를 갖췄고, 락포드 포스게이트 브랜드의 출력 빵빵한 오디오도 여전하다. 이번에는 기존의 AUX 단자 외에 USB 단자도 추가돼 사운드시스템의 활용성이 높아졌다. 흠이라면 눈부심 방지 룸미러와 내비게이션이 빠진 정도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도어록은 키를 소지한 상태로 운전석 도어 손잡이 안쪽의 검정색 부분을 터치하면 자동으로 풀린다. 사이드미러를 도어록 연동으로 접히고 펴지도록 할 수 있어 편리하다. 반면, 시동을 걸기 위해 스티어링 컬럼의 레버를 돌려야 하는 것과 운전대가 각도 조절만 되는 것은 아쉬운 부분. 시트는 이런 종류의 차로서는 제법 스포티한 형상이고, 지지면도 단단한 편이다. 운전석은 8웨이 전동조절이고, 동반석은 수동조절이다. 도어트림과 시트 사이가 좁아 전동조절 레버를 조작할 때 팔이 끼이는 것과 열선 스위치가 시트 안쪽에 자리한 것은 불편한 내용이다. 유리창은 운전석 것만 원터치로 여닫을 수 있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수납공간은 다양하게 마련했다. 주차브레이크 옆에 두 개의 컵홀더가 있고 변속레버 앞에는 탈착식 재떨이를 꽂는 홀더가 있다. 이 자리에는 음료 컵을 꽂지 말라는 표시가 있지만 재떨이 대신 잡동사니를 넣어두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운전석 왼쪽의 대시보드에도 접이식 컵홀더와 작은 서랍이 내장되어 있다. 동반석의 글로브박스는 용량이 작아 보이지만 위쪽에 냉장기능을 가진 수납공간이 하나 더 있어 이를 만회하고 남는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뒷좌석은 착좌 위치가 앞좌석보다 높아 시야가 좋고 하체 공간도 여유롭다. 그대신 머리 위 천장까지의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데, 시트를 뒤로 밀거나 등받이를 살짝 눕히면 상황이 달라진다. 6:4로 분할된 뒷좌석은 각각 앞뒤로 움직이거나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천장의 움푹 패인 부분(실제로는 선루프의 슬라이딩 공간에 잠식당하지 않은 부분)에 머리가 위치하도록 하면 한결 여유롭다. 이러한 시트의 자유도를 고려해서 적재함 커버의 고정 위치는 두 군데로 설정해놓았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센터터널이 약간 솟아 있긴 하지만 바깥쪽 자리에서는 앞좌석을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도 발공간에 문제가 없다. 또, 뒷좌석을 굳이 뒤로 밀지 않더라도 무릎공간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덕분에 뒷좌석 등받이를 접고 시트 전체를 앞으로 젖히는 폴드-텀블(더블 폴딩) 과정에서는 헤드레스트를 분리한다던가 앞좌석을 전진시킨다던가 하는 성가신 작업이 필요 없다. 게다가 등받이 각도조절 레버를 당기고만 있으면 폴드와 텀블의 과정이 순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손만 가지고도 간단하게 시트를 접어 젖힐 수 있다. 다만, 이것은 강력한 스프링에 의한 것이라서, 시트를 원위치 시킬 때는 상대적으로 힘이 든다. 위치 고정장치를 해제하기 위해 끈으로 된 손잡이를 두 번 잡아 당겨주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뒷좌석을 접어 앞으로 젖힌 상태에서는 트렁크 바닥과 평편하게 이어지는(실제로는 약간의 기복이 있는) 적재공간이 생긴다. 테일 게이트는 8:2의 비율로 나뉘어 위아래가 따로 열리는데, 아래쪽 문은 물론 적재함과 평편하게 연결된다. 따로 문턱이 없는데다가 바닥 높이가 무릎보다 약간 높은 60cm 정도로 낮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이 아주 편리하다. 아래쪽 문은 20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으니 짐을 올려놓거나 사람이 걸터 앉아도 문제없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짐을 부리거나 레저장비를 싣기에 좋을 뿐 아니라 견공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높이이기도 해서, 애견가용 자동차로도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트렁크 바닥에는 지하층에 해당하는 얕은 수납공간이 한 칸 더 마련되어 있고, 스페어 타이어는 차체 아래쪽에 매달려 있다. 낮은 바닥의 적재공간이야 말로 아웃랜더의 참 매력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엔진은 미쓰비시의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인 MIVEC이 적용된 3.0리터 V6로, DOHC가 아닌 SOHC 구성을 갖고 있다. 출력은 종전보다 10마력이 상승한 230마력이고, 토크도 28.1kgm에서 29.7kgm로 소폭 높아졌다. 시동음은 털털하다. 회전수를 높일 때도 매끄럽고 세련됐다기 보다는 활달하게 힘을 과시하는 타입이다.

최대토크는 3,750rpm에서 나오는데, 2000rpm이면 그 중 거의 90%를 쓸 수 있게 된다. 최고출력은 6,250rpm에서 나오고, 풀 가속시의 자동변속 시점 역시 이 부근이다. 55km/h에서 2단, 95km/h에서 3단, 150km/h에서 4단으로 넘어가고, 그대로 190km/h 이상을 찍는다. 출발 때 강하게 튀어나가는 모습에 비하면 고속에서 힘이 쳐지는 것이 아쉽지만, 용도에 비추어 생각하면 가솔린 V6 버전의 매력은 충분하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일상 주행에서는 아주 부드럽고 조용한 주행감이 돋보인다. 일반적인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건만 CVT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100km/h에서의 엔진회전수는 1800rpm. 변속레버가 D에 있더라도 운전대 뒤에 -스티어링 컬럼에- 달린 마그네슘 변속 패들만 당기면 곧장 수동 모드로 전환된다. 이런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모드로 복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웃랜더의 것은 수동모드가 계속 유지된다. 또, 수동모드에서는 회전한계에 이르러도 자동 시프트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운전자 존중형이다.

서스펜션은 앞쪽이 맥퍼슨 스트럿, 뒤쪽이 멀티링크 구성으로, 앞쪽 서스펜션 타워 사이에는 스트럿 바가 연결되어 있다. 전반적인 반응은 랜서보다 나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저속에서 만난 과속 방지턱은 부드럽게 넘고 고속에서의 요철에는 단단하게 대응한다. 좋지 않은 노면에서는 짧게 튀는 모습을 보이지만 승차감은 부담스럽지 않다. 스티어링 반응은 의외로 타이트하고 시종일관 묵직해 신뢰를 주는 타입이다. 이런 종류의 차로서는 운전 재미가 제법이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아웃랜더의 4륜구동 장치는 앞바퀴 굴림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뒷바퀴로도 구동력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운전자는 변속레버 뒤편의 다이얼을 조작해 2륜/4륜/록(2WD/4WD/LOCK)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4륜 모드에서는 자동으로 2륜과 4륜을 오가므로 평상시의 주행안전장치로 생각하면 든든하고, 미끄러운 노면에서 빠져나올 때 요긴한 록 모드는 4륜 구동차를 타는데 대한 뿌듯함을 더해줄 부분이다.

공인연비가 9.5km/L인데, 시승 중 평균연비는 8km 후반대로, 차이가 크지 않았다.

에보랜더. 미쓰비시 뉴 아웃랜더 3.0

아웃랜더 3.0은 높아진 상품성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종전대비 400만원 내린 4,09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이는 2008년 10월 국내 첫 출시 당시의 가격인 4,200만원과 비교해도 100만원 이상 낮아진 것이다. 여기서 일부 옵션을 뺀 2.4버전의 가격은 3.0보다 400만원이 더 저렴한 3,690만원이다. 2.4~2.5리터 4기통 엔진만 갖고 있는 토요타 RAV-4, 혼다 CR-V에 협공으로 대응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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