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중국 주하이의 국제 자동차 경주장에서는 1,000km 레이스가 펼쳐졌다. 한 바퀴의 길이가 4.319km인 트랙을 232바퀴나 돌아야 하는 경주로, 정오에 출발선을 나선 경주차들 중 1위가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는 5시간 3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주하이 1,000km 레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내구레이스인 ‘르망24시’의 주최측이 올해 처음 선보인 ‘인터콘티넨탈 르망 컵(ILMC)’시리즈 중 한 경기. 때문에 경주차를 나누는 카테고리도 르망24시간과 흡사하다.
그 중 최고봉은 LM P1으로, 이 부문에는 처음부터 경주 전용으로 설계된 4,000~6,000cc 차량이 출전한다. 올해 르망24시에서 종합 1~3위를 휩쓴 아우디 R15 TDI 플러스, 그리고 전년도에 우승을 차지한 푸조 908HDi FAP가 여기에 속한다. LM P1의 성능은 그야말로 우월해서, 이번 대회에서도 하위 카테고리의 차들은 이들에게 수십 바퀴 이상의 추월을 허용해야만 하는 수모를 겪었다. 대회 1~4위는 당연히 LM P1들이 독식했고 5위는 그보다 배기량이 조금 낮은 LM P2 부문의 차였다.
이들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하위 카테고리로는 페라리 F430,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BMW M3와 아우디 R8등 양산 스포츠카를 경주에 맞게 개조한 LM GT1, LM GT2가 있다. 일반 도로에서는 내놓으라 하는 스포츠카들이지만 이런 대회에서는 상위 경주용 차들에게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종합 6위를 차지한 것은 특별히 출전허가를 받은 LM GTH 부문의 포르쉐 911 GT3 R 하이브리드였다. GT3 R 하이브리드는 LM GT2에 해당하는 911 GT3 RSR 경주차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접목한 모델로, 원래 차의 뒷부분에 탑재된 480마력 가솔린 엔진을 그대로 둔 채 앞 바퀴 쪽에 81마력 전기모터 2개를 추가했다. 일반 하이브리드카와는 달리 이를 구동하는 배터리는 달지 않았다.
대신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 감속할 때 회수되는 에너지가 조수석 부근에 있는 또 하나의 모터 겸 발전기, ‘전기 플라이휠’에 저장되도록 했다. 1분에 최대 4만 번까지 회전하는 이 장치에 아껴둔 에너지는 필요할 때 추가적인 가속력을 얻거나 연료를 아껴 주행거리를 연장하는데 사용된다.
흔히 하이브리드라고 하면 무겁고, 느리고, 지루한 차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포르쉐 911 GT3 R 하이브리드는 그런 편견을 확실하게 격파해준다. 이 차는 올해 5월 독일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데뷔했는데, 비록 완주에는 실패했지만 8시간 동안 경기를 주도하면서 그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상위 카테고리의 경주 차들을 추월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끝에 성공적으로 경주를 마쳤다. LM GT2의 일반 911 경주차보다는 최소 세 바퀴가 더 빨랐다.
포르쉐는 데뷔 경주 당시에 미처 해소하지 못했던 차량 개발 상의 궁금증들을 연구하기 위해 이번 레이스에 다시 참가했다고 밝혔다. 대회 주최측은 새로운 경주용차 기술의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911 GT3 R 하이브리드의 출전을 허용했다. 아우디가 가솔린 직분사 엔진으로, 그리고 아우디와 푸조가 디젤 엔진으로 내구레이스의 역사를 새로 썼듯이 포르쉐 역시 하이브리드로 그 중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셈이다.
포르쉐는 911 GT3 R 하이브리드와 양산SUV인 카이엔 하이브리드의 개발을 통해 얻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하이브리드 수퍼카인 918 스파이더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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