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두 번째 환생, 롤스로이스 고스트

발행일자 | 2010.12.10 11:41

일반인들에게 롤스로이스는 쉽게 잡을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여서일까? 롤스로이스는 팬텀 라인에 이은 두 번째 모델의 이름을 고스트라고 지었다. 팬텀과 고스트, 둘 다 유령으로 번역하기 쉬운데, 둘은 서로 어떻게 다른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여기 저기 찾아보니, 팬텀은 환영이나 허상에 가깝고, 고스트는 죽은 이의 영혼에 가깝다고 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Phantom of the Opera이고, 사랑과 영혼은 Ghost인 것을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유령의 두 번째 환생, 롤스로이스 고스트

글, 사진 / 박기돈 (rpm9 팀장)

가끔 이런 생각도 했었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가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딜까? 연미복을 입고 오페라 하우스에 가거나, 주말을 맞아 시외에 있는 (반드시 대 저택인) 별장에 가거나, 아니면 여왕의 초대를 받아 궁중 연회에 갈 때면 어떨까?

그 만큼 우리가 롤스로이스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귀족적이거나 혹은 경외롭거나 한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BMW 산하로 들어간 롤스로이스가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고스트가 아닌 슈퍼럭셔리카인 팬텀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지난 1월, 팬텀보다는 조금 더 접근 가능성을 높인 고스트가 한국에 상륙했다. 고스트의 가격은 팬텀보다 최소한 2억 5천만 원 이상 싼 4억 3천만 원부터 시작한다. 기대했던 대로 고스트는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순항하고 있다. 그리고 차차 롱휠베이스 모델과 쿠페, 카브리올레까지 선보인다면 고스트의 판매는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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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 W호텔에서 고스트를 만나 대 저택 별장만큼 멋질 뿐 아니라, 고스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평의 아난티 클럽까지 시승을 다녀왔다. 시승 자체가 워낙 귀한 기회인지라 소수의 미디어만 참가한데다 직접 운전 하는 것도 W호텔과 아난티 클럽 구간에서 편도만 허용되었다. 즉, 갈 때 운전하면 올 때는 뒷좌석을 체험하는 식이었다.

유령의 두 번째 환생, 롤스로이스 고스트

W호텔 앞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스트는 첫눈에 팬텀과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고스트는 팬텀보다 43cm정도 짧지만 그래도 길이가 5.4m에 불과 1mm 모자라는 5,399mm나 된다. (그러니 팬텀은 얼마나 긴 건가?) 길이가 5.2m 전후인 S클래스, 7시리즈, A8, XJ 등의 롱휠베이스 모델보다 충분히 길고, 스트레치드 리무진에 가까운 에쿠스와 체어맨의 리무진 보다는 조금 짧다. 하지만 너비와 높이는 이들보다도 각각 50mm 정도 더 길다. 고스트의 크기는 5,399x1,948x1,550m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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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들어선 고스트는 외부에서 볼 때 팬텀과의 존재감에서 조금 차이가 난다. 팬텀은 승용차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머리 하나는 더 큰 농구선수처럼 두드러져 보이지만, 고스트는 일반 승용차보다 분명 더 크긴 하지만 무리 속에 어느 정도 섞여 들어가는 분위기다. 팬텀은 고스트보다 키가 82mm나 더 크다.

유령의 두 번째 환생, 롤스로이스 고스트

생긴 모습도 팬텀과 판박이다.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며, 각진 박스형태인 기본적인 스타일이 비슷한데다, 파르테논 신전 형상의 그릴과 환희의 여신 엠블렘, 휠 디자인, 두꺼운 C필러 등, 현재의 롤스로이스를 정의하는 모든 요소들이 같이 갖추어져 있으니, 둘을 나란히 두고 보지 않으면 그만큼 구분이 쉽지 않다.

유령의 두 번째 환생, 롤스로이스 고스트
유령의 두 번째 환생, 롤스로이스 고스트

팬텀 시리즈들과 고스트를 쉽게 구분하려면 사각형의 헤드램프 아래 원형 램프가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팬텀 시리즈들도 앞 모습이 서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원형 램프를 가지고 있는데, 고스트에는 없다. 뒷모습에서 팬텀과 고스트를 구분하기는 더 어려운데, 컴비네이션 램프가 전체적으로 빨간색이면 고스트, 빨간 램프 속에 사각형의 실버 테두리 램프가 더 있으면 팬텀 시리즈다.

어쨌든 고스트는 팬텀보다는 작지만 대형 럭셔리 세단들보다 여전히 한치수 더 큰 사이즈와 누가 봐도 롤스로이스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스타일에서 롤스로이스의 독보적인 위상은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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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이는 크롬으로 만든 두툼한 도어 손잡이는 앞뒤 것이 한곳에 모여 있어, 캐비닛이 열리듯 앞문은 앞으로, 뒷 문은 뒤로 열리며, 두 문을 함께 열어 놓으면 넓고도 화려한 고스트의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문은 열 때부터 육중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진다. 문을 열고 보면 그 두께에 한 번 더 놀란다. 뒷문은 좌석에 앉아서 필러 안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주면 자동으로 닫힌다. 팬텀 때는 문이 닫힐 때 강하게 다가와서 꽝하고 닫히는 느낌이었는데, 고스트는 마지막이 조금 더 부드럽게 닫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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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곳은 가죽이거나, 크롬이거나 혹은 나무다. 가죽으로 감싼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크고 림이 가늘어 클래식한 느낌이다. 고스트의 좌석은 고급스런 마사지 기능보다 가죽의 재질이 더 고급스럽다. 고스트에는 해충이나 오염에 강한 특정한 지역 숫소의 가죽이 사용되며 한 대에 들어가는 가죽은 최소 8장이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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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사용된 나무들에도 특별한 정성이 들어 있다. 한 대의 고스트에 들어가는 나무는 최고의 통나무를 고르는 일만 담당하는 베니어 전문가에 의해 선택된 한 그루의 나무에서 모두 얻어진다. 그리고 나무결과 인테리어를 어울리게 배치하고, 나이테와 색도 서로 맞춰서 제작한다. 그야말로 명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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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있는 모든 요소들의 스타일은 너무나 고급스럽고 또 고풍스럽지만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기능들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버튼을 눌러서 시동을 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헤드램프를 켜면 오토 헤드램프이고, 에어컨을 켜면 네 좌석 독립식 풀 오토 에어컨이다. 에어컨 조절을 SOFT, MID, HIGH, MAX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상당히 귀족스럽다. 차갑거나 더운 공기가 나오는 구멍은 동그란데다 크롬이 두껍게 입혀져 지극히 클래식하고 고급스럽다. 롤스로이스는 이를 크롬 아이볼 환기구라 부르고, 바람의 양을 조절하는 손잡이를 오르간 스톱 플런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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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모니터에는 톱뷰 카메라가 차의 주변 모습을 보여주고, 10채널 앰프와 서브우퍼 2개를 포함한 16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600W 오디오 시스템은 CD는 물론 USB와 하드 디스크에서도 음악을 가져와 최상의 오페라 하우스를 구현한다. 뒷좌석에는 9.2인치 LCD 스크린이 각각 준비되어 있어 원하는 미디어를 혼자서 독점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나이트 비전 카메라, 헤드업 디스플레이,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최첨단 기능들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하고 화려한 기능들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역시 고스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서 제 할 일을 다해주면 그만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백작의 대 저택을 섬기는 수 많은 일꾼들처럼. 그리고 워낙 많은 첨단 기능들이 있다 보니 일부 기능들은 전혀 사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 저택에서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어느 한 방에 걸려 있는 훌륭한 명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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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의 뒷좌석은 팬텀의 뒷좌석 못지 않게 높은 격조가 흐른다. 시트에 몸을 편안히 기대면 두꺼운 C필러 덕분에 외부에 VIP가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직접 차를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앞좌석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능들을 뒷좌석에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뒷좌석 만을 위한 기능들도 많다. 개인용 모니터와 테이블이 있고 냉장고에는 샴페인 잔이 준비되어 있다.

달리기 성능에서도 부족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고스트는 팬텀보다 더 강력한 엔진을 얹었고, 몸무게는 팬텀 SWB 대비 200kg 가까이 더 가볍다. 롤스로이스 측에서도 팬텀이 쇼퍼드리븐에 적합한 리무진이라면, 고스트는 직접 스티어링 휠을 잡고 운전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팬텀이 처음 데뷔했을 때는 팬텀이 오너 드라이브에도 잘 어울린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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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의 6.75엔진과 달리 새롭게 개발한 V12 6.6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배기량이 조금 줄었지만 팬텀의 460마력보다 더 강력한 563마력을 뿜어내고, 최대토크는 780Nm에 이른다. 이처럼 강력한 힘으로 300km/h까지 달리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롤스로이스는 이를 ‘Effortless Dynamism’이라고 이야기한다. 힘들이지 않고 최상의 주행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이 정도의 파워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분히 귀족적인 접근법이다.

스티어링 칼럼 우측에 전혀 주목을 못 받을 모습으로 (사진에 찍히지도 않을 만큼) 존재감 없이 자리하고 있는 기어레버를 살짝 당겨서 위로 올리면 R, 아래로 내리면 D다. 고스트에는 파워 버튼도, 수동변속 모드도 없다. 그저 필요에 따라 엑셀만 원하는 만큼 밟아주면 그만이다. 이 거대한 덩치는 부드럽게 출발할 수도, 강하게 가속할 수도 있다. 아주 큰 덩치가 살짝 의식되긴 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지난 해 팬텀 쿠페로 시내를 다니면서 초긴장 상태였던 때와는 달리 한결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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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차들과 보조를 맞추어 여유 있게 달리든, 200km/h 이상으로 빠르게 달리든, 4개의 정교한 에어 서스펜션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여 최상의 승차감을 구현했다. 도로 상황뿐 아니라 차체 내부의 중량 이동에도 대응해 차고를 자동으로 조절하며, 필요에 따라 25mm까지 높이거나 낮출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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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엑셀을 끝까지 밟아서 강하게 가속해도 실내는 지극히 평온하다. 0~100km/h 가속 4.9초의 강력한 가속력 덕분에 잠깐만 밟고 있으면 금새 200km/h를 넘어선다. 계기판의 속도계 바늘도 고풍스럽다. 팬텀처럼 가운데 속도계가 있고, 우측에는 엔진 회전계 대신 현재 얼마의 힘이 남아있는지를 보여주는 파워 리저브(Power Reserve)라는 계기가 자리하고 있다. 화이트로 마감된 계기판은 계기 주변을 나무로 만들었던, 그래서 지극히 클래식했던 팬텀의 계기판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

유령의 두 번째 환생, 롤스로이스 고스트

고스트는 팬텀 보다는 좀더 운전하기 편하고, 좀더 다이나믹하지만, 여전히 ‘정상’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직접 운전대를 잡기에도, VIP를 모시기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다. 지금 고스트는 정상에 서 있으며, 그 ‘지금’은 ‘오랫동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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