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G25의 신차발표 행사 때 도어맨 복장을 하고 나타난 한국닛산의 켄지 나이토 대표는 차에서 내리는 여자모델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퍼포먼스를 통해 인피니티의 G가 마침내 여성 고객과도 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렸다.
여성전용대출, 여성전용버거, 그리고 이번에는 여성전용 인피니티G의 등장인가? 하기야 이전의 G가 여성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차는 아니었다. 막상 다가가보면 함께 하기가 부담스러운 ‘마초’인 것이 문제였을 뿐. 그리고 그러한 부담은 비단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같은 값으로 훨씬 높은 배기량의 엔진이 선사하는 스포츠카 뺨치는 동력성능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G37의 장점이었지만 그 이하의 버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판매대수를 제한하는 꼴이었다. 늦었지만 이번 G25를 통해 낮은 배기량에 대한 봉인이 풀린 셈. 그 동안 많은 요구가 있었던 모델인 만큼, 앞으로 G시리즈의 판매가 늘어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인피니티는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보통 이상의 성능’과 동일시 하면서 과급기를 배제한 대배기량 숭배집단 같은 분위기를 풍겨왔다. 가장 ‘작고 저렴한’ 모델의 배기량이 3,700cc급이라는 것은 프리미엄 경쟁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략. 배기량 평균에서만큼은 포르쉐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인피니티라고 해도 더 이상 “배기량이 깡패!”라며 고집을 피울 수는 없게 된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유럽은 물론 미국의 메이커들마저도 과급기를 다는 대신 배기량은 낮추는 다운사이징에 열심이다. 갈수록 강화되는 CO2 및 연비규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이다. 독일 럭셔리 3사의 경우, 회사의 평균을 낮춰줄 수 있는 소형 모델들도 갖추었다. 렉서스는 최근 IS보다 작은 해치백을, 게다가 하이브리드로 내놨다.
결국 인피니티도 깡패생활(?) 청산하고 세상에 맞춰 살기로 했다. 유럽에 진출하면서는 르노의 엔진을 이식한 디젤모델을 내놨고, 하이브리드 모델도 출시한다. 배기량을 쑥 낮춘 G25도 결국은 이러한 변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시승기를 작성한 직후, 인피니티도 G시리즈보다 더 작은 모델을 쇼 카로 공개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식적으로는 “이제 브랜드의 고성능 이미지를 충분히 심었기 때문에…”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배경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G25를 추가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쉬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G시리즈의 일본 내수용 모델인 닛산 스카이라인에는 진작에 2.5 엔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G25는 2,496cc VQ25HR 엔진을 탑재했다. G37에 탑재된 VQ37VHR보다 배기량이 낮아진 것 외에 VVEL(관련기사 참조)이 빠졌다는 차이가 있다. 최고출력은 6,400rpm에서 221마력이고, 4,800rpm에서 25.8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출력만 봐도 G37보다 100마력 이상이 낮다. 그런데, 221마력은 적은 힘이던가? 경쟁모델들과 비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운전느낌은 37과 흡사하다. 엔진의 숨소리를 타고 가늘게 떨리는 차체의 나긋한 진동,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박차고 나갈 때의 사운드 등을 보면, 37이라고 해도 속을 정도다. 물론 37같은 파괴력은 없다. 하지만 3,000rpm을 벗어나면서부터 본격화되는 토크감은 7,000rpm까지 매끈하게 솟구치는 세련된 엔진회전과 함께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변속기는 37과 동일한 7단 AT의 구성이지만, 실제 기어비는 5단(1:1)과 종감속비만 같은 것으로 되어있다. 100km/h에서의 엔진회전수는 1,900rpm. 저속에서는 가속페달 ON/OFF에 따른 울컥거림이 여전하다. D에서 왼쪽으로 당기면 스포츠 모드(DS)로 진입하는데, D에서도 가속페달 개도에 따른 변속은 활발한 편이다. 변속 패들이 빠졌지만 이 역시 딱히 아쉽지 않은 부분이다. (물론 37에서 경험한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면 다르겠지만)
스포츠모드 기준으로 풀 가속시의 변속시점은 7,500rpm, 60km/h에서 2단, 6,800rpm, 85km/h에서 3단, 이후 7,000rpm을 기준으로 140km/h, 205km/h에서 4단과 5단으로 넘어간다. 0-100km/h 가속은 7초대로, 호쾌한 가속이 이루어진다. 100km/h에 앞선 두 번의 변속이 오히려 체감가속성능을 높여주는 분위기다. 37보다 2초 가까이 느리다는 사실만 머릿속에서 지우면 된다. 속도제한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던 37과 비교하면 200km/h 내외에서부터의 가속은 더디나, 역시 흠이 될 내용은 아니다. 37과의 몸무게 차이는 40kg정도.
스티어링 휠은 림의 4시와 8시 부분이 도톰하게 튀어나와 있어 여전히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조향은 정확하고 피드백 전달도 좋다. 매끄러운 엔진, 변속기와 함께 ‘스포츠 세단’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게끔 만든다. 37S의 휠,타이어는 18인치이고 후륜이 더 넓지만 G25는 앞뒤에 동일한 사이즈의 17인치를 끼운다. 타이어는 굿이어 이글 RS-A. 즉, 37S의 여름용 스포츠 타이어와는 다르다.
스포츠 서스펜션이 아닌 것도 기존의 ‘G37 프리미엄’과 동일한 구성이다. 기본적인 견고함은 남아있지만 37S와 비교하면 유들유들한 승차감이 좋다. 부담을 줄이고 한결 다루기 편해진 인상을 주는 것은 비단 엔진의 배기량을 낮춘 것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덤으로, 17인치 휠은 스포크 디자인 덕분에 37S의 18인치보다 작게 보이지 않는다.
G25의 등장과 함께 기존 G37의 보급형이었던 프리미엄 모델은 사라졌다. G37 스포츠, 즉 G37S는 종전 그대로 5,260만원이고, G25는 4,390만 원이다. 37프리미엄이 4,890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G25의 가격은 기대만큼 낮지 않다. 렉서스의 IS250 기본형이 4,390만원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37과 비교해도 빠져나간 옵션이 거의 없다. 즉, 배기량이 낮아졌다 뿐이지, 차를 볼 때마다 ‘싸게 주고 샀더니 역시…’ 하는 생각이 들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G25의 상품성은 G37S의 판매가 걱정될 정도로 좋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름에 ‘스포츠’ 태그가 붙은 차는 이미지 리딩 모델일 뿐 주력이 될 수 없으니까.
공인연비는 37이 9.5km/L, G25는 11.0km/L이다. G25의 이번 시승기간 평균연비는 7.9km/L였다.
글/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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