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페는 잊어라, BMW 650i 컨버터블
650i 컨버터블은 소프트톱으로 쿠페만큼의 밀폐성과 정숙성을 실현했다. 쿠페는 잊어도 좋다. 호사스러운 컨버터블이지만 BMW 식구답게 달리기 실력도 대단하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박기돈 (RPM9.COM팀장)
이름에서 알 수 있듯 6시리즈는 5와 7 시리즈를 메우는 모델이다. 호사스러운 퍼스널 쿠페가 6시리즈의 성격으로 이번에 새 모델(F12)이 나왔다. 성격은 여전하다. 구형인 E63의 컨셉트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모든 면에서 개선됐다. 1976년에 나온 E24는 당시로서는 틈새였지만 요즘은 하나의 확고한 세그먼트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스타일링은 사진보다 실물이 더 괜찮다. 사진에서는 구형과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실물로 접하니 느낌이 꽤 다르다. 대부분의 신차가 그러하듯 650i도 커졌다. 한 눈에 봐도 길이와 폭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낮아서 그런지 차체가 더 길어 보인다. 오픈 상태에서는 더욱 늘씬하다.
전면은 BMW의 아이덴티티가 역력하지만 측면이나 후면은 어딘지 미국적인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 주력이 미국 시장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한다. 확실한 건 디자인은 물론 디테일과 선들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650i 같은 모델에는 중요한 요소이다.
5시리즈처럼 650i 역시 섀시는 스틸, 보디 패널은 열가소성 플라스틱, 보닛과 필러, 도어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무게 증가를 최소화 했다. 큰 보닛이 너무나 가볍게 들린다. 경량 소재를 다수 적용했지만 구형 대비 섀시의 비틀림 강성은 50%가 증가했다.
타이어는 미쉐린의 프리머시 HP이다. 정숙성보다는 접지력 위주의 타이어로 BMW다운 선택이다. 많은 BMW가 그렇듯 타이어 사이즈도 앞뒤(245/40R/19, 275/35R/19)를 달리하고 있다. 알로이 휠의 더블 스포크 디자인은 좀 평범하게 느껴진다.
실내는 6시리즈라면이라는 기대에 맞는 호사스러움이다. 비록 센터페시아의 기본 디자인이 다른 BMW와 같지만 몇몇 디테일을 바꿔 분위기를 달리했다. 운전자 중심의 설계에, 모든 버튼이 손에 가깝다. 아이드라이브 다이얼은 약간 옆으로 치우쳐 있지만 이 역시도 손의 사정거리에 들어 있다. BMW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마다 센터페시아 디자인이 통일되면서 신차가 나와도 쉽게 익숙해진다.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인트는 시트와 모니터이다. 10.2인치 와이드 모니터가 단연 눈에 띈다. 와이드 모니터는 화질도 좋다. 거기다 모든 메뉴가 한글이 지원된다. BMW의 내비게이션은 아이드라이브 다이얼로 조작하기가 조금 힘든 것만 제외한다면 기능이나 비주얼 면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 650i는 모니터 주위를 메탈 트림으로 감싸기도 했다.
대부분의 컨버터블은 시트의 가죽이 밝은 색이다. 배기가스 규제가 가장 엄격하다는 캘리포니아를 대상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실정에는 조금 맞지 않았다. 지금껏 탔던 많은 컨버터블의 밝은 색 시트는 금방 더러워졌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650i 컨버터블은 바람직하다. 시트는 세밀하게 조정이 가능하고 방석의 앞부분도 별도로 움직인다. 운전 시간이 늘어나면 허벅지를 받쳐주는 이런 기능이 유용해진다. 허벅지와 옆구리를 잡아주는 기능도 훌륭하다.
계기판의 시인성도 뛰어나다. 가장 자주 보는 속도계와 회전계의 시인성이 좋고 반사도 적다. 잔여거리와 실 연비를 곧바로 볼 수 있는 것도 맘에 든다. 3스포크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은 그립이 좋고 시프트 패들도 손에 잘 닿는 위치에 있다. 주차 시 유용한 서라운드 뷰 모니터는 광각 카메라를 사용하는가 보다. 차에서 1m 정도 떨어져도 카메라에 잡힌다.
2열도 앉을 만하다. 무릎이 닿고 엉덩이가 좀 끼긴 하지만 이 정도면 컨버터블의 2열 공간으로는 괜찮다. 물론 공간이나 등받이의 각도 때문에 장거리를 간다고 하면 힘들겠지만. 2열 시트의 쿠션은 1열보다 딱딱하다. 2열 시트는 레버를 잡아당기면 한 번에 젖혀지고 옆에 슬라이딩 버튼이 따로 있다. 톱을 닫은 상태에서도 머리 위 공간이 그리 답답하지는 않다.
루프는 소프트톱을 고수하고 있다. 개폐에 걸리는 시간 19초이며 40km/h 이하의 속도에서 작동할 때는 24초로 조금 늘어난다. 시간이 조금 늘어나긴 해도 달리면서 개폐가 가능한 것은 메리트이다. 트렁크 용량은 톱 오픈 시 300리터, 톱을 닫으면 350리터이다.
엔진은 여러 BMW에 쓰이고 있는 4.4리터 V8 트윈 터보 유닛이다. 신형 모델에 적용되는 새 엔진이지만 신선함은 없다. 출력은 408마력, 61.2kg.m의 최대 토크는 1,750 rpm에서 시작해 4,500 rpm까지 지속된다. 변속기는 ZF의 8단 자동이다. 엔진과 변속기 모두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시승을 하다보면 제원보다 높은 회전수에서 토크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 반면 제원보다 낮은 회전수에서 최대 토크가 나오는 차가 있다. 650i 컨버터블은 후자에 해당된다. 제원상으로는 1,750 rpm인데, 대략 1,600 rpm이면 이미 힘을 받는다. BMW가 공들여 개발한 V8 트윈 터보는 참 괜찮은 엔진이다. 회전 질감도 그만이다. 1단을 제외한다면 7천 rpm 부근까지 매끄럽게 회전한다. 엔진 소리도 적당하게 실내로 들어온다.
요즘 하도 고출력 차가 많아서 408마력이 큰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408마력은 E39 M5보다도 높은 힘이고 토크는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0→100km/h 가속 시간도 5초에 불과하다. 순간적으로 100km/h 가속되는 움직임이 매섭다. 흥을 돋우는 휠 스핀이나 굉음이 없기 때문인지 수치에 비해 체감 가속력은 좀 덜하다.
큰 힘의 고급차의 매력은 가속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주행에서도 메리트가 있다. 8단으로 100km를 달리면 회전수는 1,600 rpm에 불과하다. 달리는 느낌도 잘 안 난다. 이 속도에서 엔진은 숨을 죽이고 약한 바람 소리와 밑에서 올라오는 소음만이 들릴 뿐이다. 이렇게 약하게 달리면 연비도 좋다. 트립 컴퓨터에 찍히는 연비가 15km/L 정도다. 엔진의 배기량과 출력을 생각하면 꽤나 괜찮은 연비다. 다단화로 크루징 시 연료 소모를 최소화 하고 있다.
다단화는 가속력에도 도움된다. 2~4단의 최고 속도는 80, 120, 160km/h으로 붙어 있다. 5단으로 210km/h까지는 속도계의 바늘이 조금도 주춤하지 않고 움직인다. 6단으로 넘어가면서는 바늘의 움직임이 둔해지지만 속도 제한 시점까지 거침없이 가속된다. HUD로 확인한 최고 속도는 258km/h, 이때의 회전수는 6단 6,400 rpm이다.
변속기는 세단보다 스포티하고 예상보다도 스포티한 세팅이다. D 모드에서는 부드럽지만 수동 조작을 하거나 스포트 모드에서는 변속할 때마다 머리가 살짝 움직일 정도의 충격이 있다. 수동 변속 시 기어가 재빠르게 물리는 느낌도 일품이다. 내가 1세대 6HP 시절부터 ZF를 좋아하긴 했지만 최근에 나온 8HP도 물건이다. 고속 안정성이 좋은 건 여러 말 하면 손가락 아프다.
이런 차는 뚜껑 까고 달려줘야 제 맛인데,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어차피 비 좀 와도 뚜껑 열 생각이었지만. 참고로 비가 어느 정도 와도 빨리 달리면 비 잘 안 맞는다. 바람 타고 날아간다. 오픈 보디는 톱을 열었을 때의 설계가 중요하다.
고급 모델일수록 톱 열고 달릴 때 바람의 들이침이 적다. 650i 컨버터블은 차급이나 가격을 생각할 때 바람의 들이침이 많은 편이다. 유리를 모두 올리고 달려도 발치까지 바람이 휘감긴다. 벤츠 SL이나 구형 포르쉐 박스터는 바람의 들이침이 가장 적은 모델이었는데 650i 컨버터블이라면 이 정도는 기대하게 된다.
하나의 코너를 돌 때는 콤파스 같다. 뒷 타이어가 찰싹 달라붙어 있고 그 앞의 부분이 빙글 회전한다. 긴 코너를 돌 때는 적당하게 엔진의 출력을 죽였다 살렸다 하면서 치고 나갈 수 있는 구동력을 제공한다. 예전처럼 전자장비가 일단 엔진의 출력을 줄이고 보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운동 성능을 발휘하는 쪽으로 세팅이 진화하고 있다. 롤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컴포트 모드에서도 날렵한 움직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BMW의 전통이기도 한 스티어링의 민감한 중심 때문에 재미가 더하다.
거기다 잘 멈추기까지 한다. 650i 컨버터블은 408마력을 초라하게 만드는 강력한 브레이크가 있다. 높은 속도에서 급제동하면 아주 강한 힘으로 차의 속도가 줄어든다. 페달을 밟았을 때의 반응도 대단히 빠르다. 200km/h 부근에서 연달아 급제동했을 때도 페이드가 발생하지 않는다. M3를 제외한다면 최근 타본 BMW 중 가장 브레이크가 좋다.
650i 컨버터블의 단점은 앞서 말한 바람의 들이침 정도다. 그 외에는 죄다 좋은 것 투성이다. 호사스러운 컨버터블인데 잘 달리고 잘 멈추기까지 한다. 거기다 정숙성이 좋아 쿠페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어차피 컨버터블만 팔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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