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5 LE를 사려던 사람이라면 XE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24일 열린 르노삼성 SM5 ‘XE’ TCE의 기자 시승회에서 신차를 타본 뒤 동승자와 내린 결론이다.
르노삼성차는 그 동안 젊고 스포티한 분위기를 낸 모델의 트림명으로 ‘XE’를 써왔다. 외관과 실내를 일부 차별화하긴 했지만 성능 면에서는 차이가 없어 아쉬움을 남겼었다. 그런데 이번 SM5 XE는 엔진과 변속기를 달리하면서 성능도 높아져 제대로 이름값을 하게 됐다.
‘TCE’로 구분되는 파워트레인 덕분에 신차는 19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쏘나타의 172마력보다 크게 높은 것은 아니지만, SM5 2.0이 141마력, SM7 2.5가 190마력인 것을 고려하면 이 회사 기준에서는 ‘SM5의 고성능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신차의 배기량이 1.6리터, 1,618cc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힘을 내는 비결은 가솔린 직분사와 터보차저다. 업계에서는 엔진 배기량을 줄여 효율을 높이는 대신 과급기를 달아 힘 부족을 때우는 ‘다운사이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BMW, 포드 등이 앞장섰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도 동참했다.
포드는 국내에서도 177마력 1.6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얹은 중형차 ‘퓨전’을 판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쏘나타에 1.6 터보 엔진과 6단 더블(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적용해 모터쇼에 출품한 바 있으나 상용화를 미루다 이번에 르노삼성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SM5 TCE는 기존 CVT 대신 국내 중형차 최초로 듀얼클러치 변속기(DCT)를 탑재했다. 수동변속기의 효율과 정확성에 자동변속기의 편리함과 부드러움을 조합시킨 첨단 변속기다. 일부 수입차에 적용되어 있고, 국산차 중에서는 현대 벨로스터 DCT에 적용됐다. 신차에 얹힌 것은 독일 게트락社의 ‘파워시프트’ 제품으로, 이 회사 DCT는 포드, 볼보 등의 승용차에서부터 페라리 등의 고성능 스포츠카에까지 두루 적용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신차에 탑재된 MR190DDT GDi Turbo 엔진은 닛산의 것이다. 닛산 쥬크, 르노 스포츠의 클리오 RS등 주로 고성능 소형차에 사용되어 왔다. 이 엔진에 게트락의 6단 DCT를 묶어 중형차에 얹은 것은 얼라이언스 내에서도 SM5가 최초다. 게다가 르노삼성에서 먼저 이 조합을 제안해 관철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애초에 한국시장에 특화된 조합으로 탄생했고, 그만큼 철저히 한국시장에 최적화된 튜닝을 거쳤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신차의 변속기는 저속에서의 거동이 그간 여러 수입차에서 경험한 DCT의 그것과는 달랐다. 수동변속기 구조에 기초하다보니 가다서다 할 때 툴툴 거린다거나 작동음이 들리는 등 자동변속기와는 다른 불편함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적어 토크컨버터를 쓴 일반 자동변속기 차로 착각할 만했다. 유럽과 달리 수동변속기를 등한시하는 국내 고객들의 취향에 맞게 클러치 작동 등 여러 부분을 손본 결과라고 한다.
자동변속기 뺨치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대신, 반응 속도나 순간적인 직결감면에서는 아무래도 DCT가 상징하는 기대치에는 못 미칠 수 있다. 젊고 스포티함을 추구하는 고객을 겨냥했다곤 하나 결국은 편하고 부드러운 것에 익숙한 보통의 중형세단 고객을 모두 잡고자 한 설정이고, 그것이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튀지 않는 중형세단을 타되 답답하지 않은 성능을 원하는 수준이라면 매칭은 썩 좋은 편이다. 게다가 일반 자동변속기보단 당연히 효율이 높고, 특히 기존 CVT와 비교하면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 엔진 힘도 중요하지만 그에 맞는 변속기가 있어야 제 실력이 발휘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계기판 바늘을 빨간색으로 바꿨고 도어 손잡이 등에 화이트 펄 장식을 적용했으며, 시트 등판에 XE로고도 박았지만 변속기 레버 등에는 변화가 없다. 우선은 변속기를 D에 넣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타이밍이 늦는다던지, 수동변속을 할 때 매끈하게 엔진회전수가 맞춰지는 등의 단서를 통해 일반 자동변속기와 다름을 느끼게 된다.
일단 출발을 하고 나면 2,000rpm 직전부터 강한 추진력이 걸린다. 자동변속이 이뤄지는 시점은 6,100rpm을 경계로 45, 80, 120km/h. CVT를 쓴 일반 SM5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두 명이 탑승한 상태에서의 0-100km/h 가속은 8초대로 보이는데, 회사 측에서도 수치를 밝히진 않았으나 관계자를 통해 SM5 2.0보단 2초 남짓 빠르단 얘길 들을 수 있었다. 제원을 떠나, 밀어 올려주는 힘에 국산 중형차에서 만나기 힘든 뿌듯함이 있다.
지금은 단종 되고 없는 SM5 2.5와 비교해도 만족감은 훨씬 높다. SM5 2.5는 SM7 2.5와 달리 4기통 178마력 엔진을 탑재했다. 엔진 토크만 봐도 1,000rpm 초반의 낮은 회전수를 제외하면 모든 영역에서 TCE의 1.6리터 엔진이 더 높은 수치를 보인다. 게다가 TCE의 토크는 2,000rpm이면 이미 최대치인 24.5kg.m에 도달해 5,000rpm까지 유지된다. SM5 2.5는 23.8kg.m였다. 성능뿐 아니라 가속시의 음색, 평상시의 소음 등 종합적인 면에서 TCE쪽의 손을 번쩍 들어줄 수 있다.
동등한 1.6리터 직분사 터보엔진을 탑재한 벨로스터 터보와 비교하면 당연히 더 늦고, 느리지만, 사운드의 질감은 오히려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느 SM5와 달리 배기구를 양 갈래로 뽑기도 했지만, 우선은 중형세단인 만큼 가솔린 직분사 장치 등의 소음을 잘 다스린 덕분일 것이다. 고회전에서는 가속페달을 타고 진동이 느껴지긴 한다.
그리고 가속페달을 깊이 밟아야 반응이 오기 때문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반응이 늦다거나 힘이 기대만 못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다. 변속기는 수동 모드에 두더라도 회전한계에서 다음 단으로 넘어가고, 킥다운도 가능하다. 변속기에 패들과 스포츠모드가 모두 없는 것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높은 배기량의 엔진을 대체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없어도 무방하지만, 젊은 고객들에게 어필하겠다며 스포티함을 내세우는 차이기에 그렇다.
고속에서의 안정감이 보완되지 않은 것도 아쉽다. 운전대는 무거워지지만 차가 가라앉는 맛은 없다. 최고속도가 220km/h에 이르는 등 동력성능이 높아진 만큼 SM7과 동등한 브레이크를 적용해 제동성능을 강화하긴 했으나, 서스펜션 등은 그대로 뒀다고 한다. 기존 모델보다 핸들링에 좀 더 비중을 둘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결국은 대중적인 쪽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SM5의 승차감과 핸들링 균형이 동급 최고 수준이라는 개발진의 자부심에 대해 소비자들이 얼마나 동의해줄 지는 모르겠다.
2.5가 무색할 만큼 높아진 성능에도 불구하고 연비는 2.0보다 좋다는 게 다운사이징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TCE’는 ‘Turbo Charged Engine’이 아니라 ‘Turbo Charged Efficiency(효율)’의 약자라고 한다. 공인연비는 13.0km/l로, SM5 2.0의 12.6km/l보다 우수하다. 동급 최고라는 얘기다. 자동차 전용도로 위주로 이루어진 이번 시승에서는 총 180km 구간에서 8.6km/l를 얻었다. 엔진 특성상, 연비 운전을 할 경우에는 이와 상반되는 좋은 수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00km/h에서의 엔진회전수는 2,000rpm을 살짝 상회한다.
SM5 XE TCE는 SM5의 대표 트림인 LE의 2,660만원보다 50만원 비싼 2,710만원이다. 기본 사양이 동등하고 성능은 훨씬 높으며, 연비가 조금이나마 더 좋고 연간 자동차세까지 적은 점을 고려하면 LE에서 XE로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최신 기술의 신뢰성이나 내구성 등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 말이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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