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스타가 되기를 꿈꿨지만 우발적인 살인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 분)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시카고 최고의 디바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 분)를 만난다. 법정을 쇼 비즈니스 장소로 바꾸는 변호사 빌리 플린(리차드 기어 분)은 언론의 속성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 뮤지컬 장면과 영화 장면을 교차 편집해 쇼를 극대화한 뮤지컬 영화
롭 마샬 감독의 ‘시카고’는 쇼와 스토리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쇼는 뮤지컬로 표현되고, 스토리는 영화로 전개되는 뮤지컬 영화이다.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는 영화의 대사를 뮤지컬의 노래인 뮤지컬 넘버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대부분의 시퀀스에서 별도로 뮤지컬신을 만든다는 점이 독특하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들이 교도소에서 대화를 하는 시퀀스에서 그 장소에서 대화가 노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장소인 쇼 무대를 통해 같은 장면을 다른 각도로 재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뮤지컬이 펼쳐지는 쇼 무대는 영화의 장면을 음악으로 해설, 부연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시퀀스를 두 가지 모습, 두 가지 시야로 볼 수 있는데, 뮤지컬신에서의 넘버는 내면을 표현하는 방백의 기능을 한다. 영화신에서 스토리를 보고, 뮤지컬신에서 내면의 숨겨진 이야기를 노래로 들으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뮤지컬 실황 영상과 영화를 같이 보는 느낌의 ‘시카고’에서 교차 편집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점은 돋보인다. 애니메이션에서의 뮤지컬신도 뜬금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 공간을 한정해 뮤지컬신의 집중도를 높인 영화
‘시카고’는 주요 공간이 한정됐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쇼가 펼쳐지는 극장, 교도소, 법정과 법정 앞 공간 등 주요 공간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런 공간의 한정은 뮤지컬신의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영화의 경우 한정된 장소에서만 이야기가 펼쳐질 경우 다소 지루해질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뮤지컬에서 장소가 자주 바뀔 경우 번잡해질 가능성이 있고, 무대 공연이기 때문에 많은 장소 변환은 실제적으로 어렵다.
‘시카고’는 영화를 단순히 뮤지컬 영화로 변환한 것이 아니라, 뮤지컬의 특징을 잘 살려 만들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쇼를 보여주면서도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교차 편집 또한 이런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 그건 살인이었지만 범죄는 아니야
변호사 빌리는 “재판도 세상사도 서커스, 아찔한 서커스”라고 말한다. ‘시카고’는 재판이라는 긴장감 유지하면서도, 사법제도의 허점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살인이었지만 범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록시의 모습은 영화적 환상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교묘하게 이용해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실제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자극적인 사건에 모여드는 언론의 속성에 대한 풍자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뮤지컬 영화가 아닌 영화였다면 록시에 감정이입한 관객이 마음의 갈등을 할 수도 있는 장면인데, 뮤지컬 넘버를 통해 이어지는 흐름에 록시에 대한 집중된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다.
‘시카고’는 2002년에 제작돼 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작품으로, 이번에 재개봉한다.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 눈부시게 화려한 쇼, 달달한 뮤지컬 넘버와 감각적인 안무는 이번에 처음 개봉하는 작품같이 느껴진다. 뮤지컬 영화를 기획할 때 ‘시카고’의 영화신과 뮤지컬신의 교차 편집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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