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하면 소수를 위한 스포츠카 브랜드로만 알려져 있던 때가 있었다. 특히 기자가 ‘모터트렌드 한국판’에서 일하던 9년 전 등장한 슈퍼카 ‘MC12’는 지금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던 마세라티가 달라졌다. 콰트로포르테로 럭셔리 세단 시장에 들어서더니 기블리로 좀 더 대중화된 시장을 노리고 있다. 또, 최근에는 마세라티 최초의 SUV인 ‘르반떼’까지 내놨다.
콰트로포르테가 S클래스‧7시리즈 크기라면 기블리는 E클래스‧5시리즈 급이다. 시장 규모가 커서 상위 클래스보다 실패 가능성은 적다고 할 수 있지만, 경쟁차종이 워낙 막강해 성공을 장담하기도 힘들다. 마세라티의 도전이 더 돋보이는 이유다.
기블리는 사진보다 실물이 백 배 낫다. 먹이를 공격하기 직전에 웅크린 맹수의 모습 같다고 할까. 시승 중에 기아차 신형 K7과 마주한 일이 있었는데, 기블리의 앞모습이 K7보다 훨씬 낮았다. ‘원조’와 ‘짝퉁’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브랜드 밸류는 다르지만 차체 크기는 제네시스 G80과 비슷하다. 기블리의 차체 길이는 4970㎜로 G80 스포츠보다 20㎜ 짧고, 차체 높이는 1455㎜로 25㎜ 낮다. 반면에 차체 너비는 기블리가 G80보다 55㎜ 넓다. 높이가 낮고 너비가 더 넓어 한층 스포티하고 안정감 있어 보인다. 휠베이스는 기블리가 3000㎜로 G80 스포츠보다 10㎜ 짧다.
인테리어의 디자인과 소재도 매우 훌륭하다. 놀라운 점은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엄청나게 다양하다는 것이다. 마세라티 한국 사이트에서 실제로 옵션을 선택해보니 수십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개별화된 옵션을 고르면 아마도 주문 후 인도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시승차는 고성능 모델인 S Q4. V6 3.0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을 얹고 41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모델이다. 제네시스 G80 스포츠가 V6 3.3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으로 370마력을 내는 데 비해 훨씬 강력한 성능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성에 초점을 맞춰 E300과 528i에 집중했기 때문에 기블리 S Q4에 대적할 만한 차는 없다.
기블리의 시동음은 바리톤처럼 묵직하고 부드럽다. 독일차에서 맛볼 수 없었던 독특한 느낌이다. 승차감은 안락하면서도 출렁거리지 않는다. 갑작스런 조작에도 차체 움직임의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다. 시승 전에 기블리 디젤을 탄 기자들로부터 차가 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가솔린 트윈 터보 모델에서는 그런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650rpm부터 5000rpm까지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56.1㎏‧m의 최대토크도 일품이다.
변속기 옆에 쇼크 업소버 모양의 버튼을 누르면 승차감이 단단해진다. 강력한 엔진성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변화다. 제네시스 G80 스포츠는 드라이브 모드 스위치로 엔진과 변속기, 승차감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 차이가 미미한 편이다.
타이어는 앞 245/40R20, 뒤 285/35R20로 스펙이 다소 과한 느낌도 있지만, 강력한 엔진 성능 덕에 차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G80 스포츠의 최상위 모델은 앞 245/40R19, 뒤 285/35R19로 기블리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를 달았다.
두 차는 모두 상시 사륜구동을 채택하고 있는데, 기블리의 공차중량이 G80 스포츠보다 20㎏ 가볍다. 마력당 중량비(1마력당 부담하는 차체 중량)는 기블리가 5.05, G80 스포츠가 5.65다. 숫자가 작을수록 몸놀림이 가볍다는 의미이므로 이 점에서도 기블리가 우세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세라티와 이제 막 럭셔리 브랜드시장에 명함을 내민 제네시스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비교해봄으로써 제네시스 G80 스포츠가 보완해야할 점을 발견해보는 것도 중요하고, 마세라티가 럭셔리 세단시장에서 지닌 경쟁력을 평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현재까지 기블리에 대한 국내 고객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다. 마세라티 홍보 담당자는 “마세라티 국내 판매의 70%가 기블리이고, 한국은 마세라티의 5대 시장으로 진입해 본사가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기블리는 디젤과 V6 터보, V6 트윈 터보(S Q4) 등 세 가지 모델이 나온다. 기본 가격은 디젤이 1억740만원, V6 터보는 1억1150만원, V6 트윈 터보는 1억3880만원이고, 선택 옵션에 따라 가격이 추가된다. 특별함과 스포티함을 함께 원하는 이들에게 더욱 잘 어울릴 차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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