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가 국산차 최고 인기 모델인 요즘에는 상상도 안 가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준중형차를 자신의 첫 차로 고르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인기가 한풀 꺾인 요즘에도 준중형차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현대 아반떼의 판매량이 건재함이 이를 증명한다.
아반떼의 독주는 나머지 차종의 경쟁력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르노삼성 SM3은 2009년에 나와 아무래도 신선미가 떨어진다. 올해 4484대가 팔려 작년보다 40.8% 감소했다.
그렇다면 쉐보레 크루즈는 어떨까? 올해 1~10월 크루즈의 판매량을 보면, 8687대로 전년 동기보다 0.5% 줄었다. 올해 2월 신차가 나왔으니 한참 펄펄 날아다녀야 하는데 작년보다 오히려 판매가 줄어든 것이다.
론칭 당시 1.4 가솔린 터보 한 차종만 나왔던 크루즈는 이번에 디젤 모델이 추가됐다. 1.6 CDTi 디젤 엔진은 올란도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고, 3세대 6단 자동변속기도 공유한다.
제원표만 보면 최대토크의 범위는 2000~2250rpm으로 좁은 편이다. 아반떼 디젤의 경우 DCT 모델은 1750~2500rpm, 수동 모델은 1500~3500rpm으로 더 넓게 설계됐다.
하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토크와 미션의 활용 범위가 꽤 넓다. 이번 시승 코스는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다이내믹한 구간이었는데, 수동 모드 활용 범위가 넓은 덕에 운전 재미가 쏠쏠했다. 패들 시프트가 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 수동 모드의 활용도가 높다.
특히 가솔린 모델에서 다소 아쉬웠던 접지력이 좋아진 게 인상적이다. 가솔린 대비 75~90㎏ 무거워진 공차중량을 커버하기 위해 서스펜션을 다시 설계한 게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엔진음은 비교적 정숙하다. 고회전으로 차를 몰아붙여도 시끄럽다기보다는 잘 다듬어진 음색이 귀를 즐겁게 한다. 운전자의 실력에 따라서는 가솔린보다 더 재밌게 다룰 수 있겠다.
인증 연비는 16&17인치의 경우 도심 14.6㎞/ℓ, 고속도로 18.0㎞/ℓ이고 18인치는 도심 15.5㎞/ℓ, 고속도로 17.4㎞/ℓ다. 이번 시승은 엔진 성능 위주로 테스트를 했기 때문에 추후 시승차가 마련되면 연비 체크를 해볼 생각이다.
◆상품성은 ‘우수’ 문제는 ‘가격’
편의장비 면에서 개선된 건 뒷좌석용 에어 덕트와 2열 열선 시트 추가다.
뒷좌석 에어 벤트(송풍구)의 경우 크루즈 가솔린은 아예 없고, 아반떼 디젤은 최고급형인 프리미엄에만 장착된다. 크루즈는 출시 초기 이 점을 지적 받았는데, 이번에 나온 크루즈 디젤은 에어 벤트 대신 에어 덕트를 추가했다.
에어 벤트는 센터 콘솔 뒤쪽이나 B필러에 장착돼 뒷좌석 승객을 위해 냉기나 온기를 전한다. 찬 공기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므로 에어 벤트가 있어야 에어컨의 냉기가 뒷좌석 승객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1열 시트 아래에 구멍을 내 그쪽으로 냉온기를 전하는 에어 덕트로는 부족함이 있다. 기왕 바꿀 거면 에어 벤트를 추가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가격에 대해서는 말이 좀 있는 것 같다. 크루즈 디젤의 가격은 LT 2249만원, 디럭스 2376만원, LTZ는 2558만원이다. LTZ에 선루프(60만원)와 어피어런스 패키지(50만원), 내비게이션 패키지(100만원), 스마트 드라이빙 패키지(120만원), 시트 패키지(56만원)를 모두 더하면 2944만원이다.
반면 현대 아반떼 디젤에 풀 옵션을 더하면 2777만원이 된다. 단순 가격 비교만 하면 크루즈가 167만원 비싸다.
크루즈 가솔린 모델이 등장할 때 가격 논란이 있었던 걸 떠올린다면, 더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펴는 게 좋지 않을까. 크루즈 가솔린 모델은 아반떼 가솔린보다 출력과 토크가 높은 걸 감안할 수 있다고 하지만, 크루즈 디젤은 출력이 아반떼보다 2마력 낮고 토크만 2㎏‧m 높을 뿐이다.
게다가 일부 편의 사양 적용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앞좌석 열선의 경우 아반떼 디젤은 2020만원짜리 스마트 모델부터 있는데, 크루즈 디젤은 2376만원짜리 디럭스 모델부터 장착된다. 운전석 전동시트도 아반떼 디젤은 스마트 모델(2020만원)에 60만원만 추가하면 되는데, 크루즈 디젤은 LTZ(2558만원)에 시트 패키지(56만원)를 추가해야 한다.
현대차의 가격 전략이 치밀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GM의 가격 전략에는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입차는 비싼 가격을 부르고 깎아주는 마케팅 전략이 확실히 효과가 있다. 그러나 국산차는 다르다. 기본 가격이 비쌀 경우 할인을 해준다 한들, 관심이 멀어진 후라면 효과를 보기 힘들다.
한국GM 데일 설리반 부사장은 “할인을 해주느니 기본 가격을 낮추는 게 낫지 않느냐”는 기자의 조언에 “한국 고객들은 실 구매가격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재의 프로모션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크루즈는 기본기가 탄탄한 차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 정책 때문에 판매가 신통치 않다는 게 안타깝다. 이제는 수면 위로 떠올라 훨훨 날아오를 때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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