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SUV 시장이 급격히 떠오르고 있다. 북미에서 인기를 끌던 클래스가 어느덧 우리나라에서도 주류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 시장의 강자는 포드 익스플로러와 혼다 파일럿, 닛산 패스파인더, 쌍용 G4 렉스턴 등이었다. 대중 브랜드에서 팔리는 차는 이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차종이 많지 않다.
그러다 최근 현대 팰리세이드가 여기에 가세했다. 차종이 다양한 현대차로서는 좀 늦게 뛰어든 감이 있지만, 사전계약대수만 보만 초반 돌풍이 대단하다. 때마침 혼다도 파일럿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인 ‘뉴 파일럿’을 출시하면서 자연스레 비교 대상에 올랐다.
현대 팰리세이드는 앞서 출시된 신형 싼타페처럼 주간주행등을 위에 배치하고 전조등을 아래에 배치했다.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디자인 담당 현대차 이상엽 전무는 신차발표회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패밀리룩을 찍어내지는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뉴 파일럿은 큰 틀은 같지만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 등을 바꾸며 인상에 변화를 줬다.
팰리세이드의 차체 길이는 4980㎜로, 싼타페보다 210㎜ 길어졌지만 동급 경쟁차 중에는 가장 짧다. 경쟁차인 패스파인더는 5045㎜, 익스플로러는 5040㎜, 파일럿은 5005㎜의 크기다.
반면에 휠베이스의 경우는 팰리세이드와 패스파인더가 2900㎜, 익스플로러는 2860㎜, 파일럿은 2820㎜의 순이다. 휠베이스가 길면 실내를 넓게 뽑아낼 수 있는데, 실제로 팰리세이드의 공간이 가장 넉넉하다.
팰리세이드는 특히 3열 시트 쿠션이 약간 높게 설계되어 있어 성인이 앉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휠베이스가 가장 짧은 파일럿의 3열 시트도 성인이 앉을 수는 있는데, 시트 쿠션이 낮아서 오래 앉기에 불편하다.
3열 시트에 앉기 위해 2열 시트를 접는 기능은 버튼 한 번으로 조작되는 팰리세이드와 파일럿이 가장 편하다. 팰리세이드와 익스플로러는 버튼 하나로 3열 시트를 접고 펼 수 있다. 나머지 두 차는 수동식이긴 하지만 접고 펴기에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전동식의 편리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팰리세이드와 파일럿은 나머지 차종과 달리 7인승과 8인승 두 가지가 마련된다. 7인승의 경우 2열 시트가 독립형 좌석이고, 두 차종 모두 7인승이 더 비싸다. 팰리세이드는 독립형 좌석 사이를 빈 공간으로 놔뒀는데, 파일럿은 이곳에 작은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팰리세이드도 접이식 콘솔박스 같은 것을 두면 더 좋을 듯하다.
팰리세이드의 일체형 클러스터는 다른 차와 한 눈에 구별된다. 7인치 컬러 LCD 클러스터와 10.25인치 내비게이션을 연결해 시인성이 좋고, 뭔가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혼다 파일럿은 기존 계기판 디자인을 디지털 방식으로 바꿨다. 왼쪽에 있던 토크 미터는 위쪽에 디지털 그래프로 대체했고, 주요 정보는 가운데에 있는 멀티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MID)에서 표시한다. 센터페시아에 달린 8인치 디스플레이는 한글이 지원되는데, 운전석 계기판에서는 한글이 완벽히 지원되지 않는 게 흠이다.
팰리세이드와 파일럿은 다른 차와 달리 버튼식 변속 시스템을 장착했다. 파일럿은 P-R-N-D가 뒤쪽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팰리세이드는 P 버튼을 왼쪽으로 빼냈다.
버튼식 변속 시스템은 부피를 작게 차지하기 때문에 센터콘솔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에 레버식 변속기에 익숙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습관적으로 변속기에 손을 얹는 이에게는 오른손이 허전할 수 있다.
파워트레인은 팰리세이드만 디젤(2.2ℓ)과 가솔린(3.8ℓ)이 있고 나머지 수입차들은 모두 가솔린(파일럿·패스파인더는 3.5ℓ, 익스플로러는 2.3ℓ, 3.5ℓ)만 갖추고 있다. 그래서 팰리세이스 가솔린 모델을 시승하면 정확한 비교가 될텐데, 아쉽게도 시승회에는 디젤 모델만 준비됐다.
시승회에 준비된 팰리세이드 2.2 디젤은 싼타페 2.2 디젤과 제원상으로 동일한데, 공차중량은 AWD 모델 기준으로 팰리세이드가 135㎏ 무겁다.
일상적인 운전에서 성인 두 명이 타고 다닌다면 크게 불편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급가속 성능은 팰리세이드가 싼타페보다 쌀짝 둔하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싼타페는 곧바로 반응하는데 팰리세이드는 반박자 느리게 속도가 붙는다. 정원을 꽉 채운다면 그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사실 가속력보다는 차 바닥 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더 거슬렸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하체에서 ‘웅~’하는 소음이 올라오는데, 싼타페는 이보다 조용했던 기억이 있어 계속 귀에 거슬렸다. ‘내 귀가 잘못된 건가’하고 다른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십중팔구는 싼타페보다 소음이 크다고 말한다.
나윤석 칼럼니스트는 그 이유에 대해 “팰리세이드는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개발된 차다. 따라서 방음 대책도 가솔린 모델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NVH 성능에서 싼타페와 격차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며칠 후 타본 혼다 뉴 파일럿은 같은 종류의 엔진은 아니지만 뛰어난 방음 능력을 보여줬다. 풀 가속 때 매끄럽고 민첩한 움직임은 물론이고 거슬리는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흡차음 유리 사용의 차이도 방음 능력의 차이를 가른 것으로 보인다. 팰리세이드는 윈드실드와 1열 유리에만 흡차음 유리를 적용한 데 비해, 파일럿은 2열 유리에도 적용되어 있다.
파일럿이 다른 차와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것 중 하나는 10.2인치 모니터와 무섯 헤드셋을 포함한 리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다. 다른 차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DVD 재생기능도 갖추고 있어 장거리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승차감과 주행안전성의 균형은 팰리세이드와 파일럿이 상대적으로 좋다. 패스파인더와 익스플로러는 안락함에 초점을 맞춰 과격한 주행보다는 부드러운 주행이 어울린다.
노면 상태에 따라 구동력을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은 팰리세이드, 익스플로러, 파일럿에 장착돼 있고 기능은 대동소이하다. 팰리세이드와 익스플로러는 다이얼을 돌려 선택하는 방식이고 파일럿은 버튼을 눌러 순차적으로 선택하는 차이 정도가 있다. 패스파인더는 이 기능이 없지만, 동급에서 유일하게 4륜 구동을 2륜 구동으로 바꿀 수 있고 4WD Lock 기능으로 험로 주파 성능을 높일 수 있다.
복합 연비는 AWD 기준으로 팰리세이드 3.8이 8.9~9.0㎞/ℓ, 파일럿이 8.4㎞/ℓ, 패스파인더가 8.3㎞/ℓ, 익스플로러가 7.9㎞/ℓ다. 팰리세이드 2.2 디젤 AWD는 11.5~11.8㎞/ℓ로 경제성에서는 확실히 앞선다.
차 가격은 팰리세이드 3.8 가솔린에 풀 옵션을 갖출 경우 4757만원, 2.2 디젤 풀 옵션은 4904만원, 혼다 파일럿은 5490만~5950만원, 닛산 패스파인더는 5390만원, 포드 익스플로러는 5460만~5710만원이다. 세부 가격은 개소세 적용 기준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는데, 어쨌든 팰리세이드가 가격이나 사양 면에서 우위에 있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수입 대형 SUV 수요를 상당부분 잠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실제로 지금 주문하면 몇 달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형 SUV는 좀 더 많은 승객을 태우고 싶은 이들, 미니밴 같은 공간에 SUV 기능을 원하는 이들에게 앞으로도 꾸준한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르노삼성과 한국GM도 이 시장에 대응하는 모델을 빨리 내놓을 필요가 있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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