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현대자동차는 미국시장에 쏘나타 쿠페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혼다의 어코드 쿠페, 토요타의 캠리 쿠페(솔라라)처럼 쏘나타 베이스의 중형 쿠페를 추가해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고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그 출시 예정시기는 2007년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2007년에는 그런 차가 나오지 않았다. 개발하던 차도 중간에 엎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보니 발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고 개의할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그렇게 그냥 잊혀져 가나보다 했다.
그런데 2009년, 현대자동차는 자사의 주력모델인 쏘나타 세단을 아예 쿠페처럼 만들어 출시함으로써 허를 찌른다. 벤츠가 CLS로 본보기를 보여준 이래, 몇몇 자동차회사들이 ‘4도어 쿠페’ 즉, ‘세단이지만 쿠페의 스타일을 좀더 적극적으로 접목했다는 이유로 쿠페라고 박박 우기는 자동차’를 뽑아내게 되었다. (그 와중에 쿠페를 세단이라고 우기는 역발상을 시도한 회사도 있긴 하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CC나 벤츠의 CLS는 기존 모델, 즉 파사트와 E클래스의 파생모델로서 좀더 고급화되고 멋을 부린 틈새 공략용 버전의 성향을 띄었고, 그에 비해 이번 쏘나타는 한 대중차 회사의 명실상부한 주력모델이면서도 이처럼 과감한 디자인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파격성이 더욱 돋보인다.
이제, 쏘나타는 스포츠 쿠페가 부럽지 않은 외관을 가졌다. 멋지다. 하지만 순씨, 존씨, 춘씨, 뇌씨, 빙씨 등등 대한민국 온갖 성씨의 남녀와 그 가족이 자가용은 물론 택시로도 애용하게 될 베스트셀러가 이렇게 ‘튀는 디자인’이라니 기뻐해도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현대차도 이점을 고민했는지, 차 값을 적당히 욕 먹을 만큼 올렸다. 국산 중형차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차를 살 것이고, 오른 차 값을 감수한 채 쏘나타를 산 사람들은 그만큼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래도 괜찮은가?’에 대한 대답은 출고대기가 5만대라는 최근 현대자동차의 발표를 접하기 이전에, 도로에서 눈에 띄는 빈도가 여느 신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게 커지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차라는 쏘나타다. 디자인이 지나치네, 차 값이 비싸네, 말은 많지만 살 사람은 다 사는 모양이다. 노후차 지원에 따른 대기수요가 죄다 쏘나타만을 기다리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
대륙(중국)의 분위기가 물씬하다는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승하차 때 머리를 부딪친다는 A필러 각도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가능했던 시도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헤드램프 끝부분에서 사이드미러 아래 벨트라인으로 이어지는 몰딩이 가장 낯설다. 사이드미러는 BMW에서만 되는 줄 알았던 경사 폴딩 방식으로 접힌다. 몇몇은 이것만 보고도 쓰러진다.
하지만 쓰러지기엔 아직 이르다. 스마트 키를 품고 차에 다가가니 손을 미처 뻗기도 전에 운전석 손잡이 안쪽에 하얀색 LED조명이 켜지면서 ‘바로 여기’를 잡으라고 알려준다. 자동으로 점등된 헤드램프는 HID특유의 색온도를 뽐내고,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던 운전석 시트는 시동버튼을 누르자 스스륵 앞으로 전진해 운전하기 좋은 위치에서 멈춰 선다.
시트의 위치 메모리는 부부나 부모자식간 등 번갈아 운전할 일이 잦은 패밀리 카에서 편리한 기능. 두 개의 실린더형 계기판 사이에 자리잡은 3.5인치 TFT LCD화면은 쏘나타의 옆모습과 앞모습을 세련된 그래픽으로 띄워주고, 계기판도 점진적으로 밝아지면서 운전자를 반긴다.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순간이다. 너 쏘나타 맞니?
하지만 거기까지. 쏘나타는 쏘나타. 마감재질과 조작감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승차는 모젠 와이드내비게이션을 장착한 ‘TOP 최고급형’으로, 파노라마 선루프가 빠진 풀 옵션사양이었다. 시승 중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아니, 부정하고 싶었다. 최고급 사양이라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스티어링 컬럼은 각도만 조절될 뿐 거리 조절이 안되고, 스티어링 휠은 운전할 때 늘 손에 쥐게 되는 부분이 가죽옷을 입지 못한 채 헐벗은 플라스틱을 드러냈다. 유리창 스위치는 운전석만 원터치 조작이 된다. 3천만 원이라는 차 값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들이다. 최신, 첨단, 고급 사양도 좋지만 기본부터 잘 챙겨주었으면 한다.
그래도 시각적으로는 제법 그럴싸한 실내다. 스티어링휠이나 대시보드의 디자인은 외관과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 개발명인 ‘YF’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센터페시아에서 플로어콘솔로 이어져 내리는 양끝의 칸막이는 끝나는 위치가 어중간하지만, 이 주변에 몰려있는 수납공간들에 대한 배려는 칭찬할 만하다. 쏘나타 트랜스폼과 비교하면 주차브레이크가 족동식으로 바뀌어 공간활용이 좋아졌고 말 많던 컵홀더에도 덮개가 씌워졌다. 하지만 부드럽고 은은한 느낌을 주었던 구형의 실내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헤드콘솔의 LED 스폿조명은 센터콘솔을 은은하게 비춰주고, 흰색 조명을 쓴 변속기 문자판은 현재의 레인지를 파란색으로 표시해주되 R위치에서는 빨간색이 켜지는 등 제법 신경을 쓴 모양새다. 하지만 파란색 LED를 쓴 센터페시아의 글자들은 야간에 시인성이 떨어지고 눈이 침침한 듯한기분을 만들어 나이 탓을 하게 한다.
겉보기와 달리 뒷좌석은 머리공간이 좁지 않다. 지붕이 낮아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가령, 앞문 손잡이와 뒷문손잡이의 현격한 높이차이를 곱씹어 보면 알 수 있다. 늘씬하게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지붕-뒷유리의 실루엣도 트렁크 덮개와 뒷유리가 만나는 지점을 뒤로 이동시켜 얻어낸 것이다. 실제 차체높이는 수치상 기존 쏘나타보다 불과 5mm 낮은 것으로 되어있다. 타이어나 서스펜션 설정에 따라서도 쉽게 바뀔 수 있는 수준이다.날렵하게 보이던 차체가 보는 각도에 따라 불현듯 육중한 떡대로 돌변하는 것도이유가 있다.아무튼,중형차에서 더 이상의 실내공간을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 아닐까 싶다. 기존 쏘나타 대비 6.5cm나 늘어난 축간거리는 이미 그랜져의 2,780mm를 15mm 넘어섰다.
뒷좌석에서 바라본 송풍구 주변은 그랜져보다도 고급스럽다. 그랜져보다 바닥 터널도 낮고 송풍구 아래쪽을 파놓아 발을 통과시킬 때도 덜 거치적거린다. 비슷한 가격대의 그랜져에는 빠져있는 뒷좌석 열선 기능도 마련되어 있다. 헤드레스트는 최대한 내리더라도 후방 시야를 다소 가리는 타입이고, 가운데 좌석용은 물론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앞좌석에 비하면 뒷좌석 수납기능은 인색한 편으로, 가운데 팔걸이에 노출된 컵홀더가 전부다. 스키스루는 가능하지만 등받이를 접을 수 있는 기능까지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트렁크는 용량 수치상으로 NF보다 1리터가 커졌고 여전히 골프백+보스턴백 4세트가 들어간다. 개구부가 좁거나 문턱이 심하게 높은 것도 아니어서 실용성 면에서 흠을 잡기 어렵다. 다만 시승차는 도어록이 해제된 상태에서 트렁크 덮개에 달린 버튼을 눌러도 스마트키를 소지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트렁크가 열리지 않아 불편했다. 운전석의 트렁크 버튼과 주유구 버튼은 대시보드 왼편의 그리 낮지 않은 위치에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조작이 편하지만 야간에는 조명이 켜지지 않아 답답한 감이 있다.
전륜 서스펜션은 더블위시본 방식이었던 이전 쏘나타와 달리가볍고, 단순하고, 효율적인 맥퍼슨 스트럿 방식으로 바뀌었다. 트랜스폼에서 눈에 띄는 장비였던 AGCS(액티브 지오메트리 컨트롤 서스펜션)에 대한 얘기가 쏙 들어간 대신 (성격은 전혀 다른 장비지만) 진폭감응댐퍼가 기본으로 달린 것도 특징이다. 시승차는 215/55R17 사이즈 타이어를 끼웠는데, 서스펜션과 어우러진 전반적인 반응은 무난했다. 당연히 국내 실정에 잘 어울리는 설정을 적용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크게 출렁거리지는 않는다는 면에서 만족스럽다.
하지만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고 특히 고속에서는 안정감이 떨어진다. 조향력은 대체로 가벼운 편인데, 유턴을 할 때 스티어링 휠을 감았다 풀면서 느껴지는 차의 모션이 유독 맛깔스럽게 다가왔다. 일부 예민한 운전자들은 후륜의 추종성에 대해 이질감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도로이음메 등에서는 스티어링 휠에 전달되는 충격이 의외로 큰데, 225/45R18사이즈의 휠타이어를 끼우는 ‘스포츠’사양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다.
엔진은 출력과 토크가 기존 쏘나타보다 눈곱만큼 향상되었다. 쏘나타 트랜스폼 출시 때 이미 놀랄 만큼의 쥐어짜기를 실시한 터라 이번에는 숫자 장난 수준의 생색내기에 그친 것이다. 하지만 차량 중량이 가벼워졌고 자동변속기도 4단에서 6단으로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에 주행질감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졌다.
새 변속기는 수동모드에서 단수를 내려도 회전수가 부드럽게 올라가면서 제법 매끄럽게 반응해준다. 수동모드의 위치도 D에서 왼쪽, 즉 운전자 쪽으로 당겨야 하는 ‘바람직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플로어콘솔의 반쪽을 수납공간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수동모드에서의 조작은 지나치게 왼쪽으로 쏠린 감이 없지 않다. 말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차이. 팔걸이와도 간섭을 일으키는 듯 해서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손에 쏙 들어오는 레버를 쥐고 앞뒤로 흔들다 보면 쉽게 익숙해진다.
엔진 힘은 2.0리터 중형세단으로서 적당한 수준이다. 어지간한 속도에서는 정숙함을 유지할 수 있고 꾸준히 밟고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200km/h를 넘어설 수도 있다. 다만 소비자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출력을(출력 수치를) 높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흠이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듯 하지만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굉음과 함께 페달과 스티어링휠을 통해 유쾌하지 않는 진동이 전달된다. 오르간식 가속페달은 발진 시에만 튀어나가듯 반응하는 피곤한 타입. 클리핑으로 전진할 때는 차체에 미묘한 떨림이 있다.
100km/h 정속주행시 엔진회전수는 2,000rpm을 살짝 넘는 정도. 시승기간 평균연비는 9.3km/L로, 비슷한 거리를 주행한 투싼ix 디젤과 비교했을 때의 체감연비는 오히려 나았다. 공인연비는 12.8km/L로, 기존 쏘나타(11.5km/L)보다 나아진 것으로 되어있다.
실은 0-100km/h 가속성능 역시 기존의 11.7초에서 10.9초로 당겨졌다. 덜 먹으면서도 더 세진 것은 역시 몸무게가 줄고 변속을 효율적으로 하게 된 덕분일 것이다. 다이어트의 좋은 점을여기서 다시 배우게 될 줄이야. 식단 조절과 운동을 미루고 있는 자신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이쯤되면 몸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안전성도 약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들어올 수 있다. 당연히 현대차는 그에 대한 답변도 준비했다. 차체강성은 오히려 향상됐고(수치도 보여준다.)국내외 충돌테스트에서도 최고점수를 받을 수 있게끔 설계했노라고. 기술발전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에어백은 운전석/동반석이 기본이고 1열 측면과 커튼 에어백을 전 모델에서 선택가능하도록 (TOP최고급형에서는 기본장착)했다. 차체자세제어장치-VDC도 기본사양인데,오르막길에서는 뒤로 밀림방지기능이 작동해 편리하다.
시승차의 가격은 TOP최고급형 (2,785만원) + 모젠 프리미엄 와이드 내비게이션 (200만원) = 2,985만원. 이 정도면 그랜져를, 2.4뿐 아니라 2.7 V6급까지도 노려볼 수 있지만 편의사양이나 유지비 면에서는 아무래도 쏘나타가 유리하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황송한 고급사양과 부실한 기본사양/마감의 언밸런스는 시승차와 같은 풀 옵션 모델을 추천하기 어렵게 한다. 악명 높은 ‘옵션장난질’을 피해 사양을 일부 양보하고 적절한 트림에 만족하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쏘나타는 여전히 대한민국 중형세단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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