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70이 엔진 하나로 확 달라졌다. 신형 D5는 트윈 터보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출력과 토크, 연비가 모두 좋아졌다. 이렇다 보니 XC70의 주행 성능도 비례해 좋아졌다. 왜 진작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초반 가속이 좋은 것은 물론 고속에서 뻗어나가는 힘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요즘 디젤은 정말 매력적이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XC70 같은 차종을 시승할 때면 생각나는 식상한 질문이 있다. 꼭 한 대만 사야 된다면 무슨 차를 고를 것이냐라는 것이다. 세단도 좋고 SUV도 좋은 사람들은 갈등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크로스오버가 있고 이런 수요를 노려 XC70이 탄생했다. 그럼 이런 장르의 차에는 어떤 엔진이 어울릴까. 생각할 것도 없이 디젤이다. 매일 타고 다녀야 하는 일상의 발이라는 점과 세단 보다 무겁다는 것을 감안하면 디젤이 정답이다. 그리고 중량이나 사이즈를 볼 때 배기량이 2리터는 넘어야 한다. 출력이야 높을수록 좋지만 유지비나 가격도 생각해야 하니까 말이다.
볼보는 이미 D5라는 괜찮은 디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형 D5를 개발했다. 더 좋은 디젤이 필요한 시점에 맞춰 내놓은 것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새 디젤의 출시가 빠르다고는 할 수 없다. BMW만 보아도 엄청난 속도로 엔진을 갈아치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볼보의 규모와 경영 상태를 생각하면 결코 늦다고는 볼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새 유닛을 개발해 내놓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이런 점이 사브와의 결정적 차이고 매각 시장에 나왔을 때 브랜드의 가치가 달라진다.
2010년형 XC70은 엔진이 핵심이기 때문에 신형 D5를 빼놓고 지나갈 수 없다. S80에 첫 선을 보인 D5는 기존의 185마력 유닛을 대체하는 엔진이다. 출력은 205마력으로 20마력 높아졌고 최대 토크도 42.8kg.m으로 늘었다. 주목할 것은 최대 토크가 1,500 rpm 시작해 3,250 rpm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요즘의 디젤은 지체 현상을 줄이는 것과 토크 밴드의 폭을 넓히는 게 중요한데, 신형 D5는 이런 점을 만족하고 있다.
신형 D5는 사이즈가 다른 두 개의 터빈을 적용해 저회전의 토크와 고회전의 출력을 동시에 잡았다. 토크 밴드가 넓어진 것은 진보적인 EGR(Exhaust Gas Recirculation) 때문이기도 하다. D5의 EGR은 냉각 핀을 개선해 열 손실을 25% 이하로 줄였고 터빈의 최대 부스트도 1.8바로 높아졌다.
그리고 프리미엄 브랜드의 디젤들처럼 압축비를 낮춰 엔진의 소음과 진동을 감소시켰다. 신형 피에조가 추가돼 엔진의 반응도 빨라졌다. 볼보는 빠른 워밍업 시간을 위해 세라믹 재질의 예열 플러그를 적용했다. 냉간 시 다량으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세라믹 플러그는 단 2초 만에 1천도로 온도를 올릴 수 있어 영하 30도에서도 별다른 워밍업 없이 출발이 가능하다.
새 D5의 장점은 아이들링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이전의 185마력과 비교한다면 공회전 소음이 한결 잦아들었다. 디젤 특유의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방음을 잘 해 음색이 부드럽다. 압축비가 낮아지면서 진동도 줄었다. 그래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모델로서는 진동이 좀 있는 편이다. 불쾌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산뜻한 디자인의 실내에서 느끼는 디젤의 진동이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S80 D5도 그랬지만 XC70 역시 출발과 동시에 늘어난 힘이 느껴진다. 1,500 rpm에서 나오는 최대 토크 때문에 터보의 지체 현상이 크게 줄었다. 토크 밴드도 넓어서 일단 터보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회전수에 상관없이 넉넉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단 20마력 늘었을 뿐인데 체감 성능은 레벨이 다를 정도다. 0→100km/h 가속 시간도 1초가 단축됐다.
또 토크 밴드 내에서는 엔진의 회전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소리도 줄어든다. 2천~3천 rpm 사이로 크루징 하면 가솔린 부럽지 않을 정도다. 상황에 따라서는 가솔린 보다 조용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신형 D5 엔진은 고회전에서도 질감이 좋고 변속 바로 직전까지도 끈질기게 토크를 생산한다.
1~4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각각 40, 75, 105, 140km/h로 늘어난 무게를 감안해 S80 보다 기어 폭이 좁다. 200km/h는 5단 4,500 rpm에서 도달하는데, 이 속도에 도달하는 시간이 한층 빨라졌다. 기존의 185마력 버전은 200km/h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신형 D5는 어렵지 않게 이 속도에 도달한다. 지금껏 나온 볼보 디젤 중에서는 고속으로 뻗는 힘이 가장 좋다. 추월 가속 시의 반응이 빨라진 것은 물론이다.
6단 자동변속기는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한다. 신형 D5와 함께 내부적으로 개선을 한 모양인지 추월 또는 킥 다운 시 반응이 빨라졌다. 주행 중에는 물론 정차 시 모드 변경에서도 변속 충격이 거의 없다.
엔진처럼 티가 나는 부분은 아니지만 하체의 세팅도 소폭 달라졌다. 하체는 기본적으로 컴포트 지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안정감이 좋아졌다. XC60처럼 초기의 롤을 생각하면 고속에서 불안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전력으로 내달려도 아주 편안하게 직진할 수 있다. 고속 주행 시 바람 소리도 적은 편이어서 심적인 부담이 적다.
댐퍼의 스트로크가 길어서 어지간한 충격은 죄다 흡수한다. 난감하게 생긴 과속 방지턱을 우당탕 하고 넘을 때도 불쾌한 충격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만큼 충격 흡수력과 승차감이 좋다.
2010년형은 조향 특성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언더스티어 성향이 큰 편이었지만 2010년형은 조향에 비해 바깥으로 밀리는 거동이 크게 감소했다. 뉴트럴을 지속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뜻도 된다. 피렐리 스콜피온 제로 타이어는 스키드 음이 비교적 일찍 발생하는 편이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준다.
XC70의 제동 감각은 승용차와 진배없다. 부드러운 하체 때문에 급제동 시 노즈다이브 현상이 크게 일어나긴 하지만 안정적으로 멈춰 선다. 고속에서도 좌우 밸런스가 좋고 첫 페달의 터치부터 완전히 멈출 때까지 일정한 제동력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페달의 감각도 다루기가 쉽다.
흔히 S80을 잘 생겼다고 하는데, XC70도 별반 다르지 않다. XC70의 인상은 평소에 정장 수트를 즐겨 입는 사람이 주말을 맞아 아웃도어로 갈아입은 느낌이다. 당장 레저를 위해 떠날 수 있는 채비라고나 할까.
S80이 베이스 모델이기 때문에 XC70의 덩치도 상당하다. 오히려 S80 이상이다. 전장×전폭×전고는 4,840×1,900×1,640mm로, S80(4,851×1,876×1,493mm)과 비교하면 길이만 조금 짧을 뿐이다. 늘어난 트레드와 전고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더 커 보인다. 차체에 비한다면 17인치 휠은 조금 작아 보인다.
크로스오버답게 스타일링에서도 여러 장르의 요소가 혼합돼 있다. 전면은 볼보 세단의 모습 그대로지만 약간 높아진 지상고는 SUV, 늘어난 C 필러 이후의 보디는 왜건의 기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2010년형은 볼보 특유의 아이언 마크 사이즈가 더 커졌다.
실내는 볼보 승용차 그대로다. 겉은 아웃도어지만 속옷은 바꿔 입지 않는 것과 같다. 등산용 팬티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 장르의 차로서는 너무 밝은 톤을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거실을 연상시키는 볼보 특유의 실내 분위기는 XC70에도 유효하다.
XC70은 시야가 참 좋다. 시트 포지션이 좀 높아지기도 했지만 대시보드가 탁 트여 있고 유리의 면적도 넓다. 사이드미러를 통한 사각지대는 다소 있는 편이지만 BLIS가 있기에 걱정할 사항은 아니다.
볼보는 예전부터 스티어링 휠의 림 전체를 우드로 둘렀다. 과거에는 이 우드가 좀 미끄러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끄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에 착 감긴다. 사람 모양의 공조 장치는 가장 사용하기 편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과거에 비해 내비게이션의 조작 성능도 좋아졌다.
XC70 사이즈의 모델에게 주차 어시스트는 필수 장비일 뿐 아니라 성능도 중요하다. 탑재된 주차 어시스트는 후방 카메라는 기본, 물체가 가까워지면 경고음과 액정을 통해 거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후방 주차할 때는 차와 물체의 거리가 숫자로도 표시된다. 키리스 시스템에는 도어 개폐 시 사이드미러 자동 접힘 기능도 추가됐다.
2% 아쉬웠던 D5의 동력 성능은 새 유닛으로 말끔히 해소됐다. 엔진만 바꿔도 차가 이렇게 좋아지고 다른 장점들도 동시에 부각된다. 거기다 연비도 좋아졌다. XC70은 세단+SUV+왜건을 한 방에 소유할 수 있다. 물론 이것저것 담다 보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쉬운데, XC70은 좀 다르다. 모든 장르에서 완벽하다고는 할 순 없지만 두루두루 만족한다. 이게 바로 틈새와 어정쩡함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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