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공
알파로메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메이커였고 레이싱에서도 혁혁한 성적을 올렸다.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도 알파로메오 팀에서 활약했다. 알파로메오는 2번의 F1 월드 챔피언과 밀레밀리아 11회, 타르가 플로리오 9회, 르망 24시 5회,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 3회 우승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물론 모터스포츠의 성공은 1950년 이전에 집중돼 있다. 그 시작은 1차 대전 이후에 시작된다. 부가티에 대항키 위해 결정된 알파로메오의 팀에는 안토니오 아스카리, 우고 시보치, 그리고 무명 드라이버 엔초 페라리도 참여했다. 엔초는 레이싱 드라이버로서보다는 경영인으로서의 재능이 뛰어났고 곧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결성해 알파의 모터레이스 황금시대를 열었다.
페라리의 재능이 최초로 발휘된 것은 1923년 피아트사의 유능한 기술자 비토리오 야노를 영입하면서부터다. 야노 영입 이후 알파로메오는 수많은 명차를 토해냈고 그 첫 작품은 1924년 나온 P2 GP 머신이다. P2 GP로 인해 피아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30년대 중반까지 GP 레이스를 독주한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명차 8C2300은 1931년부터 34년까지 르망 24시 4연패, 밀레밀리아에서는 3승을 거두는 무적의 성능을 과시했다. 130마력의 직렬 8기통 DOHC 수퍼차저를 얹은 8C2300의 상대는 없었다. 그리고 2300 몬자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3연승, 이탈리아 GP에서도 3승을 따냈다. 포드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당시 “나는 알파로메오가 지나갈 때마다 머리 숙여 인사한다”는 최고의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니콜라 로메오는 1933년 회사를 국영 회사인 IRI(Istituto per la Ricostruzione Industriale)로 넘기고 알파로메오를 떠나게 된다. 알파로메오는 경영권이 넘어간 후 주 생산을 네이플즈로 옮기며 전쟁 중에는 공장이 3번이나 파괴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1938년, 야노와 페라리가 차례로 알파로메오를 떠나면서 어려움을 맞게 된다. 하지만 죠아키노 콜롬보에 의해 개발된 타입 158GP 머신으로 전후의 레이스에서도 무적의 힘을 보여주며 50년에는 G. 파리나가, 51년도에는 M. 판지오가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새롭게 태어난 페라리에게 밀리면서 1952년의 타이틀을 넘기고 만다. 알파로메오는 페라리에게 밀리자 1952년을 끝으로 모터스포츠에서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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