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수퍼카, 폭스바겐 시로코 2.0 TSI
이정도면 수퍼카를 축소한 것 같은 자세. 폭스바겐 시로코는 자세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달리기 실력도 생긴 대로다.
글, 사진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시코로는 사실 폭스바겐 업! 시승 전에 잠시 타본 것이다. 업!은 국내에서 팔릴 차가 아니기 때문에 시코로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본 상품보다 사은품이 더 좋다고나 할까. 굳이 비유를 한다면 카메라를 샀는데 사은품으로 온 구스 다운이 더 맘에 드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업! 시승 전에 타본 시로코는 2.0 TSI(+DSG) 모델이다. 근데 그냥 2.0 TSI는 아니고 R 라인이다. 시로코 국내 출시 소식을 듣고, 로마에서 탄 시승차를 보고 2.0 TSI가 출시될거야라고 자신 있게 예상했지만 2.0 TDI가 먼저 나온다. ‘아, 역으로 가나요’
고만고만한 차 천지인 로마가 아니더라도 시로코는 정말 튀는 디자인이다. 사납게 생긴 얼굴을 갖고 있으면서도 예쁘다. 폭스바겐 출장 갔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시로코는 아주 멋지고 예쁘게 생겼다. 이정도면 외관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참고로 역시 덤으로 더 잠깐 타본 골프 카브리올레는 별로 안 예쁘다.
시로코를 실물로 보니 사진보다 낫고 차는 더 작다. 완전히 군살은 쏙 빼고 근육만으로 꽉 채운 스타일링이다. 사람으로 치면 ‘슬림 근육’ 남자 배구 선수다. 작지만 군살은 전혀 없는 몸매이다. 그리고 스탠스 자체가 공격적이다. 얼핏 봐도 튀어나갈 것 같은 게 아니라, 달리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보인다. 부푼 리어 펜더에는 튀어나가기 위해 힘이 잔뜩 실려 있다. 골프 GTI와 비교한다면 시로코는 낮고 길다. 그런데 시각적으로는 더 작아 보인다. 차고가 10cm 정도 낮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록 컨셉트는 양산형으로 나오기에는 다소 과감한 디자인이었다. 양산형인 시로코는 컨셉트카의 과감함이 좀 희석되긴 했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공격적이다. 프런트 엔드의 디자인은 치프 디자이너가 무라크 군낙에서 발터 드 실바로 바뀐 영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형의 디자인은 클라우스 비쇼프가 이끌었다.
빵빵한 엉덩이를 빼놓을 수 없다.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보디 라인은 뒤에서 보면 더욱 매력적이다. 스포일러의 면적은 작은 차체를 생각하면 넓은 편이다. 해치백에 이 스포일러가 도움이 되나 싶다. R 라인은 이른바 R 룩이다. 근데 엄밀히 보면 R과 똑같지는 않다. 이른바 얼핏 R 룩이다. 펜더에는 R 라인이라는 배지가 붙고 트렁크에도 2.0 TSI가 붙는다. 진짜 R은 트렁크에 R 로고만 붙고 머플러도 양쪽에 붙어 있다.
알로이 휠 역시 간결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작은 차체에 18인치 사이즈의 휠이 과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휠 하우스를 가득 채운 모습이 스포티하다. 사이즈는 245/40R로 다소 과분하다. 유럽 사양에는 브리지스톤 또는 던롭 타이어가 채용되고, 국내 출시 모델에는 아마 RE050A 또는 콘티스포트콘택3 둘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로코의 문을 열면 시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로코의 시트도 겉모습처럼 생겼다. 등받이와 쿠션의 날개에 날이 서 있다. 타고 내릴 때 허벅지가 걸려 불편함을 느낄 정도다. 시트는 폭스바겐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시승차의 시트는 전동만 지원될 뿐 별다른 기능도 없다. 하지만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다. 앉으면 몸이 딱 달라 붙는다.
시트 포지션도 골프 GTI보다 10mm가 낮다. 가능한 낮은 걸 선호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맘에 든다. 시트를 최대한 낮추면 푹 꺼지는 포지션이 되는데, 이 때문인지 머리 위 공간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 거기다 벨트라인이 높아서 앉았을 때는 도어에 팔을 걸치기도 어려운 자세가 된다.
요즘은 대부분의 메이커가 실내 디자인을 통일하는 추세라서 새 차의 신선함이 많이 희석되고 있다. 시로코 역시도 익숙한 폭스바겐의 분위기인데, 시트와 운전대 등에 메탈 트림을 추가했다. 거기다 R 라인 패키지라서 시승차의 운전대에는 메탈 트림도 있고 버튼도 더 고급스럽다. 자주 잡는 그립은 굴곡이 있어서 엄지손가락에 딱 걸린다. 계기판 디자인은 심플하고 가운데 액정에도 내비게이션의 정보가 표시된다. 물론 국내 사양에는 적용 안 될 것이다.
실내에는 메탈 트림이 많다. 각 송풍구와 도어 트림, 그리고 센터페시아의 모니터 주변까지 많은 메탈을 사용했다. 이전엔 몰랐는데, 중앙의 송풍구는 뒷유리를 통해서 보면 머플러 모양을 형상화한 것 같다. 도어 트림의 디자인은 특이하다. 도어 트림의 디자인에서 다른 폭스바겐과 차별화 됐다. 사이드미러의 조절 버튼은 위치가 뭔가 어중간하다.
모니터는 양쪽에 주요 버튼을 배열한 심플한 디자인이며 이 역시 익숙한 디자인이다. 짧은 기어 레버는 수동의 느낌을 풍기고 모양새 역시 다른 폭스바겐의 DSG와 동일하다. 기어 레버 앞에는 ESP와 ACC(Adaptive Chassis Control) 버튼이 마련된다. R 라인 패키지여서 풋레스트와 페달에도 알루미늄이 덮여 있다. 차는 작아도 풋레스트는 어느 차 못지않게 크다.
엔진은 210마력(28.5kg.m)의 2.0 TSI이다. 초기 모델에는 200마력 버전이어다가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2.0 TSI와 6단 DSG 역시 익숙하면서 확실히 검증된 조합의 파워트레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로코는 생긴 대로 움직인다. 생긴 것처럼 아주 기민하면서도 민감하고, 오른발에 힘을 주면 사납게 가속한다. 제원상 최대 토크는 1,750 rpm이지만 체감으로는 그 이하의 회전수에서도 활발하다. 밟는 대로 쭉쭉 뻗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반응이 빠르고 토크 밴드가 넓은 엔진은 운전의 스트레스를 최소화 한다. 거기다 페달을 밟는 재미도 있다. 로마에서는 우리 기준으로, 특히 신호 받고 출발할 때는 열심히 달려야 교통 흐름에 맞출 수 있다. 그쪽 분위기에 익숙해지니 시로코로 로마 시내를 달리는 게 아주 재미있다. 고만고만한 차들 천지인 도로에서 시로코는 수퍼카가 된다. 가속 페달을 딱 반만 밟아도 다른 차들은 사이드미러에서 사라진다.
0→100km/h 가속 시간은 6.9초로, 순발력 자체가 엄청나게 좋은 것은 아니다. 요즘 이정도 순발력은 대단치 않다. 그런데 차가 낮고 보디의 롤이 적어서 그런지 체감 가속력은 더 빠르게 느껴진다. 스포티한 차는 천천히 달릴 때도 재미있어야 하는데, 시로코가 여기에 부합되는 차다. 거기다 엔진 음색과 회전 질감이 좋아서 자꾸만 달리고 싶게 만든다.
외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로코를 타게 됐다.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이제 시승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힘껏 밟는데, 옆자리에 탄 현지 가이드가 고속도로에 카메라 있다고 태클을 걸었다. 카메라 있는 구간은 아니었는데. 결국 시승을 위해 호텔에 도착한 다음 또 끌고 나가야 했다.
고속도로에서는 교통 사정 때문에 잠시 200km/h를 찍는데 그쳤다. 여기까지 가속은 대단히 수월해 제원상 최고 속도는 무난할 듯싶다. 익숙한 파워트레인은 시로코에서는 더욱 스포티한 세팅이다. 거기다 하체의 세팅은 더하다. 아주 짱짱하게 차를 받쳐준다. 고속에서 특유의 안정성은 물론 회전할 때도 대단히 민첩하다. ESP의 개입도 늦고, 개입해도 어느 정도는 엔진의 출력을 살려두면서 차를 컨트롤한다. 시로코는 가속보다 회전할 때가 더 매력이 있다.
시로코는 일단 생김새부터가 심상치 않다. 예전 같다면 전혀 폭스바겐스럽지 않은 디자인이다. 그만큼 스타일링만으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차다. 문짝 개수만 제외한다면 모든 면에서 골프 GTI보다 낫다. 문짝 2개에서 오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대단히 오랜만에 작은 차에서 구매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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