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의 전기자동차 산업활성화 정책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국내 전기차 시장이 충전인프라 확충과 차종 다양화로 민간으로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환경부가 돌연 예산을 줄였기 때문이다.
르노삼성·한국GM·BMW 등 완성차업계가 제시한 내년도 국내 시장 판매목표는 약 6000대. 정부 산하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밝힌 수요는 2600대로 민간 수요도 1000대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가 책정한 내년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 예산은 고작 800대 수준이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시장 활성화의 성장판을 좁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필수 전기차리더스포럼 의장은 “국내 전기차 시장은 친환경 인식과 기존 차에 비교해 현저하게 저렴한 연료비, 주행 성능 개선과 차량 가격까지 떨어지고 있어 내년을 기점으로 시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지금이 정부가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보조금 예산 확충 등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을 내놓을 때”라고 말했다.
◇성장 어린이의 식사량을 줄이는 환경부
2011년부터 시작된 국내 전기차 보급 시장은 올해로 2300대 규모로 성장했다. 턱없이 부족했던 충전인프라에 국내 출시 차량도 현대·기아차의 한 종류뿐이어서 시장은 정부 예상과 달리 혼전을 거듭했지만 2013년을 시작으로 국내 전기차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 충전인프라 확충과 차종 다양화, 여기에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2배 이상 됐던 차량 가격도 점차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한국GM은 경차형 전기차 `스파크EV` 시판에 들어간데 이어 르노삼성도 지난달 전기차 `SM3 Z.E`를 출시했다. 기아차도 내년 상반기 `쏘울EV`를, BMW는 내년 5월에 `i3`를 내놓는다. 기아차 `레이EV`를 포함해 내년에 일반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차종만 5~6종에 달한다. 여기에 닛산, 폴크스바겐, 테슬라모터스 등도 국내 시장 진출 시기를 내부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전기차는 가솔린·디젤·LPG의 내연기관 차에 비해 연간 1000만원 이상 유류비를 줄일 수 있고 정부의 친환경정책 실현에도 크게 기여하는 장점이 있지만 차량 가격은 동급의 내연차에 비해 두 배가량 비싸다. 이에 완성차업체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을 앞세워 판매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준중형 전기차인 르노삼성의 SM3 Z.E는 판매가가 4250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과 서울·제주를 포함해 환경부가 선정한 10대 전기차 선도도시 지자체 시민은 800만원의 전기차 보조금을 추가로 받게 된다. 이 때문에 4250만원의 차량은 1925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한국GM의 스파크EV도 판매가는 3990만원이지만 보조금을 받으면 1700만원대에서 구매할 수 있다. 동급의 내연기관 차량과 비슷하다.
판매가가 4500만원이던 레이EV는 최근 3500만원으로 가격을 내렸다. 보조금을 받으면 최대 1500만원에서 살 수 있다. 또 유럽에서 3만4950유로(약 5145만원)에 판매중인 BMW의 i3는 국내 시판가가 5000만원 중후반대에서 책정될 전망이다. 이 경우 3000만원 전후에서 차량 구매가 가능하다.
이처럼 전기차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지원받아야 판매가보다 1500만~2500만원가량 저렴해진다.
하지만 정부가 내년에 내놓는 전기차 보조금 예산은 `쥐꼬리`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내년도 전기차 보조금으로 254억원을 책정했다. 차량 설치시공비 등 약 800만원 하는 완속충전기와 구매 보조금 1500만원을 합하면 800대만 지원을 받는다. 지난 2012년 보조금 예산인 573억원과 비교하면 절반수준이다. 올해 276억원과 비교해도 8%가량 떨어진 셈이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차량 다양화와 주행성능 개선 등으로 전기차 수요가 늘고 있지만 내년(2014년)도 환경부가 (국회에)올린 예산은 800대를 지원·보급할 수 있는 254억원 수준”이라며 “차종 다양화와 본격적인 민간 보급 정책으로 내년에만 최소 1500대 수준의 예산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장 수요 폭발적 증가…정부는 `모르쇠`
지난달 1일 SM3 Z.E.를 출시한 르노삼성은 올해 500대를 비롯해 내년에는 법인시장 2700대, 민간보급 1300여대 등 총 4000대를 팔겠다며 공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 차는 이미 출시 첫날 LG화학·LG CNS·에버온 등 LG그룹에서만 200대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올해 판매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질 노만 르노그룹 아·태지역 총괄 부회장은 “내년 4000대를 판매하기로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며 “한국 내 기업들이 신기술에 적극적인데다 소비자들 역시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혁신적인 기술과 연비효율, 관리 비용을 고민하고 있어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르노삼성 역시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로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만 부회장은 “전기차는 아직 규모의 경제까지는 달성하진 못했다”면서 “한국 정부가 인센티브와 보조금 혜택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가 시장에 확산될 때까지 최소 5년 동안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월말 쉐보레 스파크EV를 선보인 한국GM은 내년에 1000대를 내수 시장에 판매한다는 목표다. 스파크EV는 창원시 15대, 인천시 2대, 민간사업자 21대 등 총 40여대가 국내에서 판매됐다. BMW 코리아도 내년 5월부터 시판해 7~8개월 기간 동안 500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다.
현대기아차도 차량가격 4000만원 이하에서 `쏘울EV` 내년 4월에 출시할 예정이다. 결국 완성차업계의 내년 판매 목표는 6000대에 달한다.
여기에 지자체와 정부, 공공기관이 밝힌 전기차 수요만 2600대가 넘는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9월말 지자체를 대상으로 내년 전기차 구매 수요를 조사할 결과 2693대가 접수됐다. 여기에 제주·창원·당진에서 민간보급을 계획 중이다. 실제 올해 국내 첫 민간보급을 실시한 제주도의 경우 도민과 기업들로부터 총 487대의 전기차를 신청 받았다. 하지만 구매보조금 예산이 바닥나면서 추첨을 통해 160대만 배정했다. 이에 제주는 벌써부터 환경부에 내년도 민간 보급 계획을 최소 500대 이상 실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전기차 물량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지난 7월 도민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은 결과 총 160대 모집에 신청대수는 487대로 3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며 “내년 민간보급사업에는 최소 500대 이상을 투입할 예정으로 환경부와 이미 협의를 마쳤다”고 전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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