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갈증’(감독 이길우) 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8)

발행일자 | 2018.02.01 09:54

이길우 감독의 ‘갈증’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원영(임세원 분)은 여권을 찾으러 자신의 집에 들른 전 남자친구 민호(황승환 분)에게 화장실 안의 남자를 죽였다고 말한다.

단 두 명이 등장하며, 집 안에서 모든 촬영이 이뤄진 이 영화는 다른 조건이 배제돼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지만, 행동 자체도 강렬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갈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갈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거부적 대상에 대한 강력한 반리비도적 자아의 전형을 보인 원영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을 ‘갈증’의 원영에게 적용하면, 예측불허의 행동을 한 것 같은 원영이 예측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어베언은 완전한 고유의 자아는 본래 고유의 대상인 다른 사람과 완전하고 문제없는 관계를 리비도적 연결로 형성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페어베언이 사용한 ‘리비도’는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쾌락 추구가 아닌 대상 추구를 뜻한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원영과 민호의 대화를 들어보면 두 사람은 이전에 이상적인 리비도적 관계를 이뤘던 것으로 보인다.

대상과의 완벽한 리비도적 연결이 침해를 받을 경우, 자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아와 대상을 각각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눈다. 대상에게 의존하는 마음인 ‘리비도적 자아’는 ‘흥분시키는 대상’과 연결되며, 의존하는 자기에 대한 스스로의 거부감으로 생긴 ‘반리비도적 자아’는 ‘거부의 대상’과 연결된다.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결국 내가 분열된 각각 나의 일부분이고,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 또한 같은 사람의 다른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갈증’의 원영은 자기에게 돌아와 달라고 하면서 민호에게 ‘리비도적 자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여권을 찾으러 온 것이긴 하지만 집으로 방문했다는 것 자체로 민호를 ‘흥분시키는 대상’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렇지만, 민호는 본인은 원영을 감당할 수 없다고 감당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고 말하면서 ‘거부의 대상’이 되는데, 원영은 이제 단순히 ‘리비도적 자아’가 아닌 ‘반리비도적 자아’를 드러내는 소극적인 회피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반작용을 한 것이다.

명확하진 않지만 영화 속에서 원영은 이런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반복에 따른 증폭은 걷잡을 수 없는 질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민호는 본인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했겠지만, 만약 분열성 양태 모델을 알고 있고 원영에게 적용했으면 무의식적으로 원영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갈증’ 이길우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갈증’ 이길우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단 두 명이 등장하며, 집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펼쳐진다

‘갈증’에는 단 두 명이 등장하며, 모든 촬영은 집 안에서 이뤄진다. 벨소리, 물소리 이외에는 큰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TV가 틀어져 있는데 소리가 나지는 않는 것은 볼륨을 줄였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갈증’의 원작은 정형화의 ‘문제해결능력’이다. 영화와 원작의 제목은 같은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시야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관계가 틀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와 관계의 갈증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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